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럽다. 성관계 이후 정액에서 피가 나왔다. 무슨 병에 걸린 걸까. 혹시 성병인가. 미혼 남성들은 더하다. 불임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성 클리닉에 전화 해보고 인터넷을 다 뒤져도 시원한 답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 직접 비뇨기과를 찾는 환자들이 많다. 정액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혈정액증이라고 한다. 주로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며 환자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심리적 충격을 준다. 증상도 거의 없다. 한동안 모르고 지내다가 콘돔을 이용한 성교나 자위 행위 뒤, 또는 부인에 의하여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색깔은 선홍색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검붉은 피간 섞여 나온다. 이 경우 이미 출혈된 피가 사정시 정액과 함께 배출되는 것이다. 혈정액의 원인은 다양하다. 보통 염증·낭종이나 사정관 폐색·종양·혈관 질환·전신 질환·외상성 원인 등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특발성이 45%가 넘는다. 진단 과정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종양과 관련된 부분은 불과 2%였다는 점. 따라서 혈정액증을 호소하는 경우 환자를 안심시키고 검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 문진, 요 검사, 전립선액 검사, 혈청 특이항원, 경직장 초음파 등을 시행한 뒤 정상소견이 보이면 주기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고 비정상적 소견이 보이면 규명하기 위한 검사를 추가한다. 원인이 명확치 않으므로 치료 방법도 여러가지다. 자연적으로 증상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피로하면 이유없이 코피가 날 수 있는 것처럼 정액에 피간 섞여 나온다고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일과성으로 자연소실될 수 있으므로 몇차례 사정을 거쳐 경과를 지켜보고 개선되지 않으면 그 때 치료 받아도 늦지 않다. 전립선이나 정낭염이 원인이면 항생제요법과 온좌욕을 하면 도움이 되고 지혈제는 일반적으로 도움이 안된다. 혈정액증이 있는 환자들의 걱정 중 하나가 상대방에게 옮기는 것 아니냐, 기혼 남성의 경우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병을 잘 모르는 탓에 부부 사이가 악화되기도 한다. 남성들은 심한 경우 심인성 발기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 40세 여성은 동갑내기 남편의 갑작스런 혈정액증을 성병의 한 유형으로 잘못 이해했다. 남편이 외도해서 생긴 것으로 판단한 것. 이 후 남편을 못 미더워하기 시작했고 사사건건 시비가 일었고 결국은 헤어졌다. 또 자위 행위 중 갑자기 발생한 혈정액증에 놀란 나머지 전혀 발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병원을 찾기도 했다. 모든 검사 결과 발기 상태는 정상이었다. 이 환자의 증상은 혈정액증으로 인해 자신의 성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확신하면서 비롯된 심인성 발기장애. 약간의 발기제를 처방하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했다. 결국 이 병으로 인해 정자의 운동성이 감소할 수는 있지만 큰 장애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특히 상대방에게 병을 전파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할 염려는 전혀 없다. 불안해 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정확한 출혈의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진료 행위를 한 뒤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바로 의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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