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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부안 44코스
사포 버스정류소-후포마을-목우마을-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환경센터 앞-
신창천-만화천-신복리 간척지들-구진마을-곰소염전-범섬공원-곰소광장공원
20230412
1.곰소염전의 빛나는 소금의 결정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사포버스정류소에 다시 왔다. 지난 번에는 이곳에서 43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였지만 이번에는 44코스를 순방향으로 탐방하여 부안군 줄포면으로 넘어간다. 새벽 4시 40분이 되지 않은 시각, 후포로를 따라 후포마을로 들어갔다. 후포마을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빛나 어둠을 밀어내고 있어 마을 전체 윤곽이 잡힌다. 후포마을은 후동마을과 후서마을로 구분되는 듯, 후서로를 따라 서쪽의 후서마을을 통과한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는 하얀 꽃, 가까이 가서 살피니 탱자나무 꽃이었다. 오랜만에 탱자꽃을 본다. 대모산 불국사 입구에도 탱자나무가 있어 봄날이면 탱자꽃을 피운다. 그런데 개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남쪽 지방에는 탱자나무가 많아 탱자꽃을 보기가 쉬운데 이번에 때를 맞추어 탱자꽃을 보게 되었다. 탱자꽃을 보면 언제나 산이슬의 노래 '이사 가던 날'이 떠오르고 이 노래를 웅얼거린다. "이사 가던 날 뒷집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 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탱자나무꽃, 소꼽시절의 그 소녀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피어오른다.
어둠 속에서 간척지들로 나갔다. 배수갑문을 지나 둑방길을 따라 목우마을 방향으로 향하였다. 어둠 속에서 43코스에서 걸었던 건너편의 곰소만 남쪽을 어림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야할 곰소만 북쪽 44코스 진행 방향도 앞서가는 일행의 헤드랜턴 불빛만이 깜박거릴 뿐이다. 하늘을 올려보니 하현달이 떠서 새벽 어둠의 낭만감에 잠시 젖어들게 하였다. 서해랑길 이정목, 트랭글 트랙의 안내,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불빛 반짝이는 지역이 목우마을일 것이라 어림하며 수로의 다리를 건너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에서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로 넘어갔다. 우포리 간척지들 끝 지점에 이르니 동이 트는 듯, 사료용 풀을 재배하는 들밭이 보였다. 이제 물상들이 구별되었다. 무지몽매에서 계몽의 빛을 받아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 같았다. 우포리 생태공원로 간선도로로 나가 줄포만갯벌생태공원 방향으로 나아가며 물상들을 헤아리며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에 젖을 수 있게 되었다.
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 전망대에서 줄포만 드넓은 갯벌 풍경에 도취한다. 희미한 안개에 휩싸인 몽롱한 갯벌의 광활함, 분명하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갯벌에서 무수한 생명체들이 숨쉬는 생명의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줄포만 건너편은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일대이며 43코스에서 저 지역을 통과하였다. 그때도 동트는 때, 이제는 동이 튼 때, 그렇지만 끝없는 갯벌의 장대함을 모두 살필 수 없다. 밝은 햇빛 속에서 또는 해지는 저녁노을 속에서, 이제 곰소만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진 줄포만갯벌습지를 바라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갯벌은 그 구성 퇴적물의 입자 크기에 따라 펄갯벌과 펄과 모래가 섞인 혼성갯벌로 구분는데, 줄포만갯벌습지는 펄 갯벌이 우세하게 분포하는 가운데 혼성갯벌이 발달한 지역으로 자연 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염생식물이 서식하고 저서동물, 수산생물 및 오리류, 고니류, 도요새, 백로 등이 서식하는 등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줄포만갯벌습지는 2006년 12월 15일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 제6호, 2010년 2월 1일 람사르습지 제1937호로 등록되었다.
줄포만갯벌습지를 조망하다가 뒤돌아서서 갯벌습지 안쪽으로 조성된 갯벌생태공원을 바라보았다. 그때 저류지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줄포시가지가 왼쪽 뒤에 자리하고 그 앞 오른쪽 우포리 지역에 갯벌생태공원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침안개, 안개가 퍼져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안개는 공원을 감싸고 흘러서 줄포 시가지까지 번져갈 것 같다. 생태공원은 1996~1999년 사이에 바닷물로 인한 줄포 시가지의 침수 방지를 위해 방조제를 쌓아 줄포만 저류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저류지에 갈대숲과 염생식물 군락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서, 2003년부터 자생식물을 심어 줄포의 생활하수를 정화하고 염분 제거작업을 통해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일원에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이 2014년에 개장하게 되었다. 생태공원과 갯벌습지 그리고 줄포 시가지 모습은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되는 풍경으로 보였다.
줄포면 줄포리에서 보안면 유천리로 넘어가 유유히 흘러오는 신창천과 간척지들을 바라보며 곰소염전을 향한다. 유천리 호암마을, 신복리 신복마을이 드넓은 들녘을 배경하여 평화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신복마을 뒤쪽으로 보안면 우동리 반계 유형원 선생 유적지가 가늠된다. 15년 전 겨울이었을 것이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 아침 우반동의 반계서당을 찾아갔었다. 반계는 이곳에서 조선 현실의 개혁을 위한 <반계수록>을 저작하였지만 이 저서는 당시에 외면받았고, 사후에 주목 받았지만 현실 개혁에 이용되지 못하였다. 조선은 결국 서양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아 결국 일본에 합병되는 치욕을 당하였다.
