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김정미 자매입니다.
주일에 성경의 전래지를 방문하여 내 손에 쥐어진 성경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를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기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8시까지 교회에 모여 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
교회에서 김밥을 싸고 김소선 자매님께서 찰밥을 맛나게 만들어 오시고 참외를 1박스 가져오시고, 최순애 자매님께서 맛난 떡을 가져오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종현 형제님께서 유기농 달걀을 반숙으로 맛나게 삶아오시고, 메론도 깍아 오시고 포크까지 싸주시는 자매님의 섬세함~~~
하하호호 맛나게 과일과 찰밥과 떡과 달걀을 먹으며 달려갔습니다.
휴게소도 들리고 달리니 12시에 도착했습니다.
1인당 2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니 웅장한 실내가 맞이했습니다.
성경이 전하여진 간략한 이야기는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무역을 통해 인도와 청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영국 왕의 명령으로 청나라와 주변국을 조사하고자 1816년 알세스트호와 리라호를 보냈고 조선은 청나라의 소개로 방문하게 되었다. 인도와 청나라를 지나 조선을 방문하였는데 처음으로 정박한 곳이 마량진항이였고 알세스트호의 맥스웰 함장과 리라호의 바실홀 함장과 조선의 첨사 조대복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성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다.
그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다.
그 과정의 여러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준다.
사진과 함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 Establishment of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양, 동아시아에 대한 모직물 시장 및 향료 획득 등의 독점무역을 목적으로 세워진 영국의 특허회사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활동 범위는 아프리카에서 일본에까지 미쳤으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격렬한 투쟁에서 패배하여 인도로 후퇴하였다. 그 후 동인도회사는 붐베이부터 캘거타까지 서부 인도를 지배하였고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주력사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내륙지방에 대한 토지와 주민의 지배를 화대하였다. 1765년 뱅골지방의 조세 징수권을 무굴제국 황제로부터 양도받으면서 빙골의 토지 소유자가 되어 인도의 영토 지배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해졌던 조선 순조 때의 시대적 상황
Historic background of the first Bible brought to Korea, in the Joseon Period 3 brought to Korea in the loseon Period
1816년 영국의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서해안에 도착하여, 맥스웰에 의해 최초로 성경이 전해졌던 때는 조선시대 순조가 재위하던 시기였다. 순조는 정조 14년(1790년)에 태어나 11세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04년 대왕대비의 청정이 끝나자, 이때부터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김씨 가문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매관배직을 일삼아 나라의 문랍이 극심혜지고, 도탄에 빠진 민충들의 불만이 팽배하게 되어 커다란 사회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1801년에는 사교(H#)를 금한다는 명분으로 200여 명의 천주교신자들을 학살한 사전인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그 뒤에도 천주교 탄압은 계속되어, 1815년에는 경상.충청.강원도의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한 을헤박해가 일어났으며, 1827년에도 충청.전라도의 교인들을 검거해 후독한 탄압을 가하였다.
조선인과 영국인의 만남
Joseon People's Encounter with the English
1816년 9월 4일(순조 16년) 알세스트호와 리라호 두 척은 마량진 갈곳 밑에 표류하였다. 그러자 얼마 후 이들의 배 주위로 조선의 많은 배들이 모여 들었다. 알세스트호의 맥스웰 함장과 리라호의 바실홀 함장은 그 배들 중에 푸른색의 큰 양산이 드리워져 있는 배가 가장 높은 신분의 배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일행 몇 명과 함께 보트로 갈아탄 후 그 배를 향해 다가갔다.
더 가까이 가보니, 큰 양산 아래에 원로로 보이는 인물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있었다. 그는 마량진 첨사 조대북이었으며, 이양선의 일행은 배에 올라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자 그는 매우 정중히 그들을 맞아주었으며, 이것이 곧 조선인과 영국인의 첫 만남이었다.
역사적 사건이 기목된 서양의 도서 알세스트호 댑레오드의 조선해역 및 유구열도 항해기
voyage of His Majesty's Ship Alceste, Along the Coast of Corea to the Island of Lewchew : With an Account of Her Subsequent Shipwreck / John Mcleod
서양인이 쓴 최초의 한국 서혜안 답사 여행기로 백레오드가 저술하였다. 1816년 9월 영국 군함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백령도 시해안 일대를 탑사하였는데. 알세스트호의 군의관인 백예오드와 리라호의 합장인 바실홀은 이때의 경협을 귀국 후 여행기로 남겨 각각 한국 서해안 항해기를출간하였다. 그종 렉레오드의 여병기에는 시양인과 한국인 최초의 만남이 삽화로 수목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이 기록된 서양의 도서 바실홀 함장의 조선 서해안과 유구 항해기
An 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o the Great Loo-Choo lsland: With Two Charts / Captain Basil Hall
조선 후기 영국인 바실홀이 쓴 조선견문기다. 1816년 영국의 바실홀 선장이 10일간 한국의 서혜안과 현재의 오키나와에 해당하는 '유구삼`유 탐사한 내용을 답고 있다. 조선을 방문한 지 2년만인 1818년 출판된 이 항해기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 책에서 눈여겨 볼 점은 서천의 마량진예 정박했을 당시, 첨사인 '조대복'이 바실홀 함장 일행을 맞이하는 그림이다. 당시 조대복 등은 조선 최초로`성경'을 전달받은 것으로 책은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낱낱이 며리를 깎았고, 머리에 쓴 모자는 김은 털로 만들었거나 노끈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동로구와 같았습니다. 의복은 상의는 흰 삼승포자( 성글고 굵은 베) 로 만들었거나 흑진으로 만들었고 오른쪽 옷 섶에 단추를 달았으며. 하의는 흰 삼승포를 많이 입었는데 행전(바지나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레 매는 물건) 모양과 같이 몹시 좁게 지어서 다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순조실확 권19,
"그들의 피부색은 짙은 구릿빛이었고 무서운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나머지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듯이 보이는 몇몇은 모자로 그 구분이 갔었는데, 모자의 차양은 지름이 3피드(1m)이고 모자층의 높이는 9인치(23cm) 나 되어 보였다. 그 모양은 위 골이 잘린 원뿔골의 모자와 흡사했다."
