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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남부능선 산행이야기(1)
산행일시: 2022년11월26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약18.23km
산행시간: 11시간10분
산행코스:백무동(04:00)-세석4거리(07:20)-영신봉(07:50)-좌고대(08:14)-영신사터(08:42)-남부능선(08:18)-창불대(09:30)-음양수(09:58)-의신갈림길(10:23)-석문(10:50)-삼신봉(13:52)-갓걸이재(14:18)-청학동날머리(15:1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3:20 백무동도착
04:00 백무동에서 산행 시작, 해발537m
04:28 첫나들이폭포, 산행거리1.31km, 산행소요시간28분, 해발716m
04:38 출렁다리, 산행거리2.11km, 산행소요시간38분, 해발768m
04:47 철다리
04:49 가네소폭포, 산행거리2.49km, 산행소요시간49분, 해발801m
05:49 지리이정목 11-09, 산행거리4.31km, 산행소요시간1시간49분, 해발1071m
06:56 지리이정목 11-12, 산행거리5.81km, 산행소요시간2시간56분, 해발1429m
07:20~27 지리주능선, 산행거리6.17km, 산행소요시간3시간22분, 해발1574m
07:28 세석대피소4거리, 산행거리6.19km, 산행소요시간3시간28분, 해발1570m
07:33~35 한신바위
07:38 헬기장
07:48 영신봉이정목 , 산행거리6.80km, 산행소요시간3시간48분, 해발1629m
07:50~58 영신봉정상, 산행거리6.88km, 산행소요시간3시간51분, 해발1645m(1651.6m)
08:00 영신봉이정목
08:12 전망대, 산행거리7.33km, 산행소요시간4시간12분, 해발1592m
08:14~24 좌고대, 산행거리7.37km, 산행소요시간4시간14분, 해발1587m
08:29 영신사터 입구, 산행거리7.56km, 산행소요시간4시간29분, 해발1529m
08:42~54 영신사터, 산행거리7.88km, 산행소요시간4시간42분, 해발1497m
09:18~25 남부능선복귀, 산행거리8.47km, 산행소요시간5시간18분, 해발1592m
09:30~36 창불대, 산행거리8.61km, 산행소요시간5시간30분, 해발1598m
09:42 세석대피소갈림길, 산행거리8.81km, 산행소요시간5시간42분, 해발1571m
09:56 세석 정규탐방로 복귀, 산행거리9.37km, 산행소요시간5시간56분, 해발1466m
09:58~10:00 음양수, 산행거리9.48km 소요시간5시간58분, 해발1447m
10:08 1402.7봉, 산행거리9.95km 소요시간6시간08분, 해발1399m(-3.7m)
10:23 의신갈림길3거리, 산행거리10.44km, 산행소요시간6시간23분, 해발1353m
11:46 1348.4봉 우회길, 산행거리10.76km 소요시간7시간26분, 해발1322m
10:47 이정표(세석대피소2.7km↔청학동7.3km)
10:50 석문, 산행거리10.91km, 산행소요시간6시간50분, 해발1312m
11:22 이정표(세석대피소3.3km↔청학동6.7km)
11:24 1249.1봉, 산행거리11.66km, 산행소요시간7시간24분, 해발1251m(+2.1m)
11:42~12:00 이정표(세석대피소3.9km↔청학동6.1km, 점심식사)
12:07 1228.7봉, 산행거리12.53km, 산행소요시간8시간07분, 해발1233m(+4.3m)
12:29 이정표(세석대피소5.5km↔청학동4.5km)
12:36 1209.7봉, 산행거리13.40km, 산행소요시간8시간29분, 해발1210m(+0.3m)
12:48 이정표(세석대피소6.2km↔청학동3.8km)
13:17 1282.6봉우회길, 산행거리14.85km, 산행소요시간9시간17분, 해발1260m
13:40 지리이정목14-15
13:52~58 삼신봉, 산행거리15.68km, 산행소요시간9시간52분, 해발1287m(-1.7m)
14:02 이정표(청학동2.4km↔쌍계사9.0km,↓세석7.6km)
14:18 갓거리재, 산행거리16.10km, 산행소요시간10시간18분, 해발1185m
15:08 청학동 삼신봉날머리, 산행거리18.10km, 산행소요시간11시간08분, 해발766m
15:10 청학동 국공 탐방안내소, 산행거리18.23km, 산행소요시간11시간10분, 해발761m
○산행 전 이야기
지난번 서북능선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남부능선을 계획합니다.
남부능선은 지리주능선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낙남정맥을 따라 가다가 청학동 뒷산인 삼신봉에서 낙남정맥은 남쪽으로 이어가고, 남부능선은 서쪽으로 나가며 서로 맥을 달리하는데 이름만 남부능선이라고 붙인 것이지 원래 산행목표는 영신봉에서 쌍계사까지 세운 계획입니다.
