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동화수필】
축문을 경청하는 ‘고라니 한 쌍’
― 독축(讀祝)하다가 ‘울컥’했던 이유를 물어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어머니 기일(忌日)에는 선산에 간다. 부모님이 잠드신 충남 청양 산소에 이르면 적막하다.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숲이 우거진 선산에는 멧돼지와 토끼, 그리고 이름 모를 산새들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깜짝 놀라게 하는 신기한 녀석들을 발견했다.
부모님 산소에 간단한 주과포(酒果脯)를 올리고 묘제(墓祭) 축문을 읽는 순간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엎드려 축문을 읽는데, 바로 등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숲 속에 일렁이는 바람 소리려니 여기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축문을 계속 읽었다.
부스럭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마치 누가 나의 등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독축(讀祝)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함께 고개 숙이고 축문을 경청하는 아내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축문이 조금 길어졌다.
한문 축문을 읽고 나서 다시 한글 축문을 읽으려는 순간이었다. 고라니 한 쌍이 얼굴을 살포시 드러냈다.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낯선 짐승이었다. 눈망울이 유난히 커 겁이 많아 보이는 암컷 고라니가 말했다.
“적막하기만 한 산골짜기에 웬 구슬픈 노랫가락이 들리나 싶어 소리 나는 곳을 찾아왔어요. 살짝 숨어서 지켜봤는데, 축문 읽는 분이 특이한 게 한 둘이 아니네요. 축문을 종이에 써 온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써왔잖아요.
아, 그렇지! 축문을 읽고 난 뒤에는 소지(燒紙)해야 하는데, 산불 위험이 크잖아요. 축문을 스마트폰 노트에 써 오시길 잘하셨어요.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한문으로 된 축문을 한번 읽으면 됐지, 한글 축문을 다시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처음 보는 낯선 짐승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당황하여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귀가 유난히 크고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수컷 고라니가 ‘상황 설명’을 자처하고 나섰다.
“제가 그 뜻을 잘 알지요. 그동안 부모님 묘제 때마다 손자와 증손자도 참례했지요. 그런 까닭에 윤씨 가문에서는 한글세대도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 축문을 별도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시대 변화에 따라 축문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축문이라고는 하지만 한글 축문은 ‘추모 글’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요. 추모 글이면서 한 해 동안 있었던 ‘가족 동향 보고서’이기도 하지요.”
그러자 암컷 고라니가 궁둥이를 흔들면서 공감의 뜻을 표했다.
“하긴, 감소고우(敢昭告于), 세서천역(歲序遷易)이라고 하면 한글세대가 어떻게 알겠어요. 휘일부림(諱日復臨), 추원감시(追遠感詩), 호천망극(昊天罔極)도 그렇고, 청작서수(淸酌庶羞), 공신전헌(恭伸奠獻)은 또 어떤가요.
그에 비해 한글 축문은 어르신과 얼굴 마주하고 앉아 격식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느낌이 드니, 일종의 편지글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수컷 고라니가 자상하게 설명하자 이번엔 암컷 고라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읽으신 한글 축문에 이런 ‘울컥한 대목’이 나옵니다. <해가 바뀌어 어머니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큰 슬픔이 밀려옵니다> 이어서 <올해에도 변함없이 막내며느리가 정성을 다한 음식을 올리오니 기쁘게 드시옵소서>.
여기서 궁금한 것은 ‘울컥한 대목’입니다. 아드님은 어떤 이유에서 울컥 목이 메어 축문을 읽기가 어려웠는지요?”
고라니는 몸집도 날렵하게 생겼지만 귀가 유난히 크고 쫑긋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귀가 크다는 것은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잘 듣는다는 경청(傾聽)의 선천적 기능을 말한다.
남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는 결국 주제와 핵심을 족집게처럼 뽑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 나는 부모님 산소 앞에 술을 따라 올릴 때마다 용서를 빈다. 생시에 못다한 효를 통회(痛悔)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
어머니의 생애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눈물’이었다. 생때같은 두 자식을 잃고 어머니가 겪은 가슴의 고통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어머니는 처절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평생 치유되지 않는 어머니의 깊은 상처와 한(恨)은 온 가족의 슬픔으로 이어졌다. 억장 무너지는 어머니의 슬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나는 유년시절부터 보고 자랐다.
어머니가 노년에 이르러 기억 장애를 앓고 계실 때, 공무의 바쁨을 이유로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후회스럽다.
자식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한 사랑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후에 용서를 빌고 이렇게 산소에서 술을 따라 올리는 것이 불효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축문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메어 울컥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농사에 손가락이 모두 갈라져 피가 났다. 근면과 성실로 가난을 이겨내신 아버지. 아버지는 강한 의지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조상님을 모신 이곳 선산과 문전옥답도 모두 아버지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시에 그렇게 좋아하셨던 약주와 고기를 나는 마음껏 사다 드리지 못했다. 오늘날 같으면 호화로운 음식은 아니어도, 술과 고기 정도는 떨어지지 않게 사다 드릴 수 있지 않은가. 오늘 날 이런 풍요와 행복을 누구 덕분에 누리고 사는가.
