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수산물축제를 다녀와서
알싸한 녹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는 하루를 버리고 마땅히 갈 곳 얻지 못해 헤매 일 즈음 또다시 무턱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어요. 고창휴게소에서 용무도 볼 겸해서 주차하고 커피 한 잔 하려는데 <고창수산물축제>라는 포스터가 보였어요.
제가 또 누굽니까. 여행이라야 거의 비슷한 이미지에 마음만 달리할 뿐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그래서 임도 보고 뽕도 따고 할 수 있는 고창으로 발길을 옮겼지요.
고창휴게소에서 얼마 안 가니 고창IC가 나오는데 그곳을 빠져나와 선운사 쪽으로 이정표를 보고 쭉 찾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었어요. 마침,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선운사'에도 가보고 싶었던 터라 그곳에서 벚꽃놀이도 하고 싱싱한 수산물도 실컷 맛보리라 기대를 했죠. 수산물축제라는 것을 선운사 內에서 하므로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느낄 만 하더라고요.
그곳을 거치기까지는 우리가 중학 시절 배우고 말로만 듣던 <고인돌 운집 터>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는데 그 큰 돌덩어리들을 어떻게 운반하고 날라다 고인돌을 만들었을까 의문이 가시질 않았어요.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이 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다 까먹어서 기억조차 희미해졌었는데 그 차이점을 확실히 배워 두었답니다. [남방식]은 식탁 모양으로 기둥이 높게 올려져 있으며 땅 위에 시신을 묻은 게 특징이고요. [북방식]은 바둑판 모양으로 낮은 기둥에 시신을 땅 아래 묻어둔 게 차이점이란 것.
돌을 어떻게 날랐는지는 아직 정확한 논문이 없어서 막연한 추측만 하는 실정 이지만 돌 하나 나르는데 사람 2천 명 정도 동원이 될 정도였다니 실로 어마어마하지요? 옛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로움에 경탄을 하며 찾은 선운사 축제장!
역시 널따란 주차시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고(주차비는 받지 않음), 하얗게 만개한 벚꽃이 축하해 주는 듯 눈꽃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데 마치 야외 웨딩홀을 지나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행사장은 선운사 못미처서 중간쯤 공터에 마련이 되어 있었는데 선운사까지 걸어서 불과 10분 안팎이었기 때문에 경치를 만끽하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갔지요. 느티나무와 삼나무, 잣나무들이 곧게 뻗은 샛길로 상춘객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고, 즐거운 재잘거림으로 함박웃음이지만 졸졸 흐르는 개울가엔 짝 잃은 외기러기의 슬픈 곡조처럼 내내 심금을 울리더군요.
선운산을 등에 지고 널리 분포되어 있는 빨간 동백숲 자락 밑에 웅장한 자태 드러낸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저곳 모두 한참 보수공사 중인지 제대로 그 위엄을 느낄 수가 없었답니다. 부는 바람에 가끔 울리는 풍경 소리와 어우러진 <예다원>이 자리하고 있어 머무는 발걸음 이기지 못해 녹 향내 나는 그곳으로 들어 갔더랬죠. 각종 기념품과 녹차에 필요한 다기들을 판매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어요. 한쪽에는 차분한 분위기로 녹차의 진수를 맛보는 찻집. 그곳에서 작설차 한잔을 마시며 창밖 너머 자연을 감상하노라니 저절로 머리가 맑아지고 신선이 된 듯 몸이 가벼워졌어요.
적당히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저 축제장으로 내려와 포장마차를 둘러보고 있을 때쯤 마당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몰려 있음을 발견했죠. 뭘 하는 데 저리 빙 둘러 웅성대고 있을까. 특별 이벤트라도 하나 보네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장어잡기대회'를 하고 있었어요.
그 유명한 <풍천장어>를 홍보하기 위하여 여러 마리의 장어를 풀어놓고 직접 손으로 잡아서 잡히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 행사 중의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였는데 맘 같아서는 금방 잡을 듯해도 막상 팔 걷어붙이고 물속의 장어를 잡으려 쫓아다녀도 쉽게 잡히질 않았어요. 손에 잡혀서 꼭 집으면 날쌔게 미끄러져 도망가는 장어. 그 유연한 몸매가 남자들의 정력에 좋다는 소문은 들었겠다 뭇 남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한바탕 왁자지껄 요동을 쳤는데요.
"어라, 이놈의 장어가 날쌔기도 해뿌리네. 요놈 잡히기만 해 봐라 그냥"
"어허, 이 양반아 장어가 그리 쉽게 잡힐 거 같으면 장어라고 이름 지었겠나?"
"내 기어이 잡아 가지고 오늘 마누라 호강 좀 시켜주고말텡께루~"
오고가는 정담 속에 그 얄미운 장어는 쉽사리 잡히지 않고 애만 태우고 있네요. 그때 요령 좋은 노신사분이 양복 입은 와이셔츠를 훌딱 걷어 부치더니만 손가락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금방 장어를 잡아 올립니다.
적당히 구경을 마치고 그 정력에 좋다는 풍천장어구이와 빨간 열매로 빚은 복분자술 한잔 턱 걸치고 나니 정말 힘이 솟아나네요. 주인장께서 한 수 거들어서 복분자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산딸기 과에 속하는 복분자 또한 남자들의 정력에는 그만이라면서 얼마나 풍을 떠들어 대는지 원. 그 술을 마시고 요강에 오줌을 누우면 요강이 빵구가 날 정도로 힘이 세진다나 어짼다나. 그저 남자들은 그놈의 정력타령을 어째 그리 해 대는지.
그곳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축제나 행사를 할 때도 일거양득 또는 1석 3조의 효과가 풍족히 누릴 수 있도록 관광객들에게 충분히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단순히 영리를 위한 수산물축제만의 행사이기보다는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한데 모아 <묶음 이벤트>를 기획하여 다음 해에도 또 오고 싶은 마음과 뒤돌아갈 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말이죠.
깔깔대며 웃고 즐기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네요. 그 많은 아저씨의 장어 잡는 몸부림과 복분자 술타령이 어찌나 우습던지 서두른 발길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맴 거려 나도 한번 배시시 웃고 말았네요.
작성일: 200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