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솔재는
재가 아니다
내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등짐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부름이다
-본문[나에게서 솔재는] 중에서
13 나에게서 솔재는
나에게서 솔재는
재가 아니다
땅 속에서 애벌레로
칠 년을 버티는 매미 어미의 뱃속 같은 거다
올해 칠 일을 울었던 매미의
몇 백 세대 위의 할아버지의 바람이다
나에게서 솔재는
재가 아니다
내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등짐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부름이다.
솔재는
재가 아니고
천년을 기다려온
내 가슴의 굴곡진 갈비뼈다.
아 아퍼라
14 솔재 가는 길
방아고개 조금 더 가면
쓰러져가는 꽃재집
백년 기와 날아다니는 소리 들린다
비실 넘어 한참을 걷다보면
자귀나무 흐늘거리며
헛방귀 뀌는 소리 들린다
범재를 넘어
탕근암 근처에선
범재에서 쫓겨 온 도깨비들
웃음소리가 나무 사이로 돌아다닌다
장고개에서 숨 한번 쉬고 나면
망태골과 갈미봉이
하늘 떠받치는 것을 볼 수가 있지
밭으로 변해버린 소아장 근처 보리밭에는
보리깜부기가 한창이었지
그렇게 잊고 가다보면
있는 듯 없는 듯 솔재가 있다.
15 겨울비 솔재를 적시고
십 리 길 겨울 왕벚 낙엽 위에 흘린 눈물입니다.
겨울날 솔재를 적시는 겨울비는
망태골 할머니의 짓물렀던 눈가의 흔적입니다
십 리 길 왕벚나무들 바람 잡아 흔들어 보지만
겨울날 솔재로 내리는 비는
내
그리워하는 지치골 굴밤나무 밑 추억입니다
16 솔재 1
송풍리에서 오는 바람은
넘어오면서 끝이고
신정리서 가는 바람은
넘어가면서 시작인데
시작과 끝의 바람 내음은
내 마음에서만 다른 것인지
누가 가로막던
솔재를 넘나드는 물바람들은
눈치도 보지 않고
돌아가는데
능선에 억새풀은 누워서까지
방향을 틀며
시작과 끝을 보이려고
몸부림친다
솔재는 우리들 마음속엔 마지막 고개이지만
처음도 끝도 아닌 상태로 누워
가슴 찬 그리움으로
생각의 날끝
날려버린다
17 솔재 2
여기는 충청도 땅 끝재
봄바람을 언제나 처음 맞는 곳
여기는 금산의 마지막 재
겨울 찬바람 맨 나중에 보내는 재
눈꼽만큼 작아서
먼지만큼도 안 단다는 재
솔재
오늘 하루만이라도
있는 듯 없어 보이는 솔재에다
처음과 끝의 의미를 펼쳐 보인다
18 솔재 3
유월이 오면
솔재 날망 산꽃들은
여름비 맞으려
꽃잎도 감추고
꽃가루도 날려보낸다
유월이 오면
솔재 날망 산새들은
짝에 대한 그리움에
여름비 속 산꽃들을 찾아다닌다
유월이 오면
송풍리서 온 구름 아래서
산새도 산꽃도
헤어짐이 두려워 온 몸으로 솔재를 부른다
19 솔재 4
봄이 오면 아지랑이 몰고 오는
봄바람 소리를 보신 적 있나요
여름이면 비구름 몰고 오는
여름바람 소리 만져 본 적 있나요
가을이면 안개를 떼지어 데려오는
가을바람 소리 느껴 본 적 있나요
겨울이면 떠나버린 것이 허전해
울고있는 겨울바람 소리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바람소리 그리운 사람들
눈 한 번 크게 뜨고 솔재에 서면
때 없이 만날 수 있지요
20 솔재 5
갈미봉 아래로
고개 같지 않은 고개에
산나리는 보이지 않는다
허수아비도 보이지 않는다
갈미봉 바라보며
넘을 땐 고개인지 평지인지도 모를
작은 고개 솔티재에
도라지꽃이 피어 있다
21 솔재 6
여름 내내
딴전만 피워
송 씨 아저씨
가슴을 태우더니
무슨 환영받을 일 있다고
솔재
논다랑이 나락
숨을 죽이게 하느냐
가을비야
올 때를 알고
왔으면 좋았을걸
22 솔재 7
하늘에서 오는 눈은
솔재를
구분하여 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리 눈이 내린다고
생각할 뿐이지
하늘에서 내린 눈은
솔재를
등분하여 녹는 것이 아니다
햇볓에 따라
녹고 얼고 하는 것이지
사람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지
하늘에서 온
선물을
솔재에서 받으면
눈이 올 대는 언제나 그렇다
23 솔재 8
도대체 말이 없다
바람은 언제 넘어갔는지
바람 따라
소리없이
넘어간 세월, 사람 사랑
덤으로 함께 간
그리움들
도대체 말이 없다
솔재는
사라진 바람이 언제 다시 일는지
기다림은
오늘 아침에도
재 언저리로
안개 되어 올라온다.
