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행 첫째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가을 여행의 행선지를 남도로 정했다.
1년 전 다녀왔던 남해 여행의 일정이 빡빡하고 고되기는 했어도
볼 것, 먹을 것이 만족 했었기에 호남 쪽 안 가본 곳을 한 번 더 돌고 싶었다.
나의 포콜라레 모임 일정과 겹치지 않는 날 중에서
엘리사벳이 가능한 날을 잡다 보니 그 중 10월 5일~7일이 가장 무난했다.
이번에도 ‘H투어’의 ‘내나라 여행’ 상품 중 남도 여행 2박 3일 짜리에
우선 5명을 신청하고 계약금으로 50만원을 선불하였다.
나머지 금액은 24호 태풍의 향방을 출발 5일 전까지 지켜본 후
최종 결재하거나 취소를 하거나 할 생각이었다.
마음 졸이던 ‘짜미’가 다행히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일본을 관통하게 된 것이 확실해져
잔액을 송금하려는데 애들 넷째 고모에게서 못가겠다는 전화가 왔다.
애들 고모부가 허리에 문제가 생겨 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두 명을 취소하고 여행 일주일 전에 잔액을 여행사에 보냈다.
그런데 ‘짜미’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에 괌에서 발생한 25호 태풍 콩레이가
뒤따라 오면서 서서히 힘을 키우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기상청은 콩레이가 짜미와는 다른 경로를 택해 제주도와 남해안에 인접해 지나갈 것이고
경상남도 일부지역에는 상륙할 수도 있다는 예보를 했다.
하필 우리가 여행 중에 있을 시간이 태풍이 절정에 다다를 때이고
지역적으로는 태풍의 뒤를 따라가는 여행 일정인 것이다.
출발 5일에 전에 취소를 하면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때 까지도 한국 기상청은 진로가 유동적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여
한반도를 비켜 가기를 기대하다가 날짜를 넘겨 버렸다.
그러는 사이 태풍의 세력은 점 점 더 강해지고 우리나라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여행은 무리일 것 같아 출발 이틀 전, 위약금으로 10%인 15만원을 물어내고
취소하기로 딸과 합의를 봤는데
그 날이 10월3일 휴일이어서 해약을 할 수가 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같은 날 가기로 한 다른 신청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하여
여행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니 25명 중 2명이 취소하고 23명이 남아 있었다.
우리만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지 모두들 날씨에 상관없이 태평하구나 싶었다.
하루 전에 취소하면 30만원을 손해 봐야 하기에 우리도 그 23명의 일원으로써
예정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행의 기쁨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서 오는 것이 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돈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출발하기 전의 설렘과 기대감을 포기하는 것이 더 아쉬웠었다.
어렵게 휴가를 낸 엘리사벳을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여행 가방을 꺼내놓고 가져갈 물건들 목록을 메모하면서부터 마음이 즐거워졌다.
비바람에 대비하여 여벌의 옷과 신발, 우산과 우비까지 챙기니 날씨에 대한 걱정도 사라지고,
나머지는 여행사의 판단과 노하우를 믿기로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출발일인 10월 5일 집을 나설 때는 하늘이 잔뜩 흐려 있더니
집합장소인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시간 약속을 모두 다 잘 지켜 8시 2분경에 출발하여 죽전에 들려 몇 사람을 더 태웠다.
차 안에서 투어 쪽이 제공해준 모듬떡과 집에서 준비해 간 구운달걀, 청포도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차는 고속도로를 쭉쭉 달려 나갔다.
날씨가 이런 상황인지라 2박 3일 여행 내내 도로는 텅 비어 있어
오는 날까지도 막히는 구간 없이 잘 올 수 있었다.
10월 초순이어서 단풍은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의 선물은
이맘때가 아니면,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황금들녘이었다.
달리는 버스 차창 좌우로 어디를 가나 보이는 것은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황금빛 논이었다.




갈수록 비는 좀 더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차창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정안휴게소에서 한 번 쉰 다음 천안 논산고속도로를 지나
군산에서 새만금 방조제를 드라이브하여 건너 편에 있는 부안에 도착했다.
새만금 방조제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연결하는,
바다를 메워서 만든 땅이 여의도 면적의 140배이고, 길이 33.9km인
세계최장의 방조제로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32.5km)보다 더 긴 방조제이다.
간척을 하여 만든 땅의 70%가 군산, 부안과 김제가 15%씩 갖고 있는데
벼농사만을 짓기에는 쌀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 크게 쓸 모가 없게 된 것이 문제라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논이 부족한 이북 사람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거라 예측해 본다.
그리고 1/3은 국제도시 1/3은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니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부안에 도착하여 바지락전문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바지락 한상차림)
양은 적었지만 바지락 부침, 바지락 죽, 바지락 무침 등이 맛이 있었다.
이번 여행 중 푸짐한 한상 차림을 여러 번 받아 맛 봤지만 내 입맛에는 이것이 가장 깔끔하고 좋았다.