어쩌다 나오는 산행기를 접하면 함양 백무동에서 하동 쌍계사까지 약24~25km 정도로 가능할 수도 있는 거리인데 저에게는 영신봉 언저리에 꼭 보고 지나야할 명소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아, 구경하고 남긴 기록은 약100여 편 된다고 하는데 그중 영신사와 관련하여 영신사, 좌고대, 가섭전터와 가섭대, 지금은 없어진 아리왕탑, 영계, 비로봉 등의 기록이 있는데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이번 산행에서 지금은 없어진 영신사가 있던 자리인 영신사터를 보고 위에서 나열한 명소를 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100여편 중 이곳 영신사 일대의 명소를 자세히 기록한 사람으로 1463년 8월 청파 이륙선생의 유지리산록, 1472년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유두류록, 1487년 추강 남효온선생의 지리산일과, 1489년 탁영 김일손선생의 속두류록, 1611년 어우당 유몽인선생의 유두류산록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고 싶은 명소는 많고, 가야할 길은 멀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고민이 깊어집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타」라고 했으니 무식하게 부딪쳐 본다고 생각하고 동서울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심야버스와 담날 화개장터에서 귀경하는 버스를 예약합니다.
11시59분에 출발한 버스는 익일 03시20분에 백무동에 도착하고...
동서울에서 출발한 버스2대, 산악회 버스 등 많은 사람들이 백무동 종점에 하차한 후 국공초소가 있는 백무교로 이동합니다.
백무교 국공초소에 도착했는데 국공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04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공직원에게 사정해보지만 국공직원은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고, 점점 사람들이 백무교로 집결하였고 30분을 기다려 04시가 되어 문을 개방해 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천왕봉으로 올라갔고 한신계곡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늘 혼자 다녔는데 이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별이 총총한 한신계곡으로 들어서며 남부능선 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경유 영신봉 구간
탐방안내센터를 지나 좌틀하면 장터목~천왕봉으로 가고, 직진으로 가면 세석길이 시작되는데 이곳이 한신계곡입구로 세석길이라고 명명된 곳이다.
지리산 한신계곡 일원은 국가명승 제72호로 세석길 입구에 문화재청에서 설치한 안내문이 있는데 오류가 있다.
안내문에는 「.............. 가내소폭포는 아래서부터 본류까지 오층폭포와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흐르고, 첫나들이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며 한신지계곡으로 흐른다.」고 했는데 물이 거꾸로 산을 넘을 수 없는 일이니 「세석에서 주계곡이 한신폭포와 5층폭포를 만들며 내려오다가 장터목에서 시작되는 지류를 만나 첫나들이 폭포를 만든다.」 가 맞으므로 문화재청 관계자는 의 문장을 수정해 주길 바란다.
세석길로 들어서면 등로 사정은 아주 좋은 편이며 입구에서 3분 정도 지나서 지리이정목11-1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한신계곡으로 빨려 들어간다.
잠시 후 돌무더기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계곡의 지류를 굽이쳐 돌고 한신계곡은 태초가 열리기 전 암흑의 세계 같은 분위기다.
밤이라 새소리 풀벌레소리도 없고 해, 달의 존재도 한신계곡에는 없으며 계곡을 지나는 거친 물소리와 필자의 거친 숨소리가 전부다.
그렇게 어둠과 계곡물소리와 친구가 되어 약30분을 오르자 첫나들이 폭포다.
백무동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등로사정이 좋았으니 말을 타고 지날만 했을까?
산행이야기 하다말고 왠 말 이야기?????
1472년 함양에서 태어나고 자라 함양군수로 부임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그리도 가고 싶었던 지리산(두류산)을 유극기, 임정숙, 조태허와 함께 4명이 산행하고 「유두류록」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마지막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이곳 나들이 폭포에서 함양관아의 부하들이 말을 준비하고 마중을 나왔다는 것인데 「유두류록」기록을 본다.
이미 높은 기슭을 내려와서 보니, 두 구렁의 물이 합한 곳에 그 물소리가 대단히 뿜어 나와서 임록(林麓)을 진동시키고, 백 척(百尺)이나 깊은 맑은 못에는 고기들이 자유로이 헤엄쳐 놀았다. 우리 네 사람은 여기서 손에 물을 움켜 양치질을 하고 나서 비탈길을 따라 지팡이를 끌고 가니, 매우 즐거웠다. 골짜기 어귀에는 야묘(野廟)가 있었는데, 복부(僕夫)가 말[馬]을 데리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옷을 갈아입고 말에 올라 실택리(實宅里 현 실덕부락)에 당도하니,....... |
그러니까 함양 관아에서 부하들이 상전을 모시러 말을 준비하고 이곳에서 대기한 것인데 첫 대화가 원님이 부재하는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자 마음이 놓였다는 것이다.
지난번 이곳을 지날 때는 시간적 여유도 있어 아래로 내려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밤이라 물소리 이외는 보이는 것이 없고 백무동1.7km↔가내소폭포0.8km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폭포를 지키고 있다.
