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산상수훈 6장 29절의 말씀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의 옷과 백합의 비교에 숨겨진 의미를 나름대로 따라가 본다.
⦁ 솔로몬의 옷 ⦁
우리가 알다시피 솔로몬은 집권 초기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그의 요구가 하나님 마음에 부합하여 부귀와 영광까지 덤으로 받는다. 게다가 최대의 쾌락 향유자까지 된다.
통치 말기엔 처첩이 천 명이나 되었으니 개인적 취향이든 전략상이든 그것은 그의 성적 쾌락의 표시였다.
그런 그의 부귀 영광의 상징을 한 마디로 ‘솔로몬의 옷’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시대 최고의 기술과 소재로 만들어진 최고 권력의 상징이니 말이다.
그의 명성은 팔레스타인을 넘어 고대 근동과 유프라테스 지역 뿐 아니라 지금의 예멘인 스바까지 퍼져나간다.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영화에 감탄한다.
지혜, 부귀, 영광, 쾌락, 명성. 이만하면 인류의 선망 대상이 될 만하다.
근래에도 세상에 올바른 신학적 방향과 영적 가치관을 제시해야 할 성직자들이
세속적 부귀, 영광, 성공, 번영이 신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신학을 유포시키곤 했다.
로버트 슐러, 베니 힌, 조엘 오스틴 등을 통해 이 반복음적인 성공신학 번영신학은 홍수처럼 밀려들었었다.
그 후 세계는 팬데믹의 폭탄을 맞았고 그들의 주장은 비 맞은 쥐 꼴이 되었다.
⦁ 백합 ⦁
그러나 주님의 선언은 분명하다. 솔로몬의 옷은 며칠 간 피어있을 백합보다 열등하다는.
이 말씀은 부귀와 영광과 번영에 추파를 던지는 인간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라면서 궁색한 논리를 제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솔로몬의 영광이 백합만 못한 것이라고 명시하시지 않았는가.
못하다면 못한 것이지 못한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4차산업, AI, 메타버스 등이 황홀해보이는가? 머지 않아 진리의 쓰레기통에서 뒹굴 것이다.
솔로몬의 옷이 물리적 영광이라면 백합은 자연의 영광이다. 예술이란 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물리적 영광은 백합의 자연적 영광을 넘어설 수 없다.
물리적 영광은 인간의 창조요 자연의 영광은 하나님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솔로몬 왕궁의 화려한 연회보다
빵 한 조각을 씹더라도 들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사역에 대입해보자.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면서 성공과 번영의 간판 격인 사역자가 있다 하자.
월세 지불도 힘에 겨운 빈약한 처지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릴 것이다.
그 빈약한 처지의 사역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불분명한 채 가진 자에 대한 선망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면
그는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백합처럼 하나님을 향해 피어나고
자기 소명에 정직한 자연미를 갖춘 사람이라면 솔로몬의 옷을 걸친 사람보다 뛰어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솔로몬의 옷과 백합만이 비교 대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비교 개체는 셋이다.
솔로몬의 옷, 백합,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 이 이야기의 결론부에 도달했다.
솔로몬은 영광의 옷을 입고도 말할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 팔레스타인의 사악한 우상들을 섬겼고 산당을 지었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휘둘렸다. 그로 말미암아 B.C 931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었고 두 나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인생 말기에 쓴 회개 고백서가 전도서다. 그의 옷이 정말 아름다운가?
나라면 하나님께 받을 것을 단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하시면 지혜보다는 신앙을 요구할 것이다.
백합이 솔로몬의 옷보다 아름답긴 하지만 외롭다.
그러나 손을 들어 저 들의 백합을 가리키시는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가?
그는 아버지와 동등한 신성을 가지신 제2위 하나님이시다. 그분 신성의 영광은 요한복음에 잘 나타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분은 새벽별이시다(계22:16). 그분은 영원한 생명이시다(요일1:2).
그분으로부터 우리 삶의 모든 동기와 목적이 흘러나온다.
그런 분이 미천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불경스런 모욕과 고통을 받으신 후 자신을 죽음에 넘기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이분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없으며 이 이야기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이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한다.
솔로몬의 옷이 물리적 영광이요, 백합이 자연의 영광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렇다면 이 논술의 결론은 뭔가?
우리는 미천하고 무가치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된 자는, 그분 안에서 영광스런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안에서 솔로몬의 옷보다, 들의 백합보다 더 아름답고 영광스런 그분의 기업인 것이다.
특히 지금은 비와 눈을 맞아가며 흔들리는 세상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주님을 믿고 그와 연합되어
영광에 이르는 존재가 되게 해야 할 책임이 소중하다. 그렇지 않은가?
2022. 3. 14
이 호 혁
첫댓글 예수님 안에서 아름다운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영광스런 존재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영광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