만화천(萬花川)의 신복교를 건너 신복리 간척지들을 가로질렀다. 드넓은 간척지들에는 축사와 사료용 목초재배지가 펼쳐져 있다. 등 뒤로 아침햇빛을 받으며 진서면 진서리 구진마을 앞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슬지제빵소와 그 앞에 곰소염전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이곳은 예전에 갯벌이었을 것이다. 1942년 연동-호도(범섬)-웅연도(곰섬)-작도를 잇는 제방이 축조되면서 곰소염전이 생겨났다고 한다. 줄포항이 폐항되고 곰소항이 커지면서 곰소염전은 전성기를 누린 것 같다. 곰소염전 앞으로 나가보았다. 이 지역 출신의 강민숙 시인은 "곰소염전에/ 발 한 번 담가 보자/ 그러면 나도 눈부신/ 소금이 될 수 있을까/ 한나절쯤 발 담그면/ 빛나는 결정이 될 수 있을까"(강민숙의 '곰소항'에서) 곰소염전에서 눈부신 삶의 결정체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따라 길손 또한 빛나는 삶의 결정체로 반짝이고 싶다.
2.탐방 과정
탐방 전체 거리 : 14.29km
탐방 소요 시간 : 3시간 15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沙捕里) 사포(沙浦) 버스정류소 옆에 서해랑길 44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갯가에 모래가 많으므로 사진포(沙津浦) 또는 사포(沙浦)라 하였다고 한다. 사진포(沙津浦)는 흥덕 북쪽, 부안으로 향하는 반도 안에 자리 잡은 포구이다. 예부터 주위의 들이 넓어 물산이 모여들고 해산물이 풍성하게 잡혀서 일찍이 해창이 설치되었다. 사진포는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흥덕현의 서쪽 6리에 있다.”라고 한 곳으로 일찍이 흥덕현의 중심 항이 되어 상선들이 정박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흥덕현의 해창이 설치되어 한때 고창·흥덕 지역의 전세·균세·대동미를 수납하여 한양의 경창으로 운반하는 거점이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포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하여 줄포만갯벌생태공원-곰소염전-곰소젓갈발효식품센터을 거쳐 곰소항회타운에 도착한다.
일행들이 출발한 뒤 '고창을 걷다' 플래카드를 들고 서해랑길 44코스 안내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서해랑길 44코스 안내도 오른쪽 전봇대 기둥에 달려 있다.
왼쪽은 43코스 사포마을 김소희 생가 가는 길, 44코스는 오른쪽 후포마을 가는 길로 이어간다.
사포 버스정류소 오른쪽에 서해랑길 44코스 안내도, 오른쪽 전봇대에 서해랑길 44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서해랑길은 후포로를 따라 후포마을로 이어간다. 오른쪽 불빛 환한 곳은 후포마을 중 후동마을인 것 같다.
"後浦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개가 있으므로 뒷개 또는 후포(後浦)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대촌(大村)·후포·용두(龍頭)·사포(沙浦)·석우(石隅)·신송(新松) 각 일부를 병합하여 후포리라 하고 흥덕면에 편입하였다. 후포리는 흥덕면의 중부에 있다. 후동리·대촌리·후서리 3개의 행정리와 대촌[일명 죽촌]·용머리·후서(後西)·후포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대촌은 후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머리는 후포 동쪽을 이루는 마을로 용의 형국인 후포리에서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붙인 이름이다. 후서는 후포 서쪽을 이루는 마을이다. 후포에는 해창 터가 있다. 조선시대에 흥덕골에서 거두어들인 세미를 사포리 창고와 이곳에 나누어 보관하였다가 서울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은 밭으로 개간되었다. 후포리는 군도 18호선이 지나고 오른쪽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관광 시설로 후포해수찜질랜드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894년 2월 10일 고부에서 농민들이 전봉준의 지휘하에 관아를 습격하여 군수를 내쫓고 아전들을 징벌한 후 곡식을 풀어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10여 일 간 폐정을 처리한 후 일단 해산했다. 그 뒤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하는 계기가 된 것이 2차 봉기인 고창군 무장봉기라 한다. 그래서 무장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의 진격로를 따라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 같다.
"고창 지역은 1894년 3월 20일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 전개를 알리는 무장기포가 일어난 곳으로 동학 농민 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내부에서 가장 강력하고 중심적인 활동을 하였던 전봉준의 태생지이며, 동학 대접주 손화중의 근거지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후포로를 중심으로 왼쪽은 후서마을, 오른쪽은 후동마을, 이렇게 후포마을은 둘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후포로에서 기와집이 있는 왼쪽 후서마을 후서길로 진입한다. 오른쪽은 후동마을인 것 같다.
후포로에서 후포 서쪽마을인 후서마을 후서길로 진입한다.
오랜만에 햐얗게 피어난 탱자나무 꽃을 만났다.
후서마을을 거쳐 나오면 김소희 생가 갈림길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흥덕면 신덕리 하연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다리를 건너 간척지 들길을 따라간다. 후포리에서 신덕리로 넘어가는 것 같다.
"新德里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흥덕면의 북부에 있다. 마을에서 덕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 하여 신덕(新德)이라 하였다. 신덕리·목우리·상연리·하연리·후동리 5개의 행정리와 목우·상연·하연(下蓮)·언안·연장·용소·원덕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목우는 신덕 서쪽, 연장은 신덕 남쪽, 원덕은 신덕 동쪽, 용소는 목우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상연(上連)은 연장(連莊) 위쪽, 하연은 연장 아래쪽을 이루는 마을이고, 언안은 목우 북쪽 둑 안에 있는 마을이다. 신덕리 왼쪽으로 군도 18호선이 지나고, 오른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800m를 진행하니 해안문화마실길 이정목이 또 나타난다.
