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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의 거리 두기
신석정의 시 「작은 짐승」을 읽으며 묘사가 어떻게 한 편의 시를 열고 닫는지 살펴보자.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이 시의 1연은 시적 화자가 머물러 있는 곳의 위치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좋았다' '푸르렀다'라는 직접적 어법의 두 서술어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행위에 일체의 가식이나 허황한 포즈가 내재되어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바다와 화자 사이에는 나무들이 서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밤나무/소나무/참나무/느티나무' 라고 나무들의 이름을 한 행씩 처리해 배치하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흔한 나무 이름을 이렇게 행을 나눠 쓴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가 머무르고 있는 산에 이러한 나무들이 자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나무들은 뒤에 나오는 '다문다문' 이라는 부사의 도움을 받아 촘촘한 간격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독자들은 한 행씩 처리한 이 나무 이름을 보며 나무들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화자의 마음 상태가 현재 지극히 평온하다는 것도 눈치채게 된다. 묘사의 묘미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시인이 특별한 장식이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단순하고 평범한 나무 이름 몇 개로 우리는 시가 제시하는 정황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묘사의 혜택이다.
그런데 난이와 나는 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2연은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통사 구조상 1연의 반복과 발전 단계인 2연에서 시의 표제이기도 하면서 이 시의 의미를 푸는 키워드인 '작은 짐승'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짐승은 시에서 종종 본원적 생명을 갈구하는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 인간의 문명과 대척을 이루는 지점에서 생을 영위하는 존재가 짐승이다.
여기서는 날뛰고 포효하는 사나운 짐승이 아니라 '작은' 짐승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작은' 이라는 형용사로 인해 짐승은 원래의 상징적 의미보다 훨씬 순화된 성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바다를 앞에 두고 난이와 작은 짐승처럼 앉아 있는 까닭은 복잡한 삶의 정황이나 들끓는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격정의 바다가 말없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난이와 나도 말없이 앉아 있음으로 해서 바다와 일체를 이루려고 한다.
3연에서는 풍경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비교적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3연은 시에 아연 활기를 불어넣으며 흐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 화자의 호흡은 길어지고, 이제까지 원경을 비추던 시의 카메라는 '난이의 머리칼'로 클로즈업된다.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 는 구름이 변화하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 속을 거닌다는 것은 현실 너머에 있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만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너머의 환상적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현실에서 발을 빼고 싶은 의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한번 의문을 가져볼 법하다.
망국의 백성으로 짓밟힐 대로 짓밟힌 당시의 우리는 차라리 한 마
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미쳐서 날뛰는 일제를 되도
록 멀리하고 싶었던 고달픈 작가의 심정을 읽어주었다면 이 시가 지
닌 정신에 접근한 독자라고 나는 생각한다.⁵²
자작시 해설 형식의 글에서 시인은 '작은 짐승'을 두고 이렇게 속내를 비친 바 있다. 시인은 '작은 짐승처럼 말없이 앉아서' 구름 속을 거니는 꿈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과의 거리 두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가슴속에 쌓인 울혈을 침묵과 관조로 풀어보려는 시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에서 구름으로 이동했던 화자의 시선이 다시 지상의 느티나무로 옮겨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느티나무 잎새가 머리카락에 붙음으로 해서 난이는 자연스럽게 느티나무와 한 몸이 된다. 난이와 느티나무의 연결은 난이=느티나무=작은 짐승'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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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신석정, 「상처 입은 작은 역정의 회고」, 『문학사상』, 1973년 2월호,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5. 1. 2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