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쪽에서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맵기가 엄동설한 바람 같다. 옷깃을 세우고 바람막이모자를 쓴다.
저앞에보이는 섬이 차귀돈가? 저렇게 멋있는섬이 있었던가? 다시한번 와볼 작정으로 눈여겨 보며 지나간다.
64키로쯤 되는곳인 대정읍 동일리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 주인이 안된다는걸 억지를 써서 컵라면을 시켜 먹었다. 햄버거도 하나 사먹는다.
앞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앉아 쉬며 천천히 먹는다. 앉고 서기가 괴롭다. 시계는 12시45분을 가르킨다.
일본인들 몇이 나를 따라 가게로 들어온다. 내가 먹는걸보고 '곱부'라면들을 부탁한다. 졸지에 이가게가 라면집이 된셈인데 1500원씩 받는것 같다.
갈림길마다 길바닥에 그려진 "200<-"표시를 따라 길을 찾아간다.
걱정했던 오른쪽다리는 멀쩡한데 왼쪽다리의 피로가 심하다. 점점더 어려워진다. 70키로 8시간50분소요. 나를 앞지르는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길은 계속 오르는 어려운길이다. 70키로지점 에서 80키로 지점까지 1시간22분 걸리고 80키로지점 에서 90키로지점까지 1시간54분이 걸렸다. 걷는속도로 늦어젔다. 뛰질 못할정도로 왼쪽다리가 아프다.
90키로를 지나 할수없이 진통제 '낙센'을 먹었다. 먹고나서 2~30분 지나야 효과가 있는듯하고 약효는 3시간 정도 가는것 같다. 가끔 바람이 불어주고 하늘엔 구름이 떠다녀 달리기엔 좋은 날씨가 됬다.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눈부신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경치좋은곳에서 봄관광이나 할일이지 이게 무슨짖인가...
서귀포로가는길은 산을 오르듯 높아지는 길이다. 이렇게 코스가 어려울줄은 몰랐다. 지긋지긋하게 오르기만 하던길이 내리막으로 바뀌면서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방통행길을 꼬불꼬불내려가며 나포리호텔 네온싸인을 찾는다.
드디어 저만치 작은공원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100키로지점 첵크포인트가 보이고 그앞에서 집사람이 나를향해 마주걸어 나오고있다.반갑다. 오후 7시26분.14시간26분소요. 계획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부리나케 윤우로가 알려줬다는 식당에가서 김치찌게를 시키고 옷을 완전히 갈아 입었다. 운동화는 헌것을 가저와서 바꿔신기를 못했고
배낭에 이것저것 먹을것등을 채워넣고 빤짝이를 달고 손전등을 켜들고 집사람과 헤어저 150키로 체크포인트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8시정각이다. 캄캄한 어둠속을 향해 혼자서 간다.
이제 남은 100키로를 22시간안에만 가면된다. 150키로지점까지 새벽 5시까지만 가자.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배가불룩한 달도 떠있다. 춥다. 메모도 하지 않기로한다.
110키로지점을 지나고 얼마안가서 낮에 내게 물을 줬던 일본여자가 옆으로 오며 말을 건다. 잘뛰는여자다. 졸리지 않으냐는 질문이다. '다이죠부'라고했더니 알았다는 표시를하며 게속 옆에서 달린다. 그여자가 뻐스정류소를 기웃거린다 아마 앉아서라도 눈을 붙일만한곳을 찾는가보다. 내가 졸립다고했으면 같이 쉬자고 했을것같다. 여자혼자 어데 앉아쉬기는 무서울테니까.
결국 그여자는120키로지점에서 그곳 자원봉사자에게 포기의사를 밝히고 차에 올라탔다.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혼자 칠흑속으로 걸어나갔다.
가로등 없는길, 더욱이 공사중으로 한차선 밖에없는 위험한길이 여러곳 나타난다. 밤길이라서 차들의 속도가 빠르다. 조심에 조심을 강조하며 박자 맞추기쉬운 동요를 읇조리며 천천히 뛰어간다.군가를 마음속으로 외우며 그박자에 마춰 뛰어간다.