걸어온 후포리 지역의 불빛이 뒤 왼쪽에 보인다. 오른쪽 뒤는 곰소만 남쪽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인 것 같다.
태양광발전소 울타리를 따라 진행한다.
목우마을 1.0km 지점이다. 세천비(世阡碑)는 조상들의 묘소가 자리한 선산(先山), 선영(先塋)에 세웠다. 두렁 천(阡)을 쓴 것은 선영(先塋)이 산이 아니라 경작지, 두렁, 산기슭, 밭두둑 등에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빛 반짝이는 곳이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 목우(牧牛)마을인 것 같다.
오른쪽에서 진행하여 다리를 건너 둑방길을 따라오다가 뒤돌아 보았다. 오른쪽이 신덕리 목우마을인 것 같다. 이 수로를 경계로 오른쪽은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 왼쪽은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로 나뉜다.
둑방길을 따라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간척지들을 가로지른다. 이 수로는 곰소만 바다로 이어진다.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간척지들에서 변산반도 북쪽을 조망한다.
"牛浦里는 마을의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 소왓개[우포(牛浦)]라고 이름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건선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건선면의 우동리, 우중리, 해사리, 선양리, 감역리, 옹암리, 동령리, 원동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건선면 우포리로 개설하였다. 1931년 7월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우포리의 북쪽과 동쪽은 줄포면의 줄포리와 신리, 남쪽은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옹암리(瓮岩里)·선양리(先陽里)·감동리(甘東里)·감역리(甘役里)의 4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료용 풀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구릉 뒤에 곰소만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왼쪽 뒤로 곰소만 바다가 보인다.
"옹암마을은 줄포 시내 남쪽에 자리하며, 1920년대 중반 삼양사 줄포농장 매갈이간이 들어서며 줄포항과 함께 번성을 누렸다. 삼양사 줄포농장 매갈이간은 삼양사의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가 1926년 설립한 정미소였다. 삼양사 줄포농장 매갈이간은 당시로서는 규모가 웅장하여 가을이면 매갈이간 위아래 마당에 집채보다 큰 노적가리가 빽빽이 들어찼고, 100여 명의 지정 인부를 포함하여 300여 명의 인부들이 일을 하였다. 쌀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실어가고, 또 일본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하역하는 노동자, 고깃배에서 생선을 푸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또 삼양사 줄포농장 매갈이간 외에 줄포에는 소규모 매갈이간이 더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전라북도에서 돈을 잡으려면 줄포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현재 줄포 일원, 특히 옹암마을 등지에는 이 무렵 고창, 정읍 등지에서 이거하여 뿌리를 내린 세대들이 다수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줄포면 우포리 간척지들에서 우포리 생태공원로 간선도로로 나왔다. 뒤쪽에 줄포만생태공원이 보인다.
생태공원로를 따라 부안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향한다.
생태공원로를 따라가며 우포리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을 내다보았다. 왼쪽 뒤는 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이다.
오른쪽은 줄포면 소재지 줄포리 줄포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 방향으로 직진한다.
줄포면 우포리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갯벌생태공원 뒤에 줄포면 소재지 줄포리 시가지가 있다.
오른쪽은 줄포만갯벌생태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서해랑길은 갯벌생태 관찰 및 체험장 방향으로 직진한다.
왼쪽에 우포리 줄포만갯벌습지보호지역과 갯벌생태 관찰 전망대가 보인다.
2006년 12월 15일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 제6호, 2010년 2월 1일 람사르습지 제1937호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펄 갯벌이 우세하게 분포하는 혼성갯벌이 발달한 지역으로 자연 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갈대, 칠면초, 나문재 등 다양한 염생식물이 서식하고 저서동물, 맛조개, 가무락, 바지락, 칠게, 농게 등 수산생물 및 오리류, 고니류, 도요새, 백로 등이 서식하는 등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뛰어나다.
갯벌생태 관찰 전망대 옆에 여러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 중 관심이 가는 세 안내판을 소개해 놓는다.
1. 갯벌이란, 조류로 운반되어 온 미세한 흙돌이 파도가 잔잔한 해안에 오랫동안 쌓여 생기는 모래나 펄로 된 평탄한 지형으로, 조석의 상대적 영향정도와 갯벌을 구성하는 퇴적물의 입자 크기에 따라 펄갯벌, 펄과 모래가 섞인 혼성갯벌로 구분된다.
2. 갯벌의 기능
ㅇ생물다양성의 보고
-갯벌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점인 점이적인 환경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어류 200여종, 갑각류가 250여종, 연체동물이 200여종 등 다양한 생물 등이 서식할 만큼 영양염류가 풍부하여 자연생태계 중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생태계 가운데 하나로 연근해에 비하여 10~20배가 높으며, 농경지나 산림지역과 비교하여도 더 높은 생산력을 나타내고 있다.
ㅇ수산물의 생산지
-갯벌은 경제적으로 유용한 어패류의 산란과 서식장소로 비록 갯벌에서 직접 어획되지는 않지만 갯벌에서 서식하거나, 일생중 한 시기라라도 갯벌이나 주변 염습지에 서식하는 수산생물은 다양하다.
○철새들의 서식지
-연안습지의 다양한 생물들은 철새들의 먹이감이 풍부하여 많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이용되며, 철새들의 소중한 산란지이며 서식지가 되고 있다.
