아마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이였을거야. 생초 신연(생림)에 나의 친한 친구 민현식가 있다.
친구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때 우리는 돈도 없고 군것질 할 것도 없고 하여 토마토 서리, 수박 서리를 몇 번 했었다.
하루는 주인한테 들켜서 꼼짝없이 돈을 물어 주게 생겼다.
지서에서 잡아가도록 신고하겠다는 주인의 말에 벌벌 떨다가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마련하여 그동안 서리했던 수박 값을 물어 주겠노라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풀려났다. 그런데 돈이 있어야지...
현식이가 꾀를 내었는데 자기 집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괴짝속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옛날 책들을 진주 골동품 상점에 가서 팔자는 것이었다. 우린 그 책을 한 보따리 챙겼다. 그리고 진주에 갔다. 중앙로타리 옆에 "옛날 돈, 옛날 서적 삽니다."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골동품 상회 주인에게 그것을 보여주니 주인은 우리를 힐끗 쳐다 보더니 "이 책은 별 쓸모 없는 책이라서 돈을 5백원 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권 쯤 되는 고서를 우린 사정사정하여 2천원을 받았다. 지금의 2만원 쯤 될까?
그 돈으로 차비 제하고 우동 한 그릇 씩 먹고(우동 한 그릇에 50원) 3백원 씩은 삥땅치고 천원을 수박 밭 주인에게 바쳤다.
훗날 알았는데 그 책은 유의태 선생의 의학 서적이었던 것이다. 그 그림들은 약초와 사람의 신체그림 등 참으로 귀중한 것이었는데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서 우연히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의학 관련 고서적 전시회 갔다가 그 때 우리가 팔아먹은 그 책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가 그 것을 알아보게 된 것은 당시 책을 보따리에 쌀때 잘못하여 잉크를 엎질렀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림이 유난히 많이 그려져 있는 책의 표지에 뭏었던 잉크를 수건으로 닦아낸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삼십년이 지나서 박물관에서 만난 우리가 팔아먹은 책... 그 책의 가치를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우리나라 한방의학서로서는 상당히 참고할 만한 책이란다. 얼마면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 양반은 불쾌한 듯 "이렇게 귀중한 서적은 팔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묻는 당신의 양식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어린날의 철없는 행동을 생각해보니 기가 막혔다.
그 당시엔 우리가 몰랐던 유의태 선생이 오늘 나의 삶에 따라 다니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우리가 팔아먹은 그 책들은 귀중한 문화제가 되어있었지만 그 괴짝 속에 남아있었던 그 많은 책들이 왜 현식이네 집에 있었고 그 후로는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다.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 이순갑
첫댓글 유의태의 고향이 산음현(산청군)이였으니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있는을동안( 조선일보) 첫월급을 받아 설래는 마음으로 진주예술제에
서적들이 우리고향에 남아있었군요..순갑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 옛추억들이 주마등 처럼스쳐가네요 순찬이하고 신문배
한
구경가서 거북이찐방집에서 점심대신 팥물과설탕을 뿌린아주맛있던
찐빵이며호떡을 사먹은 기억이 빛바랜 녹색추억이되어 주마등처럼스쳐지나갑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어린 순수한 때뭇지않은시절의
이야기군요..순갑님 너무감동적인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