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황금의 땅 ㅡ3권 5 그들은 명동성당 안의 벤치에 나란히 않았다. 햇빛이 밝게 비치고 있었으나 영하의 날씨였다. 한두 명씩 성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모 두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얼치기들한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전번에 형넘이 빼앗 기신 물량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성철이한례 유장수가 넘긴 모양인데." 이한기가 지팡이 끝으로 언 땅바닥을 즉즉 찍었다. "이놈의 원로들도 마약 팔아 먹는 것에 동맹을 맺은 것 같구만." 조한철이 눈을 끔택이며 이한기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강일준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산과 대구 지역으로 약이 나 누어졌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쪽 지역의 위원인 한영호를 통해서 부 산의 김건일과 대구의 박한영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거 모두 유장수를 통해서 나간 것 아님니까?" 그리고 유장수에게 공급한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이성철이 조금씩 공급했던 것은 자신들처럼 물량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정기적이었고 구입선도 일정치가 않았었다. "내가 다리만 나으면 나갈테다. 나가서 드럼통으로 하나 들여오겠 어." 지팡이 손잡이에 턱을 올려놓은 이한기가 성모마리아상을 노려보았 다. "내가 완전히 이놈의 시장을 잡아 버려야지." "형넘, 어떻게 파시구요?" 조한철이 점퍼의 깃을 세우며 물었다. 그를 돌아본 이한기가 빙긋 웃었다. "장규식이 놀고 있어.그놈은 유장수의 지배인으로 손발 노를을 했 던 놈이야." "그놈이 하려고 할까요?" "서너 배 남는 장사인데 안할 리가 없지, 잘하면 다섯 배, 열 배도 남 으니까. 이제는 유장수와 완전히 등을 돌린 사이이고 이러나저러나 부 및치면 하나는 죽는 목숨이야. 장규식이 잠자코 앉아만 있을 놈이 아 니지." 머리를 끄덕이던 조한철이 문득 멈추고는 이한기를 바라보았다. "최대광과 신용만이 여자를 빼앗아 어디로 잠적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놈들도 쓸 만했는데." "그놈들은 조직이 없어서 쓸모가 없어." 이한기가 머리를 저었다. "유장수한테 물기는 몸이라 어디 깊숙한 곳에 엎드려 있겠지.제아 무리 항우나장비 같은 힘이 있더라도조직에게는못 당하는법이야." 조한철은 이제 어렴풋이 이한기의 야망을 읽고 있었다. 그는 마약의 공급과 판매를 모두 장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강일준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강일준은 유장수와 대 등한 입장이 되어 그에게 공급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한기는 장규식의 상황을 이용해서 그를 장악하고 판매를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어떠냐? 애들 수준이?" 이한기가 물었으므로 조한철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괜찰습니다. 형넘이 보시면 알겠지만 교육만 잘 시키면 쓸 만하겠 어요." 이한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장규식에게서 받은 20억이 수중에 있었으므로 유능한 부하 들을 끌어모을 수가 있었다. 전과자나 조직에서 배척당한 거친 사내들 이 대부분이었으나,그것이 오히려 기존의 조직들과는 다른 펄필 뛰는 활력이 있었다. 이한기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계획하는 것의 대상은 대한민국 전체인 것이다. 이한기가 가슴의 호주머니를 부스럭거리더니 열쇠 하나를 꺼내어 조한철에게 내밀었다. "한양은행의 개인금고 열쇠다. 금고 번호는 1223번이고 내 이름으 로 되어 있어. 비밀번호가 3221번이야. 잘 외워 둬." "외웠습니다. " 열쇠를 받으며 조한철이 말했다. "그런데 이걸로 월 합니까?" "장규식이를 줘, 금고에 3억이 들어 있으니까 " 조한철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 부하를 거느리려떤 돈이 필요할거야.돈 떨어지면 애들도 떨 어져 나가는 법이니까. " 이한기가 힐끗 조한철을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너는 별도야. 너와 나는 형제간이지 상하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 아. " "새삼스럽게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형넘." 이맛살을 찌푸린 조한철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형넘이 기반만 굳으면 다시 장사나 하면서 살테니까,그렇게 아세요. 난 끝까지 이런 일 할 생각이 없습니다. " "그래, 그러려무나." 이한기가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네가 좋다면 무엇이든 시켜 주마. 하지만 아직은 안돼. 네가 필요 해."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이한기는 자리에서 일어쳤다. 조한철은 곁고 깊은 눈과 우뚝 솟은 콧날을 가진 미남이다. 그의 입 술은 언제나 붉고 물기를 띠고 있었는데, 가지런한 치아를 내보이며 음을 적에는 같은 남자라도 가승이 뭉클해질 때가 있었다. 그는 체격 도 좋아서 1미터 75가 넘는 신장에 체중이 75킬로그램이었다. 한마디 로 탤런트보다 나은 용모여서 이십대 초반에는 영화출연 제의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어깨를 펴고 서초동의 청하 아파트 곯동 앞을 지날 때에는 아 침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아파트 안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가로운 분위기 였다. 그가 12동의 모서리를 지나 뒤쪽의 14동으로 템어 들자 앞에서 걷는 여자의 됫모습이 보였다. 여자에 대해서는 초연한 조한철이었다. 가만 히 앉아 있어도 여자 쪽에서 추파를 던져 오는 것에 익숙한터여서 자 연히 그런 태도가 몸에 맨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도 여자의 됫모습은 나무랄 데 없이 미끈했다. 투피스를 입은 엉덩이도 알맞게 부플었고 다리와 허백지의 곡선도 아름답다. 