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기술
‘사과’에 대한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의 ‘미안하다는 말은 가장 힘든 말인 것 같아(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일 것입니다. 그러나 “미안해”는 다양한 사과의 표현 중에서 어쩌면 가장 하기 쉬운 표현일지 모릅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006년 9월 한 주말판에서 엘튼 존의 노래 제목을 비틀어 ‘미안하다는 말은 더는 가장 어려운 말이 아니다(Sorry is no longer the hardest word)’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당시 정치인들이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고 잇따라 사과한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미안해’보다 더 어려운 사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사과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까? 심리학자와 언어학자는 전세계에서 쓰이는 사과표현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사과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이면서 흥미로운 연구는 ‘문화 간 화행실현 프로젝트(CCSARP, Cross-Cultural Speech Acts Realization Project)입니다.
이 연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과의 표현패턴을 찾는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참가한 연구자들은 나라마다 공통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사과표현군(Apology Speech Act Set)’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심리학자인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 역시 2006년에 발표한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들(The Five Languages of Apology)’이란 책에서 사과를 위한 다섯 가지 표현을 제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연구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의 사과 패턴 중 네 가지는 서로 일치하지만, 결과적으로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과할 때 ‘미안해’ 혹은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유감(Regret)의 표현이지 완전한 사과는 아닙니다.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미안해’라는 말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가령 ‘미안해, 하지만 네가 약속을 너무 촉박하게 잡았잖아’라는 표현은 사과라기보다 비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사과의 앞뒤에 변명은 되도록 붙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냥 ‘미안해’라고 하기보다 “내가 약속을 잊고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구체적인 사과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라는 표현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으로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셋째, 유감 표현을 넘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때는 ‘내가 잘못했어(혹은 실수했어)’라고 명확히 표현합니다. 사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말한 바로는 사과가 제 기능을 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발생한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종종 사과한 사람은 했다고 하는데 받은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때 보통 사과에 책임 인정이 포함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감 표명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하는가의 문제는 사과의 진정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넷째,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의 의지나 보상을 표현하는 것은 ‘미안해’만큼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당신의) 화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라고 말하거나, 회사일로 가족들과 시간을 못 보낸 아버지가 가족에게 ‘미안해.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은 꼭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할께’라고 계획을 약속하는 경우는 ‘미안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과는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 함께 미래 개선에 대한 의지표명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상이나 개선의 뜻을 사과와 함께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섯째, 사과할 때 재발방지를 약속합니다. 기업이 사과문을 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이런 표현이 오히려 책임감 없는 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나를 용서해 주겠니?’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는 가장 어려운 사과 표현이며 특히 자존심 강한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사과할 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용서를 청함으로써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상대방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잘못을 저지른 실패한 인간’으로 낙인 찍는 듯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차마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려가 모두 잘 알듯이 용서를 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용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과 표현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단순한 유감의 표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유감 표명은 사과의 시작일지는 몰라도 완성은 아닙니다. 적어도 사과의 첫째, 둘째 표현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네 가지 표현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선택해야 더욱 완성된 사과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위의 연구결과는 기본적인 대인관계에서 사과 표현입니다. 물론 대중에게도 모든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을 대변하는 입장이라면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사과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섣부르게 보상책을 제시했다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과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사과를 너무 늦게 하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 됩니다. 책임인정이나 보상책 제시는 나중에 하더라도 기본적인 유감 표시까지 늦추다간 낭패를 보는 일이 생깁니다. 때로는 사과를 두 번에 나눠서 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사과를 어떻게 표현하든 상대방에게 진실함이 도달하지 않는다면 아무 효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과의 말을 하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사과할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과의 용기는 위대합니다. 세계대전 당시의 행위를 반성하고 사과한 독일과 그렇지 않은 일본의 전후 평가가 갈라지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