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의 촌스러운 광고. 천호식품 김영식(59) 회장이 직접 출연한 CF가 폭발적 인기다. 다른 회사의 광고며 기업 마케팅에서 ‘패러디 문구’가 잇따라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대박 뒤에 숨은 눈물과 고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외환위기 때 20억원의 빚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 했다. 600원짜리 소시지와 소주 한 병이 끼니였다. 하지만 130만원으로 다시 일어서서 연 매출 800억원의 건강식품 회사로 키웠다. 10일 오뚝이 같은 인생반전(人生反轉)의 주인공을 j의 이혜영(영화배우·전 SBS 앵커) 객원기자가 만났다.
정리=김준술 기자 jsool@joogn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장소 협찬=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
‘영업의 달인’다웠다. 김영식 회장은 인터뷰 직전 산수유·마늘·블루베리로 만든 건강식품을 탁자에 쭉 깔고 시식부터 권했다.
김영식 회장(이하 김)=마시고 하시죠. 컵에 따라 드릴까? 그냥 빨아 드시죠 뭐.
이혜영(이하 이)=와, 진짜 맛있는데요…. 사실 제가 새벽 2시까지 회장님을 공부했어요. 먼저 CF 얘길 빼놓을 수 없겠죠. 전에도 최고경영자(CEO)들이 CF 나온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인기를 끌진 못했어요. 비결이 뭘까요.
김=이렇게 대박을 칠지 몰랐죠. 산수유 제품은 원래 2000년에 처음 만들었어요. 그땐 산수유를 주 원료로 못 쓰게 돼 있었습니다. 제품에 49%만 들어갔죠. 아무튼 그걸 만들어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어요. ‘대통령 된 것 축하한다. 세계의 대통령이 되려면 정력이 좋아야 한다. 한국의 산수유가 으뜸이니 먹어 보라’고요. 그런데 3개월 뒤 답장이 왔어요. ‘정말 고맙다. 우정이 오래 가길 원한다’고요. 부인인 로라 부시의 서명까지 붙여서요. 속으로 ‘로라가 효과 봤나 보다’ 생각했죠, 하하. 그 편지를 광고에 써먹었어요. 사람들이 ‘야, 부시도 산수유 먹는구나’ 하면서 많이 팔렸죠. 광고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10월에 법이 바뀌어 산수유를 주 원료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직원들하고 회의하다 “이런 멘트 어때” 하고 아이디어를 냈죠. 옛날 제품보다 더 좋아졌다는 데서 착안했어요. 광고회사에서 진솔하고 가슴에 와닿는다고 흥분하더라고요. 광고 나가자마자 화제가 됐죠.”
이=통마늘·강화사자발쑥 같은 제품도 많은데 하필 산수유입니까.
김=우리 상품이 170가지예요. CF 하는 건 최고로 자신 있는 걸 내보내는 거죠. 산수유는 신장·방광에 도움이 돼요.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좋죠. 나이 들면 소변 볼 때 잔뇨감도 있고 허벅지·바지에 묻기도 하잖아요. 그런 분들이 1주일 먹으면 소변이 딱딱 끊어집니다. 보름 먹으면 아침이 힘있게 느껴지는 거죠.
이=식품회사 CEO로서 ‘나도 건강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많겠군요.
김=골프 칠 때 사람들이 “마늘의 힘 한번 보여주라”고 해요. 공이 조금만 나가면 “요즘 안 드십니까” 야유가 들어오죠. 저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몸무게를 잽니다. 가장 싫은 게 배 불룩한 거죠. 지금 64㎏입니다. 제가 다이어트 식품은 안 만들어요. ‘먹으면 살 빠진다’고 하는데 사람은 먹으면 찌게 돼 있어요. 근데, 이혜영 선생님도 몸매 관리 참 잘했네요.
이=CF 모델로 뜨면 좋습니까.
김=안 좋아요. 공항에서 앉아 있는 것도 조심스럽고, 예쁘게 몸가짐을 해야 돼요. 목욕탕 갔는데 누가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산수유 회장님 아닙니까” 말 붙이는 겁니다. 다 벗고, 당황스럽더라고요.
이=모델 소질이 있었나 봅니다. 어릴 때 그런 꿈이 있었나요.
