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늦은 점심을 먹고난 지혜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인도신화에 관한 서적을 읽고 있는 지혜의 뒷편에서 가냘픈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앙~"
"그래그래. 어차피 할일도 별로 없으니 밖으로 산책이나 나가자."
지혜가 책을 덮고 일어서자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지혜의 곁으로 다가와 맴돌았다. 새하얀 털을 가진 '터키쉬 앙고라'라는 종의 이 고양이는 지혜의 17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오빠와는 달리 지혜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특히 고양이를 좋아했는데, 오빠와 살면서 눈치가 보여 고양이를 기를 수 없던 지혜에게 오빠는 자신이 유학가기전 생일에 평소 지혜가 눈여겨 보던 새끼 고양이를 선물로 주었던 것이었다.
"음.. 하양아~ 끈 매야지.. 답답하더라도 조금 참으렴.. 알았지?"
지혜는 '하양이'라고 불리는 고양이에게 어깨와 배, 그리고 목이 이어진 산책용 끈을 고정시켰다. 고양이의 이름은 눈처럼 새하얗다는 뜻의 '스노우 화이트'였지만 편의상 '하양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하양이'는 눈속에 들어가 있으면 분같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눈부시고 새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다.
"음.. 비닐봉지랑.. 아, 하양이 간식하고 내 간식도 조금 챙겨 갈까? 책도 가져가 읽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냐옹~냐옹~."
가방속에 책과 함께 하양이의 간식을 챙겨넣자 하양이는 그것을 보고 지혜에게 다가와 두발로 서서 앞발로는 지혜의 무릎께를 두드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을 본 지혜는 웃으며 가방에 넣은 간식을 꺼내 고양이용 과자를 하나 꺼내주었고, 하양이는 재빠르게 그것을 입에 넣고 행복한듯 목에서 골골대는 소리를 냈다.
"자~ 산책가자~."
"냐아앙~"
지혜는 끈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따라오긴 하지만 말이다. 워낙에 집에 지혜와 하양이 둘만 있다보니 하양이는 지혜에게 굉장히 어리광을 부렸고, 모든 애교와 애정을 지혜에게만 보여주었다.
지혜는 가볍게 모자를 눌러 썼다. 햇볕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이 귀찮을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차피 뛸것도 아니였고, 발목 조금 위까지 내려오는 긴 청치마는 조금 타이트했지만, 뒤에 길다란 뒷트임이 있어 설마 뛰게 된다 하더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이었다. 하얀 니트는 조금 두꺼웠기에 저녁이지만 별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았다. 지혜는 현관으로 나서 운동화의 끈을 묶었다. 그리고 열쇠를 집어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냐옹~"
아무도 없는 집.. 지혜는 신발장 위에 놓여진 액자 속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액자 속 사진은 지혜가 초등학교때 찍은 사진으로 10살때 온가족이 모여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의젓하게 서있는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새하얀 투피스정장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어머니.. 지혜는 그런 어머니 앞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지금은 치마와 바지를 번갈아가며 입지만 어렸을때만 해도 지혜는 치마입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불편하다며 싫어한 것도 있지만 항상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 사이에 껴서 놀았기때문이기도 했다. 사진속에서는 하얀 원피스와 함께 긴생머리를 풀어놓았지만, 평소에는 항상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가볍게 묶어올린 포니테일 스타일의 머리를 했었다. 지금도 가끔 포니테일식으로 묶어올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체육시간, 또는 샤워를 할때 뿐.. 지금은 어렸을때와는 상당히 달라져있었다.
[덜커덕--찰칵-]
"음.. 일단 산책이 먼저겠지? 내천쪽으로 가자!"
"냐옹!"
지혜의 집은 내천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환경이 좋지 않았으나, 지혜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금은 제법 맑은 물이 흐르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철조망을 거두고 가볍게 울타리를 친후 길다란 내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맞은 편에는 쉴 수 있게 벤치를 놓아 더운 여름밤에는 내천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저녁때쯤이면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꽤 생겨났고, 지혜도 그중 한명이었다.
"냐아아~"
"하양아, 기분 좋니?"
꼬리를 살랑거리며 걷는 하양이.. 지혜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지엇다. 터키쉬 앙고라종의 고양이는 털이 무척이나 곱고 아름답다. 특히 꼬리를 살짝 앞으로 모으고 앉아 있는 하양이의 모습은 마치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듯한 우아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양이의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오드아이였다. 보통은 페르시안종에게나 많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지혜는 그렇다고 해서 하양이를 외면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라 생각하며 더욱 이뻐해주었다.
"음.. 상당히 많이 걸은 것 같은데.. 하양아, 조금만 쉬었다 가자.."
"미냥?"
"자아~ 벤치에서 조금만 쉬는거야. 너무 많이 걸어도 나중에 지쳐버리잖니.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도 생각해야지. 음..아, 저쪽 벤치가 비어있다."
지혜는 비어있는 벤치로 하양이를 안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하양이의 목끈을 벤치의 나무판자 사이에 묶어놓고 가방에서 간식과 스크래치용 장난감을 꺼내주었다. 하양이는 어느새 간식과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산책중이였던 것도 잊어버린듯 했다.
