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아래 보이는 암자가 도솔암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투구바위가 있는 투구봉입니다.
선운산의 견치산(개이빨산, 349m)
교감님 넘어로 보이는 산이 비학산(307m)입니다.
선운산의 바위들이 마치 평풍처럼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올라갔던 선운산의 천마봉,
이 천마의 꼬리털들이 심원 풍천에 떨어져 뱀장어가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교감님께서는 저희들에게 그 유명한 풍천 장어구이를 사주고 싶어하셨는데,
지금은 진짜 풍천 장어가 거의 없고, 외지에서 온 장어뿐이라고 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선운사를 떠나면서 차안에서 본 상사화 군락지
꽃무릇은 흔히 상사화(相思花)로 잘못알려져 있는 꽃입니다.
이 꽃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고 합니다. 먼 옛날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스님은 가슴앓이를 하다가 결국 상사병으로 쓰러졌고, 그 자리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이 꽃이 바로 상사화라고 합니다.
절 주변에 상사화가 많은 것은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상사화로 물감을 만들었기 때문.
상사화 뿌리를 짜낸 즙을 칠하면 좀이 슬지 않고 색도 바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이 떨어진 다음에 잎이 나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슬픈 사연 때문에
상사화라 불린다고도 하는데 정작 상사화란 이름을 가진 꽃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백합목 수선화과의 상사화는 중국이 원산지인데 8월에 분홍, 노랑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역시 같은 백합목 수선화과의 꽃무릇은 석산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 들어왔으며 9월에 산이나 들에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길게 퍼지는 수술들은 왕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화려함은 다른 꽃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꽃은 상사화나 꽃무릇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나
특히 꽃무릇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 붉은 꽃의 화려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만큼 그 개화시기도 짧은 편인데 음력 백로 경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답니다.
참고로 꽃무릇을 촬영할 때에는 그늘에서 찍어야 색상이 잘 표현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침 해가 뜨기 전이나 흐린 날에 촬영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연화봉 초당터 표석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갈꽃 사이에 연화봉 초당터를 알리는 표석이 오뚝하게 서있었습니다.
연화봉은 선운사가 자리한 선운산의 서북쪽 자락입니다.
북쪽으로 국립공원 변산반도가 마주하고,
서쪽으로 황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남으로 영광군에 위치한 대각(大覺)성지,
북으로 변산의 봉래산 허리에 제법(制法)성지가 위치합니다.
연화 삼매지올라가는 길
연화 삼매지는 대종사님께서 1916년 대각을 이루셨는데, 그 직전인 1915년에 이곳에 계셨으니,
치열하게 구도하시던 자리라고 합니다.
초당터는 경사진 산비탈을 수백 미터 오른 곳에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넓고 곱게 닦여 있고 계곡의 흐름 따라 축대가 정성스럽게 쌓여 있었습니다.
산비탈에 가지런히 늘어선 전나무 소나무들 사이로 맑고 산뜻한 기운이 감돌고,
소복하게 이어진 푸른 춘란 무더기가 운치를 더해주었습니다.
올라가는 도중 대종사님께서 쓰시던 연화정(蓮花井)이라는 샘이 있었고,
한겨울에도 이 샘의 찬물에 목욕하면서 정진하셨다고 합니다.
연화 삼매지에서 올라가는 길 왼편에 '연강김준상(蓮岡金駿相)선생묘소'로 가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연강 선생님은 서울까지 왕진을 불려갈 정도로 이름난 한의사였다고 합니다.
특히 피부병을 잘 치료하는데 유명하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연화 삼매지 초당은 장기 환자들의 요양을 위한 숙소였는데,
팔산 김광선님이 대종사님을 이곳으로 치료차, 수양차 모시고 오신 왔다고 합니다.
당시 대종사님은 팔산 김광선님이 마련해주신 솜옷 한 벌, 쌀 한말, 소금간장으로 3개월을 지내고
쌀을 4되나 남기실 정도로 밤을 낮 삼아 처절한 정진을 계속하셨다고 합니다.
'연화 삼매지' 비
'원불교사적지/연화봉초당터' 표석과 함께 초당터가 단을 지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앙에 3.3미터 높이의 '연화삼매지(蓮花三昧地)'비가
양쪽 석등의 장엄을 받으며 멀리 봉래산을 바라보고 있다.
비는 넓은 화강암 지대석 위의 기단에 격협간을 마련하여 연꽃을 양각하고,
높이 180㎝, 너비 65㎝, 두께 34㎝의 오석(烏石) 4면비,
그리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앙연(仰蓮)을 새겨 탑갓을 삼았습니다.
비문에는,
'여기는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산 77의 2,
소태산 대종사 정진입정처(精進入定處) 연화봉 초당터다.
우리 대종사 구원겁래의 서원으로 일찍이 발심(發心),
온갖 정성 바치시고 갖은 고행 닦으시되
그 소원 그 의단(疑團) 풀길 없어 한스러운 적막의 나날 지새우실제
딱하게 본 팔산 대봉도 명의 연강선생의 초당을 빌려 여기 계시게 하니
얼음물에 목욕하고 찬방에 밤새우며
한말 쌀 한되 간장을 절반 남기시는 사무친 삼동정진이 이에 이루어졌다.
