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우( 대구 소선여자중학교 1학년)
어머니께.
어머니, 벌써 제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14년을 자랐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저를 14년동안 키워주셨습니다. 허리가 부러지는 아픔을 견뎌내 가면서 저를 키우시기도 했고요. 14년, 어떻게 보기에는 짧은 시간인 것도 같고 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꽃들이 황홀하게 만발하다가
폭풍우 쳐 뿌리가 가만히 있을 날이 없다가, 그저 흘러가는 세월이 그러려니 하며 대책없니 속수무책으로 지냈던 날이 있었겠죠. 하지만 전 아직도 어머니께서는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인가요. 제가 어렸을 때의 아버지는 가끔 드시던 술로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어머니는 늦도록 아버지께서
안 들어오시면 '빨리 자렴'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마다 저는 우울해졌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소리를 들으면 저의 베갯닛은 젖어들어가고 방문을 확 열고 나가서
아버지께 제발 그러지 마라고, 술 좀 그만 드시라고 미친 듯이 말하고 싶었죠.
하지만 전 그러지 못했습니다. 닳는 듯한 기도로 소원을 빌어봐도 소용 없었습니다. 그 긴긴 암흑 속의 밤,,,밤이
점점 깊어만 가고, 어제는 해가 떳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도 늙으셔서 그런지 술도 안드시구요.
전 부모님께서 점점 늙어가시는 것이 싫지만 이 점만은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들이 어머니 속을 썩입니다. 죄송해요. 저희들도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한다, 말씀대로 잘 따라야 한다고 다 알고 있는데도 짜증이 납니다.
고3아들에 이제 막 사춘기 때에 접해 한창 예민해 있는 중1짜리 여학생 저, 그리고 아버지의 투정까지...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직장인이라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마루가 온통 검은 찰흙인데,
아침에 바람이 잘 들라고 열어 놓은 창문에서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저녁 바람까지,
이런 말은 어머니께 처음 털어놓는 말이네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녁을 드시면서 오늘은 누구 선생님이 '어떤 애가...'라고 시작하시는 당찬
말씀에 전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직업이 교사라는 것도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정신도 없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네요. 그 노력은 정말 어머니께서 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우리 가족을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
학생들이 나오는 퀴즈프로그램을 보면 결국엔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이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 아직 숫기가 없어서인지 사랑한다는 말은 잘 못하겠어요. 마음은 그것 하나뿐이지요.
언젠가 크면 그 숨기고 숨겨왔던 제 마음속 어디 귀퉁이에서 불을 붉히고 있는 그 말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 주실거죠?
2004년 7월 27일 화요일
속리산에서의 두번째 밤이 깊어가는 방안에서
어머니의 사랑하는 딸 연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