10일간의 조선한해기 - 지자 바신 홀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적 배경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King James Bible
킹 제임스 1세1566. 6. 19~1625. 3.2
스튜어트 왕가 출신 중 최초의 영국 왕이다. 스코들랜드와 잉글랜드의 통일을 추구하여 스스로를 그레이트 브리튼의 왕이라고 칭했으며. 절대왕정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기를 조합하여 오늘날 영국의 국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통일된 하나의 영어성경
1611년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 출간 역사
1525년 틴데일 성경 'The Bible in blood'
1538년 영국성공회 성경 'The Great Blble' 출간
1568년 영국성공회 성경 'The Bishops Bible' 출간
1603년 제임스 1세 즉위
1604년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왕명으로 통일된 영어성경의 번역 지시
47명의 학자들이 웨스터 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세 곳에 모여서 번역 시작
1611년 영국성공회 최초의 완역영어 '킹 제임스Te kn James Bible' 성경 출간
영국의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왼문으로부터 직역한 통일된 영어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즈음인 1603년, 스코블랜드 제임스 6세가 제임스 1세 kng dames 1로 영국 왕위에 죽위 하였다. 그는 1604년 햄프튼 왕궁회의에서 교회의 문제들을 심의하던 중에 대학학장 존 레놀즈의 제언으로 영국 최고의 성서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로운 영어성경 번역을 명하였다. 실제로는 47명의 학자들이 웨스터 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등 세군데서 모여 6개 그룹으로 편성, 15개의 번역 기본원칙을 수립하였다. 또한 각 그룹별로 번역을 분담, 1604년에 시작하여 1611년에 최초의 완역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출판하였다.
킹 제임스 성경 구매 히스토리
1611년 초판본 킹 제임스 성경"He"king james Blble의 구매 가능성 조사가 2015년에 시작되었다. 1611년 제작된 킹 제임스 성경은 약 300여 권으로 추산되며, 오랜 시간동안 유실 및 망실로 남아 있는 성경은 세계적으로 30권 내외로 파악되었고 여기에 진본 구매가 가능한 소장처를 확인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조사를 시작, 거래 가능한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은 약 5. 6권 내외라는 사실도 파악되었다. 2016년 3월 미국 피닉스주의 고 성경박물관8ible Museum에 구매를 위한 협의에 들어갔고 2016년 6월 성경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의 고 희귀 성경 감정권위자이자, 세계 최대 경매사인 소더비sotheby's와 크리스티christy's의 전문 감정평가사인 라파엘 비옹드Raffaele 8iond를 통해 사전감정펑가를 받았고 진품임을 확인하였다. 이 후 다시 한번 전문가를 미국으로 보내 고 성경박물관에 소장중인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이 진품임을 재차 확인하였고, 미국의 공인기관에 요청하여 라파엘 비옹드Raffaele Biond의 감정펑가서에 대한 공증도 받게 하였다. 그리고 1611년 킹 제임스 성경 외에 1769년, 1822년, 1823년도에 출판된 킹 제임스 성경 원본도 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의 원본 보존을 위한 영인본도 함께 구매가 진행 되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은 희귀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쳐 미국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식 공증을 받고 진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2016년 8월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사야 14:12 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 초판에만 있는 O day star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경도 들어있음을 확인하였다.
이후에 있는 성경에서 O day star와 외경이 빠졌음을 최재영 형제에게 설명들었다. 성경을 넘겨가며 확인하는 기쁨이 넘쳤다.
우리 손으로 최초의 성경을 보다니~~~ 물론 영인본이지만...
성경을 보고 확인하고 3억이나 들여서 구입하고 전시해 준 서천시가 고마웠다.
모두 신나서 기념 사진도 찍고 뒤를 돌아보니
정말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조선시대를 연상케하는 도포와 갓이 준비되어 감사하게 재미나게 촬영을 했다.
감동과 기쁨을 가득 채우고
맛난 회들로 배도 가득 채웠습니다.
비가 몇일을 계속 내려서 한가한 가운데 우리 교회 식구들만 박물관을 채우고 관람을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교회에서도 오셨는데 킹제임스 성경을 보고 있지 않는지 아무 감동이 느껴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이 온통 킹제임스인데 성경을 판매하는 곳에는 킹제임스가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었습니다.
한 10권이라도 기증해서 판매를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영국에서 동양을 순방하고 성경을 전하고 선교의 길을 열고 여러 교단의 지원으로 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전하고 구원을 바르게 전하고, 사람의 삶을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순교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젊은 선교사님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알지도 못하는 미개한 땅에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시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건립하고 성경 번역과 사전을 만들고 바른 인간으로 살도록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손에 있는 이 귀한 성경이
우리나라에서도 피 흘린 발자취가 있었음을 잊지않고 전해야겠습니다.
사랑침례교회에서 다녀가시고 만든 동영상도 있으니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