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논리>-정리 및 독후감
중2시절 학년별 몇 명이 우리 군단위에서 개최한 고전읽기로 기억하는데 당시 <소크라테스>,<파브르곤충기>,<기억이 잘 안남>와 더불어 논어를 읽었다.4권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교과서 외에 농촌에서 이런 책을 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흥미있고 열정적으로 읽었다기 보다는 읽어야 하는 의무감에서 읽은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서 나중에 이 인물에 대해서 더 관ㄱ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소위 고전이라는 책들을 접하는 계기가 된 점은 큰 수확이었다.
이 책에서 썼다 시피 공자와 그 제자들간의 대화를 엮어 놓은 책으로 아주 치밀한 체계적인 논리로 쓰여졌다기 보다는 경구나 교훈적인 글들로 묶어진 <논어>는 4서 3경 중 하나로 동양사상과 일상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었다.
그래서 고교인지 대학시절인지 원서가 아닌 번역판을 읽었지만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몇 년전 일년 동안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봐왔던 철학관련책과자료를 총화.정리하기 위해서 동.서양 관련된 철학서적을 읽으려고 몇 십권을 (쉬운책에서부터 조금은 전공성이 있는 책까지) 검토했으나 그리 체계가 서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시 본다면 정리하면서 봐야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불교. 도교와 더불어 유교는 우리 삶과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관ㄱ심과 실제 이를 탐구. 연구하는 모습은 달라서 도교와 유학은 조금 자료나 책들을 검토했으나 불교는 구입한 책 몇 권도 아직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공자의 중요한 개념인 인,의, 예 등은 당시의 봉건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지배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이와 관련된 중국학자의 비판적 책을 검토하다.)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계승.발전한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이나 역성혁명 등 개념이 훨씬 더 진보성을 담보하여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인의예지 (仁義禮智)는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움을 이른다.
이를 발전시킨 맹자의 4단은 ㆍ四端 (사단)
1. 惻隱之心(측은지심) :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것.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2. 羞惡之心(수오지심):의(義)에서 우러나오는 것.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3. 辭讓之心(사양지심):예(禮)에서 우러나오는 것. 사양하는 마음이다.
4. 是非之心(시비지심):지(智)에서 우러나오는 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법치 개념을 강조한 순자. 한비자나 소박한 변증법을 주장한 노장의 주장을 훨씬 더 선호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논어의 이 3가지 개념을 통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집단간 소위 계층.계급간 그리고 민족 간 갈등이 있었왔는데 이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가 필요한데 동양에서는 2천년 이상 공자의 <논어>에서 주장한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보고 있다. 인.의.예란 개념으로 살펴보고 있다.
논어에서 핵심적인 가치는 인(仁)은 의(義)와 예(禮)덕목과 더불어 중심 개념이나 인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인(仁)은 그냥 존재하는 어떤 사물 혹은 사실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마땅히 지향해애 할 가치를 갖는 덕목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어떤 능력이나 기능의 어떤 심성을 지칭한다.
인은 자신에 대한 진실성 즉 순수하고 자기 자신에 투명하고 정직한 심성을 뜻한다. 가식과 허위는 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품성이다.
효와 공경은 인의 근본이다. 효제 즉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타고난 도덕적 심성이다. 효제덕목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덕목이다. 정말 효도,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든 도덕적 행위에서 근원적인 것은 인이라는 동기이다.따라서 인은 진실성과 효제의 두 개념으로 규정된다.
인은 객관적인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의 한 측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인의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충서(忠恕)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충은 r성실한 마음을 뜻하고 서는 용서하는 마음을 말한다. 성실한 마음 즉 충은 마음 한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양심을 따르는 마음씨이며, 용서하는 마음 즉 서는 남을 관용으로 대하는 마음씨를 말한다.
인은 물리적 가치가 아니라 정신ㄹ적 가치이며, 외적 가치가 아니라 내면적인 가치이다.
논어에 있어서 도덕적 명제는 객관적으로 발견해야 할 사실임이 전제되어 있다.도덕적 규범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천명 즉 우주전체적 질서의 한측면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자명한 객관적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윤리규범은 존재론적의미를 띄며 논어에서 존재론과 윤리학이 명확하게 구별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존재론이 대체로 이원적인 데 반해 동양의 존재론은 일원론적이다.
