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례(李聖禮 마리아 1800-1840) 최경환 성인의 부인이며 최양업(토마) 신부님의 어머니이다. 본래 부모와 함께 어린이를 투옥시키는 일은 국법에도 없었으나 큰 아들을 유학 보낸 이 집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옥에 갇힌 다섯 아들은 희정(羲鼎 당시 15세) 선정(善鼎 당시 12세) 우정(禹鼎 당시 9세) 신정(信鼎 당시 6세) 그리고 젖먹이였던 세 살짜리였다. 한데 갇힌 최씨 일가의 비극은 그때부터 절정으로 치달았다. 우선 굶주림이 닥쳐왔다. 이들 어린이를 옥에 가두긴 했어도 국법에도 없는 일이라 밥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밥 한덩이가 나오면 어린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어른들은 굶었다. 세 살짜리 막내는 그나마도 얻어먹지 못해 어머니의 빈 젖을 빨다가 첫 옥사자가 되었다.
젖먹이가 죽자 어머니 이성례는 실성을 했다. 그대로 가다가는 아이들을 모두 굶겨 죽이겠다는 모성애에서였을 것이다. 짐짓 배교하겠노라고 말하고 네 아들을 데리고 풀려 나왔다. 이때부터 어린아이들은 서울의 골몰골목을 누비며 걸식을 다녔다. 어느 집에서나 이들을 불쌍히 여겼으나 배교를 아는 교우들은 밥을 주지 않았다. 옥에 갇힌 남편 생각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이성례는 아이들을 동냥 보낸 사이 남편 곁으로 돌아갔다. 다시 갇힌 몸이 된 것이다. 그러자 15세부터 6세까지의 4형제가 부모를 가둔 옥을 찾아왔다. 그들 어린 형제들은 창살을 붙들고 어머니를 목메어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 한번의 배교를 겁냈다. 돌아앉아 어린 아이들이 울며 부르짖는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등을 보인 채 미동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 그래도 일찍 철이 난 15살짜리 희정은 어머니가 다시 배교할 것이라고 생각되자 울부짖는 어린 동생들을 달래서 발길을 돌렸다. 그리하여 4형제 거지는 다시 장안의 떠돌이가 되었다. 이제는 어느 집을 가도 쌀과 음식을 한아름씩 안겨주었다. 이들 4형제는 동냥한 음식을 틈틈이 부모에게 사식으로 넣었다. 한번은 어느 부자집에서 먹으라고 준 인절미를 가슴에 품고 옥리를 찾아가 얼마를 떼어준 후 사식을 넣는데 성공했다. 그 인절미에는 어린 아들의 손가락 자국이 아들의 체온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 인절미를 메이는 목으로 어떻게 넘겼을 것이랴. 이 눈물겨운 정경이야말로 백육십년이 넘은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뜨거운 감동을 준다.
최경환의 부인 이성례가 당고개, 지금의 서울 용산구 신계동 언덕에서 참수 치명한 날은 음력 1839년 12월 27일(양력 1840년 1월 31일)이었다. 15살 난 둘째 아들 희정은 가끔 옥사장에게 사정하여 푼푼이 모은 돈을 신바닥에 숨겼다가
어머니에게 갖다주곤 하였다. 이성례는 아들의 머리를 빗겨주면서 "아무쪼록 어린 동생들을 각별한 사랑으로 보호하고 친척집에 각각 데려다 주고 지내자면 중국 마카오에 가 있는 너희 형이 나와 자연히 안배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며칠 동안은 오지 말라고 일렀다. 치명하는 날에 아들을 보면 미진한 육정에 끌릴까 보아서였다. 희정은 어머니가 오지 말라는 뜻을 알고 가슴이 막히고 슬픔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나이 어린 4형제는 온종일 동냥한 돈 몇 푼과 쌀자루를 메고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희광이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우리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단칼에 하늘나라로 가도록 해 주십시오" 하며 가지고 온 돈 몇 닢과 쌀자루를 통째 내밀었다.
4형제의 눈물겨운 '청탁'은 희광이들의 가슴을 움직였다. 희광이들은 밤새 칼을 갈아 달빛에 비춰 보았고 이튿날 당고개에서 그 약속을 지켜 주었다. 그날 구경꾼들은 더 못 나가게 막아 놓은 삼줄을 헤치고 앞으로 나와 어머니 이성례가 단칼에 치명하고 희광이들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먼발치로 바라본 어린 4형제는 동저고리를 벗어 하늘에 던지며 용감한 어머니의 순교를 기뻐했다고 전해온다. 당시 장안에서의 순교자들은 모두 시구문으로 불렸던 광희문 밖에 내버렸다고 하는데 그날 하루만도 당고개 아래로는 너무 많은 시신이 굴러떨어져 시구문 밖에 문자 그대로 시산(屍山)을 이루어 어린 형제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다만 옥리들의 배려로 아버지 최경환의 시신은 친척들이 거두어 그들 가족이 마지막 살던 수리산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