그리고 어깨와 팔의 움직임도 부드러웠다. 조한철은 걸음을 빨리 옮겨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여자는 한 손에 무거워 보이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겨울에 는 흔치 않은 사과와 배 "제가 들어 드리지요. 무거워 보이는데." 옆으로 다가서면서 부드럽게 말을 걸던 조한철의 눈이 조금 크게 뜨 여졌다. 열에 하나 정도로 생각했던 기대가 맞아들어간 것이다. 그녀는 뚜렷한 윤곽을 가진 미인이었다. 雲은 화장을 하였으나 곁고 검은 눈 과 육감적인 입술을 보자 조한철의 가슴은 오랜만에 뛰었다. 조한철의 웃는 얼굴을 보자 여자가 이끌리듯 따라 웃다가 표정을 굳 혔다. 그러나 과일 바구니는 어느 사이 조한철의 손에 옮겨져 있었다. "누굴 방문하시는 겁니까?" 조한철이 부드럽게 묻자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에요.집에 가는 길이에요.어제 회사일로 밤을 새웠기 때문에 "저런, 밤을 새운 얼굴이 이렇게 아름다우시다면 다음에 만날 때는 몰라보겠습니 다. " 여자에겐 다소 낮이 뜨겁더라도 이런 식의 청찬이 잘먹헌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여자가 잠자코 템긋 웃었다. "14동에 사십니까?" 입구가 다가왔으므로 조한철이 묻자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16동이에요. 거긴요?" "아, 난 18동입니다. " 여자가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18동은 없어요. 정직하게 말하세요." "실은 지나왔습니다. " "14f?" "아니, 12동." 14동의 606호실에 장규식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에게 비밀금고의 열 쇠를 건네 주려고 온 참이다. "난 조한철이라고 합니다. 수입업을 하고 있지요."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어떡합니까?맥을 보고 나서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습니다. " 여자가 걸으면서 그의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회사가 패 큰 모양이에요. 더구나 이렇게 젊으신데 사장이세요?" "젊다니요, 내년이면 삼십인데. 그리고 회사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겁니다. 그리고 난 아직 미혼입니다. " 그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자, 그쪽을 말씀해 주실랍니까?" "전 이자영이라고 해요. 일성그룹 비서실에 있구요." 조한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난 이런 일이 처음입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 잠자코 웃던 이자영이 걸음을 멈추면서 그의 손에 든 바구니를 쥐었 다 "고마줬어요." "다시 만나게 될겁니다. " 조한철이 그녀의 손에 바구니를 옮겨 주면서 말했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한 번도 약속을 깨뜨려 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조한철은 아 파트 현관을 들어서는 이자영의 됫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대했던 대로 현관으로 들어서던 이자영이 머리를 돌려 이쪽을 바 라보았다. 그가 한 손을 들어 보이자 못본 척 머리를 돌렸는데 그것도 다른 여자와 다를 것이 없다. 그녀의 벗은 몸매를 상상하던 그의 시야 에서 이자영이 사라지자 조한철은 몸을 돌렸다. 온몸에서 활기가 솟구 쳐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웬 과일이냐?과일도 제때에 먹어야 제 맛이 나고 영양가도 있는 법 인데 ." 어머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언짧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번 주일에는 이틀째 외박을 한 것이다. 회장실로 옮기고 나서 처음 몇 달 동안은 박재룡 회장의 까탈스러운 성격 맞추기가 힘 이 들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참이다. 회장은 신년부터 직접 업무를 통괄하고 있었는데, 박주경 부회장이 회장의 신임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이자영의 공이라고 봐도 되었다. 그녀는 회장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재빠르게 파악하였고 그 것을 박주경에게 연락해 주고 있었다. "오늘 몇 시에 돌아온대?" 소파에 털썩 소리내어 주저앉은 이자영이 묻자정인숙 여사는 머리 를 저었다. "오늘 하루 더 쉬고 내일 온다더라." 아버지와 동생은 스키장에 간 것이다. "엄마도 따라가지 그했어?괜히 남아서 나한테 잔소리하려고만 들 지 말고." ·내가 언 잔소리하더냐?- 어머니가 별컥 성을 내었다. "도대체 너는 어떻게 된 계집애가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외박을 하 고 돌아다녀? 이젠 친구 팔아 먹기도 미안한 줄은 아는지 아예 이야기 도 없이." 이맛살을 찌푸린 이자영이 머리를 돌렀다. 문득 아파트 입구에서 만 난 조한철이란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부회장하고 그런 사이라면 아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및떳하게 양쪽 집안에 인사라도 차리고 지내야 할 것 아냐?넌 그렇게 자존심도 없 어?" 이자영이 퍼뜩 시선을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몇 번 얘기해야 알아?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그 이가 경영권을 이어받으면." "어느 세월에? 내가 알아보니까 그 회장이라는 사람, 앞으로 10년은 더 그 자리에 앉아 있겠더라." 어머니를 榮아보던 이자영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시선을 내렀다. "두 달 후에 주주총회가 있어. 그때 지금 회장넘은 명예회장으로 일 선에서 물러나고 부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이 될거야." "정말이냐? 3월에?" 이제까지 찌푸려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펴졌다. "그럼 그때 정식으로 청흔을 하겠다고 하던?" "그래, 엄마." 이자영이 눈을 흘기며 입끝으로 웃었다. "엄마는 알고 보면 너무 세속적이야. 물질지향적이고." "권력지향적이기도 하다, 이년아." 