어떻하면 힘이 덜들가? 어떻하면 괴롭고 지루한걸 잊을가? 그방법을 연구하며 간다. 참지못할정도로 괴로운것은 아니다. 120키로 에서150키로 사이가 그렇게 힘들다고들 하던데 이만하면 견딜만하다.
사방이 캄캄해 아무것도 안보이고 달리는 차조차 없는찻길을 혼자서 계속간다. 태초에도 이곳이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산지역에 들어왔다. 밤3시가 넘었는데 불이 훤한식당이 보인다.지금 영업을 하는집이다.해장국도 써있다. 들어가서 주인을 찾아 해장국을 시켰다. 화장실에도가고 좀 쉴참이다. 배낭을 풀고 지갑을 찾으니 없다.여기저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100키로지점에서 옷갈아입으며 돈을 안가저온 것이다.
주인말이 밤이니까 제주에서 4~50분 이면 올수 있단다. 결국 집사람에게 전화를했고 집사람이 택시를 타고와서 돈을 건네주고 갔다. 다행히 좌변기여서 그런데로 앉아서 일을 조금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땀이 식고 실내에있다 나와서그런지 오한이 난다. 덜덜 떨린다. 길가 어떤건물에 들어가서 한기를 피하며 체조도하고 제자리뛰기도 하며 7~8분간 몸에 열을 올린후 다시 속보를 시작했다.
계획보다 1시간 늦었지만 남은시간이 넉넉한 새벽5시에 150키로지점에 도착했다.
작년에도 여기서 첵크하던친구가 이번에도 여기서 첵크를 하고있다. 내앞에 미색옷을입은 키작은 일본여자가 다녀간다. 바람막이작크를 열어 번호표를 보이며 번호를 알려주니 책에 기록을 한다. '작년에도 여기 있었지 안았느냐'니까 그렇다고 대답한다.
2~3분후에 양손이 없는 젊은이가 올라온다. 그친구는 세명이 하루종일 같이 뛰던데 제일 먼저 오는가보다.
뒤에 안일이지만 이150키로지점에서 나를 첵크 안한것으로 되어 있었단다. (KU게시판에 '첵크할때 증거를 명확히 하기위해 선수싸인을 받도록' 건의했음)
이제 남은 50키로를 12시간에 가면된다. 자신있는거리가 남았다. 뛰는동안엔 휴대폰을 꺼놨었는데 이제 켜놓고 걸어간다. 동료들로부터 계속 전화가온다 160키로를 넘어서 집사람에게도 전화를 했다.
날이 훤히 밝는다. 시원한 바다다.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작년에 몹시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생각이 난다. 조름도 오는것 같고 힘도 빠지는것 같다. 뛰면 졸음은 달아나는데 계속 뛰기를 할수가 없다.
첫댓글 박영준 : 위대한 기록은 쉽게 얻어 지는 것 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특히 한국인 최고령 기록은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경의를 표하며 컨디션이 빨리 회복되시기를 기원합니다. (03/26 23:47)
노재선 : 타고난 체질과 꾸준한훈련 그리고 집념이룩한 승리입니다.더 중요한것은 완벽한 회복입니다. (03/27 06:55)
노재선 : 추가;작년 12월부터 105일간 일평균17.5km의 훈련 그자체가 위대합니다.엄청난 훈련을 거뜬히 소화할수있는 능력은 천부의 힘이랄수밖에 없군요.! (03/27 09:21)
곽화진 : 그토록 염원 하시던 200km 울트라를 성공적으로 완주 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 한강달의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조속히 회복되시기를 기원하면서 보스톤의 영광도 빌어드립니다. (03/27 09:31)
김무언 :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우리 한강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한강달을 빛낸 두분께 박수와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이제는 보스톤에서 한강달이 빛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03/27 12:10)
심춘무 :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초월 하신 완벽한 완주를 축하드리며,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03/27 1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