о환경적 가치
- 자연정화 기능 : 육상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갯벌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 의하여 유기물질의 분해가 활발히 진행되어 수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자연재해와 기후 조절 기능: 많은 양의 물을 저장 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높은 수위를 낮추어 강의 하구나 바닷가의 침식을 막고 염습지의 식물 군락들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심미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 갯벌은 사람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며, 낚시, 갯벌체험 등 레크레이션의 장소로 이용된다.
황새목 저어새과의 대형 조류, 가리새라고도 한다. 수컷은 겨울깃이 흰색이다. 눈 언저리와 턱밑, 멱의 중앙은 피부가 드러나 있다. 여름깃은 뒷머리에 긴 다발모양 노란 장식깃이 있으며, 목 아랫부분에는 노란빛이 도는 갈색 목테가 있다. 암컷이 수컷보다 약간 작고 뒷목의 장식깃도 없다. 다리는 검으며, 부리는 노랗고 끝이 평평한 주걱모양이다. 습지나 넓은 평지 물가, 하구 등지에 내려 앉는다. 못이나 습지에 가까운 숲 또는 호숫가 풀밭에 집단으로 번식한다. 한배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물고기·개구리·올챙이·조개류·연체동물·곤충 따위의 동물성 먹이와 습지식물 및 그 열매를 먹는다. 한국에서는 낙동강 하구에서 몇 차례 잡혔을 뿐인 희귀한 새이다. 1968년 5월 30일 천연기념물 제205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황새목 매과의 조류, 몸길이 30~33cm이다. 매류에 속하는데, 수컷은 밤색 등면에 갈색 반점이 있으며 황갈색의 아랫면에는 큰 흑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머리는 회색, 꽁지는 회색에 넓은 흑색띠가 있고 끝은 백색이다. 암컷의 등면은 짙은 회갈색에 암갈색의 세로 얼룩무늬가 있다. 꽁지에는 갈색에 암색띠가 있다. 날개를 몹시 퍼덕이며 직선 비상한다. 때로는 꽁지깃을 부채처럼 펴고 지상에서 6~15m 상공의 한곳에 떠서 연 모양으로 정비 범상(停飛帆翔)을 하며 지상의 먹이를 노린다. 단독 또는 암수가 함께 생활한다. 4월 하순에서 7월 초순에 걸쳐 4~6개의 알을 낳는다. 포란 기간 27~29일이며 27~30일이 지나면 독립시킨다.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보호된다. 세계 전역(툰드라 지역 제외)에 분포하는데 겨울에는 북부의 집단은 적도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남부의 집단은 정주한다.
건너편은 곰소만 남쪽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지역이다. 배꽃이 하얗게 피어 줄포만을 비추고 있다.
왼쪽은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줄포만 남쪽 해안이며, 오른쪽은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와 곰소리의 줄포만 북쪽 해안이다.
"곰소만은 일명 줄포만(茁浦灣)이라고도 불리는데, 줄포와 곰소는 이곳의 항구 이름이다. 부안군 남부의 줄포면, 보안면, 진서면, 변산면 그리고 고창군의 북부인 부안면, 심원면, 해리면 일대의 만으로, 남북 2~9㎞, 동서 약 20㎞, 면적 약 77㎢의 갯벌이다. 수심은 10m 미만이다. 곰소만의 간석지 면적은 77㎢이며 이 중 간척된 면적은 14㎢[18%]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간석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서, 2010년 2월 1일 면적 41.09㎢이 ‘고창·부안 갯벌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6년 12월 15일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516-1번지[생태공원로 170] 일대 4.9㎢ 지역이 ‘줄포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이곳에는 줄포만 갯벌 생태 공원[부안 자연 생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건너편은 고창군 부안면 상암리 줄포만(곰소만) 남쪽 해안이며, 해안 뒤쪽은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지역이다.
중앙 오른쪽은 곰소항일 것이며 그 앞에 내죽도가 있을 것이다. 이 풍경은 변산팔경 중 제1경 웅연조대(雄淵釣臺)이다. 오른쪽에 줄포항이 있었는데 폐항되었다.