24 별빛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도
솔재는
촉 틔우는 숨쉬기를 하고
별빛이 숨어 버린 밤에도
꽃 만들기 숨쉬기를 멈추지 않는다
솔재의 멈추지 않는 숨결 속으로
오늘도 별빛은 영혼을 담근다
25 빼벽(秀壁)
兩角山을
바라보며
촛대바위로 스치는
한 점 솔바람으로
흐르는 물 잠재우는 곳
하늘에서
옥루(玉淚) 받아
赤壁으로 가는
물 먹는 날
龍이 움트림 치고
도깨비 춤추는 곳
赤壁은
저만치에서
얼굴 붉어져
숨 고르는 곳
빼벽(秀壁)에서
잘생긴 돌 하나 주워
하늘로 올리고 싶어라
26 光山 金氏네 장독대
님이여
당신은
가슴속에 무엇을 저미고 살았길래
이리도
그리운 환(圜)을 치실 수 있나요
저
용기를 가지고
당신의 손마디에서 살아난
鶴은
아직도
당신의 마음을 숨쉬고
당신의 굵개에 얹혀 밀려오는
파도는 소금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나
이제
鶴을 불러 날갯짓하고
파도를 빌려 배를 띄워
당신이
가마 속에 뿌렸던
땀방울을 찾아
메주도 없고
간장도 없는
光山 金氏네 장독대를 찾고 있습니다.
28 좌도농악
하늘의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달 뜨는 소리
별 뜨는 소리
해 뜨는 소리
바람 흘러가는 소리
구름 머무는 소리
구름 속에서 빠져 나오는 천둥소리
십이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
꽹매기 한 자락에
숨어 있는 하늘 소리가
내 마음 움직이면
눈만 감아도 들려옵니다
해달별바람구름물소리
그대 가슴
휑하니 뚫리는 날이 있거든
어디 한번
좌도가락 두들겨 하늘 소리 꺼내보세요
해달별바람구름물소리를
29 금산이 아름답다
금산이 아름답다
진악산이 그렇고 적벽강 천내강이 그렇고
금산이 아름답다
보름날 밤 어재리 앞 강가에서 보는 산들
아지랑이 먼저 오는 솔재가 그렇고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봉황천이 그렇고 진산이 더욱 그렇고
금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산야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기 때문이라.
탓하지 말자, 아름다운 곳에서는
깨끗한 마음만을 가지고 살자 아름다운 곳에서는
다들 고귀하게 사는 금산
금산이 아름답다 아름다워
때묻었다 생각 드는 사람은 십이폭포 밑에서
한 시간만 물을 맞아보세요
그것도 금산이 아름다운 것
대둔산 미륵바위가 그렇듯이
30 소전다리
봄이 오면
소전다리 밑 자갈밭 위엔
언제나 서커스 무대 열리고
아이들은
원숭이 난장이 보고 싶어
천막을 뜯었다
다리 옆
옴팡집 아줌마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
막걸리 한잔 내놓고 싶어
미소로 봄을 맞이하고
사람들을 불렀다
봄이 오면
소전다리 위에는
가난한 사람들 내음으로
가득했는데
소 한 마리도 없는 소전다리엔
헐렁한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들만 오고간다.
31 더그내
봉황이 흘린 눈물입니다
검은 바위 밑에서 살던
거북이의 땀방울입니다
봉황이 흘린 눈물
거북이가 흘린 땀방울
더그내에 가면은 明鏡 되어
하늘을 품고 흐르고 있습니다.
