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소통은 잠자리·밥상에서' 유태인 교육서 창의공식 추출 창조 기업 찾기 분주한 尹 수석 '실천과 꾸준함의 힘' 본받아야
그 수석(首席)의 동선이 기자(記者)처럼 보였다. 윤창번(60)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얘기다. 1년의 기업 경험을 빼면 그의 이력은 교수·연구원이 다다. 그런 그가 거리를 헤매는 이유는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때문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분야에서 그는 '창조경제'에 걸맞은 기업을 찾고 있다. 분투(奮鬪)는 가상하나 남은 4년 동안 뜻을 이룰지는 미지수다. 트집 잡기가 아니다. 12년 전에 전철(前轍)이 된 이가 있기에 그 사연을 들려주고 싶다.
2002년 어느 날, 김우식(74) 교수의 눈에 채플(Chapel)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보였다. "그 모습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예요. 저 아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돈은 없고…." 연세대 총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새벽 5시부터 기도하며 고민한 결과 답을 얻었다. "다른 대학과 차별화를 시도해야겠다!" 결론은 기여입학제였다. 부자 자녀에게 받은 돈으로 가난한 학생을 돕고 학교도 발전시키려 했지만 진보 좌파는 그를 '나쁜 선생'으로 꼽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우식은 다양한 분야의 교수 다섯 명과 모임을 만들었다. "창의공학(創意工學)을 공부하자. 우리만의 브랜드를 갖자"는 취지였다. 운명(運命)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그 모임은 커져서 뭔가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그의 팔자를 튼 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비서실장을 부탁한 것이다. "석 달을 기다려주셨어요. 부부 모임까지 했는데 아내가 감탄했습니다. '저렇게 솔직한 분은 처음 본다'고. 조건은 하나였어요. '기여입학제 얘기만 하지 말라'는 거죠."
그렇게 스러질 뻔했던 '창의공학'은 2006년 2월 그가 과학기술부총리로 임명되면서 부활했다. 조직 관리가 주 임무인 비서실장은 화공학도인 그에게 아무래도 비전공이었는데 비로소 '물'을 만난 것이다. 그는 이론을 실무에 적용했다.
지금 김우식은 연세대에서 창의공학연구원을 운영한다. 2009년 시작된 창의성아카데미는 매 학기 각계 중견 서른 명을 모아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벌써 350명이 배출됐다. 쭉 이어지면 '한국형 마쓰시타 정경숙(塾)'처럼 될 것이다.
10년간의 공력을 쏟아 그가 만든 게 '국력(國力) 방정식'이다. NP=R+S+M×C. '국력(내셔녈파워·NP)'은 '천연자원(R)+산업시스템(S)+인력(맨파워·M)×창의성(C)'이란 얘기다. 우리는 천연자원이 없다. 산업시스템은 있지만 최고 수준에는 모자란다. 공식을 보면 길은 뻔하다. 인력이 열쇠다. 여기에 창의성을 더하면 끝내준다. 천연자원·산업시스템은 '더하기'인데 창의성은 '곱하기'인 것이다.
이게 김우식의 창작일까? 놀랍게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에 이런 말이 나온다. "국가의 진정한 부(富)는 그 나라 국민의 창의력에 달려 있다." 스미스는 1723년 태어나 1790년 죽은 사람이다.
'창의적(Creative)'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평생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쳐온 이답게 김우식은 창의 공식도 만들었다. '창의적=새로운(fresh)+유익(useful)+생산적(productive)+영적(spiritual)+모험적(adventurous)+흥미(curious)+차별성(distinguish)+미래형(future oriented).' 공식을 보며 이게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 것이다. 놀랍게도 가능하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813명 가운데 165명을 배출한 민족,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수의 20%를 차지하는 민족, 미국 100대 부호(富豪)의 20%를 가진 민족, 바로 유태인이다. 유태인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만든 원동력은 뭘까. 유태인의 경험이 축약된 '탈무드'와 모세 5경인 '토라'다.
그렇다면 창조국가, 창조경제는 신(神)이 만든다는 말인가? 김우식이 말했다. "탈무드와 토라는 수단일 뿐 진짜 중요한 것은 '베갯머리 교육'과 '밥상머리 교육'입니다." 베갯머리 교육은 아이들을 재울 때 등을 살살 긁어주며 선조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은 자연스레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소통(疏通)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들의 말을 막고 호통치지 않는 것이다.
묘수를 찾는 이에겐 답답하겠지만 창조에는 이렇게 세월이 걸린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진 게 아니다'라는 경구(警句)대로다. 김우식은 박근혜 정부에 훈수했다. "토대만 세워도 좋다는 자세여야지, 결실을 보려면 낭패 볼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곁들이는 것이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좋은 사례입니다. 씨를 뿌리니 꽃이 피잖아요.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서 그렇지 제대로 했다면 세계적인 작품이 됐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