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5장 1-15절 고난을 섭리로 260624수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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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리며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놀란 형들에게 요셉은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며 위로했습니다. 흉년이 5년 더 남았으니, 하나님의 큰 구원 섭리 안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을 애굽 고센 땅으로 속히 모셔와 봉양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아우 베냐민과 형들을 끌어안고 울며 입을 맞추니, 그제야 형들이 요셉과 말하게 되었습니다.
1. 용서를 넘어 화해와 회복으로
머리로는 알아도 감정 때문에 가장 어려운 것이 용서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더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형제들과 다시 함께살 생각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결정적인 계기는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해 자신을 담보로 던지는 희생적 사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변화를 보며 요셉은 단순한 용서를 넘어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하는 '화해'의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 대한 이해는 가능해집니다. 결손가정과 가정폭력 속에서 방황하다 범죄의 길로 빠진 흉악범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고개도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가족을 잃거나 큰 상처를 입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 일이 되는 순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용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2. 고생 끝에 낙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요셉은 형들의 배신으로 노예로 팔려 가는 등 삶의 비참한 고비들을 몸소 겪었습니다. 세상에는 큰 고생만 하다가 끝내 낙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옛말에 남편 복이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이 있지요. 남편의 방탕과 폭력으로 가정이 어려우면, 자녀들 역시 영적·정서적 방황을 겪으며 자라고, 남편과 아내의 올바른 역할 모델을 배우지 못해 결국 자녀 세대까지 어려움이 대물림되는 첩첩산중의 비극을 겪습니다. 그런 자녀들이 어머니를 제대로 섬길 정서적 영적 물질적 마진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이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고난이 꼬리를 물고 되물림되는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억울함을 겪으면서도 결국 총리가 되고 가해자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섭리로 고난을 해석하다
요셉은 형들을 향해 "나를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인간적인 원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로 해석했습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는 이것이 선을 이룰지 전혀 알지 못해 좌절하고낙심하지만, 광야를 지나며 믿음 안에서 다루어진 이들은 결국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만 합력하여 복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상처와 감정의 앙금까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사 고난 중에 깊이 박힌 감정의 앙금과 트라우마는 문득문득 살아나 우리를 괴롭히곤 합니다.
4. 감정까지 치유하시는 하나님 (J교회 나 목사님 예화)
토설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앙금까지 지우시는 은혜입니다.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였던 나 목사님은 첫 목회지에서 "몇 자", "엇 자" 하며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교인들이 다 떠나고 사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새로 J교회에 부임한 후에도 부목사로부터 "설교 발음 때문에 교인들이 아우성이다"라는 비수 같은 말을 듣고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에 목사님은 목숨을 걸고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고, 금식 후 강단에 섰을 때 혀가 풀리는 역사와 성령의 강력한 신유의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의 은혜가 풀리며 교회는 세계적인 대형 교회로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목회자가 된 나 목사님이 포항송도교회 부흥회를 갔을 때, 대기실로 과거 자신에게 비수를 꽂았던 그 부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어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부목사는 철이 들어 반가운 마음에 한 인사였지만, 나 목사님에게는 과거의 처절했던 상처가 해일처럼 밀려왔습니다. 온몸이 사로잡히고 가슴이 두근거려 그날 저녁 부흥회 설교를 완전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성공의 자리에 서도 감정적 상처의 앙금이 밑바닥에 남아 불쑥 튀어 오르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요셉 역시 원수 같은 형들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죽이려하던 눈빛 팔려가는 중의 애원을 외면하는 눈빛 등 옛 상처가 격렬히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요동치는 감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의 구원 섭리로 해석해 내며 믿음으로 선포했을 때, 비로소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위대한 통곡과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5. 통곡은 정서적 앙금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용서하려 해도 미움이 솟구칠 때는 감정을 잘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 인생이 왜 이리 비참합니까" 하고 솔직하게 토해내며 기도할 때 정서적 치유가 일어납니다. 또한 사람 관계에서도 상처를 꺼내놓고 풀어야 합니다. 요셉처럼 서운함을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방 역시 자기 변명을 하기보다 아픔에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명절날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앞에서 결혼 초기의 서운함을 꺼낼 때, 지혜로운 시어머니가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로 품어주어야 앙금이 풀립니다. 이러한 화해의 자리에서 감정적 해소를 잘해주어야 화해라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누가 해줄수 있나요 바로 '은혜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경험한 사람이 "내가 미안하다"고 먼저 품어줄 때 진정한 관계 회복이 시작됩니다. 옛 여인네들이 우물가에서 서로의 신세를 한탄할 때 그 분풀이를 받아주며 함께 울어주면,
감정적 해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때 가르치려 달려든다든지, 나는 행복한데 너는 왜 그래사냐고 다그리치면 안됩니다
요셉이 은혜 받은 자로서 베냐민을 안고 울고 형들과 함께 울었을 때 감정적 해소가 일어닙습니다.
그리고 가문 전체가 구원의 섭리 안으로 들어가는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6. 회개의 십자가, 공감의 십자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바라볼 때는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이 보이므로 철저히 '회개'함으로 용서의 영광을 얻습니다. 반면, 피해자가 바라볼 때는 나보다 더 큰 모욕과 고통과 상처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알아주시는 '공감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창으로 찌르는 자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상처받은 그리스인들이 통과해야 할 문은 바로 이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용서하며 십자가를 통과할 때, 죄인이 의인이 되고 가시관이 면류관이 되며 사망이 생명으로 옮겨가는 영광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형제들 중 유다는 회개의 십자가를 통과했고, 요셉는 용서의 십자가를 통과했습니다.
우리 안의 죄와 상처들이 십자가의 영광으로 덮여 가정과 삶의 자리에서 온전한 치유와 승리를 이루어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