"왠지.. 아깝네.."
지혜는 가방에서 꺼내든 책을 다시 덮고 옆쪽에 내려놓았다. 왠지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밖에 나와서까지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왠지 아깝다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아까운지는 지혜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혜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자전거 도로위를 뛰며.. 혹은 걷거나 자건거를 타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롤러브레이드를 탄 어린아이부터 츄리닝을 입고 천천히 달리는 4~50대 아줌마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지혜의 눈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달리는건.. 싫은 걸.."
어렸을때부터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였던 지혜는 오빠들과 놀때도 항상 뒷쳐지기 일수 였다. 또래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심하게 체력이 딸린것은 아니였지만, 체육대회등을 하면 항상 달리기 종목에서는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는 했다. 체육대회날은 지혜에게 있어 좋지 않은 추억이 가득 한 날이었다. 가끔 구기대회때 피구를 하게되면 지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피하기만 하고 공격을 잘 하지 못하는 지혜는 체력이 다하면 쉽게 공에 맞아 쓰러져버리곤 했다.
"그에 비해 오빠는...."
지혜와 나이차이가 5살이나 차이나는 지혜의 오빠(지민)은 지혜와는 정 반대의 성격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얗고 조금은 마른 체격의 지혜에 비해 약간 까무잡잡하고 튼튼한 체격을 가졌으며, 항상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지혜와는 달리 포커페이스의 얼굴을 자랑했다. 두 사람의 성격도 거의 반대였다. 얼굴위의 부드러운 미소 뒤에 차가운 마음이 감추어져 있는 지혜와는 반대로 지민은 무표정한 얼굴과 행동속에 따스한 정이 가득 담겨져 있었으며, 직관적인 지혜와는 달리 지민은 철저한 계산주의자였다. 그외에도 동물을 대하는 태도나 감정도 마찬가지로 둘은 정 반대였다.
"하지만. 나에겐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오빠인걸.."
말그대로 지혜에게 있어 지민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지혜가 12살, 지민이 17살이 됬을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을 두 남매에게 맡기고 해외연구를 위해 떠나버렸고, 아직 초등학생인 지혜를 다독거리며 또는 혼내기도 하며 부모님의 역할을 도맡아 해준것은 바로 지민이었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때문에 혼자 몸을 추스리기도 힘들었을텐데, 지민은 지치지도 않고 지혜의 뒷치닥거리를 다 해주며 곱게, 그리고 소중하게 키워 온 것이었다.
"지금쯤 그곳은 아침일까나.. 밥은 잘 챙겨 먹고 있겠지..?"
몇달전 지혜의 생일이 지나고 지민은 영국행을 결심했다. 경영학 공부를 마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군대를 갔다온 뒤 대학에는 아직 복학 신청을 하지 않았고, 겸사겸사 휴학을 한김에 1년정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지막 공항에서조차 지민은 지혜의 걱정을 했다. 남이 보면 무표정하다고 할만한 얼굴이었지만, 몇십년을 같이 살아온 지혜인 만큼 그 누구보다도 세세한 표정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지민의 모습을 말그대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채 온통 지혜의 걱정뿐이었다.
"그래도.. 잘만 가더라..뭐.. 그래도 편지는 가끔 오니까.."
지민은 2주에 한번씩 꼬박꼬박 편지를 써보냈다. 편지에는 지민의 생활도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지혜를 걱정하는 글들과 보고싶다는 말들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전화를 해 지혜의 건강상태를 확인했고, 편지에는 자신의 사진을 넣어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투의 글을 써보냈다.
"바보..괜찮긴 뭐가 괜찮아? 억지미소 짓는거 다 보이는데..치잇.."
지혜는 괜시리 화가나 발밑의 작은 돌맹이를 걷어찼다. 돌맹이는 데구르르 굴러가 내천에 '퐁당'하는 소리를 내며 작은 동심원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돌맹이에 화풀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져 지혜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한숨을 한번 내쉴때마다 복이 조금씩 달아난데요. 뭐가 그렇게 고민이에요? 꼬마아가씨?"
16. 첫만남
".....?"
"내 얼굴이 그렇게 잘생겼어요? 얼굴 닳겠어요. 뭘 그렇게 보는거에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혜는 깜박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붉을 노을을 자아내며 지고 있는 햇빛을 가로막은 그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키는 180을 넘는듯 큰 키였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에 피부가 약간 하얀편이었다. 앞머리는 눈을 살짝 덮을 정도로 길었으며, 옆쪽이나 뒷쪽도 보통의 남자들의 컷트길이보다 조금 더 긴편이었다. 염색을 한듯 머리는 레몬빛이었고, 귀에도 붉은빛의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외모를 궂이 말하자면 잘생긴 편에 속하는 얼굴이긴 했지만, 카리스마 있는 얼굴은 아니였고 오히려 부드럽다.. 라는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지혜가 꽤나 싫어하는 기.생.오.래.비. 타입이었다.
