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론 성지(舟論 聖地) / 2015.01.16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 (043)651-4527
'기도하며 순례하는 천주교 성지'
배론성지는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썼고,
1855년에는 사제양성을 위한 성 요셉신학교가 세워져
1866까지 신학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1861년에 선종하신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또한 장주기 성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순교자들이 살던
거룩한 땅입니다.
[출처 : 배론 성지 여진천 주임신부 글]
박달재를 넘어 제천으로 접어드니 눈발이 세지네요..
배론 성지 삼거리에서 성지쪽으로 들어서니
길에도 하얀 눈이 많이 덮여 무척 미끄러우니
조심조심
흰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배론성지는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하얀 겨울나라인 듯 합니다.
11시 30분 순례자 미사를
순례객이 적어 '성 요셉성당'에서 드리나 봅니다.
(성지에 도착하면 오늘의 미사 장소는,
사무실에서 우선 확인해야 할 듯 하네요..)
배론 성지에는 성당이 4곳이 있는데,
대성당, 소성당, 성 요셉 성당, 배론 성당..
대성당과 소성당은 특별한 날에 미사 참례자가 많았을 때
미사가 집전되는 곳이고
평소에는 성요셉 성당이나 배론 성당에서 미사가 있다고 한다.
*
성 요셉 성당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마루 형태의 좌식 성당입니다.
성당 앞으로 가니 수녀님이 빠끔히 문을 열면서
"미사 보실 꺼예요.."하고 묻는다.
'네, 미사 보려고요.'
"2명 이상이면, 신부님이 미사 드리세요.."
"독서도 하시고, 화답송도 하셔야 되요.."
순례객이 없나 겨울이라서 아니면 눈이 와서
*
기브스로 팔이 불편한 수녀님을 도와 미사 준비도 거들고..
오늘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우리 부부 넷이서 미사보는가 했었죠.
다행히 미사 시작 직전에 또 다른 한 부부가 와서
오늘의 순례자 미사는 6명이 함께 보았답니다.
로사리아는 아이들 가정을 위한 생미사를 봉헌하구요..
*
미사 후에 배론 성지와 배론 관할 하의
묘재 성지 순례 확인란에 여신부님의 사인까지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몇곳 순례하셨냐고 묻고는
'절반 정도 했다"하니
순례 완주 후에 다시 오시란다..
밥 한끼 사주신다고.. ^^
배론 성당도 작은 성당인데 중간에 떠있는 성당이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해(척추뼈)가 안치되어 있구요..
*
배론은
신유박해(1801년)를 피해 온 교우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랍니다.
오늘은
미사후 '순교자들의 집'에서의 식사가 안된다고 합니다..
어쩌겠어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성지 순례를 먼저하고
밖으로 나가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해야 될까 봅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눈이 쌓여 미끄러우니 십자가의 길은
생략하던가
조심해서 다녀오시란다..
그래도 십자가의 길 기도는 해야 되겠죠(..)
배론 성지 순례는 소요시간 별로 3가지로 나뉘는데요
저희는 두번째 2시간이 소요되는 '묵주기도 코스'를 택했죠..
(대성당~> 황사영 토굴~> 신학당~> 십자가의 길~> 최양업 신부 묘소)
저희는 여기에 최양업신부 조각공원,
로사리오의 길에서 묵주기도를 추가했구요.
성지에서는 마지막으로 흰눈 덮인 미로
이어서 묘재 성지와 용소막 성당으로 갑니다..
◈ 황사영 백서 토굴
당시 생활 수단이었던 옹기를 굽던 가마
가장 먼저 황사영 백서의 산실인 '토굴'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서울에 살던 '황사영(알렉시오)'은
이 곳에 몸을 숨깁니다.
신자인 김귀동의 집 뒤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에 숨어
조선 교회의 초기 역사와 신자들의 삶,
(특히 30여명의 신자들의 순교적 삶)
순교 사실들이 담겨 있는 박해 상황과
정치적 목적하에 시작된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과 함께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를
명주천 위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 백서가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지기에 앞서
황사영은 1801년 9월 29일 체포되고
백서 또한 압수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황사영과
숨겨 주었던 김귀동을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면서
배론 교우촌도 파괴 됩니다.
