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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덖음 차 제다교육원장 혜우 스님
거문고 줄 고르듯 찻잎 성미 다스려 향기 그윽한 명품 녹차 완성
▲ 혜우 스님은 “강하고, 찬 성질의 찻잎이라도 제대로 다스리면
그윽한 향을 간직한 부드러운 차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한반도 명산(名山)을 손꼽을 때 인용하는 말이 있다.
‘동금강(東金剛)·남지리(南智異)·서구월(西九月)·북묘향(北妙香)!’
오늘 지리산이 빚은 피아골을 오른다.
봄기운 가득한 5월의 피아골은 밤새 머금었던 수분을 흩뿌리고 있다.
저 작은 물방울이 모여 운무가 되어서는 작은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구례, 하동 땅에서 움트는 찻잎을 키워낼 터다.
피아골 연곡사 아래 약 1.2km 지점에 2013년 개원한
‘혜우 전통덖음 차 제다교육원’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의문 품다,
청담 스님 책에서 답 찾아, 군 제대 후 방황 끝 출가
‘구증구포’는 한약 법제
전통 차는 덖어야 제 맛, 제다비법 만 천하에 공개
‘매’ 대신 ‘찻잔’든 교육장, 스승· 제자 신의 돈독 해져
리더가 ‘차’ 하는 공간에, ‘갑 질’ 들어설 자리 없어
녹차는 ‘속 쓰리고 냉하다’, 제다 실패가 부른 ‘편견’
동 금강· 북 묘향 불보살게, 남 지리의 감로다 올렸으면!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한 초등학생은 방과 후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기에 여념 없을 때에도
홀로 동산에 올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없이 내려다보곤 했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어디서 온 것일까?’
대학 캠퍼스에서도 그 물음은 이어졌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갔다. “나는 누구일까?”
▲ 5월의 피아골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군 복무 시절 일요일 종교 활동 때도 어김없이 교회에 나갔던 청년은
‘말년 병장’ 신분으로 군부대를 어기적어기적 거닐다
평상에 놓여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청담 스님이 쓴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무심코 책을 열어 보고는 그대로 덮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이 그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어야 했다.
‘신(神)을 거울삼아 자신을 보려는 기독교성서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없다.
그러니 내 물음에 대한 답도 없었던 것이다.’
일주일 후 다시 청담 스님의 책을 펼치고는 단숨에 읽어 나갔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 온갖 혼돈과 어리석음이 비쳐지니,
먼저 나를 찾아 나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진아(眞我)를 체득함으로써만이 어떤 경지에 처해서도
확고부동한 인간 본연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계문명과 물질만능의 예속에서 풀려 나와
인생 본연의 영원과 자유와 평화에로 전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군부대 내의 불교 책은 모조리 쓸어 담아 독파해 갔다.
대학 국문학과에서 만난 시와 수필은 군 제대와 함께 점점 잊혀져갔다.
어느 날 가족들을 향해 지나가는 말투로 던져 보았다.
“나도 출가 한 번 해 볼까 봐!”
어이없다는 표정의 눈길이 쏟아졌다.
어느 날, 보성(寶城·태고종 15대 종정) 스님과 인연이 닿았다.
“불밭(火田))서 연꽃이 피었구나!”
그 즉시 출가하고 싶었지만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서 어머니가 걱정돼 단행하지는 못했다.
다소 긴 방황이 시작됐지만 결국 산문을 열고 삭발염의 했다.
법명은 혜우(慧宇). 대학 국문학과는 중퇴로 매듭짓게 됐고,
가족에게는 알리지도 않았으니 세속에서는 ‘행방불명’ 상태로 남겨졌다.
비구였던 혜우 스님은 2002년 조계종 통도사 목산 스님을 은사로 건당(建幢)했다.
1980년대 후반의 어느 봄날, 다구 한 세트와 차 한 통 얻어 바랑에 넣고는
남도 땅의 다 쓰러져가는 빈 암자로 들어섰다.
허름한 관음전 뒤뜰에는 보춘화(報春花)가 지천이었다.
꽃대가 수없이 오르고 있는 춘란 밭에 찻자리를 만들고 차 한 잔 우려냈다.
연한 황녹색에서 피어 오른 춘란 향이 찻잔 속 녹차 향과 어우러졌다.
“나 한 잔, 춘란 한 잔!”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다 쓰러져가는 전각 처마 밑으로 날아들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가더니 무엇인가를 입에 물고 다시 찾아 들었다. 집을 짓고 있었다.
“아, 새들은 자기 집을 스스로 짓고 사는구나!”
주변의 모든 것들이 모두 남의 손을 빌려 온 것들이었다.
승복, 다구, 책 등 무엇 하나 스스로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 없었다.
즐겨 마시는 차조차도 그랬다.
처음에는 스스로 마실 차라도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내 ‘좋은 차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일었다.
