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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혹스런 순간
요즘들어 모처럼, 오후에 산장아저씨와 평상에서 얘길했는데,
집에 돌아가시면서는,
"조금 있다가 우리 집으로 와." 하시드라구요.
"무슨 일인데요?" 물었더니,
"집 사람이, 장씨허고 함께 콩국수라도 먹으라고 허든디? 콩물도 준비해 놓았다믄서..." 하셨습니다.
나는 할 일이 있었기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녁 무렵에... 산장집엘 갔습니다.
산장집 원두막에 앉아 콩국수를 같이 먹는데, 쌀쌀한 바람으로 살갗이 스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찬 콩국수를 먹다보니, 춥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어째, 날씨가 쌀쌀하네요." 내가 팔을 문지르면서 말했습니다.
"긍게..." 심란한 듯 산장아저씨도 내 말을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얼마 안 가믄, 저 감나무 잎들도... 단풍이 들어가긌지..." 무심한 듯 산장아저씨가 원두막을 덮고 있던 감나무 잎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하드라구요. 그러면서는,
"그러믄, 가을도 가고... 장씨도 간다고 허긌지?" 하면서, 또,
"가지 마. 여기서 살믄 되잖여?" 마치 애들처럼 오늘도 그 말을 꺼내드라구요.
그러니 나는,
"그럼, 저... 멕여 살릴 겁니까?" 하고 약간 웃음섞인 말로 응수를 했는데요,
"응!"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때는, 그런 말까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예... 고개를 끄덕여가면서까지 그러드라구요. 그러면서는 또,
"어디 가믄 얼마나 잘 살 거 같어?" 하고 묻기까지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는 건 어디서건 다 똑 같다'는 게, 그 분의 생각이거든요......
요즘 며칠을 스페인 손님들 때문에 내가 집을 비웠더니, 그래서 이 마을에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자꾸만 장씨 사는 집 쪽을 쳐다봐지지 않았긌어?" 하더라구요.
더구나 요즘은 가장 더운 여름철(휴가철)이라, '산장 가든'에 손님들이 많아 제일 바쁠 때라... 그런 생각할 틈도 없었을 것 같은데, 밤에, '夢想?'에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지금쯤 장씨는 어디서 뭐 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
나에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당혹스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차!' 하는, 마음의 큰 진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사실, 이 마을에서 내가 떠나간다면... 아마, 이 양반은... 얼마 동안(?)은 그 허전함에 상당히 힘들 거라는 걸, 나는 (이미)알고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를 통해... 점점 더 실감을 하곤 하거든요.
근데, 이 양반 뿐이 아닙니다.
당연히 산장할머니도 그럴 것이고, 옆집 할머니는 벌써부터도 아주 불안해 하시거든요?
내가 집을 비우게 되면 할머니께, 우리 격에게 밥을 주시도록 부탁을 하는데,
할머니는 격에게 밥을 주시면서도,
"야, 거뭉아... 너도 주인이 없으니, 힘이 없구나. 근디, 나도... 니 주인이 없응 게, 왜 이리 허전헌지 모르겄다." 하고, 우리 개와 말씀을 나눈다시니......
아, 정말... 그런 일들이 나에게, 어느덧 조금씩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을 주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
정말,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인가?
......
그럴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어쩌면 1 년을 다 채우지도 못한, 겨울을 조금 느끼다가... 갈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떠난다지요?
아직 내가 계획했던 기간 중 반도 채우지 못한 상탠데, 아 나는... 벌써부터 떠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낼 사람들이나, 떠날 나 자신이나......
이럴 줄은 몰랐는데,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은 채 이 마을로 왔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날씨도 쌀쌀한지, 무슨... 가을 날씨 같기만 합니다.
'아, 이러다가... 덜컥 가을이라도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대접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우울한 기분이라니요......
여기서 살았던 날 보다, 아직은... 여기서 살 날이 더 많이 남아있는데......
8 . 7
"무슨 놈의 비가 이리 내리는지......"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내리자, 기로는 혼잣말로 불평까지 늘어놓았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전 내내 내리더니, 오후 들어 그쳤다.
