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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기둥 '뻴 로 리 뉴'(Pelourinho)!
여러 까미노에서 뻬레그리노 생활 100일이 훨씬 넘는 동안에 최초로 알베르게의 첫 입실자가 되었다.
작은 2층 건물의 1층에 꾸며졌으며 7개의 벙크가 3방에 분산되어 있는(3-2-2) 소규모 숙박소다.
협소하지만 벙크의 층간 높이가 여유로운데다 주방시설이 있어서 내게는 무난한 집.
3개의 방, 7개의 벙크 중에서 임의로 선택할 수 있게 된 베드 중 하나에 백팩을 놓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우선순위에서 알베르게에 밀렸을 뿐 궁금하기로는 단연 첫째인 돌기둥한테 가기 위해서 였다.
조금 전, 삼각 광장 중앙에 서서 걸음을 멈추게 했던 돌기둥이다.
뽀르뚜갈 특유의 돌바닥 삼거리의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는 둥근 돌기둥.
낯설지 않은데도 가물거리고 머리 주변을 맴돌 뿐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오후의 마을 탐방 때
로 미루고 숙소(albergue)부터 찾아나섰던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Largo Praça)에 당도는 했으나 누군가에게 물어야 하는데 물음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 낙망인 순간
에 퍼뜩 떠올랐다.
낯이 설지 않은 이유가.
(가물가물할 뿐 선뜻 생각나지 않아서 안타까워 하는 빈도가 점차 늘어가는데 건망증세일까?)
'뻴 로 리 뉴'(Pelourinho)!
수일 전, 유산의 마을 삐녜이루 다 벰뽀스따(Pinheiro da Bemposta)에서 본 것(刑具)과 동일한 형구다.
시청이나 공식 기관 지근의 공공 장소에 세웠으며 범죄자 또는 체납자를 공개 처벌하는 기구라는.
스페인에서는 중세 사법권을 상징하는 '로요 후리스딕시오날'(Rollo Jurisdiccional/재판의기둥)이라고
하는데 뽀르뚜갈에서는 'Pelourinho'(옛날죄인에게씌우던 칼/mamueline pillory)라 한딘다.
프랑스 길의 보아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와 마드리드 길 비얄론 데 깜뽀스(Villalon de
Campos)의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 등 스페인에서 눈익었던 돌기둥이다.
그 밖에도 까미노 도처에서(까미노 외의 길은 거의 걷지 않았기 때문에 볼 기회가 없었지만) 보기를 거듭
하였으므로 낯익을 수 밖에.
이처럼 도처에 사법재판권을 강조하는 기둥들이 서있는 의미(까닭)는 무엇인가.
교회 권력의 전횡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역설(逆說/paradox)에 다름 아니다.
한 손에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의 입상을 왜 세웠는가.
정의와 형평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정의와 형평이 보편적인 사회에는 디케가 출현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데, 재판의 기둥이 왜 이 곳(삼각광장)에 세워졌는가.
삐녜이루 다 벰뽀스따의 뻴로리뉴가 있는 곳은 위층은 행정 및 사법 서비스 공간(Paços do Concelhos)
이었고 1층은 감옥으로 활용했다는 옛 청사 옆 공지라 지당한 위치지만 이 곳은?
정작, 궁금한 것은 풀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기초지방자치제의 시행 이후 시군구 읍면동을 망라해서 자칭 향토사학자가 지천인데 반해
이곳에는 그같은 사람(자칭 향토사학자)이 없기 때문이다.(내가 만나지 못했을 뿐인가)
도나치부(donativo/기부제) 알베르게가 사라져가고 있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도나치부(donativo/기부금 방식) 알베르게라는 안내판에 맞춰 10€를 꺼내놓고 자리에 누웠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을 뿐인데 젊은 이딸리아노(Italiano) 둘(2)이 들어왔다가 투덜
거리며 바로 나갔다.
'피콜로'라는 말이 들린 것으로 보아 몹시 좁다는 불평으로 짐작되었다.
(piccolo는 관현악의 작은 악기 명(名)인데 작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니까)
늙은 내게는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그들은 왕성한 체력의 청년들이다.