사중에서 만들어 대중이 나눠 마실 차가 아니라
사부대중이 음미할 만한 차를 만들기 위해 제다와 관련한 고문헌을 연구해 갔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전수되어 온 제다법이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는
구증구포(九蒸九曝)에 닿아 있음을 알아냈다.
구증구포는 불을 이용해 한약재의 성미를 변화시키는 수치포제(修治炮製)의 한 방식이다.
전통 제다법에서 한약 법제의 구증구포를 언급한 건
‘찻잎의 한(寒)한 성미를 평(平)하게 하여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들기 위함이었음을 혜우 스님은 간파했다.
우리나라의 차는 찌기보다는 덖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10여년의 연구 끝에 향과 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찻잎 다스리기 원리를 찾아내 전통제다법을 재정립했다.
그리고 그 제다법을 전하려 2005년 순천 비촌리의 폐교를 빌려
국내 최초의 제다교육원인 ‘혜우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을 열었다.
비법으로 전해지는 제다법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제다교육원 개원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다.
피아골로 자리를 옮긴 건 2013년이다.
혜우 스님이 차 한 잔을 건넸다. 구례의 유응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검게 둘둘 말린 가녀린 엽신(葉身)의 열반’을 지켜보니
‘포근한 영면(永眠) 속에 스스로 몸을 푸는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영혼!’이 느껴진다.
두 손으로 찻잔을 들었으니 ‘지리산’을 마시는 것이리라. 녹차향이 차실에 가득 퍼진다.
혜우 스님이 정립한 제다법의 핵심이 궁금했다.
“제가 발견한 제다원리는 간단합니다.
불을 이용해 찻잎을 뜨겁게 했다가 식히고, 다시 뜨겁게 했다가 식히는 겁니다.
이 과정을 반복해 가며 찻잎의 성미를 다스리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덖음차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인데 확신이 설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간단한 원리라고 하지만 ‘다스림’은 결코 녹록한 게 아닐 터다.
혜우 스님의 전통 덖음차 제다법은
응송, 효당, 만수, 남천, 토부의 제다법과 더불어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혜우 스님 설명에 따르면 차는 덖고 말리는 것이니,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는 구증구포(九蒸九曝)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찻잎을 아홉 번 찌고 햇볕에 말려서는 차가 안 되지요.
실제로 다산의 차 만드는 방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세 번 쪄서 만들었다고 했어요.
왜 아홉 번이 아니고 세 번이냐 되짚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건 재료의 문제입니다.
찻잎은 종이처럼 얇죠. 그러니 세 번 이상 찌면
뭉그러지고 색상이 변하고 향이 변하니 성미를 다스리는 최소수로 세 번 찐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직도 구증구포가 차 만드는 방법이냐 아니냐
논란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요.
‘구증구포 했다’는 건 ‘성미를 다스리는 방법 즉 포제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보면 무리 없습니다.”
불 조절과 덖음 과정에서 실패하거나 마무리 과정에서 과하면
고소함을 넘은 탄 내음마저 느껴진다. 반대로 찻잎을 덜 다스리면 떫거나 쓴맛이 강해
예민한 사람들은 속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차를 두고 ‘고소하다’,
‘녹차는 원래 떫은 것’이라는 말로 제다의 오류를 덮곤 했다.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려 자주 마실 수 없다는 말이 참 속상했습니다.
아예 ‘녹차는 차가운 성미를 갖고 있으니
허약하거나 속이 냉한 사람은 마실 때 주의하라’란 말이 상식처럼 알려진 때도 있었습니다.
국내 녹차시장의 침체기를 맞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강하고, 찬 성질의 찻잎이라도 제대로 다스리면
그윽한 향을 간직한 부드러운 차가 만들어집니다.”
거문고 줄 고르듯 찻잎을 다스려야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혜우 스님이 만든 녹차 ‘아직은 이른 봄’은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깊다.
절제된 맛이다. 생전의 법정 스님이 참 좋아했던 차이기도 하다.
▲ 혜우 스님은 스스로 터득한 제다비법을 공개했다.
지인을 통해 혜우 스님의 차를 접한 법정 스님은
2005년 가을 순천 ‘혜우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을 찾았다.
혜우 스님이 직접 우려낸 차를 한 잔 마신 법정 스님은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사)을 놓고 차실을 떠났다.
책에는 법정 스님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아직은 이른 봄’. 좋은 차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법정 스님은 그 이후 입적하기 전까지 이른 봄이면 혜우 스님의 차실을 찾았다고 한다.
혜우 스님은 녹차뿐 아니라 다양한 차를 내놓았는데,
필선(弼善) 이운해(李運海)가 쓴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에 등장한
옛 차 칠향차(七香茶)를 재현했다. 또한 5년여의 연구 끝에 ‘침향차(沈香茶)’를 완성했다.