그리곤 날씨가 조금 싸늘해지는 것이었다.
기로는 서울의 L씨가 보내준 사진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진이 뒤섞여 있어서, 거의 왼종일... 그 것들을 필름과 대조해가면서, 순서 맞추는 작업을 했다.
일곱 통이나 되는 필름이라 사진 수가 적지 않아, 오후까지 일을 했음에도... 쉽게 끝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곳 '둔터니'마을의 풍경을 찍었던 것들이 많아서, 그 게 그 것 같아... 더욱 애를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모처럼 산장아저씨가 평상에 놀러왔고, 키큰아저씨와 마을 끝 집 반장도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이 동네에 사는 남자들이 ‘마을회의’도 아닌데, 한 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로는, 그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찍었던 사진에서 뽑아낸 각자에게 돌아갈 사진들을 분배하기도 했는데,
"장씨가 화가라 그런지, 사진이 참 잘 나왔네!" 하고 감탄을 하자,
"그렁게..." 하면서 좋아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저녁 무렵엔, 상당히 많은 전화 통화도 하게 되었는데,
내일이 기로의 서울 형 환갑이라, 군산 형제들이 서울로 올라가는 일로 급하게 몇 차례 통화까지 했던 것으로,
그러니까 내일 아침 일찍 군산에서 차 몇 대로 올라가자는 의견 교환이었는데,
군산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서울에 있는 사람들보다 많은 관계로...
그러니, 차라리 서울 식구들이 내려오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의견에 합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내일 저녁에 온 가족이 군산에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 변경은, 기로에게도... 다소간의 부담을 덜어준 결과가 되었다.
그렇잖아도 서울에 가게 되면, 아직 돌아가지 않은 스페인 손님들과 함께 해야 하기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했었는데,
군산에서 먼저 하루를 보낸 뒤, 바로 다시 '夢想?'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 서울로 가면 되기 때문에,
'夢想?'에서 하룻밤을 더 잘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스페인 손님들은 11일 날 돌아가는데, 기로가 그 때까지 스페인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새끼를 밴 격 때문에... 개를 며칠씩이나 남에게 맞겨 놓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 얘기도 누리아와 전화 통화로 조율을 했기 때문에, 기로는 오늘도... 다소 느긋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으로,
게다가 요즘 너무 지쳐있었기에, 하루 정도는 좀 쉬고 싶기도 했거니와... 부쩍 힘들어 하는 격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그 다음 날엔 아래와 같은 '안내'를 홈페이지에 올린 뒤,
# 긴급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8월 11일 이후 부터 업로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8 . 8
기로는 군산으로 갔다.
그렇게,
요즘 '군산'으로, '정읍'으로, '전주'로, '익산'으로, '서울'로... 그리고 산으로, 절로... 정신없이 며칠을 다니는 바람에 , 기로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행선이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남기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럴 만한 개인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마다 기로는 스스로에게 불만이 쌓이곤 한다.
뭔가 특별한 일일수록 할 말은 더 많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은 적어지는 현상이라서......
어디 그 뿐이던가?
그렇게 바쁘게 며칠씩 날짜를 보내고 나면, 남는 건 허탈한 피곤함 뿐... 지나간 일들을 일일이 기억해가면서, 다시 문서로 남기는 일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입장이자 자세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홈페이지의 속성'이라는 것이, 제공자나 방문자 쌍방이... 뭔가 '재미있고 풍성한 내용'을 찾는 게 당연한데,(더구나 외국 손님들과의 얘기라서, 그에 따른 얘깃거리가 더 많고 풍성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시점에는... 평소보다 더 초라하거나 간단한 기록밖에 올릴 수 없다 보니,
운영자인 기로의 입장에서도 미안한 심정이고, 어쩌면 방문객들도... 그 싱거울 수밖에 없는 내용에,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쁜 나날을 보냈던 기로가, 그런 일들을 기억해 내면서... 홈페이지에 미주알고주알 다시 현장감 넘친 내용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든 일이었기에...