아직 한낮을 지났을 뿐인데 좁은 골방에 머물려 하겠는가.
더구나 순 방향 뻬레그리노스가 이곳에 묵을 확률은 매우 낮다.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역사로 꽉 채워진 고도(古都/Coimbra)가 있기 때문이다.
전일(어제)처럼 오너(나홀로)가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시간대인 18시.
오스삐딸레로가 정한 시각(18시 정각)에 다시 왔다.
81살의 늙은 뻬레그리노가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기다렸는데 홀로 옴으로서 점수가 깎였을 뿐 아니라
호의적이던 관계가 충격적으로 악화되었다.
몇 시간 전에 벌어놓고 간 점수와 호의는 모두 사라졌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알베르게 입실료의 납부 방식 때문이었다.
도나치부제(Donatibo制)라는 안내대로 10€ 지폐를 꺼내놓고 기다렸는데 8€의 정액을 징구하겠다는 것.
2€가 남는데 웬 부아?
되레 2€를 적게 받겠다는 것이지만 사사로운 이해에 관계 없이 '도나치부'를 도베하듯이 곳곳에 붙여놓고
정액을 내라고 하기 때문이었다.
도나치부란 형편이 되지 않으면 내지 않아도 됨을 뜻하는 영(zero)에서 상한선이 없는 기부를 말하는데
자기의 능력에 맞게 기부하라고 붙여놓고 정액을 강제 징구하다니.
왜 양두구육(羊頭狗肉)식 운영을 하고 있는가.
전자(寄附制)는 양이고 후자(定額制)는 구육이라는 뜻이 아니다.
표리가 부동함을 지적하는 것일 뿐.
전자에는 후자보다 적극적이며 뻬레그리노스의 마음을 얻을 자신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발적이며 자선적 기부의 염을 끌어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정액의 강제 징구라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까미노의 7개 메인 루트와 일부 지역 루트들을 걷는 동안에 무수한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까미노를 모두 섭렵하였다 해도 일부 알베르게를 거칠 수 밖에 없으므로 전체 알베르게의 대표성을 지닌
분류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알베르게의 운영 형태에 따라 3종류로 분류해 본다.
가장 많은 정액제에 이어 기부제, 극소하나 이도저도 아닌 임기응변형 등으로.
가이드(까미노) 책자와 내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은 정액제로 시작하여 기부제로 돌아선 알베르게는 없지만
오픈할 때는 기부제였으나 정액제로 돌아선 알베르게는 적잖다는 사실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알베르게를 통틀어서 비율로 볼 때 이같은 변형 현상이 스페인 보다 뽀르뚜갈이 높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반도(Peninsula Iberica)지만 시원지인 스페인과 부수지인 뽀르뚜갈의 지역들에서 까미노 열정
에 대한 온도차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뻬레그리노스의 신분으로 까미노를 걸은 후 알베르게를 개설한 이들도 있다.
각 알베르게의 장단점과 개선해야 할 점, 도입해야 할 점과 폐기해야 할 점들을 심층적 체험으로 알게 된
그들은 종래의 운영 방식을 취장보단(取長補短)하고 보완하여 알베르게를 열었다.
그들의 진정성을 피부로 터득한 뻬레그리노스의 입소문은 온 까미노에 울려 퍼지고 도나치부(donativo/
기부제) 알베르게에서는 뻬레그리노스 스스로 지갑 열기를 앞 다투는 형국이 연출되고 있다.
대표가 되는 알베르게는 노르떼 길(Güemes)의 뻬우또 할아버지의 오두막집(Albergue La Cabaña del
Abuelo Peuto)이다.
그러므로 알베르게의 성공과 실패는 제도(운영방식) 때문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도 아니고 우연이나 행운 불운을 오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로지 뻬레그리노스에 대한 진정성과 그 진정성의 전달 여부에 있다.
내게는 까미노 생활에서 시행하는 내 나름의 룰(rule)이 있다.
정액의 경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도나치부 알베르게에서는 양자택일이 룰이다.