어머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딘고 과장보다 사장이 열 매는 낫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라지만 있는 걱정이 훨씬 든든하고 여유가 있는 법 이야." "그이는 사는 건 똑같다고 그래 . 책임만 무거워질 뿐이라고. 그 나이 에는 잘해야 차장인데. 일요일에는 가족 데리고 산이나 들로 나가는 생활이 그립대. " 이자영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어떤 때에는 그이가 안쓰러워. 회장넘 눈치보랴, 회사 끌어가랴 하 는 것이." "얼씨구, 이제는 제법." 어머니가 눈을 치컥 뜨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농을 했다. "이것아, 월급쟁이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람들보다 백 배 낫다. 그 런 마음고생 없는사람이 어디 있어?은근히 제 자랑하고 있어." 문득 이자영은 재킷의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어머니에게 보였 다. "이것 봐, 조금 전에 아파트 안에서 웬 남자가 바구니를 들어 주면서 명함을 주었어.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 것 같았어." 어머니가 명함을 살펴보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니, 왜?" "그렇게 사내답게 생긴 멋진 남자는 처음이야." "이 것이 정말." 눈을 흘긴 어머니가 탁자 위로 명함을 집어 던졌다. "박서방 하나도 간수할똥말똥 하는 년이 어디다 한눈을 팔어?" "아마 회사로 전화가 올거야. 내가 회사를 알려 줬거든." "이것아 정신차려. 박서방이 알면 어쩌려고." 이맛살을 찌푸린 어머니가 머리를 저었다. "넌 욕심 많은 것이 꼭," "그리고 절대 손해보지 않는 것도. 그렇지? 아버지가 그했다면서?" 입맛을 다신 어머니가 머리를 돌렸으므로 이자영은 자리에서 일어 쳤다. 방에 들어선 이자영이 옷을 벗어 옷장에 걸다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 었다. 옷장 옆의 벽에 걸어 놓은 사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일년 전에 신입사원 연수교육을 마치고 일성그룹 연수원 앞에서 찍은 사진 이었다. 추운 겨울 날씨였으므로 십여 명의 상품부 신입사원들의 얼굴 은 모두 추위에 굳어져 있었고 어깨를 움츠린 모습이었다. 가운데에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옷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쪽으로 LA에 가 있는 박정환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그 리고 사진의 오른쪽 끝에는 고영무가 덕을 쳐들고는 됫짐을 지고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그의 표정에도 추 위를 느끼는 듯한 기색은 없다. 한동안 그의 사진을 바라보던 이자영은 어깨를 한번 추켜 올리고는 옷장에 옷을 걸었다. "시간이 되었어. 세 시간 전이야." 시계를 내려다본 고영무가 흔들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녁 7시가 되 어 있었다. "난 이제 나가야겠는데." 그는 의자에 않아 있는 밀리카를 내려다보았다. "널 이제 다시 묶어야겠다. "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밀리카는 잠자코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 다. 그는 그녀의 팔과 다리를 의자에 단단히 비끄러맨 다음 탁자 위에 놓인 넓은 스카치 테이프를 들었다. "나한테 할 이야기라도 있어?" 그가 묻자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고영무가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너는 내가 돌아오지 않기를 빌어야만 할거다. 내가 돌아오는 경우 는 페르난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널 죽이려고 오는 경우밖 에 없다. " "페르난도갸 돈을 마련해 놓았다떤 나는 이곳을 알려 주고 나타나지 않아.그것으로 네가 나한테 했던 일의 보상이 끝나는 것이니까.그것 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었던 일이다, 밀리카."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고영무." 갑자기 밀리카가 얼굴을 들었으므로 테이프를 붙이려던 고영무가 손을 멈쳤다. "넌 나에게 빛이 있어.내 남편을 죽인 빛,나는 끝까지 너를 찾아서 내 손으로 죽일테야." 치켜 를 그녀의 눈을 내려다본 고영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지난번처럼 가떤을 쓰고 네 몸뚱이를 무기로 내세워 봐. 별 로 신통치 않은 무기가 되겠지만 그것도 오랜만이어서 새로운 맛이 있 기는 하겠군." 막 입을 벌리려던 밀리카의 입에 스카치 데이프를 철썩 붙이고 난 고영무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짙은 눈셉 밑의 눈동자가 한동안 움직이지 않더니 마침내 두어 번 눈셉을 깜박였다. "너와 네 및속의 아이도 함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그리고 그것은 모두 네탓이다. 날 원망하지 마." "나는 아직 죽은 김강남과 그의 아버지 호세 김의 몫을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들 가족들의 몫도." 고영무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뒤쪽으로 잡아당 겼다. 그녀의 얼굴이 똑바로 고영무를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글. 한껏 치켜 뜬 밀리카의 눈동자가 바로 아래쪽에 놓여져 있다. "나는 더 이상 낙오할 수가 없단 말이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끌 어내리지 못해, 이년아. 너희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밀리카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녀를 내 려다보던 고영무는 머리칼을 움켜쥐었던 손을 풀고는 머리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유리창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밀리카의 의자는 벌찍이 떨 어져 있으므로 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관리인이나 방문객들 이 이곳에 들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재킷을 집어 들고 방을 나왔다. 