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사학은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도(裕仁)의 무조건 항복선언과 함께 관 속에 들어갈 운명이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의 자살과 함께 나치 역사관이 종언을 고한 것과 같은 운명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치 붕괴 이후 나치 역사관은 유럽에서 종언을 고했으나 일제 황국사관(皇國史觀)은 일제 패망 후에도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제 패전 후 일본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반성의 기운이 일었다. 일본의 역사학이 제국주의 침략의 이론으로 악용되었다는 반성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성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두 역사학자가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였다.
패전 후 천황제를 옹호한 쓰다 소키치
쓰다 소키치는 원래 『일본서기』에 나오는 초대 신무(神武)부터 14대 중애(仲哀)까지는 신화상의 인물, 즉 존재하지 않았던 일왕들이고 15대 응신(應神)부터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했었다.
메이지 헌법에 일 왕가는 신성불가침이라고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국사관론자들은 쓰다 소키치를 공격했고, 일본 정부는 쓰다 소키치가 쓴 4권의 저서를 출간금지시켰다. 이 사건으로 쓰다는 1940년 와세다대를 사직할 수밖에 없었고, 같은 해 ‘황실의 존엄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쓰다 소키치가 마치 황국사관을 부정하는 학자인 것처럼 인식되어 그의 성가(聲價)를 높였다. 그러나 쓰다는 1946년 논문에서 “천황제는 시세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며, 민주주의와 천황제의 모순은 없다”라고 주장해서 스스로 황국사관론자임을 천명했다.
쓰다는 『일본서기』의 초대부터 14대까지 허구의 인물인 것처럼 『삼국사기』도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이 건국했고, 신라는 19대 눌지왕, 고구려는 6대 태조왕이 건국했다고 주장했다.『일본서기』가 가짜니 『삼국사기』도 가짜라는 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