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8.
추억맛
군침을 꿀꺼덕하고 삼킨다. 생각만으로도 그 맛을 알겠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삭거리는 식감이 느껴져 침이 연거푸 고인다. 대단하지도 않고 별것도 없다. 아가리가 널따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쌀밥 한 주걱을 담는다. 솎아낸 연한 열무 순 한 주먹과 새벽에 뜯은 참깨 곁순을 풍성하게 올린다. 햇양파를 잘게 썰어 넣고 자박자박하게 끓인 강된장 뚝배기에서 두어 숟가락 퍼 넣는다. 이제 잘 익은 고추장 반 숟가락을 넣고 젓가락으로 쓱쓱 비빈다.
상추보다 더한 쌈을 하나 알고 있다. 멀리 캐나다에 사는 동생이 최고로 좋아하는 쌈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여인의 손맛을 추억하는 쌈이고 손바닥 위에 넓게 펴면 그리운 여인의 얼굴이 담기는 쌈이다. 밭에서 연한 호박잎을 골라 줄기 중간을 꺾는다. 냄비 속 찜기 채반 위에 호박잎을 올리고 김이 가득할 때까지 찐다. 이것은 그리움이요, 추억이요, 때로는 짙은 녹색의 아픔이 가득한 호박잎쌈이다.
쌈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다. 열무 깻잎 고추장 비빔밥은 상추보다 찐 호박잎이 제격이다. 숟가락보다는 젓가락으로 비빈 비빔밥의 볼그스레 파르스름한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이 맛을 아는 가족들에게 사진을 공유한다. 고추장 붉은 옷을 입은 열무잎이랑 깻잎 사이사이에 밥알 몇이 섞인 비빔밥을 한 젓가락 집어 들어서 호박잎 위에 놓는다. 또다시 사진 한 장을 찍어 공유한다.
사진 한 장이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 보면 안다. 눈으로 맛을 알고 나면, 머리는 과거로 달려가 가슴에 그리움을 채운다. 돌아가신 이들의 웃는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흙 마당을 뛰어다니는 어릴 적 내가 보인다. 안채 기둥에 머리 박고 술래하는 동생과 멍석 뒤에 몸을 숨기는 동생이 보인다. 큰어머님은 부뚜막에 올라 수제비를 뜯고 있다. 어머니는 두 칼 놓은 감자를 가마솥에 쓸어 넣어 수제비 국물 간을 본다. 그리웠던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미소가 번진다.
음식의 맛은 혀에서 느낀다. 2,0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을 네 가지 기본 맛이라고 했다. 20세기에 들어 혀의 맛 지도를 작성했다. 혀 전체에서 짠맛을 느낄 수 있다. 단맛은 혀끝에서 느끼고, 양쪽 옆은 신맛, 뒷부분에서 쓴맛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새로운 맛이 발견되었다. 우마미라는 맛으로 해조류 국물에서 느끼는 맛이라 알려졌다. 우마미란 일본 말로 ‘맛있다.’라는 의미이고, 우리말로 하자면 ‘감칠맛!’이다.
밥도 쌈도 다 먹었다. 추억이라는 맛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범상치 않은 생질이 하나 있다. 그 아이는 “6·25동란식 밥상이다.”라는 한마디로 오늘 밥상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