첫나들이 폭포를 뒤로하고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목교가 나오는데 목교를 건너면 아래쪽으로 첫나들이 전망 쉼터가 있는 것 같은데 전망쉼터는 생략하고, 계곡을 좌측에 끼고 조금 더 오르자 이번에는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로 올라서 중간에서 멈추고 손에 든 전지를 끄자 사방이 암흑이고, 발아래서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는 큰 별 작은 별, 그리고 희미한 별들이 얼기설기 엉켜서 무리를 이루고 은하를 이룬다.
하늘의 별을 보고는 오래전에는 점성술을 펼치기도 했고, 다정한 연인들은 미래를 약속하기도 했고, 어릴 적 마당 멍석에서 고구마를 먹으며 엄마의 무릎을 벼고 하늘의 별을 본적도 있었다.
서울 창의문 옆에 윤동주 문학관이 생각나고, 별을 주제로 일본에 대한 저항시를 쓴 윤동주가 생각이 나고, 일본으로 강제 징용 당해 결국 주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윤동주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사랑과 고뇌 그리고 독립을 노래했는데..... 나도 마음속으로 별을 헤아리며 안산을 담아본다.
전지로 사방을 비춰보다가 출렁다리를 흔들며 혼자 실없는 웃음을 지어보고는 출렁다리를 건넌다.
출렁다리를 지나 10분을 가자 이번에는 철다리가 나온다.
당시에는 이곳을 구분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정리하면서 보니 한신지계곡으로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계곡인데 전지로 비추며 사진을 찍어보지만 먼 거리여서인지 사진이 쓸모없게 나왔다.
철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마치 지계곡으로 접어드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 그렇지, 예전에 지났던 생각이 나면서 이곳에 폭포가 있었는데.....
가내소폭포다.
언제나 그렇듯이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오늘 밤은 더욱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지, 계곡의 울림이 대단하다.
전지로 이리저리 비춰보니 폭포전망대와 폭포 중간에 걸치고 있는 나무는 전과 같은 상황인데 가야할 방향으로 가림막이 쳐있고 11월15일부터 12월15일까지 산방기간으로 출입이 통제되므로 산행가능한 지점이 바로 이곳 가내소폭포까지다.
현재시간 04시50분
그렇다고 이곳에서 산행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폭포는 대충보고 지송한 맘으로 옆으로 끼어 들어간다.
등로를 따라 오르지만 분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가고 있는 주변으로 오단폭포가 있다.
등로에서 보면 폭포같지 않은 맨 아래 5폭포가 보이고 등로를 벗어나 계곡으로 따라 오르면 4폭포에서 1폭포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그중 3폭과4폭이 돌확이 깊게 파여 보기가 좋고, 2폭포도 그런대로 돌확이 좋으며 1폭포는 돌확은 없지만 10여m에서 낙차하는 폭포가 일품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면서도 제대로 오층폭포를 보지 못하고 지난다.
어둠속에서 오층폭포를 생각하며 가다가 긴 브릿지로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오층폭포는 지났고 이 부근 한신폭포가 있는데 전에 한신폭포를 찾지 못하고 내려섰는데 다음에는 꼭 한신폭포를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밤에 지나다 보니 한신폭포를 찾아갈 수가 없는 지경이다.
계속 계곡과 같이하며 오르다가 힘들면 선채로 전지를 끄고 밤하늘을 보니 조금전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별들이 보인다.
오르고 또 오르고........... 또 오르니 물소리가 점점 약해진다.
어느 순간 하늘을 보니 반짝이던 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올려나.........
집에서 나서기 전 비가 무섭게 내렸고, 동서울터미널에서도 비가 왔고, 서울서 출발하면서도 비가 내렸는데 이제 이곳에서도 비가 내리려나 보다.
물소리기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아예 멈춰버렸다.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고.... 좌측에 무명폭포가 잇따라 있는데 보이지 않고.... 우측에 미끄럼 주의 팻말이 걸려있는데 이곳이 마지막 폭포인데 물은 말랐다.
마지막폭포를 지나면 이때부터가 힘들다.
마지막폭포에서 10분을 오르자 이정표(백무동5.8km↔세석0.7km)를 지나고 다시 10여분을 올라 지리이정목11-12를 지나자 사방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다.
6시도 안되었는데 우리 고딩친구들 카톡방에 오늘 메시지가 도착하고.... 지리산 산행을 친구들에게 공지하니 이 친구 저 친구 많은 친구들이 새벽부터 응원이 대단하다.
가다말고 주저앉아 통화도 하고 카톡 답글도 달고.... 그 사이 시간은 자꾸 흐르고...
아~~~ 무지 힘들다.
나이는 못 속인다고, 이제 1달이 지나면 우리 나이로 70인데.......
지리 주릉이 가까워지자 짙은 안개가 심하게 요동치며 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지나가며 콩만한 물방울을 떨구며 지나치는데 날씨가 더 추웠다면 이 물방울이 우박이 되는 거겠지.
드디어 지리산 주릉으로 올라선다.
3시간이면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뿐이지 몸이 따라주지 않아 20분이 초과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마시며 5분을 쉬어 간다.
