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 걷기 밀포드트레킹(5)
오클란드 … 이곳도 사람 사는 도시인데 이럴 수가
여기는 남의 나라라 동서남북을 잘 헤아릴 수 없다. 등산을 오랫동안 해 방향감각에 자신이 있다고 여겼는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이 안내를 하니 비로소 귀가 뚫리고 세상이 열린다. 뉴질랜드 제일의 도시 오클랜드에서 우리가 머물 시간은 20시간 안팎. 어쨌든 이곳 시각으로 저녁9시30분까지 입국수속을 해야 한다.
안내원은 우리를 영화 ‘피아노’의 촬영현장인 바닷가 모래밭으로 모신단다. 인생에 두 번 오기 힘든 오클랜드의 오늘 날씨는 흐림과 비. 2시간 쯤 버스를 타고 갔을까 이제는 시간개념까지 흐릿하다. 우리가 내려 언덕 같은 곳을 넘어가니 거대한 모래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무리와이 해변. 이 해변은 해가 쏟아지면 바다와 백사장에 싱그러운 초여름이 출렁이지만 오늘처럼 궂은 날씨는 ‘피아노’의 어둡고 음산한 영화 포스터를 빼 닮았다. 아니 영국 영화 ‘히스크리프’의 음험한 장면과도 흡사하다.
바람이 바다를 할퀴다 못해 백사장에서 난동을 부린다. 사람까지 바로 걸으면 정강이나 앞가슴을 쳐 게걸음을 걷게 한다. 모자는 끈이 없으면 날아간다. 지금 거친 이 바다는 남태평양이고 바다 건너편은 오스트레일리이와 이어진단다. 파고 1-2m 이상의 파도가 계속해 밀려온다. 하지만 내가 북쪽이라는 방향은 남이고 동은 서쪽이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피아노’는 뉴질랜드 출신 여류감독 제인 캠피언이 1993년에 만들어 그해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다음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 여성이 가지고 온 해변에 버려진 피아노. 이 피아노를 매개로 한 여인과 두남자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하지만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닌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폭력, 문명과 문화가 동반하는 자기도취의 남성 중심사상, 뉴질랜드 원주민의 순박한 사랑과 자유를 향한 각성을 심도 있고 치밀하게 그려 당시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백사장을 갈지자로 걷는데 살아있는 이상한 물체가 작은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다. 건드렸더니 고개를 홱 쳐들어 입을 쩍 벌린다. 가마우지다. 가마우지는 몸을 털고 일어났다가 귀찮은 듯 조금 전 그 모습 그대로 몸을 웅크린다. 새의 바람퇴치법이 신기하고 정교하다.
변산반도의 채석강보다 더 층층인데다 날카로움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바위 밑을 지난다. 그러자 그 앞의 작은 섬에는 가마우지가 가득 덮었다. 가마우지는 민물가마우지, 바다가마우지, 쇠가마우지로 세 종류가 있는데 여기 새는 바다가마우지인데 철새다. 바다가마우지를 그냥 가마우지라고 부른다. 해안 절벽에 한 마리가 4-5개의 알을 낳는데 우리나라 등 동북아에서 겨울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간다. 여기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가마우지 중에는 을숙도에서, 주남저수지에서 날아온 놈도 있을 것이다. 돌출한 바위와 바위섬을 온통 가마우지가 덮었다. 마치 검은 돌로만 두어놓은 바둑판같다.
‘피아노’에서는 여성이 핍박 받지만 지금 이 나라는 여성의 나라다. 여성 수상이 3연임을 했고 대법원장과 수도 웰링턴 시장도 여성이다. 이 나라는 첫 번째로 장애자, 두 번째는 어린이, 세번째 노약자, 네번째 여성 순으로 보호에 앞장선다. 도로를 보면 어디든 장애자들이 쉽게 통행 할 수 있도록 배려 했다.
오클랜드가 자랑하는 하버브릿지를 버스로 건넌다.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다리가 많아 크게 부럽지는 않지만 이 다리는 역사성으로 관광명소가 됐단다. 뉴질랜드는 면적 28만㎢인데 인구는 450만명 안팎(정확한 통계를 찾지 못함)이다. 오클랜드는 인구 130만명으로 남태평양 최대도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5위안에 들어간다.
오클랜드 백사장에 나갔다. 거짓말처럼 햇살이 쏟아진다. 우리나라의 5월 기후다. 모래밭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고 가끔 해수욕도 한다. 우리가 도로가 의자에 앉아있는 바로 건너편 도로변에서 아가씨 2명이 춤추고 노래한다. 이중 한명은 비키니 차림이다.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흥겨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 여성 옆에는 그녀들이 입고 온 바지를 펼쳐놓고 구경하거나 지난 가는 사람들로부터 동전을 받는 것이다. 구걸이 아닌 노래와 춤값인 셈이다.
세계에서 스웨덴 다음가는 두 번째 복지국가 뉴질랜드. 이 나라는 아기를 낳으면 출산수당 2500달러를 주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한 아이에 주당 300달러를 지급한다. 대학생은 학자금이나 생활비를 무이자로 융자신청을 하고 이 돈은 취업 한 뒤에 갚는다. 지금 막 독립한 성인이나 대학생은 주에 300-400달러의 수당을 받는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을 때까지 부양가족 숫자에 따라 수당을 지급한다.
