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믿음....
본문 : 마8:5-13 (신약11)
(눅 7:1-10; 요 4:43-54)
<예수님께서 두 번 놀라신 기록>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놀라신
기록이 두 번 있습니다.
① 당연히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들의
불신을 보고 놀라셨습니다(막6:6).
막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메시야 되심과
그 말씀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은 거기서 더 이상 권능을
베풀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믿지 못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시며
(6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가장 잘 믿고 또 가장 잘 깨달아야 할 사람들이
지혜의 말씀과 권능을 경험하고도
배척하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놀라신 것입니다.
② 당연히 안 믿을 사람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 놀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백부장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유대인도 아닙니다.
이방인 군대 장교였습니다.
유대인을 압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온
로마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 가지지 못한
놀라운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놀라셨습니다.
→ 마땅히 믿어야 하는 자기 동족,
자기 고향 사람,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지 않음을 보고
놀라셨던 주님은 믿을 수 없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놀라신 것입니다.
10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러한 놀라움은 오늘날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아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어 순종해야 할 사람은 믿지 않고....
오히려 역경과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더 큰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백부장의 믿음>
과연 예수님을 놀라게 한
‘이만한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으로 돌아보는 믿음입니다.
5-6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은 자신을 위해 예수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병들었기 때문에 온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법에서 종이란 살아있는 도구입니다.
종을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굶기고 싶으면 굶기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사고팔고 했습니다.
당시 종은 주인의 재산에 속했고,
생활 수단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을 부리듯 하였고
늙거나 병이 들면 짐승처럼 내다 버리고
묻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종은 아무런 법적인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대개 식민지에 주둔해 있는
본국의 군인들은 포악하고 잔인했습니다.(눅3:14)
식민지 백성들을 괴롭히고
착취를 하는 것은 보통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종을 사랑했습니다
(눅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종은
중풍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중풍병은 주변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하는 병입니다.
병 걸린 종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 것입니다.
내다 버리면 끝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 종을 사랑했습니다.
누가의 보도에 의하여 이 백부장은
“유대인을 사랑하여” 회당을 지어 주었습니다.(눅7:5).
사랑하는 성도님들 !
사랑은 믿음을 갖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백부장은 사랑의 동기에서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랑은 불가능의 장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체면과 상황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백부장이 가진
사랑의 믿음을 칭찬하며
‘이만한 믿음’ 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성경지식을 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는 우리를 보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이나 기도의 분량이 우리를 나타내는
배지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백부장이 예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돌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이만한 믿음’ 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으로 돌아보는 믿음입니다.
둘째로 겸손으로 낮아지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식민지에 파견된 군대의 장교입니다.
그의 지위와 권세로 보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해도 됩니다.
로마의 장교가 유대 청년 하나를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직접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장로들을 보냈습니다).
그의 겸손은 7-8절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납니다.
7-8절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
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시려
그의 집으로 가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진정으로 낮아지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백부장은 높은 신분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식민지 사람인 예수를 향하여
‘주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주여' 라는 말은
'퀴리어스' 라는 단어인데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쓰는 말입니다.
'주' 라는 백부장의 고백은
자신을 비하시키는 고백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백부장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믿음이 회복되어 질 때
주님을 감동시키는 ‘이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로서 큰 업적을 남긴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의 일화입니다.
그가 임종할 때 곁에 있던 사람이 묻습니다.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어떤 성경 구절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시편 51편 1절을 부탁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비문은 어떻게 쓸까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합니다.
"죄 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 같은
내가 당신의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
캐리는 평생에 자신은 '능력 없는 벌레' 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위대한 선교의
업적을 이루었지만.....
자신이 능력 없는 벌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자신이 무능한 존재임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겸손함이 있을 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높아지려 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
살기에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겸손한 믿음을 가짐으로
자신을 낮추며 주님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이만한 믿음’ 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으로 돌아보는 믿음입니다.
둘째로 겸손으로 낮아지는 믿음입니다.
셋째로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9절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제가 왕의 명령에 순종하듯
부하들도 제게 순종합니다.
주님은 창조주의 권위가 있으시니
전능하신 명령 앞에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와 권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8절 “```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당시 로마 군대는 철저한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장교 생활을 하면서
말의 권세 “명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면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의 세계에서도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순종하는데 .....
예수님이 명령을 하시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신뢰를 보내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 말을 들으시고
참 기뻐하셨습니다.
처음에 살펴 본대로 예수님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감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쫓는 사람들에게 칭찬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표적과 기사를 구했습니다.(4:23).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이니까”(요6:30)하며....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태복음 12: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믿지 않고 표적만 구하는
자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이란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언제든지 잘못된 믿음은 ...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구합니다.
기적을 요구합니다.
기적을 보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믿음은 말씀에 순종합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믿는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만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이해되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13절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백부장의 믿음으로 인해 그의 종은
온전히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나오는 말>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흉내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것이 귀합니다.
교회에서 봉사 많이 한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이만한 믿음' 이어야 합니다.
'그 정도 믿음' 으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만한 믿음' 이라고 칭찬 받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시설도 아닙니다.
건물과 시설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
그와 같은 것들만으로는 교회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져 겸손함으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인정하는
‘이만한 믿음’ 의 사람이 되어.....
교회를 세워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