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친화회에서 개최한 체육연수에 남이섬을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춘천을 지나 가평에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도 안되는 남이섬에 도착했습니다. 남선생님들과 동동주 잔을 기울이고 잣나무길, 단풍나뭇길, 측백나무와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걸었습니다. 책 축제장을 지나고 몽골식 천막집과 원시인들이 살았음직한 움막을 보았습니다만, 입구에 있는 남이장군의 묘소와 역적으로 몰려 죽기 직전 그가 지었던 호탕한 시에 감명받아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남이 장군의 억울한 죽음
남이 장군은 세조 재위 시절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야인을 정벌한 공로를 인정받아 27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까지 오른 당대의 호걸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이 장군의 곁에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유자광이었습니다.
유자광은 남이 장군과 함께 북방의 야인들을 정벌하여 공을 세웠으나 남이 장군이 병조판서에 오를 때 그는 고작 병조참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유자광이 서자(첩의 아들)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공이 남이 장군의 공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자광은 이 일을 늘 마음에 두고 남이 장군을 시기하며 모해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이 장군이 대궐에서 숙직을 하다가 바람도 쏘일 겸 대궐 마당에 나갔는데 밤하늘에 갑자기 혜성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혜성을 본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징조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수군거렸지만 남이 장군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허허! 혜성이 나타난 것을 어찌 불길한 징조로만 생각하는 것이오! 내가 보기엔 저 혜성이야말로 오래된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 나라를 이롭게 할 징조 같소이다."
남이 장군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 틈에 끼여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유자광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다음날 유자광은 입궐하자마자 예종을 찾아가 아뢰었습니다.
"전하,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오나 역모의 기미가 있기에 아뢰옵니다. 어젯밤 하늘에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모두들 나라 일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남이 장군만은 태연하게 혜성이 나타난 것은 옛것이 사라지고 새것이 날 징조라 하니, 이는 곧 이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종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자 유자광은 더욱 간교한 어조로 아뢰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전에 남이 장군이 양인을 정벌하고 돌아오면서 시조를 한 수 지었었는데 그때부터 사악한 뜻이 있었던 것 같사옵니다."
유자광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예종에게 바쳤습니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사나이가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훗날 누가 그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유자광의 무서운 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남이 장군은 원래 남아이십미평국이라 했는데 유자광이 평국(화평한 나라)을 득국(나라를 얻다)으로 바꿔버린 것이었습니다.
예종은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졸지에 역모자로 전락한 남이는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때 예종의 옆에는 영의정 강순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강순은 남이와 함께 여러 번 싸움터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남이는 강순에게 변명해 달라는 눈짓을 하였으나, 강순은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모르는 척하는 강순의 태도가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던 남이 장군은 고문을 받아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영의정 강순과 역모를 꾸몄다고 자백하였습니다.
유자광의 흉계에 말려 든지도 모르는 남이는 28살의 아까운 나이로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강순은 남이와의 의리를 저버리고 변명 한 마디 안 해 준 탓으로 80세의 나이로 덩달아 억울하게 처형당했습니다.(자료 : 인터넷 역사이야기에서).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요? 예나 지금이나 똑똑한 사람은 오래가지 못하는 이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했던 남이장군의 시
북한강의 수중섬인 남이섬은 면적 약 14만평, 둘레 약 6km로 1965년부터 수재 민병도 선생이 모래와 땅콩 밭에 불과하던 황무지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오늘의 자연림과 잔디밭이 가꾸어졌습니다.
청평댐이 생기기전 평상시에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빙하리 육지로 연결되다가 홍수가 나면 섬이 되곤 했지요. 1966년부터 경춘관광개발(주)가 유원지로 관리해 왔으나 2000년부터는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 유원지에서 관광지로, 소음을 리듬으로, 경치를 운치로 라는 모토 하에 자연생태문화관광복합컨텐츠의 자연섬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12월 윤석호 감독이 제작한 <겨울연가>가 성공하면서 아시아의 주요 테마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남이섬은 오늘의 자연을 후손들에게 보다 가치 있는 자원으로 물려주기 위해 오늘도 자연환경 제 모습으로 다듬기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초목이 하나로써 평화를 이어가는 휴양낙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자료 : 남이섬 홈페이지)
섬으로 가던 중 물위에 떠있는 남이섬을 잡았습니다.
원시인이 살았음직한 움막을 재현해 놓았네요.
동동주를 함께 마신 일당들
누구든지 사진찍을 때만큼은 진지해 지네요.
사진 찍힌 처자가 항의하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에 나체의 여인이 물가에 서 있네요.
홀랑벗고 얼마나 추울까? 을씨년스러운 만추의 날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