10€를 기부하거나 아예 기부하지 않거나.
앞에서 언급한 뻬우또 할아버지의 오두막집처럼 거대 자선기업에는 도나치부지만 대접을 받을 뿐이다.
그들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은 지갑을 통째로 바쳐도 모자랄 정도지만.
그래서 모인 금액을 영세 알베르게에 기부한다.
도나치부 금액을 10€로 정한 이유는 그 금액이 유료 알베르게 이용의 내 상한선이기 때문이다.
10€를 초과하면 천막집을 지으니까.
정액과 도나치부 불문.
심란한 쎄르나셰의 밤
그 사이에 두 중년 여인이 들어왔다.
영문을 모르는, 가녀려 보이는 여인들이 내 화난 모습에 몹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화를 잠재우려 애썼지만 카멜레온이 아니고 능란한 연기자도 아닌데 임의적이 될 수 있는가.
다른 4인실로 들어가는 듯 했는데, 이름은 커녕 순 역 방향이나 국적을 모르는 이웃이 되었다.
이후 인기척은 느낄 수 있었지만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내 특기가 빛을 낼 때가 되었다.
눈여겨보았던 삼각광장의 슈퍼(Meu super?)에서 먹거리와 와인, 음료수 등을 샀다.
뽀르뚜갈어 '메우'(meu)는 마이(my)라는 뜻이므로 친근감을 갖게 하는 '내 수퍼'다.
친근성이 있는 프랜차이즈 시스템(franchise system)이라는 뽀르뚜갈의 토종 마켓이다.
소매 형태지만 도매 못지 않게 저렴하다는 호평을 받고 았단다.
이미 낯을 익힌 빵집에서 빵은 물론 쿠키와 피자도 샀다.
알베르가리아-아-벨랴의 알베르게에서 파티마 순례자라는 이딸리아나(Italiana)들이 직접 구워서 나에게
선물한 피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밤새우며 먹고 마실 양인데 알베르게 이용료 중 거슬러 받은 2€와 저녁식대 (5€)를 지출했을 뿐이다.
7€ 짜리 올 나이트(all night) 식사.
한 방에는 그 여인들이 있는 듯이 느껴지고 내가 6인용 룹(bunk3개)을 독점해도 4인용 룸이 남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명소(名所)를 이웃하고 있는 소규모 알베르게의 애로다.
밤에 도착할 뻬레그리노스는 없을 듯 하므로 전일의 오너에 버금간다 해도 무방할 듯한 숙박소지만 이미
김빠진 사이다에 다름 아니다.
먹고 마시다가 막간의 인터벌(interval)이 필요한 듯 하여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지기는 했으나 여광시간이라 닥치는 길 따라 무작정 옮긴 발길이 낮에 보았던 공동묘지 앞까지 갔다 .
이 지점에서 국도를 건넌 터널과 알베르게를 거쳐 공동묘지까지 선을 그으면 원이 된다.
한데 , 알베르게 ~ 공동묘지는 대부분의 땅이 공지로 있으며 길들(rua)은 이어지지 않고 중단 상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래지 않아서 이 허허한 지역이 쎄르나셰의 신 다운타운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빈 땅이 건물들로 채워지고 길들이 연결되는 날이면.
그런 후에는, 토목 건축업자들이 쎄르나셰의 루가르인 뽀자다(Pousada)의 숲을 번질나게 드나들게 되고
북동쪽 안따뇰의 빨례이라가 '+A'로 화답할 것이다.
남서쪽과 북동쪽이 장군멍군하는 사이에 맞게 될 숲길 2km의 비운이 아른거리는 듯 해서 숲앞까지 갔던
발길을 돌렸는데 낮에 보지 못한 길을 만났다.
북북서로 짧은 길이지만 호마나 길(Rua da Romana)이다.
뽀르뚜갈인들이 애지중지하는 로마 길인지 다른 의미를 가진 길(romana는 다른 뜻도 있으니까.)인지 북
쪽 끝까지 따라가며 살펴본 것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마시고 먹기를 재개했다.