"줄포항의 전성기는 1930년대를 전후하여 약 20년간 지속되었으며 당시 일본 사람들이 운영하는 각종 업소만도 30여 개나 될 정도로 번창하였고, 중국인 포목상과 음식점도 10여 개나 되었다. 명월관, 달성관, 장춘관 같은 유흥업소도 대여섯 군데나 있어 매일 가무음곡(歌舞音曲)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도정공장도 이 무렵에 들어섰는데 인부들만 수백 명이었다. 당시 면소재지의 기관 단체로는 건선면사무소를 비롯하여 줄포경찰서, 우편국, 조선식산은행 줄포출장소, 곡물 검사소, 소방서[의용 소방대], 남선전기 주식회사 줄포출장소, 줄포어업조합, 줄포운수주식회사, 신탄조합, 줄포공립보통학교[현 줄포초등학교] 등 15개나 되었다. 특히 의용 소방대의 전신인 소방서는 한일합병 직후인 1911년 전라북도 안에서는 군산항 다음에 두 번째로 설치되었다. 1919년에는 부안경찰서의 전신인 줄포경찰서가 군내 최초로 설치되었고 은행 역시 인근에 조선식산은행 정읍지점 한 곳이 있었고, 부안군에는 조선식산은행 줄포출장소 한 곳뿐이었다. 부안군은 물론이고 전라북도 내에서 몇 번째 안으로 주요 기관이 속속 들어선 것으로 미루어 당시 줄포항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는 풍부한 어장과 수로·육로의 원활한 교통 등 중요 지점으로 지역 여건에 기인한 것이다. 1940년대 이전까지 줄포항은 서해 연안의 4대 항[제물포항, 군산항, 줄포항, 목포항]에 속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토사가 쌓이면서 선박의 입출항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1958년 어업 조합과 부두 노조가 곰소항으로 이전하면서 폐항과 동시에 서서히 활기를 잃어 갔다. 다행히 지리적 여건과 교통상의 이유로 5일장[1일·6일]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보안면과 진서면을 위시해서 고창군 흥덕면의 일부가 줄포 상설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줄포항이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인근의 어촌들 역시 쇠락하였지만 우포리는 줄포항의 쇠락을 초래한 갯벌로 인하여 최근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2006년 12월 15일 해양수산부가 줄포만 갯벌 3.5㎢에 습지생태 관광을 위한 기반 시설을 갖춘 줄포만 갯벌생태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줄포만 갯벌[고창·부안 갯벌]은 2010년 2월 1일 람사르 습지로 공식 등록되어 생태공원에 대한 시설이 더욱 보완되고 있다. 여기에 갈대숲 10리길, 야생화 단지, 바둑 소공원, 은행나무 숲길 등을 꾸며 사람들이 찾아와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996~1999년 사이에 바닷물로 인한 줄포 시가지의 침수 방지를 위해 방조제를 쌓아 줄포만 저류지를 만들었는데, 이곳에 갈대숲과 염생 식물 군락이 형성되었다. 2003년부터 줄포 자연 생태 공원 조성 사업을 통해서 약 33만㎡에 달하는 갈대숲을 조성하고 자생 식물을 심어 줄포의 생활 하수를 정화하고 있다. 그리고 염분 제거 작업을 통해 약 3만 3000㎡의 부지를 자연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일원 줄포만 갯벌 생태 공원[80만 8000㎡]은 갯벌생태 탐방, 생태공원, 체험, 숙박, 캠핑, 교육, 전시 등을 목적으로 2014년에 개장하였다. 시설로는 줄포만갯벌 생태관, 숙박시설, 캠핑시설, 대관시설, 편의시설, 체육 시설, 생태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뒤는 줄포면 소재지 줄포 시가지, 오른쪽은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갈대숲 저류지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조선조 말엽 줄포는 건선(乾先)면(현 난산리 원난산마을)으로 불리었으나 1875년 항만이 구축되면서 건선면에서 줄포면으로 개칭되었다. 이전부터 부른 줄래포를 개칭한 것이다. 줄포는 1900년대 초 서해안 조기의 3대 어장중의 하나인 칠산어장을 안고 근대의 항만으로 발전하였다. 곡창지대 호남평야의 쌀이 일본으로 수탈당하는 출구로서의 기능이 컸으며, 그러다보니 줄포항(茁浦港)은 상업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이렇게 항구가 번성하자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서, 우편국, 식산은행(출장소), 곡물검사소, 소방서, 남선전기, 어업조합, 줄포운수,신탄종합, 줄포공립보통학교 등 15개 기관과 일본인 업소 30여 곳, 중국인 포목상과 음식점만도 10여 곳, 기타 유흥업소 등이 들어서 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토사의 축적으로 항구기능을 점차 상실해가면서 1985년에는 어업조합과 부두노조가 곰소항으로 이전되면서 급기야 1990년대에는 폐항조치되기에 이른다. 지금의 자연생태공원이라 부르는 곳을 막은 방파제 공사가 완료되면서 줄포는 이제 바다 구경을 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곰소에서 시작하여 줄포갯벌까지 서해 바다의 아름다운 비경을 말한 것으로 갯벌 위에 비춰진 낙조와 수많은 어선에시 밝혀대는 야등(夜燈)이 물에 어리는 장관을 변산팔경 중 제1경이라 한다.
"제1경 웅연조대는 곰소 앞바다의 낚시터 경관으로, 줄포만에서 시작해 곰소 앞까지 이르는 서해의 아름다운 정경을 말한다. 곰소만에 떠있는 어선들과 어선에서 밝히는 야등(夜燈)이 물에 어리는 장관과 어부들이 낚싯대를 둘러메고 뱃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제1경으로 꼽았다. 곰소는 예전에 섬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인 1942년에 이곳 일대에 제방을 쌓아 육지로 만들고 곰소항을 축조하였다. 과거 선인들이 묘사하던 곰소항 축조 이전 웅연도(熊淵島) 앞바다 풍경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으나, 여전히 곰소항은 빼어난 일출과 일몰의 풍경을 자랑하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줄포만 갯벌습지 보호지역에서 생태공원로를 따라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줄포면 줄포리 줄포시가지 뒤쪽 동쪽 하늘이 붉어지며 아침노을이 번지기 시작한다.
"茁浦里는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법정리. 줄포(茁浦) 지명은 1875년(고종 12) 줄포항이 축조될 무렵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주을래포(注乙萊浦)’로 불리다가 ‘줄래포(茁萊浦)’로 바뀌었다. 『호남읍지(湖南邑誌)』와 『부안지(扶安志)』에 줄래포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줄래포는 줄포로 변경되었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건선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건선면의 은행정과 강동리, 강서리, 사거리, 신기리, 장동리, 동령리, 옹령리, 원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건선면 줄포리로 개설하였다. 1931년 7월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해변가 나지막한 야산인 천대산(天臺山)[42.8m] 남서 기슭 포구에 자리 잡은 줄포리는 마을이라기보다는 소규모 도시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환경센터 입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분탕골로를 따라 보안면 유천리 지역을 통과한다.
줄내, 줄천, 남포천이라고도 불리는 신창천이 간척지 신창들을 가로질러 흘러오고 있다. 왼쪽 마을은 유천리 호암마을이다.