김=없어요. 제가 쓴 『10미터만 더 뛰어봐』(중앙북스)가 26만 부 넘게 나간 뒤 강의를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무대에 서는 게 자연스러워졌죠. 얼마 전 어린이대공원의 2000명 앞에서 강의할 때는 청중이 앞으로 나와 “힘든 시절 얘기할 때 감동을 받았다”며 안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저도 책을 읽었습니다. 이젠 완주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김=아니요. 지난해 송년회 때 직원들에게 물었죠. “내가 성공한 CEO냐.” 그렇다는 답이 왔어요. 그러나 전 “아니다”고 손사래쳤죠. 직원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월급 많이 받는 날이 제가 성공하는 날입니다.
이=일반인에게 ‘출산 장려 지원금’도 주고, ‘희망의 스위치’라는 사회사업도 하는데요.
김=책 인세와 강사료, 회사 이익금으로 5억원을 만들었어요. 제가 운영하는 ‘뚝심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는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kys1005)에 신청해 세 번째 자녀 낳는 대한민국 국민에겐 누구나 200만원을 줍니다. 지금까지 100여 명이 받았지요. 최근 1년간 벌였던 ‘희망의 스위치’ 운동을 통해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20명에게 월 1000만원씩을 지원했습니다.
이=탤런트 이순재씨가 그 책을 읽고 ‘피눈물 나는 삶의 기록’이라며 ‘독자들에게 한 가지만이라도 건지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한 가지를 고른다면 무엇인가요.
김=‘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겨라’ 입니다. 언제? 지금. 당장. 즉시. 성공 못하는 사람들은 그걸 무덤까지 가져갑니다. 행동을 못하는 거죠. 이게 잘 안 되면 저는 ‘소리를 지르라’고 합니다. 소리는 척추로 이동해 행동을 유발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이=평소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나요.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동업자, 아내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김=자녀는 딸 하나, 아들 하나예요. 제가 원래 딸 때문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서른두 살 때입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죠. 어느 날 퇴근했더니 초등생 딸이 울더라고요. “왜 난 공부방도 없고 책상 하나도 없느냐”고요. 집에서 생일잔치를 했는데 친구들이 놀리는 걸 보고 애가 충격을 받은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사채업자에게 급전 300만원을 빌렸어요. 봉투에 넣어 갖고 와서 “현주야, 아빠 얼마나 부자인지 볼래” 하면서 방에 뿌렸어요. 그 조그마한 방이 만원짜리로 가득 찼어요. 그제야 딸이 “아빠도 부자”라고 했어요. 돈은 다음 날 다시 반납했죠 뭐. 그런 식으로 애들한테 행동으로 보여준 게 많아요. 아들은 제대한 뒤 유럽으로 두 달간 배낭여행부터 보냈어요. 선진국에서 괄시받고 오라고요. 후진국에 갔다 온 젊은이들은 우쭐하기 쉬운데 선진국은 그 반대죠. 지금 딸·아들 모두 우리 회사에서 일합니다.
이=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비전을 줬는데 정작 자신의 고통과 슬픔은 혼자 삼킨다고 들었습니다.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김=1999년 초 하루 밥값이 1000원이었어요. 소주 한 병에 소시지 하나 샀죠. 첫날 그걸 여관방에서 먹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부산에서 현금 많기로 100등 안에 들었던 제가 3500원짜리 점심 하나 못 사먹고…. 나쁜 소식은 빨리 전달된다고 하던가요. 전 사람들에게 ‘잘되고 있다’고 말하곤 혼자 소화시켰어요. 대신 일기에 마음을 적었죠. 거기서 ‘10m만 더 뛰어보자’는 각오가 나왔어요. 100m밖에 못 뛰는 사람에게 200m 뛰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못 뛰죠. 그러나 10m만 더 가보라고 하면 110m를 갑니다. 거기서 또 10m 가고, 이러면 200m 목표를 채우는 겁니다.
이=그때는 이미 성공을 맛본 뒤 실패했던 시절이었죠? 성공하기 전에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삭였습니까.
김=답답한 걸 얘기 안 하면 화병 나죠. 저는 택시 타고 “아무 데나 가자”고 해요. 제 얘기 들어주면 요금 더블로 주겠다고 제안하는 거죠. 기사한테 실컷 얘기하면 좀 나아요. 또 집에 14년 된 ‘뽀야’란 강아지가 있어요. 가끔 앉혀 놓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합니다. 잘 들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