부안을 떠나 고창에 도착 했을 무렵에는 빗줄기가 굵어져 우산으로 커버할 수 없을 정도여서 나는 우비를 꺼내 입었다.
고창 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외침을 막기 위해 도민들이 축적한 자연석 성곽이며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핵심 역할을 하였던 성이다.
먼저 고창읍성 바로 옆에 있는 판소리 집대성의 선구자인 신재효 선생의 생가터를 복원한 집부터 방문하였다.
선생은 당시 구비 전승되어 오던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그리고 변강쇠가를 집대성 정리했다 한다.





생가터를 나와 고창읍성으로 올라가 보기로 하는데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져서
남자들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만 올라가고 나는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왔다.
등산로에 가마니를 깔아 놓았어도 빗물에 절벅거려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 아래에서 사진 한 장만 기념으로 찍었다.

성곽 위에는 자연산 대나무인 맹죽이 볼만하다는데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이미지 출처 :파이낸셜뉴스 2018.09.27 16:24)
성곽을 올라가는 대신 판소리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신재효(申在孝)·진채선(陳彩仙)·김소희(金素姬) 등
다수의 판소리 이론가와 명창들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창 신재효 고택 자리에 설립된 판소리 전문 박물관인데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고창을 떠나 목포를 향해 떠났는데 목포 쪽은 비가 많이 오지 않은 듯
땅이 별로 젖어 있지 않았다.
목포에서의 첫 관광은 유달산 자락에 있는 노적봉과 목포근대역사관을 보는 것이었다.
유달산은 높이는 228m로, 높지 않으나 산세가 험하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호남의 개골(皆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비로 인해 미끄러워 올라갈 수가 없었다.
유달산 노적봉(露積峰) 바위는 이순신 장군의 의인전술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노적봉은 해발 60미터의 바위 봉우리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마치 조선군의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꾸며 다수의 병사들이 있고
충분한 양곡이 있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일본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노적봉 상단의 바위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기도 한다.



노적봉을 보고 내려와 목포근대역사관을 둘러보았다.
<목포근대역사관은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에 위치한 근대역사 전용 박물관이다.
건물은 구 목포 일본영사관이 본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의 건물도 같이 쓰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이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 본관이였으나,
현재는 구 목포 일본영사관이 본관으로 쓰이고 있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과거 일인 거류지 내에 있다.
신고전주의의 건물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건립 당시의 외관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한민국의 사적 제289호이기도 하다.
또한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은 일제시대에 쓰였고
이곳은 남한 일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척으로는 두 곳 뿐인데다
규모면에서 부산보다 앞서 있어 철거와 보존의 논쟁이 끊이지 않던 가운데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쓰이게 됐었다. 건물 양식은 르네상스 양식이며
1920년 지어진 건축양식으로는 목포에서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큰 가치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74호이기도 하다.
박물관 내부에는 목포의 개항과 당시 조선의 역사, 일제의 야욕과 수탈의 상징적 사진들,
당시 동척이 쓰던 금고 등이 있으며 2층까지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대개 근대자료사진전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위키백과 참조







독립가
터젓고나 터젓고나 조선 독립성 십년을 참고 참아
이제 터젓네 삼천리의 금수강산에 이천만 민족 살아고나 살아고나
이 한소리에만세 만세 독립 만세만세 만세 조선 만세
(약 100년전 우리선조들이 소리높이 불렀던 "독립가" 3·1운동(1919년)에 참여하는 군중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함.)
역사관을 나와 차를 타고 목포 갓바위를 보기 위해 영산간 하구에 놓인 다리를 밟고 강가로 내려갔다.
갓 바위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목포의 영상강 하구에 형성된 풍화혈로서
삿갓을 뒤집어 쓴 특이한 형상의 바위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곳에 왔다가 갓을 벗어 놓고 갔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500호 갓바위 앞에서)
갓바위를 보는 것으로 관광일정을 마치고, 굴비녹차말이를 석식으로 먹은 후,
목포 현대 호텔로 가서 체크인 하였다.



숙소에 들어와 하루 종일 젖었다 말랐다 하면서
후줄근해진 옷들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성당 우리 구역식구들이 묵주기도를 하고 있을 시각인 7시 30분이 되고 있었다.
내가 여행 중이라 참석은 하지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기도로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른 묵주를 꺼내 기도를 바쳤다.
호텔은 2인 1실인데 침대 하나를 더 들여놔 주어 셋이 잘 수 있었다.
밤부터 바람이 쌩쌩 불어 문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바깥출입을 하지 말라는 재난 문자가 전라남도로부터 왔다.
TV뉴스에서는 태풍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밤새도록 바람은 무섭게 불었지만 비는 별로 오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첫댓글 여행기, 재미있게 읽었다. 걱정했는데 중간에 비가 그쳐서 잘 다니겠거니 했다.
소상하게 잘 기록했고, 사진도 적절하게 넣어서 읽는 사람도 자기가 여행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구나.
그런데 국내여행 이박삼일이 일인당 50만원씩이나 하니? 해외여행보다 비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부럽다.
좀 비싼 편이지만 편안해서 노인층이 많이 이용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