잠시 쉬고 1분정도 내려서면 세석4거리인데 천왕봉 방향도, 영신봉 방향도 모두 산방기간으로 출입통제를 하기 위해 합판으로 막아놓았다.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20여m 내려가 대피소를 찍고 다시 세석4거리에서 통제선을 넘어 영신봉 방향으로 1분 정도 가자 우측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한신바위인가? 그렇다면 갔다가 와야지.
가까운 거리이므로 한신바위에 올라가 사방을 돌아보지만 사방은 안개가 자욱해 촛대봉도 아예 볼 수가 없고 영신봉 우측에 있다는 운장바위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등로로 들어서서 2분정도 지나자 넓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지나 좁고 잘 나있는 등로를 따라 10분을 지나 영신봉 이정목 앞에 선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금줄을 넘어 2분 정도 오르자 영신봉 정상이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경유, 영신봉 정상까지 산행거리6.88km, 산행시간3시간50분, 해발1645m(1651.6m), 현재시간 07시50분이다.
○영신봉에서 영신사터 경유 음양수 구간
영신봉(靈神峰)!
영신봉은 백두대간 상의 하나의 봉우리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을 지나 세석대피소 위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리적으로는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 하동군 화개면을 접하고 있는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 능선을 기준으로 좌측이 산청 시천면이고, 우측이 하동 화개면이 된다.
영신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하동군현지도, 대동여지도에도 영신봉이라는 지명은 없으며 1913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도에도 영신봉이라는 지명을 기록하지 않았다.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에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坐高臺)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왜? 이곳을 오게 되었나?
지리산 남부능선 답사하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남부능선보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한 마력은 바로 위 지명유래집에서 언급한 영신사와 관련된 명경들, 그 중 좌고대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처음 계획한 대로 백무동~쌍계사 코스를 답사한다면 영신사터와 주변 명경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나 백무동~쌍계사 코스를 답사보다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좌고대와 영신사터 주변 명경이었다.
지난 2번 이곳을 지날 때는 이정목으로 보고 대간길을 지났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이고 사람들도 없어 영신봉 정상을 보기위해 금줄을 넘은 것이다.
내가 본 영신봉은 평범한 봉우리, 위험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안전한 봉우리였고, 펑퍼짐하고 넓은 정상에는 3개의 바위군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선답자들의 글을 보면 정상에서는 사방 조망이 좋다고 하며 마천 방향 아래 운장바위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개가 자욱하고 가시거리가 짧아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영신봉은 기(氣)가 센 봉우리라고 하는데 운장바위에서 무속인들이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영신봉에는 큰 나무가 없고 식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소나무들이 있다.
그냥 바로 내려서기가 섭섭해 주변을 서성이며 한동안 머물다 영신봉 이정목이 있는 등로로 내려선다.
영신봉에서 내려서며 직진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낙남정맥으로 희미하게 길이 나있는데 좌고대와 영신사터를 가려 우측 대간길을 따라 나선다.
10분이 조금 더 걸려 등로 옆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고 낭떠러지기가 있는 곳으로는 철제 난간 줄로 안전지대를 확보한 조망처다.
지난번 이곳 전망대를 지날 때 대간을 답사하던 사람들과 어우러져 경치를 보며 쉬어 갔는데 그때만 해도 이곳이 유명한 추강암과 좌고대가 지리 잡은 곳인 줄 알지 못했다.
이곳 암봉군은 3개로 분류되는데 맨 위 바위는 작고 이름이 없는 바위로 지나가는 사람들 눈요기 풍경이며, 2번째 바위는 덩치가 제일 큰 바위인데 추강 남효온선생이 이 암봉에서 좌고대를 보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추강암이라고 부르는데 좌고대는 추강암 아래 있어 조망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추강 남효온 선생은 1487년10월에 지리산 산행을 하고 지리산일과라는 산행기록을 남겼는데 지리산일과에서 좌고대를 오르기 위해 영신사에서 바위 벼랑을 올라 좌고대에 도착했는데 “온몸이 떨려 올라가지 못하고 이 바위에 올라와서 좌고대를 보았다. 이 바위가 좌고대보다 높다.“고 했다.
이곳에서 좌고대가 보이지 않으므로 아래로 내려서서 추강암과 좌고대 암봉 가운데에서 좌고대를 살핀다.
추강암이나 좌고대 암봉을 가운데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가 않아 보여 좌고대를 관찰하며 등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보는데 밑에서 위로 보니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과 같이 멋있는 좌고대, 위용을 드러낸 좌고대를 찍을 수 없다.
좌고대(座高臺)
보고 싶었던 좌고대의 풍경이다.
이 풍경을 보려고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며 이 풍경을 보고 감탄을 하며 그때의 상황과 기분을 기록으로 남겼다.