이번에는 정액을 징구하는 알베르게의 운영 행태 때문이 아니었다.
프레게지아 쎄르나셰의 루가르 뽀자다(Pousada)와 안따뇰(프레게지아)의 루가르인 빨례이라(Palheira)
사이, 산자락 숲길의 운명을 개탄하며 먹고 마신 것이다.
이유(먹고 마신) 하나가 더 있다.
오래지 않아서 강제 이전이 점쳐지는 쎄르나셰 구간의 까미노 뽀르뚜게스에 대한 연민이다.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획정 당시는 N1국도가 개설되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국도를 지층터널로 통과하였다가 그 국도를 디시 건너는(지층으로) 번거로움이 없는
까미노였다.
자연스럽게 마을(Cernache) 중심부를 거쳐 갔는데 국도의 개설로 각기 지층터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 시가지가 마을의 다운타운이 되고 까미노도 동반 이전을 한다면?
국도(N1)를 거듭 건너야 하는 불편이 사라지게 되므로(이해가 걸린 다른이유는 숨기더라도) 이전을 주장
하는 목소리가 의당 커질 것이며 결국 이전하게 될 것이다.
뽀르뚜갈의 까미노를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어느 루트보다 더 까미노의 부분적 이전이 잦았다.
이전의 명분과 달리 숨어있는 것은 이해 관계다.
순례자의 길이므로 신앙의 길인 까미노의 세속화에 가속이 붙을 뿐 아니라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스페인의 경우는 이전보다 아예 딴 길을 만들고 있다.
경관이 뛰어난 지역에 관광로라는 이름의 새 길을.
까미노가 주요 관광자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본래 유일한 고객군(群)이었으나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전통적 순례자들이 괄시 받게 될 날이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도 된다.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지만 알베르게도 미구에 등급 사회가 될 것이다.
호스텔 이상의 숙소로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일 테니까.
프레게지아(Freguesia Cernache)가 운영한다는데도 이처럼 성의 없는 관리를 하고 있는가.
긍정적인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으리라는 예상과 반대인 까닭은?.
이해(利害) 관계가 희박한 프레게지아가 운영하기 때문에 무성의할 것이다.
이해와 관심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
관심과 성의는 비례 관계다.
그러므로, 이해 관계가 희박하면 무성의가 필연이며 사설 알베르게가 보다 친절하고 성의를 다하는 이유
도 이익을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운영자가 빠로키아(Paróquia/敎區)와 프레게지아(小敎區)라면 온갖 성의와 친절, 지극한 정성이 담겨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여기의 체험처럼 전혀 다른 현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등 실망이 여간 아니리라.
정답은 스페인 갈리씨아(Galicia) 또는 까스띠야 이 레욘(Castilla y León), 두 자치지방에 있다.
위의 장황한 논리와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놀고 짚신장이 헌 신 신는다"는 속담을 완벽하게 뒤엎으니까.
까미노의 모든 메인 루트는 싼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최종 목적지로 하고 있다.
그 성지인 싼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자기네 지방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강한 자긍심이 된
갈리씨아인들은 뻬레그리노스에게 최선의 볼런티어를 자임하고 있다.
지방내의 완전한 사설 알베르게를 제외한 각종 공립 또는 이에 준하는 모든 알베르게가 혼연일체가 되어
저렴한(약정된 금액) 입실료(숙박)를 받고 있다.
뻬레그리노스를 상대하는 식당들도 저가의 까미노 메뉴를 개발하고 양과 질 등에 배려가 담겨 있다.
까스띠야 이 레욘은 전국(Spain)의 17개 자치지방 중에서 가장 넓고(94.223km² / 간척 이전의 대한민국
남반도 보다 넓다) 가장 많은 까미노가 경유하는 지방이다.
자치지방 훈따(Junta)의 이름으로 까미노 관련 각종 안내 책자를 무수히 발행하고 있으며 이 지방을 경유
하는 뻬레그리노스에게 무제한으로 무상 공급하고 있다.
"가장 많은 까미노가 경유하는 자치지방이라는 자부심의 발로"가 그(발행하는) 이유라고 한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