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사람이오 (1547)
티치아노
티치아노(Tiziano, 1488-1576)는 16세기 베네치아 미술계를 이끈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이다.
그는 조반니 벨리니의 공방에 들어가 조르조네와 함께 그림을 배웠고,
유화 물감을 사용한 새로운 실험으로 자유롭고 표현적인 화풍과
색채를 통한 형태의 묘사를 발전시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516년에 산타 마리아 데이 프라리 교회의 대형 제단화 <성모 승천>을 그려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명성도 절정에 달했고, 그 해 조반니 벨리니가 사망하자,
그는 베네치아 미술계의 독보적인 화가가 되었다.
화가로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무렵인 1530년에,
티치아노는 아내가 죽는 비극을 맞게 되고, 그는 비탄에 잠겼으며,
이날 이후 그의 작품은 고요하고 묵상 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티치아노는 1530년 이후 <자, 이 사람이오> (Ecce Homo)를 여러 차례 그렸고,
이 장면은 빌라도가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에게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망토를 걸친 예수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들 작품에서 예수님은 혼자 있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혼자 그려진 티치아노의 <자, 이 사람이오>는
1547년경에 그린 프라도 미술관 외에도 콩데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들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특히 3/4 측면 상으로 표현된 예수님의 모습은
과거 정면 혹은 측면으로만 그려졌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예수님은 양손을 앞으로 결박당했고, 가시관을 쓴 채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관람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다.
그림자 진 얼굴과 빛나는 몸의 대조는 고난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예수님의 숭고한 정신의 힘을 강조하는 화가의 뛰어난 재능을 느끼게 한다.
예수님의 몸은 수난의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건장한 모습인데,
이러한 이상적인 신체의 표현은 르네상스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티치아노는 고유의 기법으로 캔버스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신앙심을 이끈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예수님의 표정과 아래로 향한 예수님의 시선은
보는 이와 예수님을 분리한다.
그러나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연민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표면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화면 속에서 우러나오는 빛으로
투명하게 와 닿는다.
이처럼 티치아노는 1530년을 기점으로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물질적인 형상들은 사라지고 빛과 색채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티치아노는 적어도 5개 이상 이 작품을 직접 그렸다.
비엔나의 자연사 박물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작품은
티치아노가 직접 그린 것이 확실한 작품이고,
그 외의 작품들도 티치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공동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