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에서 <콩쥐팥쥐> 설화를 통한 문화교육의 가능성 글은 재미있고 가볍게 읽기에는 좋으나 토론을 위한 논점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환희의 다음 글로 토론자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싶다.
“이 지구촌에는, 특히 제3세계에는 뻬로와 그림형제의 <신데렐라>에 영향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전승되어 온 다양한 유형의 <신데렐라> 설화가 많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옛이야기의 세계를 탐구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서구 중심적인 시각과 잣대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모르던 옛사람들이 입말로 전해 준 민담과 신화에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힘든 삶을 살았던 백성들의 진솔한 인생관,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의 조언,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옛이야기 세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든 삶을 살아내야 했던 민중들에게는 밥상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이야기는 백성들과 함께 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지배계급의 핍박 속에 암흙같은 현실세계를 개척하여 더 나은 삶으로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해준다..
따라서 이 문학을 분석하는 일은 섣불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삶을 어느 정도 살아낸 개인 경험도 있어야하고 동서양 철학세계도 넘나들며 많은 공부를 하고나서도 어려운 단계임을 오랜 세월 아이들과 옛이야기 공부를 하면서 느꼈다.
먼저 본고에서는 공부하는 대상을 한국어 중.고급 정도 수준으로 정했는데 나이를 간과한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환생담과 징치담을 이해할 정도의 인식수준이 되려면 성인으로 대상을 한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콩쥐팥쥐를 텍스트로 활용하기 위해 쉬운 어휘로 구성된 교재가 필수적인데 동화로 재화된 경우가 많으므로 교사가 선택적으로 콩쥐팥쥐 작품을 활용해서 수업을 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교사교육의 부재를 인정해놓고 동화책 고르기는 교사에게 떠넘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대나 교대에서 옛이야기텍스트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도 우주공간을 소재로 다룬 옛이야기의 세계를 알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학교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옛이야기 세계에 대한 교사들의 수준은 먼 나라 이야기만큼이나 관심이 없다.
교재를 고를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들고 현재 나와 있는 재화나 개작의 경우 많은 문제점이 있음은 굳이 김환희의 주장이 아니라도 옛이야기 원형에 들어있는 화소를 철학적 근거 없이 맘대로 빼고 넣고 하는 추세인데 한국문화를 소개함에 있어 어떤 동화책 교재로 할지 명시가 되어 있지 않아 본고에서 주장하는 콩쥐팥쥐의 환생담과 징치담을 한국문화의 특수성으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 생긴다.
또한 신데렐라 판형도 프랑스의 샹드리앙과 독일의 신데렐라를 사용한다고 본고는 밝히고 있으나 두 판형은 서로 상이점도 많아서 묶어서 분석하는 문제점도 있고 신데렐라 전형이라고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디즈니판형은 독일형 신데렐라를 기본으로 만들어졌으나 이미 이 판형의 문제점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림형제의 아센푸텔은 빼로의 산드리용 만큼은 유명하지는 않으나 심리학자들은 빼로 판형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고 옛이야기의 매력과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다고 김환희도 말하고 있다. 기존 이야기의 되풀이인 디즈니식 신데렐라 분석은 새로움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빼로가 민담에서 지배세력에 필요한 요소만 뽑아서 원작을 많이 훼손했다는 걸로 알려진 작품을 분석하는 일은 교육적 효과가 적다는 생각이다.
김환희의 다음 글로 콩쥐팥쥐 분석의 마지막 오류의 근거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옛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뚜렷이 갈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전민담속의 인물을 잘 살펴보면 의외로 입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
콩쥐팥쥐 인물분석에서 우리 문화의 특수성이 콩쥐의 환생서사와 팥쥐의 징치담이라 말하며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징치로 끝냄이 현실세계의 축소판 같아서 우리문화가 현실적이다.라고 한 점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베트남과 중국의 서사에서도 행복한 혼인담으로 결말을 짓지 않고 후반부 서사를 복수로 이어나가고 있으며 다른 유형의 신데렐라 설화에서도 잔혹하게 복수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우리문화의 특수성이라 이름붙임은 광의의 해석을 한 것 같고 콩쥐팥쥐에서 우리문화의 특수성은 통과의례 수단에서 찾아야한다. 불과 물을 통해 연꽃과 구슬로 환생하는 점이 우리 문화의 특수성인 것이다.