방문의 열쇠를 밖에서 채우고는 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현관을 나쳤 다. 저녁 7시 30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방이 다섯 개가 됩니다, 페르난도." 마르코가 다가와 그를 을려다보았다. "가방 안쪽의 헝겊 속에 발신음이 가는 송신기를 붙여 놓았습니다. " 페르난도는 문 옆에 쌓아 둔 검정색의 대형 가방더미를 바라보았다. 가방에는 현찰로만 2억 달러가 담겨 있었다. 가방주위에 대여섯 명 의 부하들이 둘러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페르난도는 몸을 돌렸다. 이 일을 카를로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진행한다는 것을 그들은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자, 가방을 차에 실어라." 턱을 세운 페르난도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 사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방 하나를 한 사람씩 맡거나 둘이서 가방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페르난도, 그놈한테서 연락이 올 시간입니다. " 마르코가 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7시 반이 되어 있었다. 머리 를 끄덕인 페르난도는 책상에 앉아 두 손으로 틱을 괴었다. 만일 이번 의 계획이 실패한다떤 자신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이유야 어떻든 2억 달러나 되는 대금을 허락 없이 움직인 것에 대해서 가혹한 처벌을 할 것이다. 마르코가 벽 쪽에 붙어 서서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르코는 그와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이자 부하였다. 그도 어릴 적부 터 밀리카를 동생처럼 여겨 왔었다. "마르코, 놈은 한 놈이야. 그놈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저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 페르난도가 손등에서 턱을 떼고 말했다. "절대로 놈을 놓치지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마." "페르난도, 그렇게 되기를 바람니다. 밀리카도 구해 내고 돈도 다시 찾기를." 그때 책상 위에 놓인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그들은 잠시 전화기를 내 려다보았다. 페르난도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페르난도, 나다. " 한국인의 목소리였다. 발신지 추적장치를 구해 그가 전화한 위치를 추적해 보았더니 차이나 타운과 리틀도쿄, 울베라 거리 등에서 걸어 왔다. 이쪽이 추적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돈은 준비했겠지?" 한국인이 차분하게 물었으므로 페르난도는 편일인지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준비돼 있다. " #그러면 다섯 개 트렁크를 울베라 거리의 유리언 역 앞으로 가져와. 단,너와 네 운전사 둘만 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네 휴대폰으로 연락하겠다. 네가 유니언 역 앞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8시 반이다. " 전화가 끊겼으므로 페르난도는 수화기를 들고 마르코를 바라보았 다. "페르난도, 뭐라고 그럽니까?" "마르코, 너와 내가 간다. " 자리에서 일어선 페르난도는 서랍을 열고 굵직한 즐트를 꺼내 들었 다. 탄창의 총알을 확인하고 난 그는 총을 허리춤에 찌르고는 앞장을 섰다. 사무실 앞의 마당에서는대형 왜건을 둘러싸고 서 있던 부하들이 다 가서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딘저 유니언 역 앞으로 가라. 그곳에서 놈을 만나기로 했 다. 각자 내 휴대폰 번호를 기억하도록. 나도 너희들에게 따로 연락하 겠다. " 부하들이 서둘러 차에 오르고,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차량들이 사무실 앞을 떠났다. 페르난도는 핸들을 잡고 앉은 마르코 옆자리에 합다. 뒤쪽에는 대형 트렁크가 가득 쌓여 있었다. "마르코, 조금 천천히, 애들이 먼저 도착하게 하자." 페르난도가 앞쪽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유니언 역 앞에서 놈이 다시 전화한다고 했다. 8시 반에 도착해야 한다는군, "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목의 땀을 밖았다. 매린의 죽음은 이제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뿐이다. 콜름비아 의 고원지대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동지들이 죽어 가고 있다. 그 러나 밀리카는 다르다. 이제 단 하나 남은 동생이었고 조카를 잉태하 고 있는 것이다. "페르난도, 한 가지 분명히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 마르코가 어두운 차도로 들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앞쪽을 바라보던 페르난도가 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지금 기선을 잡고 있는 것은 놈입니다. 우리를 그놈의 말을 따라야 하구요." 마르코는 3차선을 따라 차를 천천히 몰았다. "존도 안 주고 밀리카를 찾아온다떤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야 할 때가 오면 폐르난도, 그때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돈이냐, 밀리카 냐 하는 것을 말입니다. " 페르난도는 머리를 들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차는 그레이하운드 빌 딩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곧장 달려 올라가면 우측에 유니언 역이 나 온다. 10블록쯤 떨어져 있는 거리 였다. 