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선비를 좋아하고 그들의 지혜와 재능을 소중히 생각했던 전국시대 네 명의 공자(公子)를 통해 다양한 삶의 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나라에 맹산군이 있었다면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었습니다.
조나라는 서쪽으로 진나라, 북으로 연나라, 동쪽으로는 제나라 그리고 남쪽으로는 위나라와 초나라에 둘러싸여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조나라 평원군은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조언을 해줄 더 많은 빈객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맹상군과 같이 수천 명의 빈객을 거느리고 있던 평원군의 빈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수도인 한단(邯鄲)을 포위합니다.
조나라의 입장에서는 국가존망의 기로에 서는 큰 위협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조나라 왕은 즉시 평원군을 불러 도움을 청합니다. 조나라 왕은 진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남쪽의 초나라와 합종(합종이란 진나라의 진출을 막기 위해 나머지 나라들이 연합을 꾀하는 외교적, 군사적 동맹정책을 말합니다)을 하여 진나라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정책을 내놓습니다. 평원군은 자신의 빈객 중 문무를 겸비한 스무 명을 데리고 합종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여기서 맹상군의 다짐을 살펴보겠습니다.
“순조롭게 협상을 진행하여 맹약을 맺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나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초나라 궁궐 밑에서 피를 머금더라도 합종을 이루고 오겠습니다. 함께 갈 선비들은 다른 곳에서 구하지 않고 저의 빈객과 문하에서 뽑아도 충분합니다.”
초나라와의 협상에 대한 자신감과 그 협상을 넉넉히 이끌어 낼 자신의 인재들에 대한 신뢰감이 넘쳐나는 말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사마천은 이로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평원군은 열아홉 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은 뽑을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우지 못하였다.”
수천 명의 빈객과 문하들이 평원군 주변에 있었지만 그가 조나라 왕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던 ‘용맹하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인재 스무 명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때 모수(毛遂)라는 빈객이 평원군 앞에 나서며 말합니다.
“지금 당신께서 초나라와 합종을 위해 인재를 구하고 있으나 한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그 일행에 참여시켜 주십시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생소한 빈객이 스스로를 추천함에 당황한 평원군이 묻습니다.
“선생은 나의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가 되었소?”
모수는 “삼 년 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평원군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표합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을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방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나의 빈객으로 삼년을 지내고 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 역시 선생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소. 이는 선생에게 뚜렷한 재능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소? 선생은 갈 수 없으니 남아있도록 하시오.”
그 유명한 ‘낭중지추(囊中之錐)’ 혹은 ‘낭중지침(囊中之針)’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무안함을 무릅쓰고도 모수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조금만 더 일직 저를 주머니에 넣었다면 그 끝만이 아니라 자루까지 밖으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이즘되면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초나라와의 합종의 대열에 그를 포함시킵니다. 하지만 함께한 나머지 열아홉 명은 모수를 업신여겨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원군과 모수의 만남을 통해 평원군의 빈객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수천 명의 빈객을 과시했고, 그들이 모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천 명의 빈객 중 ‘문무를 겸비한 인재’,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낼 현명한 선비가 최소한 스무 명쯤을 될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인재를 구하는 과정에서 선발의 중요한 조건을 ‘평판’과 ‘소문’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송곳이나 바늘같이 끝이 날카로운 물건을 담으면 그 끝이 드러나는 이치처럼 현명한 선비나 유능한 인물은 바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평원군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자신감을 갖고 확신했던 주머니의 물건들에는 평판이나 소문에 의존한 끝이 뭉뚝한 물건들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칭찬 적도, 나도 당신에 대해들은 적도 없소!”
사마천은 소문과 평판이 인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평원군의 사절단에 모수가 합류하는 과정을 보면서 오늘날과 같이 소문과 근거 없는 평판이 난무하는 시기에는 인재를 알아보고 선발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평판이나 소문은 이미 재 가공된 정보이고 그 평판과 소문의 이면에는 그 평판과 소문을 내는 근원이 본인이던 제삼자든 어떤 의도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장되거나 왜곡되거나, 포장된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평원군은 수천 명의 빈객을 모아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들과의 개인적인 관계, 그들을 직접 살피고 관찰하는 과정을 생략합니다. 당연히 소문과 평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인재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에게 모수와 같이 스스로를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추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마천이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는 자신과 함께하는 인재들을 대함에 있어 직접 경험하고 교류하고, 관찰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송곳을 알아볼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찔려서 피가 나더라도 그 송곳을 최소한 만져보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주변에 수천 명의 빈객 중 겨우 이십 명을 선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평판이나 소문만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주머니에 그 끝을 보이는 송곳이 없다면 먼저 우리의 대인관계에서 무엇이 근거가 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