내가 부모님에 대한 눈물겨운 사연을 고백하는 사이, 고라니 한 쌍은 어머니 산소 위로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그러면서 암컷 고라니가 건네는 말이 재미있다. 우리 내외 모습을 세밀하게도 관찰했다.
“상석에 올린 제물을 보니까, 주과포는 물론, 찹쌀떡 도넛과 치킨, 그리고 오늘은 그동안 못 보던 햄버거도 있네요. 손자들이 즐기는 음식이니, 할머니·할아버지께서도 맛보시라고 올리신 것이지요? 제물은 정성이라고 합니다. 아드님 내외분의 정성이 담긴 음식이니 맛있게 드셨을 겁니다.”
그러자 수컷 고라니도 산소 위에서 한 마디 했다. 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긴요한 말이었다.
“저희는 초식성으로 나뭇잎과 연한 풀을 주로 먹습니다. 겨울에는 나뭇가지 끝이나 침엽수 잎, 풀뿌리, 나무뿌리를 잘라 먹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냄새를 유난히 잘 맡는 잡식성 멧돼지 친구들이 많아요. 조금 전 제물을 드시고 나서 음복주 한 방울, 고기 한 점, 그리고 휴지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 말끔히 챙기시는 걸 보았습니다.
배고픈 멧돼지 친구들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달려와 무도하게 산소를 파헤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라니는 산소 잔디 마당에서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까 한글 축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오늘 이 자리에는 다른 자식, 며느리, 손주들이 참례하지 못했습니다. 평일인 데다가 모두가 원거리에 사는 까닭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많은 후손이 참례하지는 못하였으나 각처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 어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은 저의 내외와 똑같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는 자식, 며느리, 손자에게 늘 자애로운 격려와 음덕을 베풀어 주시옵고, 온 가정이 두루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휴일이 아니라서 그 많은 손자가 한 명도 참례치 못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려고 이렇게 손자 대신 나타나 재롱을 부리는 겁니다. 헤헤.
슬프기만 한 제삿날이 아닙니다. 저희는 모처럼 흥미롭고 유익한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특히 윤씨 가문의 의미 있는 축문을 잘 경청하고 정성을 다하는 묘제 풍경을 잘 보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궁둥이를 귀엽게 흔들어 보이면서 꾸벅 인사하는 착한 고라니 한 쌍. 그 어느 짐승보다 예의 바르고 순하게 보이는 고라니를 향해 우리 내외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뒷이야기 : 신기하게도 고라니 한 쌍이 산소에 갑자기 나타나 놀랍게도 우리를 지켜보았다고 팔순 누님께 카톡으로 전해 드렸다. 그러자 누님의 답장이 동생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것들은 정말로 착한 것들인데, 병고에 시달리던 막내며느리가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묘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였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고맙고 기뻐하셨겠나. 어머니가 고라니 한 쌍을 데리고 오셨나 봐.
효자 · 효부가 고마워서 부모님이 고라니를 특별 손님으로 불렀음이 틀림없어. 동생이 보내준 부모님 산소 사진과 동화 같은 고라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가슴이 울컥하네. 어머니가 정말 보고 싶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 동생 고마워!”
|
2023. 5. 3.(음력 3월 14일)
어머니 기일에 산소에서
윤승원 記
♧ ♧ ♧
■ 아들이 그린 ‘부모님 산소 풍경’ :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서양화가, 공무원)이 고라니가 등장하는 아비의 『동화수필 - <축문을 경청하는 고라니 한 쌍>』을 뒤늦게 읽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삽화를 그려주었다.
공무에 바빠 묘제에는 비록 참례치 못한 손자지만, ‘할머니 기일(忌日) 산소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비 글을 읽고 마치 현장에 같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해준 아들이 고맙다. 고라니 한 쌍을 유독 귀엽게 묘사했다.
마침,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아들이 그려준 귀여운 고라니 한 쌍이 지켜보는 <부모님 산소 풍경> 그림은 내게는 소중한 선물이다.
2023. 5. 7.
- 아들이 그려준 <산소 풍경> 삽화 감상
윤승원 소감 記
♧ ♧ ♧
■ 필자 윤승원 ysw2350@hanmail.net
『한국문학』 등단(1990), 대전수필문학회장(역), 금강일보 논설위원(역), 『한국문학시대』 문학 대상 수상,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사연 공모 최우수상, 대전문학관 중견 작가전 초대작가, 저서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외 8권
첫댓글 고라니가 '경청의 동물'이군요. 귀가 커서 그런가요.
고라니가 말을 하고,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는 사실,
눈물 어린 어머니의 슬픈 생애에 대해 고라니도 애도하고 추모하기
하기 내려왔군요.
고라니는 신기하게도 한문 축문, 한글 축문 다 이해하고 있군요.