대충 전체적인 행선 정도만을 서술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 뜻밖의 '이별'
스페인 친구(손님)들과 '인사동'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이 번 한국 여행에서의 마지막 날 외출이었기에, 한가롭게 보내고 싶기도 했겠지만...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겠지요.
근데요,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인사동 길을 걸으면서 나는, 어쩐지 낯선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사동의 보도블록도 그렇고, 일요일이라 벼룩시장 같은 장이 섰던데... 거기에서 파는 물건들이, 어째 우리나라 것이 아닌 동남아나 남미의 냄새가 풍기는 것들도 보여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일 떠나갈 스페인 친구들에게 마지막 마무리라도 잘 하도록 도와주려는 뜻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 틈을 걷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장씨?" 하는 건, 산장아저씨였습니다.
"예."
"나여..." (누가 모르나요? 그 목소리를?)
"아, 예..."
"어디여?"
"서울인데요."
"멀리 있네... 근디, 언제 와?"
"글쎄요. 그렇잖아도... 오늘 밤엔 내려갈 생각이었는데요... 늦어도 내일은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근데, 무슨 일인데요? 전화까지 하시고..."
(정말 나는, 의아했습니다. 왜냐면, 제 일정을 그 양반한테 다 알린 뒤에 올라왔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니, 그 새를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담?' 하는 심정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응... 저기, 키큰 양반이... 지금 아무도 못 알아보고 인사불성여."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에?" 하고 깜짝 놀랐던 나는, 한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무슨 이런 일이?' 하면서,
"그, 그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응... 장씨 간 날 일이 벌어졌는디... 아무도 못 알아보고 혀서, 급허게 대학병원에 데려다 놓았는디... 의사들이 힘들다고 허는 게벼... 그려서 이렇게 전화허는 거여." 하시니,
"그래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하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미 며칠 전부터 우리는, 키큰 아저씨의 병세에 의혹을 가지고 있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산장아저씨와 나 둘이서는, 키큰 아저씨의 안색이 심상찮음을 보고는... 뭔가 불길한 예감 같은 걸 갖고 있기는 했었지만,
우리가 의사도 아니고... 섣부르게 '이러네 저러네' 내색을 할 수가 없어서,
둘이서만 조용히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었거든요?
그러니까 며칠 전에(키큰 아저씨가 최근에 날마다 얼굴이 붓고 또 안색도 좋질 않아서),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돌아오던 그 분께,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시는데요?" 하고 걱정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근디, 의사가... 별 일 아니라고 허든디?" 하고, 의외로 밝은 표정을 지으셨기 때문에,
'그런가?...' 하고 뭔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럼, 다행이네요!" 했었거든요.
그런데도 며칠 전에 평상에서 그런 얘길 하다가, 그 양반이... 자신의 T셔츠를 올려가며 우리에게 자신의 배 부분을 보여주었는데,
거의 배 전체와 허리 부분이 피멍 든 것처럼 검붉은 색깔이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사가 별 거 아니라고 혔어." 하고, (시골에서 사시는 분이라)의사의 말을...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시기에,
선뜻, 그런 불길한(그 상황이 안 좋다는) 얘길 장본인에게 해드릴 수가 없어서,
미적대고는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일이 터질 줄은 몰랐던 거지요.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산장아저씨가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거나, 어쩐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는데,
지금 그 마을엔, 나 말고는 그런 얘기조차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여간 불안해하고 있지 않을 거라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키큰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도 당혹스럽고 또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주민도 몇 명 되지 않은 마을에서, 그 두 분만이 유일한 친구관계일 수 있었는데... 둘 중의 한 분이 그런 상황이라, 게다가 잠시 그들의 틈에 끼어들었던 나는... 이제 몇 달 후면 떠날 사람이다 보니....