"신창천(버드내, 유천, 줄내, 줄천, 남포천)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에서 영전리, 유천리를 지나 곰소만으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 신창천이라는 명칭은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영전 저수지의 하류에 위치한 신창들에서 비롯되었다. 영전 저수지로부터 하류부는 간척으로 만들어진 넓은 신창들의 가운데를 관류하여 곰소만 방조제에 이른다. 곰소만으로 유입되는 하구는 곰소만 방조제의 갑문 두 개소로 통제되고 있다. 영전 저수지에서 직선으로 곰소만에 유입하는 부분에 제1배수갑문이 위치하고 있고, 이로부터 방조제를 따라 북서쪽 호암마을 방향으로 약 90° 정도 급격히 선회하여 약 500m를 흐르다가 제2배수갑문으로 곰소만에 유입하기도 한다. 제1배수갑문에서 제2배수갑문 사이의 유로는 하천이라기보다는 저수지에 가까워 보인다. 하류 인근의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는 고려 시대 도요지(陶窯址)로 알려진 곳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1배수갑문 뒤쪽에 제2배수갑문이 보이며, 그 오른쪽에 자리한 마을이 보안면 유천리 호암마을이다.
"柳川里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법정리.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내’라고 부르다가 한자 지명으로 바꾸면서 유천(柳川)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냇물이 평야를 지나 바다로 뻗어 내려갔기 때문에 ‘뻗은내’가 변하여 버드내가 되었다고 한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입하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입하면의 장춘동(長春洞), 고잔(古棧), 내유천, 외유포(外柳浦), 호암리(虎巖里), 염수동, 장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보안면 유천리로 개설하였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조선 지형도』「부안」에 장춘동, 외유포, 유천리, 내유포(內柳浦), 고잔, 호암리 등의 지명이 보인다. 보안면 남포리 630번지 선에서 발원하여 줄포면 해안으로 흘러드는 6.9㎞의 신창천[버드내, 유천, 줄내, 줄천, 남포천 등으로도 불림]이 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장춘동에서 호암리에 이르는 긴 구릉이 바다를 향해 뻗으면서 곶(串)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며,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농경지와 마을이 자리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2배수갑문 오른쪽에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호암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유천리는 고려 시대 도자기를 만들던 도요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버드내마을 뒤 구릉 지대의 옛 토성 자리를 ‘씨안’, ‘서낭댕이’라고 부르는데 이 일대가 세계적인 고려 상감 청자를 구워 낸 사적 제69호 부안 유천리 도요지(扶安柳川里陶窯址)이다. 일제 강점기 도요지가 확인된 이후 1970년대까지 주민들에 의해 빈번하게 도굴이 행하여졌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품질 좋은 상감 청자나 다완 등은 쌀 10여 가마니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부안 유천리 요지에 청자 박물관과 도자기 체험관이 마련되어 학생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교육 기관으로 1944년 설립된 유천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학령 인구의 감소에 따라 1999년 영전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보안면(保安面) 유천리(柳川里)에서 신복리(新福里)로 넘어왔다. 중앙 뒤쪽은 실학자 유형원 선생 유적지가 있는 우반동일 것이다.
"보안면 신복리(新福里)는 신복마을에서 따온 지명이다.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입하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입하면의 실음리(實音理), 종곡리(宗谷理), 신활리(新活里), 만화동, 호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보안면 신복리로 개설하였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조선 지형도』「부안」에 실음리, 종곡리, 신복리, 신활리 등의 지명이 보이며 지금은 육지가 된 진두도(珍斗嶋)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앙 왼쪽에 낮은 산이 천마산인 듯. 보안면 유천리 신복마을이 보인다.
"서쪽에 천마산[135m]이 자리하고 남쪽으로 갯벌이 펼쳐져 있으며, 마을 중앙에 개간된 경작지가 펼쳐졌다. 보안면 우동리에서 발원한 만화천(萬化川)이 마을의 중심을 따라 흘러 황해로 유입된다. 청자로가 마을 북쪽으로 지나가는데, 청자로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신활길, 종곡길, 신복길을 따라 신활마을, 종곡마을, 신복마을 등이 자리한다. 북쪽으로 보안면 소재지에서 변산면을 연결하는 국도 제30호선이 지나간다. 유천서원(柳川書院)에 배향된 조선 시대 학자 동상(東湘) 허진동(許震童)이 공부했다는 산당(山堂) 터가 천마산 중턱에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신복리 다리를 건너 신복길에서 간척지들로 나와 길게 이어지는 들길을 걸은 뒤 진서면 진서리 구진길로 진입한다.
"만화천(萬花川)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서 신복리를 지나 곰소만으로 흐르는 지방 하천. 만화천(萬花川)이라는 명칭은 중하류부에 있는 만화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만화천 인근은 반계 선생 유적지(磻溪先生遺蹟地)가 있는 곳으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이 밤늦게 이곳을 지나다가 갈대꽃이 달빛에 만발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꽃으로 가득하다고 하여 만화(滿花)라 명명하였다. 이후 이곳에 과수 농장을 크게 개척한 장성 사람 김병수가 과수나무에서 일만(一萬) 가지의 꽃이 핀다는 뜻으로 만화(萬花)로 개칭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진서면(鎭西面) 진서리(鎭西里) 구진(舊鎭)길로 들어와 구진(舊鎭)마을 앞을 통과한다.