침향에서 나온 추출물을 찻잎과 배합해 만든 차다.
2015년 5월에는 여러 가지 제다법으로 차를 만들어
서울 길상사에서 최초의 차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중국은 녹차, 홍차, 보이차, 백차, 우롱차 등 다양한 차를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녹차 하나 뿐입니다. 하나 더 있다면 황차 정도입니다.
최소한 옛 어른들이 드셨던 차라도 재현하거나
새로운 차를 개발해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봅니다.”
차가 몸과 정신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하나를 여쭈어 보았다. 일반인들이 차를 마시면 얻을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소통입니다. 저는 교직에 계신 분들에게 차를 꼭 권합니다.
잘못을 한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은 교무실로 오라고 하겠지요.
그 학생의 가슴은 조마조마해 집니다. 학생이 교무실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들어야 할 건 매가 아니라 찻잔입니다.
교무실로 오는 동안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으니 벌은 이미 다 받은 셈입니다.
차 한 잔 건넨 후 작은 목소리로 아이의 잘못을 일깨워야 합니다.
익숙해지면 학생들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에게 ‘차 한 잔 주세요!’ 할 겁니다.
회사나 공무원 고위직 간부들에게도 차를 권합니다.
아침 회의 시간에 직접 차를 우려 건네 보세요.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위로가 전해집니다.
차 한 잔 오고가는 시공간에 ‘갑질’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혜우 스님이 출세간을 분별하지 않고 차 만드는 법을 전하는 건
‘좋은 차’가 이 땅에 넘쳐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좀 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연유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혜우 스님은 제다원을 개원하기 전
차 농가를 순회하다시피하며 차 만드는 법을 일러준 때가 있었다.
“제다를 잘 하면 가업으로 삼아 크게 번성할 수도 있습니다.
차로 성공한 사람에게 누군가 물을 수 있습니다.
‘차 만드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요?’ ‘예, 스님한테 배웠습니다.’
‘혜우’라는 법명은 잊혀져도 ‘스님’만은 기억에 남을 겁니다.
적어도 그 일가(一家)는 탁발 나온 스님을 그냥 돌려보내지만은 않겠지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혜우 스님 곁에는 늘 바랑 하나가 놓여있다. 이제 또 어디를 가고 싶은 걸까?
“한반도는 이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바랑에 차 한 통 담아 개성 관음사, 회양 표훈사, 평안도 보현사,
함경도 용흥사, 황해도 성불사 그리고 금강산 불지암을 참배하며
불보살님께 ‘감로다’를 올리고 싶습니다.
다 갈 수 없다면 보덕암만이라도 오르고 싶습니다.”
길은 곧 열릴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는 혜우 스님은 오늘도 차 한 잔 들고 있다.
남지리(南智異)의 차향이 동금강(東金剛)·서구월(西九月)·북묘향(北妙香)에
가득할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지리산 봄 하늘이 청명하다. 녹차 한 잔에 시 한 수 떠올리기 좋은 날이다.
‘햇볕 쏟아지는 창가/ 차 한 잔을 놓는다//
사람이 그리운/ 마른 잎의 뜨거운 헌혈//
푸른 산바람/ 햇살과 별빛 이슬의 향기/ 두 손으로 받들어 마시면//
갇혀있던 언어가 녹아 내린다/ 혈관 속 미로를 따라/
푸른 피를 내 몸에 붓는다’ (송연우 시 ‘녹차를 마시며’전문)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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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우 스님은
- 1978년 보성 스님 은사로 출가
- 2002년 목산 스님 은사로 건당
- 2005년 순천 혜우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 개원
- 2009년~2013년 차 전문잡지 ‘차와 문화’ 발행인
- 2013년 혜우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 구례 이전
- 2015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차 개인전
- 저서로는 ‘혜우스님의 다반사’(초롱출판사), ‘혜우스님의 찻물기행’(초롱출판사),
‘알고 보면 쉬운 차’(도서출판 이른아침) 등이 있다.
2018년 5월 9일
법보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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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건당식 (建幢式)
불교 의례·행사 불교에서 승려가 수행 끝에 강사의 경지에 이른 후,
법사를 정하여 법사의 법맥을 계승하기 위해 행하는 종교의례.
승려는 출가할 때 은사(恩師)를 정하는 득도식(得道式)과
승려의 신분을 갖게 되눈 수계식(受戒式)을 갖는다.
그 후에 출가 승려로서 바른 불도수행을 닦아
다른 이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에게 법맥을 전해줄 수 있는 전법사(傳法師)를 정해서
그 법맥을 계승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이를 건당식 또는 입실(入室)이라고 한다.
이 의식 때 제자는 반드시 최초의 설법을 하여 여러 승려들 앞에서
스스로의 경지를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건당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의식은 신라 말부터 선종과 교종이 모두 행하여서
현재에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