좌고대는 3단으로 된 큰 암봉인데 오르기가 만만치 않는데 맨 위인 3단은 히늘로 솟은 솟대같이 생겼는데 담이 약한 사람은 오를 수 없는데 그 꼭대기에서 반야봉, 노고단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리면 좋은일이 생긴다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오르기도 하는데 선인들의 기록에는 10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최근 좌고대를 선답한 사진들이 다양한데 좌고대를 어느 방향에서 찍느냐에 따라 그 모습과 멋을 나타낼 수 있는데 아마도 추강선생이 올라가서 보았다는 추강암에서 보아야할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강풍에, 추위에, 짙은 안개에, 안개로 젖은 바위때문에 추강암으로 오를 수도 없었고 좌고대도 2단까지도 오르지도 못했다.
(추강암과 좌고대 이야기는 별도로 올립니다.)
필자는 좌고대를 전혀 오르지 않을 수 없어 서측에서 1단을 올라섰는데 강풍과 추위가 안전을 위협했으므로 2단과 3단을 포기하고 조심스럽게 내려섰는데 좌고대는 서측이 아닌 추강암 사이로 오르는 것이 더 안전했으며 좌고대의 풍경도 아래서 찍었으니 뛰어난 사진을 확보할 수 없었다.
어정쩡한 상황으로 대충 수습하고 좌고대에서 영신사터로 향한다.
좌고대에서 대간 길을 따라 우측으로 접어들면 길고 긴 계단을 따라 내려서며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약50여m 정도 지나면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좌측으로 출입금지 표찰이 걸려 있는 곳이 영신사터 입구다.
입구에서 20여m 들어가면 동물관찰카메라를 지나고, 바위 밑둥을 지나고, 미역줄나무 넝쿨을 지나 10분 이상 들어가면 영신사 터가 나타난다.
영신사 터(靈神寺止)
선인들 산행기록에 나왔던 영신사터에 당도한 것인데 높고 험한 이곳에 영신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산행하고 100여편 이상의 글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곳 좌고대와 영신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사람은 청파 이륙, 점필재 김종직, 추강 남효온, 탁영 김일손, 어우당 유몽인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선인들의 산행기록에 영신사(靈神寺)의 가섭전(迦葉殿), 좌고대(坐高臺), 창불대, 영계(靈溪), 아리왕탑, 옥천, 비로봉, 그리고 가섭전 안에 몽산화상이 그려진 족자에 안평대군의 시인 비해당을 적었다는 보물들이 거론 된다.(영신사에 관한 이야기는 좌고대와 함께 별도 로 올립니다.)
영신사를 떠나며 어우당 유몽인이 동쪽에 있다고 한 비로봉을 보려했지만 짙은 안개로 비로봉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길이 잘 나있던 것이 아니었으니 좁고 위험한 길을 따라 영신사에 왔을 것이고 이곳에서 바위 벼랑을 힘들게 올라 좌고대등을 구경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옛 선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추강암이나 좌고대를 잘 나있는 지리산 주능선길을 지나며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영신사터에서 주변을 살피며 10여분을 있었는데 무척 오래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며 가야할 목적지를 생각하니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신사터를 떠난다는 생각으로 곳곳을 다시 눈여겨보고 가섭상 우측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길이 Y형으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우측길로 들어섰다.
크고 작은 바위를 넘고, 이따금 보이는 표지기를 보면서 오르는데 좌측으로 암봉이 하늘로 솟은 암봉이 보였는데 이 암봉이 영신사 동쪽에 있다는 비로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비로봉이기를 바라며 능선으로 이동했는데 복습을 하며 살피니 비로봉이었다.
금방 낙남정맥 능선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눈에 보이는 능선을 오르면 뒤로 또 다른 능선이 보이고, 힘도 들고 생각보다 겹 능선에다가 거리도 멀었는데 영신사를 떠나 25분이 지나서야 낙남정맥 능선에 도착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5분정도 휴식을 취했는데 영신사 이정목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섰다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좌고대와 영신사터를 돌아보고 오는 바람에 무려 1시간20분을 허비했는데 그래도 보고 싶었던 곳을 보았으니 기분은 좋았다.
휴식을 마치고 4분정도 내려서 창불대에 도착한다.
창불대(唱佛臺)
점필재 김종직선생 일행은 영신사보다 이곳 창불대를 먼저 찾은 것 같다.
그가 남긴 「유두류록』을 보면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라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능선 좌우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며 신흥사동, 청학사동, 쌍계사동을 설명하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호남절도사 이극균과, 호남 산적 장영기가 신흥사골짜기에서 싸움이 붙은 것 같은데 산적 장영기가 도망쳐 장흥에서 잡히니 그 공이 토벌 싸움을 한 이극균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장흥에서 잡히다보니 장흥부사에게 돌아갔다고 적었는데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모를 일이다.
7척의 큼지막한 바위가 평평한 대위에 놓여 있고 아래로는 천길 만길 깊이를 예측할 수 없는 절벽, 낭떠러지기다.
사람들은 이곳 창불대를 자살바위라고 부르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빨치산들이 이곳으로 쫓기다가 이곳에 투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믿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좋지 않은 명칭으로 부를 필요가 있나 싶다.