마르코가 힐끗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 치였다. [이원호] 황금의 땅 ㅡ3권 6| 부하들에게 돈을 준비시키떤서 돈을 미끼로 고영무를 잡을 것 같은 분위기를 심어 준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밀리카의 안위는 무시하고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두를지도 모른다. "우선 밀리카를 찾는다, 마르코." 가라앉은 목소리로 페르난도가 말했다. 그는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 는 건물들에 무심한 듯한 시선을 주었다. "돈은 나중에 찾겠다. 찾을 수 있어, 마르코."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으므로 페르난도는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움 켜쥐었다. 마르코가 머리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페르난도는 응답하면서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8시가 조금 넘어 있었 다. "페르난도, 나다. " 한국인이었으므로 그의 가슴은 웬일인지 철렁 내려않았다. 그는 8시 반에 유니언 역 앞에서 전화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 "차를 왼쪽으로 끈어서 2번 도로로 들어가라. 지금쯤 아마 리틀도쿄 를 지나고 있겠지? 차를 돌려!"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페르난도는 눈을 부릅뜨고 뒤쪽을 돌 아보았다. 수백 개개 불및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뒤쪽의 차량에 탄 사람들은 불빛 때문에 보이지가 않았다. "마르코 2번 도로로 들어가라, 좌회전해." 아랫입술을 깨문 페르난도가 말했다. 승용차가 마침 리틀도쿄 앞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이 따라오는 모양이야.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어." 그는 휴대폰의 다이얼을 누르고는 귀에 대었다. "마리오, 장소가 변경되었다. 우리는 2번 도로로 간다. 그쪽으로 옮 기도록 서둘러라." 스위치를 끈 페르난도가 앞쪽을 쏘아보았다. "순순히 넘겨 줄 수는 없다, 마르코. 들는 데까지 물아 볼테다, 이놈을 "잔인한 놈입니다, 페르난도." 핸들을 왼쪽으로 꺽으면서 마르코가 말했다. "매 린을 천천히 죽였습니다. TV나 파는 상사원 같지가 않습니다. " "놈을 잡으면 사지를 천천히 토막내어 줄테다. " 마르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카치 테이프가 붙여질 때 입이 조금 벌려져 있던 것이 무척 다행 이었다. 밀리카는 혀를 내밀어 스카치 테이프에 침을 묻혔다. 혀 끝이 알알 했고, 나중에는 오그라드는 것같이 느껴졌으나 레이프는 침이 배어 느 슨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었다가 오므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밀 착도를 떨어뜨려 나갔다. 벽에 걸린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자 뒤쪽으로 묶여진 두 손은 꼼짝할 수가 없었고, 두 발목도 마찬 가지였다. 그놈은 팔목을 묶은 끈이 남자, 그 끈으로 목을 감아 의자 뒤쪽으로 묶었다. 그래서 목을 내릴 수도 없었다. 밀리카는 입술 근처의 테이프에 조그만 공간이 생겨난 것을 느꼈다. 그것은 침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침을 입 안으로 끌어들였다가 다 시 뱉는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므로 침은 레이프 액이 묻어 신맛이 났다. 두 팔을 끊임없이 비틀고 있었는데, 팔목이 쑤시고 따끔거리는 것이 살갗이 벗겨진 것 같았다. 다시 테이프를 불다가 침을 삼킨 밀리카의 시선이 앞쪽에 있는 흔들의자에 머물렀다. 의자의 등받이에 입술에 붙 은 테이프를 비빈다면 금방 떼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거리는 1미터 50 센티쯤이나 떨어져 있었다. 밀리카는 바닥을 짚은 두 발에 힘을 주었다. 앉은 채로 의자와 함께 뛰어 볼 생각이었다. 10센터라도 좋았다. 뛰어서 10센티라도 앞쪽으로 나간다면 열다섯 번을 뛰면 그쪽에 다을 것이다. 밀리카는두 발에 힘을 준 다음 온몸을치켜 올리며 뛰었다. 중소리 와 함께 의자가 올라갔다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해 랄은 채로 비틀거렸다. 밀리카는 기운이 났다. 뛰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뛰어올랐다가 떨어져 내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흔들의자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다시 뛰어올랐다. 이제는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마에 서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이 따끔거렀다. 거칠게 코로 숨을 내쉬면서 그녀는 다시 뛰어올랐다. 의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있는 힘 을 다하여 뛰어을람고 의자와 함레 바닥에 럴어졌는데,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의자와 함께 앞쪽으로 넘어졌다. 의자가 친천히 앞쪽으로 넘어졌으므로 밀리카는 눈앞으로 다가오는 흔들의자의 팔걸이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눈을 부릅뜨는 사이에 의 자의 팔걸이가 머리에 부딫쳤고,두 개의 의자와 함께 그녀는 방바닥 에 넘어졌다. 그녀는 눈앞에 번책이는 불빛을 보면서 의식을 잃었다. 고영무는 휴대폰을 입에 대었다. "페르난도, 2번 도로 끝까지 가라. 그러면 앞쪽에 길이 막혀 있고 공 사장이 보일거다. 공사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내려.그리고 너희들은 길 건너로 가 있어." "이봐, 밀리카는 네가 데리고 있는거냐?" 페르난도의 말소리가 송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돈을 받으면 넘겨 준다. 나한테는 귀찮기만 한 여자니까." 고영무는 스위치를 끄고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앞쪽으로 차이나 타 운의 화려한불빛이 번책이고 있었으므로 그들과는 꽤 떨어져 있는 셈 이었다. 들고 있는 휴대폰이 낮은 델 소리를 내었으므로 그는 스위치를 켜고 귀에 대 었다. "고, 놈이 멈췄습니다. 차에서 내립니다. " 송화기에서 사내의 말소리가또렷하게 들렸다. 