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새벽 2시 / 신형호
지금 시각, 새벽 2시다.
거의 한 시간 반이나 이준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제 오후다. 아들 내외가 힘든다고 둘째 손자를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기로 했다. 유치원생인 첫째 손자만 아들에게 하원을 맡겼다. 하원시간에 맞춰 푸른 그늘이 숨 쉬는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니 쌩긋 웃으며 할머니를 반긴다. 사실 둘째 이준이는 엄마보다 더 할머니를 따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뿌듯했다. 첫째 손자 우주는 유치원 수업은 마쳤지만 언제나 밖에서 한 시간 남짓 뛰어놀다가 집에 들어온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남자라 늘 활발히 노는 것에 굶주려 있는 느낌이다. 손자들이 집에 오니 거실은 다시 전쟁터가 된다. 사내아이 둘이라 잠시 가만히 있질 않는다. 소파에서 뛰어내리기, 공 던지기, 술래잡기, 말타기등 좁은 실내 활동은 언제나 북적거리고 다칠까 조바심이다.
며느리가 퇴근을 했다. 이제 우린 집에 갈 시간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할머니를 보고 둘째 이준이가 치마를 잡고 착 달라붙는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은 모양이다. “그럼, 이준이 할머니집에 갈래?” 할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한다. 한쪽에 있는 포대기를 가리키며 빨리 업어달라고 채근한다. “정말 오늘 할머니 집에 가서 잘까?” 이번에도 “응”하며 바싹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엄마가 퇴근하면 곧 할머니가 집에 간다는 것은 아는 눈치다. 두 돌도 채 안 되고, 아직 말도 어눌하지만 상황파악은 번개다. 엄마한테서 떨어져도 괜찮다는 표정이다.
할머니 집과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다. 아들의 승용차로 집에 들어선 이준이는 빙긋 웃으며 제집인 듯 얼굴에 꽃이 핀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이준이 독차지다. 제 집처럼 서로 차지하려고 형과 다툼이 없기에 더 좋은 모양이다. 장난감 차를 줄 세워 놓고 혼자서 재미있게 중얼거린다. 정확한 발음은 안 되지만 소리를 내어 가면서 하는 짓이 아기 천사다. 손자 돌보는 재미가 이런 것일까? 석양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일상에서 힘들지만 자잘하게 누리며 얻는 기쁨. 소확행이다. 흐뭇한 마음에 조용히 지켜보며 같이 놀아준다.
하오 8시 30분. 이준이 잠잘 시간이다. 자기 집에서도 늘 이 시간에 잠을 잔다. 할아버지가 함께 자면 방해 되지 싶어 나는 뒷방으로 침구를 옮겼다. 습관대로 컴퓨터 유튜브에 백색소음 ‘물 흐르는 소리’를 틀어놓고 잠을 재운다. 처음에는 잠시 잘 자는 듯하더니 잠자리가 바뀌었는 것을 아는지 계속 뒤척이며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세 시간 남짓 흘렀을까?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아파트를 흔들어 댄다. 선잠을 잤는지 다독여도 계속 칭얼거린다. 조심조심 재우려고 하나 계속 울어댄다. 잠시 자는 듯하더니 또 깨어 운다. 땀이 바짝바짝 난다. 아뿔사. “엄마, 엄마” 이젠 엄마까지 찾는다.
막무가내로 울어대니 대책이 없다. 안고 얼러도 소용없다. “지금 엄마한테 갈까?” “응” 계속 달래다가 묻는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이 선명하다. 손자는 자다가 깨 보니 곁에 엄마가 없어서 당황한 모양이다. “정말, 지금 엄마한테 갈까?” “응”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할 수 없었다. 머리맡에 치워둔 포대기에 다시 둘러맸다. 근데 내려가는 엘리베이트에서 업힌 손자의 얼굴을 빤히 보니 생긋이 웃고 있지 않은가? ‘아이고, 뭐 이런 여우 같은 놈이 있나?’ ‘정말 자기집에 가고 싶은가?’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아들 집 주차장에서 한동안 기다려도 아내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잠시 들어가서 손자만 내려놓고 오면 될 터인데 왜 이렇게 안 올까? “아이고, 고놈. 참” 한참 만에 내려온 아내의 첫 말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는 내 말에 대답이 황당하다. 글쎄 손자가 또 할머니에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 엄마를 보고 쌩긋이 웃고 좋아하더니, 가려고하니 또 할머니 치마를 잡는다는 것이다. “다시 할머니 집에 갈까?” “응” 뭐 이런 놈이 있나? 황급히 혼자 내려왔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이란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손자의 본 마음은 무엇일까? 아기의 마음은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다. 조금도 때가 묻지 않고 본능에 충실한 것이 아기의 마음이다. 엄마를 향한 아이의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아기에게서 엄마는 절대적이고 지고지순하다. 이준이도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 집에 가서 자고 싶었지만, 깨어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두려웠다. 비록 딴 곳에 있더라고 늘 엄마는 마음속에 같이 존재한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평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모양이다.
(2024.5.21.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