본고는 한국의 콩쥐팥쥐의 특수성으로 무속신앙으로 연결하여 연구하는 추세가 일고 있다고 전하며 여기서는 범인류적인 차원에서의 문화적인 해석이 필요해서 콩쥐의 환생담과 팥쥐의 징치담을 우리 문화의 특수성으로 삼았으나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또한 물과 불을 통과하여 연꽃과 구슬로 환생했다하여 무속신앙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
콩쥐는 착함의 캐릭터임은 맞고 팥쥐는 악녀의 대명사임은 자명하나 두 인물의 성격을 단면으로만 고착시킴은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인물분석을 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분석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드라마의 정당성으로까지 확대해석을 하고있는데 요즈음 만들어지고 있는 트렌디드라마의 문제점을 옹호하는 듯하다.
쓸데없이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울고불고 하는 장면이 아침드라마의 단골주제다. 본고의 주장대로 콩쥐의 착한 캐릭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팥쥐의 악녀캐릭터 고착화로 시청률만 올리는 드라마가 안방극장의 주단골인 여자들에게 신데렐라 콤플렉스만 더 갖게 하고 진취적이고 생산적이며 개방적인 사고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한국 여성의 전체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드라마에 나오듯 콩쥐가 착하기만 하고 남성 의존적이며 연애만 생각하는 좁고 얄팍한 인물이 아니다. 계모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간절한 염원으로 인생여정을 살아낸 종합적 세계관을 가진 당당하고도 다부진 여성이었다.
비록 초기에는 자연물 조력자의 도움으로 선비를 만나 결혼을 했으니 소극적이고 착하게만 보일지 모르나 계모와 팥쥐에게 학대받아 슬프고 외로운 마음을 자연물의 도움으로 이겨냈을 것이므로 결혼 전 자연물의 도움장치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콩쥐는 결혼으로 현실 속 힘든 삶을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팥쥐에게 물에 빠져 죽는 고통을 겪음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가장 극심한 고통의 상태를 말하고 연꽃으로 피어남은 통과의례로 콩쥐의 성장을 의미한다.
한번의 고통으로 인생이 평탄대로를 가게 되는 것이 아니고 무수히 많은 고통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여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 그 비유로 불이 등장하고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구슬이라는 원만한 원형으로 환생하게 된다.
콩쥐팥쥐 이야기에서 콩쥐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또를 되찾은 것처럼 드라마 속에서도 콩쥐형 인물이 남자 주인공과의 오해나 갈등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풀어나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억지주장이다. 드라마의 콩쥐식 주인공은 불과 물을 통과해야 꽃과 구슬로 환생하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이 아니고 거의가 우연에 의해 해결되어지고 남자의 도움에 기생해 사는 소극적 인물들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콩쥐는 남편에게 마누라도 못알아 보느냐며 선비의 잘못을 꾸짖고 스스로 아내의 자리를 찾아가서 남편의 동반자로서 일생을 행복하게 이끄는데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 드라마를 콩쥐팥쥐류라고 쉽게 단정함은 우리 문화를 외국인에게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마치 드라마에 쓰이는 고전 캐릭터를 왜곡하여 사용하는 사례를 정당화하게 만드는 본고는 다른 각도에서 신데렐라와 콩쥐팥쥐를 비교 분석해야 교사들에게 지침서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연구목표를 달성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를 분석한 텍스트가 많이 나와 있다면 새로운 논점으로 글을 써야 교사들에게 신선한 배움을 줄 수 있다. 물론 본고가 드라마에 고전인물의 캐릭터사용과 실생활에 이용되는 쪽으로 시각을 넓힘은 소득이나 이 점도 식상하다.
디즈니판 신데렐라에 의존하여 여전히 신데렐라하면 왕자를 떠올리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아닌 당당하고도 개척적인 삶을 살려했던 프랑스 민담에 기대는 신데렐라상과 힘든 농경사회에서 육체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여자로서의 당당한 삶을 개척하여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더불어 동반자도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골라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콩쥐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거듭나게 해주면 좋겠다.
팥쥐가 언니 남편을 빼앗아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이상에 맞는 새로운 이성을 찾기 위해선 내면의 삶을 개척하는 일이 우선되어져야함을 알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기위해 모험을 떠나는 당당한 팥쥐상을 보여주면 좋겠다. 즉, 단지 외모와 단면적인 성격인 착함과 악함만으로 대별할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입체형 인간을 구상해내서 드라마 속 인물을 거듭나게 자극하는 연구가 되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