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백남오
오른쪽 눈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3월 신학기 개강을 하고 불과 한주 수업을 했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무겁다. 시기를 늦추면 실명의 위기를 맞는다는 데야 어떤 선택의 여지도 있을 수가 없다. 눈동자 뒷부분의 시신경이 있는 ‘황반’에 이상이 생겨, 각막이 주름지고 백내장까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전후를 예정기간으로 입원수속을 밟았다.
한평생 사는 일이 참으로 만만치가 않구나. 어느 날 부터인가 몸에 조금씩 탈이 생겨 혈압약도 먹고 치과 정기치료도 받으며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데, 이제는 시력까지 한계가 오고만 것이다. 수술과 진료를 통하여 회복할 수만 있다면 기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통 큰 용기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틀에 걸친 정밀검사를 받은 후, 일요일 아침에 입원을 한다.
대학병원의 일요일은 외부의 문이 굳게 닫힌 것과는 달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702호 병실을 지정받고 환의를 입자마자 수술을 위한 검사는 다시 시작된다. 정밀기계로 눈동자 부위의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그것도 몇 분의 의사들이 돌아가며 검사를 하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이제는 끝이 났는가 싶어 잠깐 휴식을 취하려는데 다시 또 불러낸다. 내일 수술을 집도할 교수님께서 눈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려고 일부러 나오셨단다. 찬찬히 수술부위를 점검하시고는 약식이 아니라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신다.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사라지며 마음이 편해진다. 주치의에 대한 신뢰감과 병원의 시스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이튿날 아침, 드디어 수술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난생 처음해보는 경험이라 마음 편할 리가 없다. 11시,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간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불안하다.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름이 무엇입니까.”
“백남오 입니다.”
“어디에 삽니까.”
“마산에 삽니다.”
끝이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입니다.”
한숨 잤는가 싶었는데, 세시간이 지났다는 말이 아닌가. 두려웠던 마음도 잠시, 모든 상황이 끝난 후였다. 눈동자 세군데 구멍을 뚫고 가스를 주입하는 ‘유리체절제술’이라는 정밀하고도 위험한 시술법을 적용했다고 한다. 안과로서는 큰 수술이라는데 아무 기억도 없다.
죽음이라는 것도 이같이 죽기 전에 무서움과 불안감이 있을 뿐이지,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첫날은 몇 년 전 갑상선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밤을 보낸다.
다음날부터 입원기간 일주일은 철저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함은 상식이다. 항생제 주사와 안약은 기본이지만 의료진들의 아침저녁 정밀검사로 수술의 결과를 체크해 나간다. 눈 뒤쪽에 주입한 가스가 다 빠져나가려면 4-5주가 걸린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불편하더라도 참고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단다.
입원 3일째, 병실의 창문너머로 봄비가 종일토록 촉촉이 내린다. 빗줄기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육체가 병들어 죽는 것은 순리이나 멀쩡한 신체에 눈 하나 보이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황망하겠는가. 정말 큰일이 아닌가.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평생토록 안경을 써온 것도 서러운데, 이번 수술이 잘되어서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는 새로운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 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이라는 사실을. 마음과는 달리 시력은 더 이상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 먹고 있는 약보다 더 많은 양의 약을 먹게 될 것이고,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 진료범위도 계속 확대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늙어가며 기력을 잃어가고 결국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리라. 하지만 어찌하랴. 그게 모든 살아있는 자가 받아들여야할 필연인 것을.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순간이 내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친구가 다녀갔다. 쌓아온 지난 세월이 서러워 울컥 목이 멘다. ‘수필창작교실’ 문우들도 문병을 왔다. 또 다음날은 교양학부 교수님들이 오셨다. ‘병문안을 가야되지 않느냐’는 전화도 받는다.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본질 외적인 일에 연연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해져 있는가 하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 내려앉는다. 나도 이제 분명 나이가 들었음은 숨길 수 없구나.
대학병원 진료실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붐빈다. 저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를 할까. 모두 짐짝취급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지만 그것은 기우다.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치밀하게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많은 부서와 의료진들이 연결되어 환자를 관리를 한다. 며칠만 진료를 받아본다면 알 수 있다.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한다. 치료가 끝나고 시력이 돌아온 것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진료를 받고 투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 5주 후에는 가스가 모두 빠져나가 안대를 벗을 수 있을 것이고, 2개월 후에는 시력이 돌아와 새로운 안경을 맞춰 쓸 수 있음을.
그리하여 나의 창작시간을 기다리는 문우들이 있는 강의실을 활짝 웃으며 들어서게 되리라고.
첫댓글 누구나 병상에 누우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봄비 내리던 그 날~~교수님의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한 편의 글로 태어났네요
완쾌하셔서 저희들이 기다리는 강의실로 활짝 웃으며 와 주셔서 참 다행입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교수님 안대를하시고 병문안 간 저희들에게 과일이며 과자를 챙겨주셨던 비오던 그날이 벌써 수개월이 흘렀네요~완쾌하셔서 가르침을 계속받을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작품을 보니 하루하루 많은 생각을 하셨네요~
긴 어둠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인생의 봄을 꽃피우시는 교수님께 술잔에 단풍이 물든 가을을 듬뿍 담아 보내드리겠습니다
말 과 글의 힘을 요즘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노안으로 안경의 힘. 문명의 힘을 빌리지만 산다는건 행복입니다. 볼수있다는건 희망입니다.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3월에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경험이 글이 되는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우스개 소리로 공부잘하고 많이 하는사람이 안경쓴다하죠,눈을 혹사하셨나봅니다,머릿골에 아버님이 소를 팔아주셨을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생로병사야 성현들도 다 못풀고 간 문제인데 하물며 사람이 어떻게 할수있겠습니까
좋은선생님을 만나는것도 인연입니다 수술이 잘 되서 이렇게 교수님을 만나고 배우고
어찌생각해보면 힘들게 아파하고 고뇌하는 모든것들이 큰 자연의 틀에서 보면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는 털끝같은
일들인데.행하는 사람만 호들갑을 떠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해봅니다
맘이 허했을 가을에 교수님을 만나 허황된 꿈이라도 꿀수있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