고영무는 세워 둔 차 에 등을 기대었다. "두 놈이 길 건너편으로 갑니다 " "차는 공사장 입구에 세워 두었나?" "그렇습니 다. " 고영무는 머리를 돌려 차 안에 랄아 있는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알폰소, 놈들이 길 건너편으로 가고 있어요." 머리를 끄덕인 알폰소가 휴대폰의 다이얼을 눌렀다. "짐, 시작해라. 가방이 다섯 개다. 하나도 빼놓으면 안돼." 길 건너편의 빌딩으로 다가간 페르난도와 마르코는 몸을 돌려 자신 들이 타고 온 왜건을 바라보았다. "페르난도." 마르코가 짧게 소리치면서 불쪽 튀어나갈 듯이 상체를 숙였다 30미 터쯤 건너편에 왜건이 세워져 있었는데, 어느 사이 시커멓게 달려든 사내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쪽은 관통 도로가 들릴 곳이라 정지표시가 되어 있었고, 크레인과 범프 트럭이 곁은 어둠 속에 세워져 있었다. 사내들은 공사장 쪽에서 몰려 나온 것 같았는데 페르난도의 눈에는 죽은 곤충에게 달려든 개미 떼처 럼 보였다. "마르코, 잠자코 있어." 페르난도가 마르코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자 휴대폰이 울렸다. 귀 에 대자 고영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가 체크할 시간과 네가 밀리카를 찾는 시간이 같을 것이다. 밀리카는 울베라 거리의 선세트 아파트 3동 402호실에 있다. " "선세트 아파트 3동 402호." 페르난도가 앞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사내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놈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앞쪽의 사내들을 들을 생각은 하지 마라, 페르난도. 내가 아파트로 전화를 하면 밀리카의 목숨은 없어져." 페르난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쪽은 짙은 어둠에 싸인 공사장이 었고,그가 등을 대고 서 있는 빌딩의 벽에는 유리창도 나 있지 않았 다. 이쪽은 길이 막혔으므로 서너 대의 차량이 이쪽으로 불을 비추면 서 달려을 뿐 나가는 차량은 없었다. 놈은 이곳에 있지 않은 것이다. "마르코, 울베라 거리 선세트 아파트 3동 402호다. "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은 페르난도가 말하자 마르코가 두어 발짝 떨어지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스위치를 끈 고영무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들어와 앉았다. "고,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 지금 차 두 대로 다저 스 스타디움으로 가고 있습니다. " 알폰소가 손에 든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면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어요. 페르난도가 여동생을 위해서 2억 달러를 내놓다니, 그놈이 그런 약점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 알폰소가 들고 있던 휴대폰이 매리릭 거리는 신호음을 내었다. 스위치를 켠 알폰소가 귀에 대더니 가법게 대답하고는 고영무를 바 라보았다. "페르난도가 돌아갑니다. 차 네 대가 몰려왔는데 그들도 다시 돌아 간답니다. " 길이 막혔으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쪽 알폰소의 부하들은 가방을 건너편의 차에 싣고 다저스 스타디움으로 달려가고 있다. 다저스 스타디움의 넓은 주차장에는 그들의 차량 두 대밖에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차량들의 불빛이 펄였으 나 이쪽은 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링컨과 밴은 나란히 세워져 있었 는데, 밴에서는 가끝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차장 입구 쪽으로 감 시하러 나간 쿠퍼가 담배를 피우는지 불통이 반짝이다가 이내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내려다본 짐 버클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10시 반이었는데 계 획보다 5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는 됫좌석에 쓸아 놓은 돈더미를 다른 가방에 나누어 담고 있는 중이었다. 가방 두 개의 분량을 네 개로 나누는 것이다. "휴, 어마어마하군. 뒤차에도 세 개가 실렸지?" 찰리 골드가 백미 러 뒤쪽에 앉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흑인이었는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만 고용해 쓰는 사내였으나 월남전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고 입이 무거줬으므로 안심하고 일을 맡겨도 되었다. 옆쪽의 밴에 타고 있는 행크와 몰리, 크린도 제각기 우체부 일을 하 거나 짐차의 운전사 일을 하는 사내들이었다. 전과가 없어 모였다가 를어지면 흔적도 남지 않는 조직이었다. "아니, 이게 뭐 야 빈 가방에 돈이 남았나 손바닥으로 흩어보던 짐의 손이 우연히 가방 t' 의 너풀거리는 바닥 헝겊에 닿았고, 헝겊의 안쪽을 쓸다가 성냥개비만 한 물체를 집어 든 것이다. 그것은 유리관처럼 만들어져 있었는데,그 유리관의 끝부분에서 불 이 깜박이고 있었다. "수신기다. " 손에 든 그것을 노려보며 짐이 소리치자 찰리가 황급히 차문을 열고 옆쪽의 밴으로 뛰어갔다. "찰리, 가방을 모아라, 가방을. 수신기를 찾을 필요는 없어, " 손에 수신기를 든 짐도 옆쪽의 벤으로 뛰어갔다. 문이 열려진 밴에 서 세 개의 검정 가방이 밖으로 내동댕이쳐겼다. 짐은 재빨리 좌우를 둘러보았다. "찰리, 네가 보스에게 연락해. 장소를 다시 잡으라고 하고 출발해. 나는 이것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놈들을 끌겠다. " 그는 링컨으로 뛰어가 됫좌석에서 네 개의 가방을 밖으로 집어 던지 고는 헌 가방들을 됫좌석에 던져 넣었다. 그가 운전석에 올라 문을 닫고 앞쪽을 바라보자 주차장의 입구로 들 어서는 차량이 보였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휘익 뻗어 나와 이쪽을 비추었고 다시 또 한 대의 차량이 뒤를 따랐다. "찰리 ! 행크! 놈들이다!" 짐이 소리치자 델에 타고 있던 그들도 그것을 쳐다보았다. 주차장 입구에 서 있던 쿠퍼를 향해 하만 불꽃들이 델어 나가는 것이 짐의 눈 에 보였다. 