이곳 창불대에서 동쪽과 북쪽은 조망이 없으나 남쪽에서 서쪽으로는 막힘이 없이 뛰어난데 좌측으로는 촛대봉과 시루봉이, 연하봉뒤로 제석봉까지 보이고, 가운데 능선을 따르다가 삼신봉을 두고 좌로는 와삼신봉이, 우로는 내삼신봉이 앞을 막아섰다.
주변 조망은 이곳보다 건너편 전망처에서 보는 것이 큰 감흥을 느낄 수 있다.
건너편 전망대에 서면 조금전 있던 창불대가 절벽위에 가까스로 위치해 있고 깊고 깊은 벼랑은 아래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지며 창불대 대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바위암봉이 펼쳐지며 대를 이루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병풍바위 절벽이 끝나고 이어지는 깊은 계곡은 대성골로 이 계곡으로 계속 내려서면 의신을 지나 쌍계사 그리고 화개장터에 이르게 되는데 햇볕이 내려쬐는 산릉은 빗살 형태를 만든 산릉과 지능선이 아기자기하게 보이고 계곡 너머로 불무장등과 왕시루봉이, 멀리 백운산이 보기가 좋다.
창불대와 주변 경치를 보고 무명 암봉은 오르지 않고 창불대를 떠나 희미한 길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서면 희미한 3거리가 나오는데 세석대피소와 연결되는 길이다.
3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6~7분 내려서면 조망쉼터가 나오는데 왠지 생김이 미니 창불대 같다.
조망쉼터에서 내려서면 능선이 뚜렷하지 않은 평전이 나타나고, 어디가 능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서다 보면 정규등산로와 만나고 정규등산로를 따라 1분 정도를 내려가 바위쉼터에 도착하니 이곳이 음양수이다.
▷백무동에서 음양수까지 산행거리9.48km, 산행시간5시간58분, 해발1447m, 현재시간 09시58분이다.
○음양수에서 삼신봉 경유 청학동 구간
음양수(陰陽水)!
음양수의 사전적 의미는‘ 끓는 물에 찬물을 섞은 물이라는 것이라는 것인데 반대로 찬물에 끓는 물을 섞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유는 찬물은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음양 작용을 못한다고 한다나... 암튼 음양수는 미지근한 물이라는 얘기다.
암튼 음양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마시면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신비의 샘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인터넷에 음양수의 전설이 나오기는 하는데 오래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전설을 최근에 각색한 것 같아 전설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
1달만 지나면 70인데 음양수를 마시고 산신령에게 자식하나 점지해달라고...... 그런데 이를 어쩌나 샘물이 모두 말랐고 샘터에는 낙엽만 수북하게 쌓였다.
그러면 그렇지.... 산신령이 할 일이 그리도 없겠냐고........
음양수 뒤로 펑퍼짐한 너럭바위에서 가야할 방향으로 제한적인 조망이 가능한데 좌측으로 삼신봉이, 그 우측으로 내삼신봉이, 대성골 우측으로 불무장등능선의 황장산과, 왕시루봉 능선의 왕시루봉이 우뚝하고, 내삼신봉 뒤로는 희미하게 광양의 백운산과 억불봉이 눈에 들어온다.
음양수를 뒤로하고 등로를 따른다.
등로상태는 좋지 않은 편으로 등로에 주먹만 한 돌, 더 작거나 더 큰 돌들이 깔려있는데 그 위로 낙엽이 덮고 있어 잘 못 딛으면 발목이 뒤틀리는 현상이 반복되므로 조심스러웠다.
고도 차이는 거의 없어 평지 또는 약간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10분 정도 지나면 이정표(세석1.7km↔청학동8.3km)를 지나는데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1402.7봉은 좌측으로 우회하며 지난 것인데 산행을 하면서는 신경쓰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이정표에서 3~4분을 지나면 등로에 작은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지나온 능선을 볼 수 있는데 등로주변으로 잡목이 무성하므로 특정한 곳이 아니면 조망이 되지 않는데 이곳에서 세석을 가운데 두고 영신봉과 촛대봉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 능선을 확인할 수가 있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몇 발작 지나지 않아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망부석같은 바위가 나오고 이 바위에서 10분 정도를 지나면 의신 갈림길3거리가 있다.
의신으로 탈출할 수 있는 이곳은 세석에서 거림으로 탈출하는 등로가 있고 다음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며 이곳을 지나면 다음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의신 갈림길 3거리에는 이정표(세석2.2km↔삼신봉5.4km,↓의신마을5.9km)가 있다.
의신마을 갈림길에서 평범한 능선을 따라 25분 정도 지나면 다시 이정표(세석2.7km↔청학동7.3km)가 나오고 이곳에서 3~4분을 내려서면 반가운 석문을 만나다.
선답자들 사진에서 보았을 때 작게 보았는데 석문은 예상보다 컸는데 높이가 4m정도는 되어 보였다.
석문을 뒤로하고 5분여 지나면 키작은 산죽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산죽은 삼신봉을 가면서 계속 능선에 포진되어 있는데 산죽이 무성한 능선길에는 특별한 지형지물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주변 풍경이 없으며 지루할 즈음이면 이정표나 지리이정목이 나타난다.