"저기.. 누구시죠?? 죄송하지만 전 댁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
지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자신의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지민의 친구일 경우도 생각해보았지만 지민의 친구들을 거의 군대에 가있거나했고,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지혜에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말을 걸으면 걸었지, 이런식의 호칭(꼬마아가씨)따위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이름은 이재원. 나이는 23살. 직업은 교사! 아아,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지 말라고. 난 대학 졸업후 검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이근처에 몇일 전 이사왔고, 동네구경도 할겸 산책하던 중이었어. 또 궁금한거 있어?"
방긋 웃으며 말하는 재원의 말에 지혜는 할말을 잃었다. 지혜는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이냐는 뜻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재원은 엉뚱하게도 자기소개를 해버린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지혜는 재원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됬고 지혜의 얼굴에는 곧장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저와 무슨 관계가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관계가 없다면 저에게 말거는 것은 조금 자제해주시지 않겠어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듣는거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관계? 그냥 같이 산책을 즐기고 있던 사람중에 하나라면 안될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대화하고 있잖아. 넌 나에대해서 아니까 이제 내가 너에대해 알기만 하면 우린 아는 사이가 되는거라구. 어때? 내말이 틀렸어?"
"....!"
재원의 뻔뻔스러움에 지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보통 항상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는 지혜의 모습에 남자들이 수작을 걸어오긴 했지만 보통은 지민이 다 알아서 해결해주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지혜의 차가운 말과 얼굴에 스스로 떨어져나간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지혜로써도 처음 겪어보는 경우였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남자들은 짜증을 내거나 욕설을 내뱉으며 지나쳐버리는데 재원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말을 하나하나 대답해주며 자신의 앞에 서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이었다.
"어때? 자기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난 나쁜 사람은 아니라구~ 설마 그렇게 보인다면 음음.. 실망이야~. 그건 그렇고 이름이 뭐야? 음.. 나이는 나보다 어린 것 같긴 한데.. 학생일까나? 그리고 이 고양이 니...%&%&"
"백.지.혜."
지혜는 한없이 이어질것 같은 남자의 말을 싹둑 자르듯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듯이 짧게 끊어 발음했다. 그제서야 말을 멈추고 지혜를 바라보는 재원..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재원은 갑자기 지혜와 고양이 옆에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벤치에 앉은 지혜와 재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재원은 분위기를 인식한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지혜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지혜는 나이가 몇살이야? 나하고 크게 차이나보이진 않는데.. 머리가 긴걸보면 대학생일것 같기도 하고.. 화장안한걸 보니 직장다니는 것 같진 않네..?"
"18살. 고2에요. 신화여고다니니까 머리 기를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학교 사립인데다가 미션스쿨이었으니까. 아, 이 고양이 네 펫트? 터키쉬 앙고라였던가.. 털이 참 예쁘네? 새하얀게 꼭 눈송이 같다. 눈도 초록색과 빨간색..특이하게도 오드아이고.. 주인을 닮았는지 미스고양이감인데? 하핫..."
'어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거지..?'
지혜는 재원의 말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뱅뱅돌리긴 했지만 결국 지혜에 대한 칭찬이 아닌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 한순간 부드럽게 대해줄까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해질 노릇이었다. 지혜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하양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간식을 다 먹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지쳤는지 반쯤 졸고 있었다.
'기회다!'
"죄송하지만. 전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것 같네요. 하양이가 피곤해보여서요. 봄이긴 하지만 저녁때는 쌀쌀하니까 하양이가 감기에 걸려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산책 잘 하시구요.. 그럼 이만.."
누가보기에도 타당한 이유라 생각되는 말과 함께 지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하양이를 조용히 들어올렸다. 하양이는 사람의 손길에 깜짝 놀란듯 했지만, 그것이 지혜라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다시 눈을 감았다. 목에서 골골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지혜의 얼굴에는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 같이 가자. 나도 이젠 슬슬 산책을 끝내려고 했거든. 어디쯤 살아? 난 화영아파트 앞쪽에 있는 주택에 살아."
"...저도요."
못마땅한 얼굴로 지혜가 대꾸했다. 다른 방향이라면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화영아파트 앞쪽의 주택단지라면 자신의 집도 포함되어 있는 곳이었다. 몇일 전 학교 가는길에 이삿짐센터의 차량을 봤는데 그때가 재원이 이곳으로 이사온 날인것이었다. 같은 방향이라는데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지혜는 최대한 재원을 무시하려 다짐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재원이라는 남자는 커다란 키만큼 다리도 긴지 아무런 내색없이 지혜의 걸음에 맞춰 걷고 있는 것이었다.
첫댓글 흐ㅁ, 정말 착하네^^ 루페의 정성이 팍팍 들어간 리플도 리플이지만 덕분에 다른 분들도 자극받아(?) 많은 리플을 쏟아내고 있어서 매우 기뻐^^ 흠... 올라올 때마다 내가 누구보다 먼저 꼬박꼬박 읽고 있다고^^
음~ 새해에는 부지런해지기로 결심한건가? 작년에는 못뵙던 모습인것 같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