32 수리넘어재
수리넘어재 솔바람소리
들어본 적 있나요
건천리 깊은 숲
송홧가루 내음 맡아 본 적 있나요
아니면
순진한 사람 보고
건천리서 왔냐고 하는 소리
들어 본 적 있나요
수리넘어재 솔바람 전설을
가슴에 묻어 두고
금산에 솔바람 내음 갖고 삽니다
그저 그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33 사기소 1
봄 올 것이다
솔공재 너머로
겨울도 꼭 올 것이다
성황당 품으로
사계의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천년을 숨쉬며 돌았으니
처음도 끝도 없는
사기소
하늘의 숨쉬기는
오늘도
동천에서
웃음으로 인간을 본다
34 사기소 2
솔공재
성황당 아래로
하늘 가는 길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사기를 굽던 불꽃을 타고
하늘로 가려고 했다
사기 조각은
땅 속으로 숨어 보이지 않고
솔공재 성황당은 허물어졌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불꽃
잊혀지지 않아
아직은 하늘가 희망은
살아서 동네를 돌아다닌다
35 방아고개
자갈 먼지에
문 못 열고 살던 방아고개 사람들
이제
자갈 먼지가 그리운가 보다
인삼발 한죽고개 위에 서 있고
막걸리 한 잔 흘러내리던
그런 자갈 먼지 내음이 보고픈가 보다
모두들 떠나
외롭게 문 열어 놓고
서울 간 아들 올세라
기다림에 지친 간난네 할머니
그렇게도 숨막히게 바람에 날리던
자갈 먼지 이제는 만지고 싶어
처닫기만 하던 문을 활짝 열어 놓는가 보다
방아고개 넘어
꽃재집 갈 때에
언제고
자갈 먼지가 뒤를 따라다녔다
36 장터
쎔삐 공장에서 과자 굽는 냄새
온 동네가 고소했는데
튀밥 튀는 소리
해질녘이면
온 동네가 흔들거렸는데
어쩌다 바라보는
장터엔
나이 드신 할머니 담배 빠는 소리만
힘없이 나돈다
헐거웠던 정이 있고
삶의 껍질이 묻혀 있던 장터
그 흔한 제비 한 마리
찾지 않는
마음 아픈 흔적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대장간
뜨거웠던 쇠 녹는 소리마저도 사라져버린 장터
아무도 마음 주는 사람이 없다
37 음대리
둥구나무
세월 못 이겨
떠난 뒷자리에
애기나무
외롭게
나이테 만듭니다
38 홍도티
홍도티 아이들
비만 오면
무조건 일찍 학교에서 집으로 갔지
다리가 없어서
장마가 오래 지속되는 날
학교에 안 와도
결석처리가 되지 않더니
어릴 적 부질없이 부러웠던
물 건너 마을 아이들의 아들들
이제
그런 특혜가 없어졌다
39 보리깜부기
보리 깜부기 익을 때면
아이들은
얼굴에 검은 그림을 그린다
그 나이에 되고픈 사람이 그리워
크레용 아까운 마음으로
꿈을 그린다
소아장 지날 때면
보리깜부기
언제나 아이들의
꿈을 불렀다
40 가을 끝으로 오는 비
추수가 끝난 들판 위로
여름 내내
우리 아버지가 흘린 땀 찾으러
가을 끝으로
비가 찾아온다
논바닥에
남아 있는 건
떨어진 아버지 장화 자국뿐인데
빗물은
소리도 없이
머물고 있다
들새마저 다 날아간
논 가운데
우리 아버지가 흘린 담
가을비 타고
영영 하늘로 가는가 보다
41 운장산의 토요일
마당에 노는 닭들도 토요일
토요일 오후
프르러 내려오는
나뭇잎마저 토요일
토요일 오후
운장산 토요일 오후 속에는
닭 벼슬 나뭇잎마저도
生死無別
세상 이치는 다 그런 것
혼자 내버려 두었으면 좋으련만
이 산골에
토요일 오후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꼭 쓸데없이 귀촉도 욱고 간 자리로
운장산 토요일 저녁은
夜壇法席
42 운장산에 도는 華起
운장산에 도는 起雲은 天桃華起입니다
이 起雲은 境界가 없습니다
그러니
운장산 산신령이라도 좋아할 수밖에요
운장산에 도는 起雲은 天桃華起입니다
첫댓글 솔재.내기어히 가보오리다 ....................
솔재 넘어에 한식집의 맛도 괜찮코, 용담댐에서의 커피도 맛있고, 용담댐의 주위 60km를 한바퀴도는 드라이브도 좋고, 솔재위의 성봉의 정자에서의 휴식도 멋지고, 그외 등등~~~~~
금산이 아름다운 것은, 고향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나고 자란 산천의 흙내음을 사랑하시는 금산둘레산행을 하시는 아름다운 분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네 그런것 같습니다 ...
무심히 그냥 지날 수 없을것 같습니다.. 솔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