감동입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동화수필’이란 말은 아마도
제가 처음 이름 붙인 ‘문학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산소에 나타난 고라니 한 쌍의 실체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고라니가 등 뒤에서 축문 읽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고라니의 입’을 빌려 사연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가 참례했더라면
저의 슬픔을 더 아름답게 승화시켜 주었을지 모르지만요.
내일 모레 5.8일은 <어버이 날>입니다.
어버이날 <흰 카네이션의 의미와 유래>를
인공지능에게 물어 보았습니다.(덧붙임 참조)
더 확실하고 자세한 정보는
다른 방법으로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인공지능이 알려준 정보는 단지 참고만 하겠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5.6. 09:20
부모님의 기일에 장천 윤승원 선생 부부가 묘소를 찾아 음식을 차려 놓고 축문을 읽었다는 사실은 누님의 말씀처럼 병고에 시달리던 사모님의 정성이 천지를 감동케 했나 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신이 축하 사신으로 고라니 한 쌍을 보냈나 봅니다. 고라니는 사람을 보면 도망을 치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인데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했다니, 정말 믿기지 않으나 장천 윤승원 선생의 성격으로 보아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겠지요.
이를 장천 윤승원 선생의 수필로 부모님과 아들, 며느리, 그리고 이에 찬조 출연(?)한 고라니의 출현을 멋지게 서술하셨습니다. 천지와 인간, 망자와 생자, 동물과 함께 어울리는 ‘우화 문학’의 우수작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문학 형태는 아마도 한국적인 문학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문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모님의 고질이 말끔히 나으셨다는 것을 거듭 경하드리며, 앞으로 두 분의 즐거운 동행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구복)
▲ 답글 / 윤승원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의 댓글을 읽으면서 한 편의 명문 ‘문학평론’을 읽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낙암 교수님의 과분한 덕담 해설과 역사학자님의 고견이 더해진 깊이 있는 분석은 저의 졸고 수필을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 올려주셨습니다.
특히 “천지와 인간, 망자와 생자, 동물과 함께 어울리는 ‘우화 문학’으로 이해”하신다는 대목은 제가 미처 본문에서 언급하지 못한 ‘철학적 의미’를 짚어 주신 점에서 크게 감탄하고 감동합니다. 고라니는 동작이 민첩한 동물입니다. 사람의 눈길을 느끼면 총알처럼 빠르게 달아나는 속성을 가진 동물입니다.
아내가 고라니를 보고 외쳤습니다. “아니, 노루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하고, 저런 애들은 처음 보네.” 어머니 산소 위로 뛰어오르는 고라니 한 쌍의 감동적인 동작. 그 순간의 풍경이 너무 놀라워 온종일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고라니가 결국 이런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동영상을 찍지 못했으니 글로나마 손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올림)
♧ 페이스북에서
◆ 윤홍수(한학자, 성균관 부관장, 대전·충남 유림회장) 2023.5.6. 오후2:27
좋은 글 잘 감상혔습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귀한 시간 내어 졸고를 살펴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따뜻한 격려의 댓글을 올려 주셔서 큰 영광입니다.
구수한 청양 사투리가 더욱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 페이스북에서
◆ MyoungSun Kim(시인, ‘한국문학시대’ 발행인, 대전문총 회장) 23.5.6.11:30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함께 갔다 온 듯 기분이 좋습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김 회장님께서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큰 영광이고
졸고를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 카카오톡에서
◆ 안오모(警友新聞 편집국장) 23.5.7. 06:42
윤승원 위원님의 효성에 고라니도 감동했나 봅니다.
정말 동화 같은 일이 벌어졌군요.
▲ 답글 / 윤승원
이른 아침, 국장님이 주시는 따뜻한 격려 메시지가
힘과 용기를 주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5.7. 09:52
제가 자주 찾는 저의 집 뒤 법화산 둘레길에서도 고라니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애들이 길에 표시해 놓은 똥을 통해서도 아침 일찍이 내려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우리 집에 내려온 고라니를 손자 손녀에게 보여준 이야기도
본 카페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고라니를 검색하여 그에 대한 생태학적인 이해도 했습니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둘레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야생동물입니다.
좋은 글 거듭 축하드립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낙암 교수님의 세밀한 관찰력에 감탄합니다.
자주 다니시는 법화산 둘레길에서 ‘고라니 똥’을 발견하시고
손주에게도 ‘고라니 생태’에 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저의 선산에도 <동물의 왕국>입니다.
꿩을 비롯하여 산새들은 인간에게 해를 주지 않는데,
멧돼지는 산소를 마구 파헤치니 해로운 동물이 됐고,
고라니 역시 산 아래 밭까지 내려와 온갖 농작물 피해를 주니
농민들에게는 밉상입니다.
하지만 문학작품 동화 속에서는 언제나 ‘착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저의 부모님 산소에 등장하여 재롱을 부린 고라니처럼 이 세상 모든
고라니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즐거움만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