황사영 순교 현양탑 앞 흰눈이 덮고 있는 순교자 황사영 동상
♥ 순교자 황사영 소개/배론 성지 홈페이지<== 클릭
*
황사영 토굴과 토굴내의 황사영 백서 일부 사본
◈ 황사영 백서 :
그들은 조선 천주교회가 박해받은 실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천주교회의 재건책을 호소하는 편지를
황심(黃沁)과 옥천희(玉千禧)로 하여금 음력 10월에 떠나는 동지사 일행에 끼어서
중국 천주교회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적발되었다.
백서에 사용된 편지지는 길이 62cm, 너비 38cm의
흰 비단이었으며, 한 줄에 110자씩 121행,
도합 1만 3천여 자를 먹으로 썼다.
백서에는 발송인 황심의 이름만이 씌어 있으며,
지은 날짜는 〈천주 강생 후 1801년). 달두 첨례 후 1일〉
(음력 9월 22일, 양력 1801년 10월 29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밀서를 쓴 황사영은 11월 5일(음력 9월 29일)에 잡혀
한양으로 끌려올라와 12월 10일(음력 11월 5일)에
처형되었으며, 가산을 몰수당하고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
처 정난주는 제주도,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귀양 갔다.
(이 두곳은 제주도, 추자도 순례 시 가야할 곳입니다)
가로 62㎝, 세로 38㎝ 비단에
붓글씨로 쓴 황사영 백서 원본 일부분(교황청 소장)
1801년 압수되었던 백서의 원본은 의금부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옛 문서를 파기할 때(1894년) 교구장인 뮈텔 주교가 입수하여,
1925년 7월 5일 로마에서 조선 천주교회의 순교복자 79명의
시복식이 거행될 때에 교황에게 전달되어 지금은 로마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황사영의 묘는 송추성당이 관할하는 경기도 장흥에 있죠.(2014, 11월에 순례하였던..)
◈ 신학당(성 요셉 신학교)
1831년에 설정된 조선 교구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하게 됩니다.
*
이 초가집은 성당구실도 했으며
베르뇌 주교가 최양업 신부의 장례미사도 이곳에서 올렸다.
당시의 신학교는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선교사들은 1836년 이 땅에 들어 오자마자
신학생들을 뽑아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신학 교육을 받게 하였으나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이 땅에 신학교가 있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어
*
당시 조선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르 신부는
1843년 부터 배론에 와 살던 '장주기'(요셉)의 초가집을 빌려
1855년 신학교를 설립합니다.
***
학교의 책임자는
푸르티에(1856.8-1866.3) 신부와 프티니콜라(1862-1866.3) 신부였답니다.
**
푸르티에 (Pourthi, Jean Antoine) 신부 프티니콜라 (Petitnicolas, Michel Alexander) 신부
(△ 자료 사진입니다)
두 서양 신부는 신학생들을 교육시키면서도
교리서의 변역과 '라틴말-한국어-한문' 사전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
신학당터 표지석과 신학당
성직자 양성의 열매를 맺을 무렵
대원군에 의한 1866년 병인박해로 말미암아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고
두 신부는 3월11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
습니다
눈발은 아직도 그칠 줄을 모르네요..
◀ 작년 10월 순례하였던
요당리 성지의 장주기 성인의 흉상
신학교의 집 주인이었던 순교자 장주기(요셉)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856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신학교를 세우게 되자
자기 집을 신학교로 서슴지 않고 제공하였으며,
앞장 서서 신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장주기 성인은 1866년 3월 30일에
보령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하였구요
◈ 성모 동산, 겟세마니 동산, 십자가의 길,
최양업 신부 묘소
신학교 뒷편으로 산길이 나있죠..
성모 동산에서 잠시 묵상과 성모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초봉헌대에서 촛불 봉헌과 기도도 드리고
**
겟세마니동산과 최양업 신부 동상을 지나면 십자가의 길
예수님이 기도를 드렸다는..겟세마니 동산이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
{시작기도}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의 오묘하신 섭리로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믿음을 찾아 얻고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용감히 신앙을 증거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을 거룩하게 하셨음에 감사드리나이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삶이
바로 당신께서 걸으셨던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신앙 선조들의 놀라운 순교의 역사를 묵상하려 하오니
우리에게 선열들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 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처~7처 8처~14처
*
지학순주교님을 비롯한 성직자묘역을 거쳐
눈은 계속 내리고 산길이 미끄러우니까..