쿠퍼는 어두운 바닥에 잠기듯이 쓰러져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또 다른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고,차량들이 좌우로 벌려 서더니 이제 일직선으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짐은 이를 악물었다. 입구는 한쪽뿐이었다. 번에 실려 있는 돈을 지 키려면 누군가가 길을 터 줘야 할 것이다. 옆쪽의 맨은 시동은 걸어 놓 고 있었으나 선뜻 앞쪽으로 달려나가지 못하고 있다. 앞쪽을 노려보던 짐은 가속기를 힘껏 밟았다. 타이어가 시멘트 바닥에 요란한 마찰음을 내더니 링컨이 불쪽 취듯 앞쪽으로 달려나갔다. 앞에서 달려오던 차량들과의 거리는 50미터도 되지 않았다. 짐은 맨 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리라고 믿었다. 핸들을 움켜쥔 짐은 가운데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나갔다. 어디선가 끼이익 하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고 중앙 에 위치했던 뷰익이 왼쪽으로 머리를 줘어 비스듬한 옆면이 보였다. 운전사의 옆쪽이다. 순간 링컨은 검정색 뷰익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뷔크는 뒤쪽으로 와락 밀리면서 짜부라진 몸체가 두 번쯤 돌더니 멈춰 섰다. 차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밴은 뒤집혀져 있었는데 안에는 세 사람의 시체가 보였다. 찰리는 차 밖으로 등겨 나왔는지 시벤트 바닥에 엎드려 죽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 쓰러져 있는 한 명까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고영무는 구겨진 종이처럼 되어 있는 링컨 쪽으로 다가갔다. 운전석 이 어디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으나 어디선가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리 는 듯했다. 링컨 앞에는 두 조각으로 접혀진 것 같은 대형 승용차가 놓여 있었 는데 안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알폰소, 여기 누군가가 있소!" 고영무가 소리치자 밴을 둘러보던 알폰소가 달려 왔다. 뒤집힌 벤의 라이트가 입구 쪽을 비추고 있어서 이쪽은 건너편 국도의 차량이 간간 이 비추는 불및으로 윤곽이 보일 뿐이다. "여기 있군." 고영무가 다시 소리쳤다. 찌그러진 앞부분의 보닛 사이로 꿈틀거리 는 물체를 본 것이다. 그것은 팔 같기도 했고 다리 같기도 했다. "아아, 짐!" 알폰소가 버럭 소리쳤다. 엔진 사이에 끼여 있는 짐 버클리의 얼굴 을 본 것이다. 고영무는 차 뒤쪽 부분에서 차에서 떨어져 나간 기다란 쇳조각을 떼 어 내었다. 그들이 짐을 부서진 차에서 끄집어 낸 것은 그로부터 30분 이 지난 후였다. "보스, 면목이 없습니다. 돈은 보두 빼앗겼지요?" 늘어진 몸을 시맨트 바닥에 누이자 짐이 가느다란 소리로 물었다. "짐, 돈은 나중에 찾으면 된다. 우선 네 몸이나 걱정해." 그들은 짐을 차의 됫좌석에 누이고는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다섯 구의 시체는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알폰소는 침통한 얼굴이었다. "보스, 놈들이 가방 속에 수신기를 넣어 두고 있었습니다. " 짐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마가 깨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으므로 고영 무가 셔츠를 ◎어서 동여매 주었으나 금방 피가 셔츠 위로 매어 나왔다. "찰리 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놈들은 약속을 어겼어." 가속기를 밟아 속력을 내면서 알폰소가 뱉듯이 말했다. 그러나 약속은 고영무와 페르난도가 한 약속이다. 알폰소는 고영무 가 페르난도와의 사건을 털어놓았을 때 처음에는 당황하여 거절할까 도 생각해 보았었다. 고영무가 흔자서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하여 싸우는 정신병자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승산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고영무는 페르난도의 여동생을 인질로 잡고 있었고 페르난 도는 수세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2억 달러를 받으면 반을 잘라 1억 달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카를로스측으로부터 이번에 1천 5백만 달러를 받게 될 것을 생각하자 그는 마침내 결심하게 되었다. 자신이 고영무를 도우리라고는 페르난 도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구걸하듯이 얻어 쓰는 1천 5백만 달러보다 당당하게 빼앗아 쓰는 1억 달러가 훨씬 매력이 있었고,잘하면 시치미를 떼고 약속했던 1천 5백만 달러를 그쪽에서 더 받을 수가 있었다. 고영무의 무릎을 베고 누운 짐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몸의 다른 부 분이 상했는지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스터, 미안합니다. " 알폰소가 그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아직 고영무의 이 름을 모른다. 그러나 짐은 그가 이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있었다. "괜찮소, 짐. 어서 났기나 하시오." 고영무는 그의 이마를 손으로 짚고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 1시 반 이었다. 밀리카는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그 녀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 것은 흙색의 기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한 쪽 볼이 응접실 바닥의 밝은 양탄자 위에 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 의자 에 부및친 관자놀이 부근에서 다시 통증이 몰려 왔으므로 그녀는 코로 가늘게 신음 소리를 및어 내었다. 그녀는 의자와 함께 옆쪽으로 누워 있었다. 이제 눈앞의 흙색 기둥은 흔들의자의 팔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쪽 귀도 바닥에 닿아 있었으므로 여러 가지 소리가들려 왔다. 아 래충에서 떠드는 말소리와 건물 밖을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도 진동음 과 함께 들렸다. 