능선을 지나다 시간을 확인하니 20분 전 12시,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이 이르기는 한지만 아침을 누룽지로 준비해 영신사터 일대에서 행동식으로 해결했으므로 조금 이른 시간에 하기로 한다.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12시, 다시 산죽이 무성한 등로를 따라 5분 정도 지나 1228.7봉(스마트폰은 1229m)을 지나고 1228.7봉에서 400m를 지난 지점에서 스마트폰 산길샘 지도에는 좌측으로 거림으로 탈출하는 길이 있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1228.7봉에서 15분을 지나 지도상의 1209.7봉을 지나게 되는데 1209.7봉을 지나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무명봉을 오르다가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며 암봉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10분 정도 쉬어간다.
사과 하나를 먹으며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기대가 생기고.... 그러다가는 먼 곳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같은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11월15일부터 12월15일까지 산행은 통제 상태였으니 아무도 지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리산, 낙남정맥에 이리도 지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등로를 따라 간다.
15분 정도를 지나 앞에 지도상의 1282.6봉을 접근하며 정상을 넘는가 했는데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우회하는 길에 앞에 삼신봉과 외삼신봉의 풍경이 제대로 잡히니 한동안 감상을 하고 조심스럽게 우회하여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산죽과 미역줄나무 넝쿨이 우거지 등로를 따라 15분 정도 지나 고사목이 있는 곳에 이르고, 조금전 지나온 1282.6봉 우측으로 영신봉, 촛대봉, 천왕봉이 모습을 나타내고, 가야할 방향 우측으로는 내삼신봉이, 좌측으로는 외삼신봉이 가깝게 보인다.
잠시 주변 풍경을 보고 10분 정도 지나면 삼신봉이 눈앞이다.
반가운 맘으로 접근하니 삼신봉 아래 어느 산인의 추모비가 있다.
잠시 기도하는 맘으로 보고,..... 설악산은 오래 다니면서 곳곳에서 이러한 추모비를 보고는 했는데..... 그래도 나는 30년 산을 다니면서 큰 사고 없이 다니고 있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모비 좌측으로 올라서니 삼신봉은 맞는데 뒤편으로 올라선 것이다.
(산행거리15.68km, 산행소요시간9시간52분, 해발1287m, 현재시간13시25분)
삼심봉(三神峰)!
삼신봉은 거대한 바위덩어리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북방향인 영신봉 방향과 서쪽인 내삼신봉 방향으로 오르고 내릴 수 있으나 서쪽이 정상적으로 삼신봉을 오르는 길이고 그 외 다른 방향은 절벽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삼신봉에서는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과 지리산 남부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낙남정맥은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남진을 하며, 남부능선은 서쪽 내삼신봉을 지나 상불재에서 쌍계사로 내려서는 길을 떨군 채 관음봉을 지나 성제봉으로 이어진다.
삼신봉에서의 조망은 매우 뛰어나다.
지리산 주릉인 천왕봉에서 길상봉인 노고단까지 여과없이 전체 모습이 드러나고, 영신봉에서 지나온 낙남정맥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내삼신봉이 가리고 있어 광양의 백운산은 보이지 않으며 외삼신봉에서 이어가는 능선과 거림 건너편 산릉은 아직 미답지로 위치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삼신봉에서 조망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서쪽으로 내려서면 이정표(↓세석대피소7.6km. 청학동2.4km↔쌍계사9.0km)가 있고 준희님의 삼신지맥 분기점 표찰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남부능선이라고 부르는 능선을 삼신지맥으로 부르는 것 같다.
이곳에서 가야할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처음에 계획했던 쌍계사까지는 갈수가 없는데 이유는 영신사를 둘러보느라 1시간20분이나 시간을 별도로 썼기 때문이다.
내삼신봉으로 가면서 의산 방향으로 탈출로가 있는지 검색해보지만 없는 것으로 판단해 이미 마음은 청학동 방향으로 무게를 싣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삼신봉을 지나 상불재에서 삼성궁으로 내려섰다면 좋을 걸 그랬다.
삼신봉 이정표에서 좌측 낙남정맥길로 들어서면 내리막길로 400m를 내려서면 3거리에 도착하는데 갓거리재인데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가면 외삼신봉이라고 하는데 낙남정맥 구간이다.
갓거리재에 도착했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는데 하산길이 이곳에서 청학동이나 거림으로 모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거림 방향으로는 길이 없고 무조건 청학동으로 내려서야 했으니 다음 산행 들머리 진입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갓거리재에서 청학동으로 내려서는 길은 10분 정도는 무척이나 가팔랐는데 10분이 지나면 조금은 경사도는 약해지지만 등로가 크고 작은 바위와 계단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계단의 높이가 높아 무릎에 계속 충격을 준다.