'그러면, 아마... 산장아저씨는, 살아가면서 얘기를 나눌 사람마저 없는 공황(恐慌)상태에 빠지게 될 텐데......' 하는 생각까지가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텐데,
'나마저 마을에 없다 보니, 의지할 데가 없어서... 나에게 전화를 거신 거로구나.' 하는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제가 서둘러 내려가겠습니다. 기다리세요." 하게 되었는데요,
내가 내려간다고, 키큰아저씨의 병세가 호전될 리도, 그 마을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능력도 없는데,
그런데도 내 입에선 마치, 내가 내려가기만 하면 그런 일들을 다 해결해주거나 그 양반의 우울함마저 달래줄 것처럼, 그리고 애들을 달래 듯... '나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말을 하는 내가 스스로도 이상하드라구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내 마음은... 인사동이고 뭐고, 조각조각 분리되는 심란한 상태로...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엊그제, 그러니까 내가 서울에 올라가기 전 날인 목요일까지는(그날, 평상에서 이 마을의 남자들 넷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기에) 정정하셨던 분이,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가셨다 하고... 이제 의식조차 없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산장아저씨마저 농사일과 살아가는 세상 일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시던, 그런 일에는... 탁월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시던 키큰아저씨.
너무 술을 좋아하셔서, 젊었을 때는... 근동에서 유명하게(?) 술로 한 시절을 풍미했다던 분이었다는데,
날더러,
"올 가을엔, 배를 타고 같이 호수를 건너 밤을 주우러 가자." 던 분이,
그래서 내심, '이제 머지않아 호수 건너 저기 어딘가로 알이 굵은 밤을 주우러 가겠거니......' 하면서 나는 평상에 앉아, 이따금 그 쪽을 바라보기도 해왔는데.....
그리고 얼마 전에는, 산장아저씨와 호수 건너 높은 ‘나래산’ 얘기를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느 하루 날을 잡아... 셋이서 점심을 준비해가지고, 산을 한 번 오르자!"고 약속까지 해놓았었는데.....
아, 최소한 내가 시골에 살아가는 동안엔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예상치 못했던 일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더니, 나는 갑자기... 허무해지는 것도 모자라,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엊그제는, 이제 반 년 정도 살다가 이 마을을 떠날 내 자신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남아있을 사람들 걱정을 했었는데......
그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나 역시도 남아있을 사람의 아쉬움에 휩싸이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입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내 그림의 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헤어져야만 하는 일.
어째, 그런 일들이... 이렇게 잦게 일어난다는 것이, 그 것도 예고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 허무하기만 합니다.
더구나,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아예 떠나 가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8 . 10
스페인 손님들과 헤어진 뒤(그들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서울 친구들이 하기로 돼 있어서) 기로는 일단,
안성 신원장의 집에 와 있다던 정 원장과 통화를 했다.
그랬더니,
"여기 신원장이 장 기로 선생이 와야 한다고 난린데?" 하기에,
"나, 지금... '夢想?'에 급하게 가야 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했는데도,
"그럼, 내가 군산에 내려가는 길에 함께 가면 되잖아?" 해서,
기로는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말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안성에 가긴 했는데, 정 원장의 차를 타고 '둔터니'로 바로 간 게 아니라, 군산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로 안성의 신원장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했던 기로는,
일단 밤 여덟 시 경에 정 원장의 차를 타고 출발하긴 했는데,
'夢想?'에 돌아오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그렇다고 정 원장에게 '夢想?'까지 자신을 데려다주고 군산으로 돌아가라고 부탁할 수도 없어서,
그들의 권유대로, 다시 군산으로 가서... 군산 정 원장의 집에서(왜냐면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나자마자 전주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기로는 세면도 하지 않은 채... 정 원장의 집을 나온 상태였다.
그러니 마음이 바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와는 달리 택시까지 잡아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갔는데, 돈을 집어넣었으나 버스표가 나오지 않아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버스 한 대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겨우 항의 끝에, 직원이 구겨진 표를 꺼내주어서... 버스를 타려고 가 보니, 이미 버스는 떠나버린 뒤여서...
기로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전주에 도착해 '운암'행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다른 노선의 버스들은 많이도 지나가던데... 기로가 기다리는 버스는 반시간도 더 지나서야 한 대가 왔다.
그 때까지 기로가 속을 태운 것을 생각하면, 약이 오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급히 버스에 올라, 이제 가고 있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박 만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박 만석의 딸이 전화를 받았는데, 박 만석은 이미 병원에 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날 약속으로는... 어제 밤에 도착했어야 할 기로였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오지를 않자,
그냥 혼자서라도 병원에 갔던 모양이었다.