밀리카는 양탄자 바닥에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흔들려 다시 통증이 왔으나 스카치 테이프덕 끝부분이 말려지는 것이 느껴졌 다. 그녀는 말린 부분을 바닥에 대고는 벗질하듯 얼굴을 비벼 대었다. 이윽고 테이프가 입 부근에서 덜렁거리다가 그녀가 다시 한 번 비벼 대자 입에서 떨어져 나갔다. 밀리카는 입을 커다랄게 벌리고는 가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더러운 양탄자가 바로 입에 닿아 있었으나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아아. " 자신의 입에서 나온 비명 같은 탄성이 자신의 귀에 들렸다. 숨을 깊 게 들이마신 그녀는 목청껏 소리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소리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다리를 버둥거렸는데 어딘지 모르게 뒤로 류인 팔이 헐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팔을 흔들어 보자 팔 사이에 끼인 의자의 등받침 한 개가부러져 있 었다. 오른쪽 끝의 받침대였다. 이제는 팔의 운동 반경이 월씬 넓어지 게 되어 밀리카는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면서 매듭의 고리를 찾기 시작 했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사람 살려! 도와 줘요!" 생각난 듯이 밀리카는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바같에서는 아무런 기 척이 없다. 방 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팔을 흔들고 두 다리를 끌어올렸다가 내리면서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온몸에 열이 났고 호흡이 가빠져 왔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커다랄게 숨을 쉬었다. 그러자 문에서 달그락거 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온몸을 굳힌 밀리카는 두 귀를 세웠다. 그녀는 문 쪽으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으므로 저쪽으로 머리를 들 수도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도망치려고 발악을 했군." 고영무의 목소리 였다. 밀리카는 사지를 늘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코로 양발자의 매운 듯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f "네 오빠에게 죽기 전의 네 모습을 보여 주고 싶구나." 그가 의자를 일으켜 세웠으므로 밀리카는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 았다. 고영무의 두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얼굴이 전에는 웃 은 적도.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네 오빠가 약속을 어겼어. 이쪽 사람들 다섯 명을 죽이고 돈을 도로 찾아갔다. " 고영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행히 나는 네가 있는 곳의 주소를 다르게 알려 주었지. 시간을 벌 려고 그했는데, 잘된 일이야." 고영무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수신 추적을 당해도 상관없다. 너를 죽이고 이곳을 떠날테 니까. 마지막으로 네 오빠와 통화를 해라." 그는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고는 귀에 대었다. "폐르딘도?" 밀리카를 쓰아본 채 고영무가 말했다. "나다. 나는 지금 네 여동생과 같이 있다. " "이 개자식, 왜 약속을 어기는거냐?" 저쪽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으므로 고영무는 이맛살을 피푸렀다. "약속을 어기다니? 이 더러운 콜름비아 놈, 네가 가방에 수신기를 넣고 쫓아와 사람들을 죽였잖아?" 고영무는 한 손을 뻗어 밀리카의 머리칼을 쥐고는 와락 앞쪽으로 잡 아당겼다. "여기 네 여동생이 있다. 마지막 작별인사나 해라." 고영무는 휴대폰을 밀리카의 귀에 가져다 대었다. "페르난도." 겨우 그의 이름을 부른 밀리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머리를 돌렸 다. 안간힘을 쓰는 모양이었으나 어느 사이에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밀리카! 밀리카!" 저쪽에서 고함치듯 페르난도가 그녀를 부르고 있는 것이 들렸다. "페르난도, 모두 네 탓이다. " 수화기를 귀에 핀 고영무가 말했다. "날 원망하지 마라." "잠깐, 내가 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짓이야. 이건 나도 모 르고 있었던 일이야!" 페르난도가 소리쳤다. "이것은 크라우스의 짓이야.우리에게 전파 수신기를 준 것이 크라 우스였다. 우리가 하지 않았으니 틀림없이 그의 짓이다. "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예전의 거드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라우스라니?" "마약 구입선이다. 난 그들에게 너를 찾는 데 협조를 요청했었다. " "그럼 우리측을 살해하고 돈을 도로 찾아간 것도 네가 시킨 일이겠 군." "아니다. 돈을 줄 적에는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내 부하들이 수신기만 얻어 온거야." 그의 목소리는 조바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에게 시간을 줘. 내가 그놈들에게 돈을 찾아오겠다. " "그 말을 어떻게 믿나?그리고 그 일이 쉽게 될까?" "만일 안 돌려 준다면 전쟁이다. 한 놈도 빼놓지 않고 죽여 버릴테 다. " 이제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는 듯 켰고 끝부분이 떨렸다. 고영 무는 수화기를 든 채 머리를 돌려 밀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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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 늘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잘~~~감상~~~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