새해 들어 연동낭자(蓮洞娘子) 일지춘심(一枝春心)에
맑은 기개 한껏 보이시고
하산하시니 원기 전1년이라.
거룩할사 이 터전 새부처님 대종사의 연화삼매지여,
산하 대운이 진귀차도(盡歸此道)로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범산 종사가 중앙문화원 이름으로 1984년(원기69년 5월10일)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연화 삼매지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기 전, 정진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전나무와 소나무가
늠름한 모습으로 연화 삼매지를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연화 삼매지 비 뒷면의 글
연도심수 천봉월(硏道心秀 天峰月)
도를 닦은 마음은 천개의 봉우리 위에 있는 달처럼 빼어나다.
수덕신여 만괵주(修德身如 萬斛舟)
덕을 닦은 몸은 6만가마를 실은 배와 같이 진중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어느 때에는 구도의 열의는 불타 올랐으나
어찌할 방향을 몰라서 엄동 설한 찬방에 이불도 없이 혼자 앉아
'내 이 일을 어찌할꼬'하는 걱정에만 잠겨 있었다.
근동 연장(年長) 친우로 있던 지금 팔산(八山)이 내 뜻을 알고
매일 아침에 조밥 한 그릇을 남 몰래 갖다주므로
나는 그것을 두때로 나누어 소금국에 먹었었다.
두발(頭髮)은 길어서 사람 모양이 아니고
수족은 얼어 터지고 수염은 입김에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구도의 열성은 하늘에 뻗질러서 조금도 쉬어본 일이 없었다.
[선외록 구도도행장 4절]
"또 어느 때에는
무장 선운사(茂長禪雲寺)에나 가보면 이 뜻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런 계책이 없었다.
애를 태우고 있던중 또 팔산이 내 뜻을 알고
선운사 부근의 제각 한 간을 얻어서 쌀 한말과 간장 한병을 마련해 주고 갔다.
나는 거기서 주야 불철하고 일천 정성을 다 올리고 있었다.
그러는 중 하루는
그 제각 주인의 당혼한 딸이 부모 몰래 찾아와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마음이 일어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三개월간 적공을 드렸더니 참된 소망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로 내려오기로 작정하고
가지고 갔던 쌀을 살펴보니 절반이나 남았고
핫옷 한벌 입고 간 것은 떨어져서 형편 없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세속에서 잘 지낸 사람보다 오히려 좋다고들 말하였다."
[선외록 구도고행장 5절]
법회를 준비하는데 어르신들께서 능숙한 솜씨로 다 준비하셨습니다.
법회를 준비하는데 어르신들께서 능숙한 솜씨로 다 준비하셨습니다.
교감님께서 연화 삼매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연화 삼매지 비 옆에는 작고 예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연동낭자님이 아닐까요?
[교감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로 했던 소태산 대종사님의 로맨스]
- 이전에 교감님께서 여러번 말씀해 주셨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연화지 초당에서 혼자 계시는데,
대종사님를 연모하던 연강선생의 둘째 따님 연동낭자가
간혹 와서 밥도 짓고 나물국도 끓여놓고 갔다고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병이 드셨지만 장부의 모습이셔서 반하실 만 하셨을 것입니다.
낭자의 연모 고백에 대종사님께서는 장부의 기상으로 '나를 여기 있지 못하게 하느냐'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후에 연동낭자는 출가를 하셨다고 합니다.
연동낭자님은 부처님 당시의 수자타 낭자 같은 분이 셨을 것입니다.
어여쁜 여인 수자타(Sujata).
구도자 고타마가 나이란자라 강 언덕에 이르렀을 때는 극단적인 수행 끝에 피골이 상접하였습니다.
죽음의 어귀에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 우루벳라의 처녀 수자타였습니다.
그녀가 공양하는 우유 죽으로 구도자는 정신을 차린 후 보드가야 큰 보리수 아래를 수행처로 삼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8일 이른 새벽별을 보며 우주의 혼을 통하는 정각(正覺)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의심을 풀어낸 불타(佛陀)가 출현하였으니,
새벽별빛 같이 정갈한 여인의 공덕이 세상을 다 채우는 순간이었습니다.
연화 삼매지에서 법회
대종사님도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법회를 마치고 모두들 힘을 합해 정리하였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모두들 힘을 합해 정리하였습니다.
연화 삼매지에서
연화 삼매지에서
(계속)
첫댓글 연화봉 초당터는 초행길이라 많이들 말씀하시던데.. 쉽사리 찾아가지지 않는 성지란 뜻이겠지요?
찾아가는 발길과 오롯이 마음모아 기도하는 우리들의 정성을 가득 담으셨네요~~!!!
성지순례는 여러번 갔었지만 연화봉 기도터에는 처음 갔었지요. 참으로 뜻 깊은 곳에서 기도를 하고 왔기에 이번 순례길은 또 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사진 밑에 해설까지 잘 해주신 성우님,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