주변은 잡목이 주류를 이루다가 어느 때부터 산죽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산죽은 날머리까지 이어지는데 고도가 낮아지면서 낙엽송지대를 이루지만 철이 지나 노란 낙엽송 단풍도 볼 수가 없다.
내려서면서 특별한 쉼터는 없으며 등로 주변으로는 계속 너덜겅지대로 등로가 아닌 곳으로는 다닐 수 없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보며 50분을 내려서면 청학동 들,날머리에 도착하는데 입산금지 기간이므로 조심스럽게 내려섰는데 국공초소가 없어 안심하며 내려섰는데 포장된 길을 따라 1분을 내려서면 청학동 종점인데.... 아 이곳에 국공초소가 있다.
조금은 떨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니 국공초소에 지킴이가 없어 무사히 좀점으로 내려서 남부능선 1부 산행을 마친다.
▷백무동에서에서 영신봉~영신사터~삼신봉을 경유 청학동 종점까지 산행거리18.23km, 산행시간11시간10분, 해발761m, 현재시간 15시10분이다.
○이 후
청학동에서 화개장터까지 이리도 먼지 미처 몰랐습니다.
화개장터에 17시25분 버스를 예매했으므로 화개터미널로 가야했는데 악양택시에 전화하니 6만원인데.... 하며 깎아줄 의향이 있는 느낌이었고, 화개개인택시에 전화하니 5만5천원이라고 하는데 5만원에 합의를 봅니다.
나중에 지도를 검색하니 약55km가 나옵니다.
너무 일찍 산행을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택시 왕복시간이 있으니 출발10분 전에 화개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는 하동에서 출발하여 화개와 구례를 경유해서 남서울로 가는 버스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하동택시를 불러 하동에서 17시버스로 화개까지 매표를 했다면 간단하게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암튼 산행은 무사히 끝냈는데 다음 산행 들머리 진입이 문제입니다.
지리산, 남부능선 산행가이드북 ◎갈 때 ---동서울터미널(23:55, 59)->백무동(04:00) ◎올 때---하동 화개터미널(17:25, 19:25)->서울남부터미널(3시간25분소요) ◎들머리 접근방법 ▶동서울터미널에서 23:55, 23:59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타고 백무동으로 이동하면 03시20분 경으로 하절기에는 03시30분, 동절기에는 04시부터 입장한다. ◎날머리 탈출방법 ▶삼신봉에서 쌍계사로 하산하여 택시로 화개공영터미널로 이동하여 상경한다. ▶시간관계로 완주가 어려울 경우 삼신봉이나 내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하동으로 이어지는 버스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화계공영터미널에서 남부터미널로 상경하는 버스는 15:25, 17:25, 19:25가 있는데 19:25버스는 모바일예매를 해야 한다. ◎산행포인트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접어들어 지리산 세석대피서까지는 3시간~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백무동~쌍계사코스를 답사하는 경우 거리가 멀기 때문에 세석에서 음양수로 기존 탐방로를 이용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세석에서 지리산 주릉을 따라 3분을 지나면 우측에 한신바위가 있으며 이곳에서 2~3분을 지나면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에서 10분을 지나면 영신봉 이정목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측 금줄을 넘어 2분 정도 오르면 영신봉 정상으로 남부능선이나 낙남정맥의 시작점이다. ▶이정목으로 내려서서 반대편 금줄을 넘으면 남부능선이나 낙남정맥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좌고대, 영신사터를 탐방하고 능선으로 복귀한다면 1시간~1시간30분 정도가 더 걸리며 능선 복귀점에서 창불대가 5분 걸린다. ▶창불대에서 5분을 지나면 세석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며, 이곳에서 12~13분을 지나면 세석 정규탐방로와 만나, 2분을 내려서면 음양수이다. ▶음양수에서 20여분을 지나면 의신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고(이곳 다음 탈출은 청학동이다.), 25분을 더 지나면 석문에 도착하고, 이곳에서1시간30~40분을 지나면 삼신봉이다. ▶삼신봉을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는 와삼신봉이, 서쪽으로는 내삼신봉이 있는데 외삼신봉은 출입통제지역이면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낙남정맥이 되고, 내삼긴봉이 있는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남부능선이 된다.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탈출하는 갈림길은 남부능선방향으로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으며 외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을 따라 15분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갓걸이재에서 우측으로 하산한다. ▶갓걸이재에서 청학동까지는 1.7km인데 대부분 계단으로 이어지므로 실제로 느끼기는 더 길게 느껴지며 날머리에서 종점 주차장까지는 1분거리로 종점에 공단탐방안내소가 있다. ◎산행코스 ▷산행코스:백무동(04:00)-첫나들이폭(04:25)-가내소폭포(04:50)-세석4거리(07:20)-영신봉(07:51~58)-좌고대(08:14~22)-영신사터입구(08:29)-영신사(08:42~54)-남부능선(09:18~25)-창불대(09:30~36)-음양수(09:58)-의신갈림길(10:23)-석문(10:50)-삼신봉(13:52~14:00)-갓걸이재(14:18)-청학동날머리(15:24)-국립공원청학동탐방안내소(1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