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때부터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네서 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지내왔다. 나는 부유한 집안에 딸도 아니고, 가난한 집안에 딸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집안에 딸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것은 다 있었다. 부족하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수선집을 하셨다. 나는 안에서 손님들께 인사하고 수선집 앞 골목에서 쭈그려앉아
놀았다. 백마라사라는 수선집은 좋았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나는 낡은 재봉틀과 복슬거리는 수많은 실들과
흰색 분필들과 찰찰거리는 낡은 가위가 있었다. 좁은 공간이지만 나는 넓어보였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좁아졌다. 난 깨달았다. 수선집이 좁아진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그만큼 너무나 크게 자랐다는것을 말이다.
할아버지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안좋으셔서 보청기를 끼셨다. 잘 듣지 못했고 또 잘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만 아는 행동과 표정으로 대화하는게 난 좋았다. 할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였다. 나에게 항상 꼬깃꼬깃한 이천원을 손에 쥐어주며 빵을 사먹으라고 했다. 수선집 건너편에는 빵집이 있었는데 그 빵집은 우리가 단골손님이였다. 할아버지는 항상 소보루빵을 사오셨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자라서 초등학생이 됐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할아버지가 있는 수선집으로 뛰어갔다. 안경알이 두꺼워서 눈이 엄청 커지는 안경을 쓰고 나를 바라본다.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고 우리둘만 아는 암호로 손가락을 네모모양으로 해서 천원을 가리킨다. 조그만한 TV속 뉴스를 좋아했다. 할머니는 계속 똑같은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보냐면서 그만좀 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또 뭘 주섬주섬 꺼낸다. 천으로 덮어놓은 곳에서 마치 나를 주려고 한듯이 숨겨놓은듯한 박카스를 슬쩍 준다. 매미들이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 하얀 눈들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지나는 것을 반복해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물론 수선집은 더욱 좁아지고만 있다. 교복을 줄이러 수선집으로 가는데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운적은 처음이다. 치마를 줄였는데 할아버지는 어쩜 그리 잘 줄일까.
내가 원하는 길이만큼 딱 줄여주고 어디 줄였냐면서 나에게 장난을 쳤다. 나는 다 알고있었다. 실이 옆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인생에 절반을 수선집에 쏟아부었다. 물건과 수선집이 낡은것은
할아버지와 함께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주름이 한줄 한줄 늘어갈 때마다 점점 모든것들도 같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 멀리 검정봉지를 흔들면서 걸어오는건 누구인가, 누군가의 그림자인가. 또 누군가의 아버지인가. 할아버지가 긴 복도를 걸어온다. 나에게 줄 간식을 사서 즐거운 발걸음으로 빠르게 걸어온다.
난 누군지 딱 알아챘다. 수선집 열쇠와 집 열쇠가 달려있어 바지 주머니에서 짤랑짤랑 흔들리는 소리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의 긴 세월이 아니 어쩌면 우리한테는 너무나도 짧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심각하지 않았다.
아빠, 엄마,작은아빠,할머니와 나는 저녁을 먹으러 조그만 식당에 들어갔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
나랑 아빠랑 엄마는 마트에 장을 보러갔고 작은아빠가 할머니를 데려다준다고 했다. 마트에서 신나게 장을 보는데 갑자기 할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한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계산도 하지 못한 카트를 내던지고 우리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병실로 올라갔는데 할아버지가 엄청난 양의 피토를 해서 바닥은 피로 가득했다. 너무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울기만했다. 할아버지는 응급처치를 해야해서 주변 병원으로 옮겨야한다고했다. 실려 나온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작은 아빠네와 우리가 다 갈 수없어서 나랑 언니랑 사촌 오빠는 할머니네로 왔다.
늦은밤이였는데 잠이 오기는 커녕 결과만을 기다리며 눈을 뜨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잘 끝내고 다른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 결과는 썩 좋지않았고 일주일을 견디기 힘들거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무너졌다. 놓였던 마음도 무너지고 몸도 무너졌다. 일주일동안 할아버지는 눈을 꼭 감고 누워서 가족들을 환영했다. 고모할아버지,할머니들도 다 오셔서 보셨다. 그치만 월 수 금 이라는 날이 정해져있고 면회시간도 고작 20분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에 할아버지는 가족들은 다 보시고 주일날이 되었다.
나도 엄마랑 병원으로 갔다.얽혀져있는 호스들과 힘겹게 숨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며 계속 울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계속 외쳤다. 나올때도 계속 뒤돌아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엄마랑 있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뛰어갔다.
가족들이 다 모이고 3시 47분 사망하셨다. 우리 할아버지가 소천하셨다. 천국에 계신다.
하염없이 울어댔다. 퉁퉁부은 손과 발이 더 마음을 아프게했다. 우리는 장례를 준비했다.
난 처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것도, 검정옷을 맞춰입는것도 모든것이 낯설었다.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내가 전에 찍어둔 활짝 웃은 흑백사진이다. 하얀 꽃속에 있는 우리 할아버지를 보니까 가슴이 미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려는 많은 분들이 오시는것이 감사했다. 예배도 드렸다. 4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내가 뭘 했는지도 구분이 가질않았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몇일이 지나 할아버지를 정말 보내드려야하는 시간이 왔다. 누워있는 할아버지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있어서 금방이라도 눈을 뜰것만 같았고, 점점 흰색으로 덮여가는 모습이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귀는 멍든것처럼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관에 아름다운 꽃들이 놓여있었다. 할아버지가 꽃길로 그리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모두가 대성통곡하였다. 나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 나올수가 없었다.오늘이 며칠인지도 몰랐다. 며칠 후에 노할머니 노할아버지가 계신 산소로 갔다.
날씨는 따듯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비가 왔었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눈물이 아니였을까?
근데 웬일인지 산에 올라가는데 따듯했다. 노할머니 노할아버지 옆에 할아버지가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슬프지만 이젠 보내드려야했다.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라는 동요가 나를 울렸다. 이제는 시간이 멈춰버렸다. 더이상 가지를 않는다. 할아버지와 함께 멈춘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해줬던 손녀라서 좋았다. 아버지의 삶이란 가장이 되어 가족들을 이끌고 지켜주는것이지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넓은 어깨로 큰 손으로 모든 짐들을 짊어지고 자식들과 함께 걸어간다. 걸어가다가 잠시 멈춰 있다가 또 자식들이 오는것을 기다리다 걸어간다.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할아버지는 잠시 쉴려고 멈춰있는것뿐이다. 다시 만날 자식들이 뒤로 따라오는것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당신은 강했다. 이제는 모든짐들을 내려놓고 계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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