이혼하면 재산의 80%가 여성 몫. 65세 이상 노인도 노령수당을 받는다. 대신 이 나라에서는 수입의 최대41%까지 세금을 걷고 그 대신 노령수당 지급때 세금을 많이 낸 이에게는 많은 연금을 준다. 보통 노인의 경우 노인수당과 연금으로 의식주는 말 할 것도 없고 아껴쓰면 노인부부가 3년에 한번쯤 해외여행도 가능하단다. (여기 달러는 뉴질랜드달러임)
아기 3명만 낳으면 부모가 직업이 없어도 아기 수당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이 나라. 이렇게 보장이 잘 된 나라에서 옷을 길바닥에 펴 놓고 노래와 춤을 추면서 돈을 받는 저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외국에서 온 여행객을 아닐 것 같은데. 두 여인은 미소 띤채 노래하고 잠시 둘이서 포옹하고 춤도 춘다. 참 세상은 모를 일이 너무 많다.
해발 211m의 에덴동산 전망대에 올랐다. 오클랜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 신기하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집들은 온통 나무속에, 정원 속에 보물찾기 하듯 주택들이 감춰져 있다. 용두산 공원의 전망탑 보다 더 높아 보이는 멋있게 솟아오른 전망탑을 중심으로 고층건물이 보이지만 이는 전체 도시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똑 같아 보이는 주택지도 서울의 강남구 서초구 강북처럼 격차가 있단다. 주택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마치 서양 도시 풍경화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쩔 수 없는 가 이곳 주택지도 격차가 있다니. 오클랜드 절반은 바닷가다.
우리가 있는 에덴동산은 분화구란다. 아니라 다를까 우리 옆에는 운동장7-8개 넓이가 움푹 파져있다. 아래편에 물은 없지만 풀이 덮었다. 뉴질랜드는 두 개의 섬이 형제처럼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두 개 섬의 태생은 원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남섬은 남극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으로 빙하의 침식에 의해 형성됐고 피요르드 해안선을 가진다. 북섬은 화산이 치솟아 만든 화산섬. 그래서 남섬 보다 산들이 유순하지만 화산을 토하는 산도 있다. 두섬은 이복형제가 아닌 아주 남남인 섬인 이렇게 가까이 마주보고 있다.
로트투아라는 북섬에 있는 도시는 거리 어디서나 삶은 달걀 냄새 같은 유황냄새가 나고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지하 수맥 찾기가 어렵고 하수도에는 온천수가 흐른다. 도시 자체가 용암위해 얹혀 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북섬은 화산섬이다. 로트투아를 꼭 보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시간이 없는 게 최대난관.
이 나라 국민은 법을 아주 잘 지킨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는 넓고 자원은 풍부하고 인구는 적으니 뭐 하나 다툴게 없다. 서둘지 않아도 만사해결이 가능하고 실직을 하면 국가서 뒷바라지를 다해 주는 나라.
이 나라의 파출소 근무 경찰은 토요일과 일요일 휴무한다. 만약의 사태는 경찰서가 맡아서 처리한다. 무엇을 가지고 시비할 것이며 무엇을 가지고 어깨 쌈을 벌일 것인가. 이들은 천천히 여유 있게 행동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다. 아니 자기가 원하는 게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인인 나에게 이 나라는 참 부럽지만 사람 사는 치열함이 없다. 신호등이 거의 없는 나라, 있어도 무심한 듯 기다렸다가 천천히 건너는 사람들. 너무 조용해 싫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으며 욕심 없이 사는 이 나라는 재미없는 천국인가. 눈 부라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도로를 달리듯 걷고 삶의 현장에서 전쟁 같은 경쟁을 치르는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인가.
오후에 들린 공원에는 ‘영원히 기억하리’ 한글로 된 한국 참전비가 있다. 그 옆 기기묘묘하게 생긴 나무 아래에서 결혼식이 열린다. 야외 결혼식인데 신부가 일본인이다. 참여 인원은 40-50명 선. 복잡한 결혼식만 봐온 우리들에겐 이건 소꿉장난이다.
뉴질랜드 곳곳에는 일본 냄새가 진하게 난다. 이 나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관광을 많이 왔다 갔는지 모든 설명서에도 일본어는 거의 들어있다. 일본 제품 선전도 많고 도요다 혼다자동차도 자주 보인다. 현대차는 가문에 콩나듯이다.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라 이 나라와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깊게 구축한 것 같다. 현재 우리 교민은 2만4천명(어느 통계는 4만명)이고 이민자 중 가장 잘 사는 성공한 민족이란다.
이곳의 공원은 잔디가 대단하다. 그러나 어느 곳도 돈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료다. 볼거리 한 두 개만 있어도 입장료를 받는 우리나라와 너무 다르다. 뉴질랜드 여행도 이제 접어야 할 때다. 어느덧 저녁이 된다. 저녁 식사는 하고나면 공항으로 가서 출국수속을 한 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야한다.
북쪽이 따뜻한 나라, 여름에 크리스마스가 있는 나라. 토끼도 사자도 산돼지도 뱀도 잉어도 피라미도 없는 나라, 아파트가 거의 없는 나라, 햇볕이 쏟아지면 햇볕을 듬뿍받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 사람들. 이 나라를 이제 떠난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러나 너무 다르다. 그래 가자. 허겁지겁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야 직성이 풀리지 않는가. 그게 한국인의 삶의 비결 아닌가.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천천히 걷는 방법도 가르쳐야 겠다.
뉴질랜드여 안녕.
※이글은 2010년 1월15일부터 24일까지 9박10일간 부산 산꾼 22명이 참가한 밀포드 트레킹 및 뉴질랜드를 여행을 바탕삼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