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기어, 독실한 불교신자이자 일급의 헐리우드 스타가 한국 불교를 체험하고자 방한하였다고 합니다. '템플 스테이'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자 왔다고 합니다. 템플 스테이, 말만 들어도 서늘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찾아 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아래 글에서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스타 마켓팅'의 천박함은 물론이고 불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불교계의 인식도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흔히 우리 불교는 세계적으로 '선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템플 스테이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전국 유수의 절에 가보면, 그 건물들의 으리으리함과 경내의 번잡한 사무들은 선풍(禪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근본적으로 참선이 삶의 규율, 인생의 결의와 동떨어져 있는 이상 그 가르침이 얼마나 길을 비추어 줄지는 의문입니다.
조계종의 대종인 지눌 선사의 돈오점수, 고려 말 무인정권의 난세에서 그 수행은 결국 '결사운동'으로 연결되었는데, 우리 현대의 고승 성철스님은 돈오돈수만을 정통으로 고집하며 지눌 스님을 지우고자 하였으니, 그 결과 지금의 우리 선불교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홀로 고고하며, 홀로 외로워하는 신세로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우리는 그가 온다는 소식에 환영 플래카드를 제작해 내걸고, 대접할 사찰 음식의 식단을 짜기 시작했으며, 그의 부인에게 선물로 줄 앞치마에 수를 놓았다. 진관사의 젊은 스님들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어른 스님들께 그에 대해 설명을 해 드렸다. 주지 스님은 귀한 손님을 정성으로 맞이한다는 생각에 사찰 외경을 손질하시면서 잔디도 새로 깔았다.
그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 나는 뉴욕에 있었는데 그의 한국 방문 예정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서울 조계사를 방문할 때 영어 통역을 좀 맡아 주면 어떻겠느냐는 문의 전화가 뉴욕으로 걸려왔다. 때마침 나도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터라 이것도 인연이다 생각되어 부족하지만 한번 해 보겠다고 했다.
그가 드디어 인천 공항에 부인과 열한살 된 아들,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매니저와 함께 도착한 모습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라는 타이틀과는 걸맞지 않게 그는 무척 수수하고 편안하고 친절해 보였다. 게다가 벌써 환갑을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인 내가 봐도 그는 여전히 멋있고 중후한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조계사 안 조계종 총무원에서 스님들과 함께 그를 기다렸다. 곧 그와 그의 가족이 탄 차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먼저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오십명이 넘는 취재진의 사진 세례를 받으며 가족들과 함께 총무원장 스님을 예방했다. 그는 항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했고 불교 중앙 박물관을 둘러본 후 스님들과 같이 점심 공양하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점심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를 보기 위해 나온 팬들에게 둘러싸여 그와 그의 가족이 종종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마다 그는 그 전과 달리 매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또 기자들이 본의 아니게 취재 과정에서 그의 매니저를 몸으로 미는 상황도 벌어졌다. 열한살 된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이런 과도한 취재 경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최고의 점심 공양이었다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숙소로 향했다. 그날 저녁 뉴스를 통해 그의 오늘 일거수 일투족이 앞으로의 예정된 스케줄과 함께 방송이 됐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와 45분간의 영어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가 오기로 예정된 진관사에 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모든 오전 일정을 취소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전날 기자들의 취재경쟁에 너무 놀라서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쪽 매니저가 한마디 쓴소리를 했다. 왠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용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실 좀 많이 놀랐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가 화두가 되어 그때부터 한국에 있는 그의 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전 일정은 취소가 되었지만 오후에 조용한 장소에서 따로 만나 그와 길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그의 매니저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한국 방문 의도는 여름방학을 한 아들과 모든 가족이 단란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조용히 우리나라 전통 산사에 가서 푹 쉬면서 그 속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는데, 어디를 가나 특종을 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취재진과 또 유명 스타의 모습을 멀리서라도 보려는 팬들 때문에 그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 것이다.
또 그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한국의 기획사 측은 그들 나름대로 그분의 사진전을 잘 홍보해서 경제적 이득을 내야 하는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스님들도 그의 방문을 통해 한국 불교가 국내외로 좀 더 알려졌으면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순 없었다.
그를 만나 인터뷰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심지어 나에게까지도 여러 가지 부탁의 전화가 왔다. 본인이 하는 전통 식당에 모시고 싶다는 전화부터, 사인을 받아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 그 분께 상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등등. 악의는 없었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숨은 의도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졌다.
인터뷰 중에 내가 물어보았다. “당신의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는 어떤 분이신가?” 그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을 대할 때 어떠한 이기적 숨은 의도 없이 그 분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오직 행복해지길 진정으로 원하는 분”이라고.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을 아주 간단하게 말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무수한 숨은 의도가 느껴지는 그때에 들은 그의 대답 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긴 듯했다.
그는 다음날 취재진과 팬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진관사를 방문했다. 경찰들의 특별한 경호도 없었다. 세 시간 동안 사찰을 비교적 조용히 둘러보았다고 한다.
나는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한번 더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내게 말했다. “이번이 한국을 알게 되는 마지막이 아니고 처음이길 바란다. 다음번에 올 때는 몰래 와서 전통 사찰에서 쉬면서 제대로 한국 불교를 느끼고 싶다.” 나도 다음번에는 그가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가 아니고 삶의 소박한 순례자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해 주길 바란다.
<혜민스님 | 미국 햄프셔대학 종교학 교수·뉴욕불광사 부주지>
첫댓글 비단 한국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비인격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생생히 나타난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돈오점수, 돈오돈수가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찾아봤는데..기독교에서의 '칭의'와 '성화' 개념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재밌네요~ '칭의'만을 강조하여 방종으로 흐르는 삶, '성화'만을 강조하는 맹목적인 율법주의가 위험하듯이..표면적으로는 대립되는 개념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호씨, 규석씨,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같이 얘기할 수 있으니 참 좋으네요... ^^ 원래 불교는 정통이라는 것이 따로 없어요... '이단'의 연속일 뿐이지요. 기독교도 적어도 프로테스탄스 개혁 이후에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종교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리차드기어가 불교인이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전 무종교인지라..과도한 육식주의자인 저로써는 불교를 믿기도 좀 그렇고,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밀 자신도 없기에 기독교는 더더욱..^^;;
관운장님, 글 고맙습니다. 이번 학기 제 수업에 참한 기독 학생들이 좀 많았습니다. 종교란 인간의 한계를 절감할 때 절실해 집니다. 관운장님은 아마도 스스로 충분히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제가 좀 속편하게 살긴하지요^^;;; 저희 어머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을 "생각없이 산다"고 하시긴 했었습니다만..ㅠ
전 불교를 잘 모르지만 그와 연기를 같이 햇던 여배우들이 불교에 귀의햇다는 기사를 보고..
그사람은 진짜란 생각이 드네요..바로 숨결을 맞대고 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건 실재이고 진실이니까요!
유니나님, 정말 동감합니다. 책 속의 아무리 좋은 내용도 그것을 내 주변의 '같은 사람'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접하지 못하면 그저 공허할 뿐 전혀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제 의견에 반대만 하던데..아무래도 진짜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을!!^^ 근데, 전 그냥 과장되서 기사화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의 템플스테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건 분명 한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