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인들과 성지순례를 8번 갔습니다. 성지순례를 갈 때마다 현장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이 좋았습니다. 가이드 목사님이 ‘실로’라는 곳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쪽이라 약간 위험하다고 합니다. 흥미가 생겨 가기로 했습니다. 힘들게 찾아서 가보았더니 아무것도 없고 돌무더기만 있었습니다. ‘실로 언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제가 미안한 마음에 사무엘상에 나오는 한나, 엘리, 실로 이야기를 해주고, 각자 흩어져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 무척 더워서 돌무더기 앞에서 기도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에게 평생 가장 기억할 만한 강력한 메시지가 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실로입니다.’ 실로는 사사시대 최초의 성소입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실 진데 실로가 오시기까지’라고 말하면서 나왔던 지명입니다. 여기서 실로는 메시야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해마다 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고 제사를 지낸 곳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이룬 곳이었지만, ‘이가봇’ 주님의 영광이 떠나가면 돌무더기 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왔습니다.
- 우리는 신앙의 직분과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면 돌무더기밖에 남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생각났습니다. 너무 가슴 아프게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 어떻게 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습니까?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상3:1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성막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사는 행해지고, 제사장은 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제사장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능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삼상 2:17)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 후에 제물을 분깃으로 받아야 하나, 제사 중에 급기야는 제사 전에 마음대로 가져갔습니다.
- 제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보이는 예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하나님에 대한 멸시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므로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타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므로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 한 마디로 홉니와 비느하스는 식욕과 성욕과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럼에도 아비인 엘리 제사장이 그것을 묵과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삼상 2:29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느냐고 하십니다. 너희 아들을 나보다 더 중시하여....’ 이렇게 영성의 날이 무너졌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겠습니까?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죄악뿐인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수 있겠습니까? 그 시대는 캄캄한 시대였습니다. 영광이 떠나가며 실로에 돌무더기만 남는 시대였습니다.
-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으면 캄캄한 암흑기입니다. 신구약 중간기(말라기~세례요한의 시기)를 암흑기라고 합니다. 침묵시대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일체 들리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엘리의 시대가 암흑의 시대입니다. 가식이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끊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음성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나타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또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죄를 이긴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를 이겼으므로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많아도 하나님의 음성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듣지 않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음성을 들을 사람을 찾아내십니다. 그래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 들을 자를 직접 찾으십니다.
- 요한복음 4: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전능자는 예배자가 아쉬운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음성 들을 자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전능자이시지만 또한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자녀가 예배를 드려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습니다.
- 당시 엘리 제사장은 죄악과 타락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객관적으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어린 아이였습니다.
6.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회개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뛰어갔습니다. 세 번째 갔을 때에, 엘리는 ‘아,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부르시는구나.’ 깨닫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엘리 제사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으시고 저 아이에게만 말하실까? 엘리 제사장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 왜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에게만 음성을 들려주실까? 그것은 엘리 제사장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주변에 간증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룩한 시기심’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음성을 들려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암흑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엘리 제사장은 마지막 경고를 그냥 흘려 보냈습니다.
7.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은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들려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려고 하십니다.
- 하나님이 음성을 주실 때는 4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① 긴급한 경고가 있을 때, ② 깊은 위로가 필요할 때 ③ 중요한 방향 제시가 있을 때, ④ 아주 중요한 소명이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은 위 4가지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 삼상 3:12에 보면 사무엘을 향한 어떤 경고나 위로, 격려, 소명이 없고, 엘리 집이 타락했고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당신의 아픈 마음을 쏟아놓으신 것입니다. 이 때 내 마음 속에 지나간 단어는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쏟아놓으신 것입니다. 출 33:11에서 보면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친구로 부르신 것입니다. 친구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정말 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하나님의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이 어려워져도 그냥 하나님 편이 되는 사람입니다.
8. 신앙의 아름다운 경지는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 찬송가 442장은 어싱 마일스가 작사 작곡했는데, 요한복음 20장을 묵상하면서 썼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예수님이 돌아가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기대도 없이 갔습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그냥 예수님이 좋은 것입니다. 이 찬송 속에는 ‘주님 나와 동행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경지는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버리고, 어린 사무엘을 친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 지속적인 죄악이 있으면 하나님은 눈동자와 같은 공동체일지라도 깨버리십니다. 그만큼 죄를 싫어하시지만, 그럴 때마다 그 아픈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동역자, 기도의 사명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9.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 다니엘기도회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부름 받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라 하십니다. 당신의 음성 들을 사람을 하나님은 안타깝게 찾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여기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자가 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 잘 모르지만 당신이 부르셨으니 내가 하겠습니다. 민족과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곡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성령님 앞에 간구하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 쿠바에서 너무 은혜를 받아 통곡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정교회에 갔는데,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너무 흘려서, 그 교회에 어떤 당면 문제가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터키의 지하교회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터키나라와 터키인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니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중보기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실로와 같이 변해가고, 엘리와 같이 타락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중보기도 사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친구’를 찾고 계십니다.
10. 결어 및 기도
- 어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엘리 제사장이 살던 시대와 같습니다. 하나님 영광이 떠났던 그 시대, ‘이가봇’입니다. 성경에 나온 가장 저주스런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에도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찾아오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나누셨습니다. 그를 친구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아픈 마음을 친구인 여러분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며칠 전, 한 권사님이 기도받기를 원하셨는데, 신문에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어떤 그리스도인 소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개종을 거부해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권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과 속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관계가 깊어지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품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신앙의 동역자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걷지 못하는 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의 심정이 느껴져야 합니다. 기도할 제목은, 이번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죄악의 장벽이 제거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분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이 저주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면 그것은 복입니다. 우리에게는 참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풍랑을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형통하고 잘되어 하나님과 멀어지면 복이 아닙니다. 이번에 기도할 제목은 하나님, 이번 다니엘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길 원합니다. 풍랑 때문에, 육체의 고통 때문에 내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길 원합니다. 현재 내가 가진 문제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