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부지도 20년 걸렸는데, 공공주택 잘되겠습니까?
조선일보 안준호 기자. 2020. 08. 10.
강남 노른자 정보사 부지 개발. 국방부·지자체 갈등 푸는데 20년. 과청청사 부지·태릉골프장 등 해당 지자체·주민들 주말집회. "일방적 난개발 즉각 철회하라"
국방부와 서울시, 서초구 간 이견으로 정보사 이전 부지 개발에만 20년이 걸렸다. 정부는 최근 '8·4 부동산 대책'에서 옛 정보사 부지 인근 서울지방조달청에 1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시장에선 조달청 택지 개발도 옛 정보사 부지 개발만큼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초동 정보사령부 부지 개발도 20년 넘게 표류했는데, 바로 옆인 서울지방조달청 부지에 1000가구 공공주택을 짓겠다니 말처럼 쉽게 되겠습니까." 10일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가 23번째 부동산 대책인 '8·4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지방조달청 이전부지에 1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에서 서울지방조달청 이전 부지와 국립외교원 유휴 부지,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유휴 부지 등 신규 택지를 발굴해 3만3000가구 규모의 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택지 개발 사업에 착수해 청약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어 주택 공급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 정보사 이전 부지 개발에 20년 걸려
정부가 이번에 공공주택 1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서울지방조달청 부지는 서울 강남권 핵심 입지다. 지하철 2호선 서초역, 3호선·7호선 고속터미널역과 가깝고 주변에 대검찰청·대법원·국립중앙도서관 등 공공 기관과 고급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해 있을 뿐 아니라 54만㎡의 서리풀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정부는 이곳에 공공주택을 건설해 강남 주택 수요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규모 공공주택 건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조달청 인근 정보사 부지 개발도 국방부와 서울시, 서초구 간 접점을 찾는 데 20여 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9만1597㎡에 달하는 정보사 부지 이전은 20년 전 고건 전 서울시장 시절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고 전 시장과 국방부는 2002년부터 정보사를 이전하고,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 대금으로 부대 이전 비용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이명박 신임 서울시장은 "정보사 부지는 개발될 경우, 교통 혼잡과 주거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어 녹지로 조성하겠다"며 기존 계획을 뒤집었다. 서울시와 국방부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18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이전에 합의했고, 정보사는 2015년 12월 이전을 마쳤다. 정보사 부지는 2013년부터 공개경쟁 입찰에 부쳐졌지만, 8번이나 유찰됐다. 서리풀공원에 둘러싸여 있고, 대법원 등 법조타운과 가까워 개발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사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서울시와 국방부·서초구는 이견을 좀체 좁히지 못했다. 그러다 정보사 부지를 관통하는 서리풀터널이 지난해 개통, 주변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부동산 개발업체인 엠디엠그룹에 1조956억원에 낙찰됐다. 엠디엠은 이곳에 서리풀공원과 연계한 친환경 업무복합단지를 세울 계획이다.
정부의 이번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해 서초구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정보사 부지 아파트 건설을 반대해 왔던 서초구가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민 박모(37)씨는 "조달청 주변은 평소에도 교통 체증이 심한데 이곳에 1000가구 규모의 주택을 짓는다니 교통난 해소책은 마련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 정부과천청사, 내년에 사전 청약? 주민들 대규모 집회
공공주택 공급 대상에 포함된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도 변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과천청사 유휴 부지를 활용한 4000가구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 대해 김종천 과천시장은 5일 정부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과천청사 앞마당에 천막 시장실을 설치했다.
김 시장은 "정부 계획은 서울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주택 공급 수단으로, 대리모(代理母)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천시민 3000여 명은 8일 집회를 열고 "일방적 난개발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노원구민들도 9일 오후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태릉 그린벨트 훼손 결사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정부 관계자는 "8·4 대책에서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은 준비되는 곳부터 최대한 빨리 진행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택지 개발과 동시에 청약을 받고, 사전 청약도 최대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과 이견 조율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곳부터 빠른 속도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태릉골프장과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조달청, 국립외교원 부지 등은 모두 정부 소유 부지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공공주택 건립을 막을 방법은 마땅히 없는 형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자체와 주민 등 이해 당사자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주민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며 "결국 면밀한 검토와 협의 없이 내놓은 주택 공급이 정부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