문득 스치는 것이 있어서, 기로는 박 만석의 핸드폰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박 만석은 지금 전주에 있는 큰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로는, 아직 전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둔터니'까지 헐레벌떡 갔었더라도, 또 다시 전주로 나왔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상태로, 이번에도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기로는 병원으로 향했다.
3층 중환자실에 기로가 들어가 보니, 평소엔 조용하기만 하던 그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와 줘서 고마워요." 라고 겨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종기(그 집 아들인 듯) 아버지, 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왔는디, 말귀나 알아드시오?" 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키큰 아저씨는 기로가 왔다는 말에, 말귀를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몸을 비트는 것이었다.
링거를 꼽은 건 물론, 몇 개의 선이 가슴과 입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서... 그 중증을 어림잡을 수 있었는데,
환자의 입에는, 혹시 모를... 혀를 깨무는 것에 대비한, 막대가 물려있었다.
'아니, 그 사이에...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으시다니......'
기로는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환자의 손을 잡고는,
"제가 왔습니다." 조용히 귀 쪽으로 입을 대어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기로의 입장에서는,
키큰 아저씨가 사람들의 얘기하는 것을 알아듣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못 알아 들으실 거예요." 하는 것이었다.
'아니, 며칠 전까지 평상에 같이 앉아... 호수와 시원한 바람에 대해 얘길 나누던 사람이, 이렇게... 중환자실 침대에서 뻣뻣하게 식어가면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물론,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 '병문안'을 하긴 했지만, 어차피 '중환자실 환자'라 면회마저 길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기로는 친구 범상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고, 그 역시 병원에 와서...
'夢想?'까지는 범상의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만에 돌아오니, 그 사이 몇 개의 코스모스 줄기가 넘어지거나 부러져있었고,
격은 더 무거워 뵈는 몸으로 기로를 반겨주었다.
개는 끙끙 신음소리를 내면서 뒤집어지고 있었지만,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만 했다. 그러니 기로는,
"격, 내가 요즘 바빴단다. 그러니, 니가 나를 좀... 이해해 다오." 하면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통나무집엔 친구 범상의 처갓집 조카뻘 되는 대금을 분다는 대학생이 친구 둘과 함께 놀러 와서, 늦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우기도 그렇고 또 방해하기도 싫어서(주방이 통나무집에 있는데 들어가지를 않으려니) 기로는,
점심은 배를 타고 산장에 가서 먹었다.
그 자리에서의 얘기는 역시 키큰 아저씨의 죽음에 관해서였다.
모두가 우울할 수밖에......
그러면서 박 만석은,
"장씨가 와 주니, 이제... 조금은 살것네..." 하는 것이었다. 요 며칠, 상심이 컸던가 보았다.
그렇지만 기로는,
'그건 좋은데, 나마저 이 마을을 떠나버리면... 이 양반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선 자유롭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음이 딩숭생숭해서 기로는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
얇은 안개가 산을 덮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모니카도 가져갔는데, 어쩐지 눈치가 보여져... 마을에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불었다.
마을까지 소리가 가지는 않을 것 같은 먼 곳이었다.
그렇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데, 마을로 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키큰아저씨 집 앞에 멈추는 게 보였다.
'夢想?'에 돌아오니, 병원에서 보았던 청년 하나가 기로에게 다가왔다.
"저, 오늘... 병원에서 뵈었는데요..." 하는 청년은 키큰 아저씨의 아들이었다.
"아, 그렇군요."
"예, 아버님께서... 평소에 선생님 말씀을 많이 하셨었지요."
"그래요? ... 그건 그렇고, 지금 아버지 상태는 어떠신지......"
"그래서 집에 들렀거든요. 오늘 밤을 못 넘기시리라는......"
'그렇다면, 내가 서울에 가기 전 날... 이 마을 남자들이 평상에 다 모여 앉아있었을 때가, 나에겐 그분과의 마지막 이었단 말인가?' 하면서 기로는, 깊은 한숨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