"진서(鎭西)는 조선 시대 검모포진(黔毛浦鎭)의 서쪽에 있다 하여 유래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검모포진은 줄포만 입구에 있던 수군 진영으로 『고려사(高麗史)』「세가(世家)」에 “임술일에 왜적이 검모포에 침입하여 전라도의 세미 운수선에 불을 질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에는 “만경, 옥구, 무장은 격포에 소속되고 부안, 고부, 흥덕은 검모포에 소속되었는데….”라는 기록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선조 왜구의 침입이 자주 있어 당시 조정에서는 만호영(萬戶營)을 두었던 곳으로 백제 때부터 진처로 이곳에 조창을 지어놓고 세미를 받아 당들이 선으로 서울 서강(지금의 마포 근처)으로 수송했다고 하는 지역이다
진서면 진서리 곰소만 간척지들을 가로질러 구진마을 구진길로 들어왔다. 길 건너편 남쪽으로 고창군 부안면이 바라다 보이며 마을 앞에 곰소만의 해안을 낀 구진마을은 원래는 금포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앙에 솟은 산이 매봉인 듯, 매봉 뒤쪽이 보안면 우동리 지역으로 실학의 선구 '반계수록'의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지가 있으며, 오른쪽 샘물교회 구릉 뒤쪽에 부안 진서리도요지가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은 17세기에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론을 주창한 실학(實學)의 비조(鼻祖)이다. 32세 되던 1653년(효종 4) 한양에서 부안 우반동(愚磻洞)으로 이거하였다. 1670년(현종 11) 49세 때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하였으며, 3년 뒤인 1673년(현종 14)에 부안에서 5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은 유형원이 20여 년을 살면서 토지 제도 개혁을 비롯하여 사회 개혁론을 집대성한 곳이다. 반계 선생 유적지(磻溪先生遺蹟地)는 조선 효종(孝宗)·현종(顯宗) 때 실학의 선구자 반계 유형원이 부안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우반동으로 들어온 이듬해인 1654년(효종 5)에 반계서당이 건립되었다.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 세종(世宗) 때 우의정을 지낸 유관(柳寬)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정랑 유성민(柳成民)이며, 아버지는 예문관 검열 유흠(柳𢡮)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주 이씨(驪州李氏) 이지완(李志完)이다. 유형원은 열다섯 살 때 병자호란을 겪고 조부모와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원주로 피난하였다. 열여덟 살에 부사 심은(沈誾)의 딸과 혼인하였다. 서른두 살 때인 1653년(효종 4) 부안현(扶安縣) 우반동[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유형원은 이곳 우반동에서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과 사회 현실을 겪으면서 쉰두 살에 운명할 때까지 세상을 주유하며 사회 개혁을 담은 책을 썼다. 우반동의 아름다움은 우반십경(愚磻十景)에 잘 남아 있다.
일찍이 허균(許筠)[1569~1618]이 우반동의 정사암을 중수해서 머물기도 하고 소설 『홍길동전』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우반동이 번창한 마을로 바뀐 것은 유성민이 이곳으로 들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그 뒤 김홍원(金弘遠)[1571~1645]이 유씨 집안의 토지를 사들이고 손자 김번(金璠)이 우반동에 들어오면서 부안 김씨(扶安金氏) 세거지로 번창하였다고 전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구진길이 청자로와 만나는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슬지제빵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예전에 이곳은 갯벌 지역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간척되었다.
"구진(舊鎭)은 곰소염전 동쪽 해안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조선 시대에 수군 진(鎭)인 검모포진(黔毛浦鎭)이 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여몽 연합군 전함을 만든 곳으로 비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구진마을도 예전에는 칠산 바다가 부려다 주는 풍요를 만끽하며 마을 주민 모두 어업이나 자염업[이 마을에서는 자염[煮鹽]을 화염(火鹽)이라고 한다]으로 생계를 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곰소항이 축조되고 해방 후에 곰소염전이 완성되면서부터 자염업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말 칠산바다에서 조기와 갈치가 사라지자 어업도 문을 닫아야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44코스 종점 2.1km 지점으로 건너편에 슬지네찐빵 슬지제빵소가 있다.
문을 열지 않아 이곳의 유명한 빵을 먹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있는 찐빵 제조·판매업체. 슬지네찐빵은 제품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딸의 이름을 넣어 2000년에 창업하였다. 100% 우리 밀과 국산 팥, 천연 재료, 직접 만든 전통 효소 발효종, 발효액, 누룩 등을 넣어 만든 순수 전통 발효 찐빵을 제조하여 전라북도 부안군의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대표 메뉴인 오색 찐빵은 전라북도 부안에서 나는 우리 밀, 국산 팥, 호박, 뽕잎, 오디, 흑미 등 다섯 가지 농산물로 색을 낸 찐빵으로 2012년에 특허를 받았다. 오색찐빵 이외에도 생크림·크림치즈 찐빵을 개발하는 등 소비자 연령층을 다양화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밀, 팥, 소금 등 100% 지역 농산물로 빵을 만들어 농가 소득과 농산물 부가가치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슬지네찐빵 슬지제빵소는 슬지네찐빵의 2호점으로 2017년 8월에 개점하였다. 슬지네찐빵은 최초 설립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남매가 가업으로 2대째 이어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슬지제빵소 건너편에 진서면 곰소리 곰소염전이 있다. 곰소염전 뒤쪽에는 진서리 진서마을과 진동마을이 있다.
부안마실길에서 만나는 부안의 관광명소와 역사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소금 만들어지는 과정을 만화로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소금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금이 저 잘났다고 배추나 고등어 앞에 나서는 것 봤느냐. 그저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 다할 뿐... 세상 살다 욕심이 생기거나 마음이 흔들리면 아비가 보내준 소금을 보며 네 인생을 다스리도록 해라.