우산을 등산 스틱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계속 오르다보니
드디어 최양업 신부님 묘소입니다
.
최양업 신부는 문경 진안리에서 선종하였고
진천 배티 성지에 가매장되었다가 배론으로 이장되었답니다.
(배티 성지에 최양업 신부 박물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입니다.
묘비명에는 「사제조마최정구지묘」라고 되어 있네요.
조마는 토마스를 한자로 표기한 것()
'최양업'이 아니라 '최정구'라고 되어 있는 건
'정구'가 관명이고 '양업'이 아명이라고 비석 밑에 적혀 있네요.
묘소에서 참배를 하고 잠시 묵상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내려갈 일이 꿈만 같지만, 조심조심 내려가야겠죠
대성당으로 갑니다..
◈ 최양업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과 소성당
"바다의 별" 성당의 의미는
*
대성당 내부 소성당 내부
첫째, 배론이라는 지명을 조형화한 것인데,
이 곳은 골짜기의 모양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둘째,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듯이
교부들은 초기부터 교회를 구원의 배로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셋째, 최양업신부가 입국하기 위해 몇 차례 승선했던
그 배를 상기하여 그분이 지니셨던 불굴의 선교의지를 본받고자 하였다.
*
성당의 명칭은
이 배를 인도해 주실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삼아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기리는 바다의 별 대성당"으로
부르기로 하였다고 한다.
대성당에 안치된 성인화와 유해
성 장주기(요셉), 성 남종삼(요한), 성 김대건(안드레아),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출처 : 배론 성지 홈페이지]
◈ 로사리오의 길
하얗게 내려 쌓이는 흰눈을 맞으면서
십자가에 못박혀 계시는 예수님상에 성호를그으며
로사리오의 길에서
**
묵주기도를 시작합니다.
★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눈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 맞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과 고통을 함께 하시는 성모님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고통의 신비는 언덕 맨위 로사리오의 길 정가운데에
성모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있더군요.
★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 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흰눈을 맞으며 하얀 눈길을 걸으면서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경험은 쉽게 하지 못할 듯 합니다..
눈꽃이 피어난 둥글게 잘 다듬어진
나무들은 묵주알을 나타냅니다.
★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가 조각되어 있는 조각공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영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묘가 이 곳 배론에 모셔져 있습니다.
184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 후 12년 동안의 사목 활동은
서양 선교사들이 갈 수 없는 지역의
교우촌 신자들을 위한 사목 순방이었답니다.
*
그래서 초대 성 김대건 신부는 피의 순교자라고 하는 반면에,
2대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고 한다네요.
↑ 조각 공원 작은 사각들은 납골당,
아래 작은 명패는 연령들의 위패입니다. 사진과 약력이.. .
그의 관할 구역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이었는데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합니다.
작년 10/28 순례했던 최양업 신부 선종한 문경 진안리 성지
▣ 최양업 신부는 순교를 한 것이 아니어서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 시복에서 빠졌죠..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한 노력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미사 중에도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쳤구요..
얼마 전에 미사 참례도 안하고 들린 진천 배티성지에 최양업 박물관이 있죠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인생여정)
당신은 순례자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어 마음이 급하지요
인생길은 순례의 길 서두르지 마십시오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돌아 가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기도하면서 미로를 따라 걸어 보십시오
인생여정에는
동서남북 사해팔방 춘하추동 생로병사,
유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습니다
어느 과정도 생략할 수 없고,
모두 거쳐야만 목적지에 이릅니다
인생여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걸으면,
반드시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2004년 6월 15일
배론성지 지킴이
▲ 인생여정을 묵상할 수 있는 미로
▲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미로
오늘은 미로를 따라 걸어보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배론 성지 순례를 모두 마치고
이제 묘재 성지로 이동합니다.
가는 길에 점심은 곤드레밥으로 하였구요..
= 오늘의 복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