일제말기 연동마을에서 호도(범섬)와 웅연도, 작도를 연결하는 제방을 축조하면서 염전이 형성되었으며 45ha의 드넓은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무기질이 풍부한 식품으로 담근 젓같이 유명하다.
곰소의 명물은 단연 소금이다. 과거에는 소금이 아주 중요했다. 국가에서 관리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매품이었을 만큼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임금님이 피난길에 꼭 챙겨야 하는 것 중의 하나도 소금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면서도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소금이 광물 취급을 받다가 얼마전 식품으로 전환되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곰소 소금이 세계적인 품질이라면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부안지방의 소금 생산은 화염이 주된 것이었으며 하서면 언목길 일대, 계화 대벌리 일대가 주 생산지였고, 천일염은 곰소염전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생산을 하였다. 발효 식품에 필요한 질 좋은 소금이 있기에 곰소젓갈, 상서된장, 개암죽염과 같은 발효식품이 부안지방에서 발달한 것이다.
곰소천일염의 생산시기는 3월~10월말까지인데 여름날씨엔 보름정도 걸리며, 여름엔 매일 소금을 채취할 수 있다. 봄, 가을의 경우에는 3~5일마다 채취 가능하며 여름의 경우 결정이 크고 봄, 가을의 경우엔 결정이 조금 작지만 단단하다. 천일염 맛의 차이점은 염화마그네슘에 의해 결정되는데 간수에 미네랄이 풍부하여 간수를 다음날 물과 섞어서 쓰면 소금결정이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간수의 농도가 30도가 넘기 전에 버린다. 그 이상이 되게 되면 쓴 맛이 나기 시작하는데 곰소 천일염은 간수의 농도가 진해지기 전에 폐기를 하여 다른 지역의 소금과 다르게 쓴 맛이 나지 않는다. 곰소염전은 지리적으로 만해 위치하고 있어 미네랄 함량이 높아 지리적 위치에서 유리하며, 고품질의 천일염은 1년 생산량이 2500톤 가량 되는데, 이는 주로 현지에서 판매된다.
중앙 뒤쪽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지역으로 내소사가 있는 곳이다.
청자로를 따라 곰소항 방향으로 진행한다. 앞쪽의 양식장은 진서리 구진마을 양어장이다. 이곳이 구진갯벌지역인 것 같다.
"구진마을의 어업의 문은 닫았지만 곰소 쪽 갯벌 한 자락에서는 새우 양식을 하고 있으며, 갯벌이 아직 오염되지 않고 건강해 환경 지표종이자 국외 반출 승인 대상종인 짱뚱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역시 국외 반출 승인 대상종인 말뚝망둥어가 뛰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멸종 위기 야생 동물 2급인 대추귀고둥이 새우 양식장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구진 갯벌에는 맛조개, 갯고둥·갯비틀이고둥·댕가리·왕좁쌀무늬고둥·민챙이, 농게·칠게·방게·도둑게 등이 서식하고, 가는갯는쟁이·나문재·칠면초·해홍나물·퉁퉁마디·갯질경이, 갈대 등이 만조선을 따라 자생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청자로 건너편 오일필드(주) 오른쪽이 범섬공원 가는 길이며, 서해랑길은 왼쪽 구진길을 따라 진행한다.
44코스 종점 1.4km 지점이다.
그윽한 팽나무가 곰소리 해안에서 자라고 있다.
뒤쪽은 범섬공원이며 팽나무가 멋지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중앙에 솟은 산봉은 매봉인 듯. 보안면과 진서면 일대가 조망된다.
왼쪽 전망정자 앞을 거쳐왔다. 진서면 진서리 구진갯벌이 왼쪽에, 보안면 유천리,신복리 해안이 오른쪽부터 모두 조망된다.
왼쪽부터 부안군 보안면과 줄포면, 중앙은 고창군 흥덕면, 오른쪽은 고창군 부안면 일대 해안이다.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 상암리, 봉암리, 송현리, 선운리 일대가 흐릿하게 들어온다.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송현리, 선운리가 조망된다.
곰소만 입구 방향이 흐릿하고, 오른쪽에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내죽도와 등대가 조망된다.
왼쪽 바다에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내죽도, 중앙 뒤에 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곰소항이 조망된다.
"곰소만(줄포만)은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보안면, 진서면, 변산면 일대의 만(灣). 곰소는 웅연도(熊淵島)[일명 곰섬]가 곰처럼 생겨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섬 앞바다에 깊은 소(沼)가 있어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이 두 글자를 합쳐서 우리말로 곰소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안군 진서면 면소재지 시가지가 조망된다. 이곳의 지명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곰소광장이라고 부르면 되리라.
곰소광장 공원에 철로가 있다. 이곳에 연결된 철도가 없었는데 철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철도가 없었으며 역사(驛舍)도 없었는데 곰소역 조형물을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철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철도역 간판을 설치하였다.
팽나무 뒤쪽 쓰레기 분리수거 처리장 울타리 옆에 서해랑길 부안 44·45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거리 14km, 소요 시간 4시간 30분, 쉬운 난도라 적혀 있다. 실제 탐방 거리는 14.29km, 소요 시간은 3시간 15분이 걸렸다. 새벽의 어둠 속이 아니고 밝음 속에서 탐방하면 볼거리와 살필거리가 있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서해랑길 44코스를 마치고 서해랑길 안내도와 함께 기념한다.
쓰레기 수거장 울타리에 서해랑길 45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고, 울타리 옆에 서해랑길 45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