공자의 사상체계안에서 인이 가장 근원적인 가치를 지칭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공자의ㅣ 경우 도는 곧 인이며 인은 곧 도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에서 도로서의의 인의 가치를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이는 공자의 말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느리라“라는 공자의 말에 비추어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인간가치가 인간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 것이고, 그것의 정당성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있지 않고, 인간외부에 존재하는 무엇인가에 의해서만 수동적으로 주어진다는 주장이 불가피하는 점이다.
이는 공자의 세계관이 종교적이며 따라서 기독교나 그 밖의 모든 종교적 믿음체계와 똑같이 물활론적이고 초월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과학적.근대적(?)세계관과 충돌되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천명의 지칭대상은 의인적 존재로 보지 않고,궁극적 신념의 확고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해낸 은유적 표현으로 봄으로써 찾아낼수 있다.
인의가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믿는 근거는 우주.자연의 어느 한 곳이나 공자 자신의ㅣ 육체 어느 곳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자신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기초해 그가 자유롭게 결정한 실존적 선택 자체이다.
인이라는 덕목이 중요한 인간적 가치이더라도 그것이 그냥 발견과 소유물로 존재하는 객관적 인식 대상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서 실현해야 할 이상으로 심성과 몸가짐으로 존재한다.
공자가 주장하는 현실참여 즉 사회참여의 이유는 그러한 참여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의 본래적 존재 양식에 따른 것이 인도(人道)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천하에 정도가 행해지면 나는 너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을것이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도에 맞게 즉 인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도가 통하지않는 즉 인의 덕목이 짓밟힌 사회에 대해서는 그것과 대결하여, 공익을 위해서 그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도 즉 인으로 가득찬 사회로 바꾸는데 이바지할 도덕적 권리.의무 그리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요즈음 인기있게 읽히고 있는 <분노하라>라는 소책자에서 주장하는 공공성을 위해서 분노하고 저항하고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글과 유사하다. 이 지은이도 샤르트르의 사상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공자의 인.예.의라는 덕목들이 과연 당대의 신분적 질서를 뛰어넘은 사회적 참여 덕목인지 묻고 싶다.
여기서 노자를 탈사회적.은둔적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노자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변증법적관계를 나타내면서 물의 경구처럼 변혁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고 곳곳에 이런 말이 있다.
제자 섭공의 정직함에 대해서 공자가 답하다.“아버지는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주는데, 정직한 것은 그 가운데에 있다.”이는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도덕적 규범이 무조건 모든 경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이다.하나 하나의 경우가 어떤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 점이 있는 만큼 그러한 차이를 깊이 그리고 세밀히 고려한 후에 도덕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선/악,옳음/그름 등으로 표현되는 도덕적 가치는 논리적 및 이성적 사유, 그리고 형식적 및 기계적 완벽성 이전에 극히 내밀한 각 개인의 느낌,정서,짙은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느낌에 바탕을 두지 않고 오직 공적 규범에만 형식적으로 맞추어진 행위는 도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4다.
이 말은 객관적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해서 허위의식(마르크스),계급의식(루카치),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로 인한 외부적 요인의 내재화(주관적 계급)와 내재화된 가치간의 외재화(정치행위) 등은 객관성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한 의식화 교육(프레드리)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에서 진지전으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로 민중에게 계급의식을 고취할 것을 주장한다. 진지전에 대해서는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인이라는 덕목이 인간이 갖추어야 할 내적 심성의 속성을 지칭하는 데 반해 예(禮)라는 덕목은 인의 덕목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관습화된 가시적 행동양식이다. 그것은 말투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몸가짐을 지칭한다.
공자는 기로서의 예와 예로서의ㅣ 기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는 학문과 교육의 절대적 중요성을 역설한다. 예 혹은 기가 인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방편이며 절차이고, 틀이고 형식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예 즉 기를 몸에 익히지 않으면 실제로 인을 구현하기가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시민계층이 이성으로 무지몽매한 인민들을 계몽하여 일깨우면 세상은 무한히 발전된다고 보았는데 공자 또한 이성을 바탕으로 인민들을 교육하여 인을 몸에 습관화하는 것이 예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예는 신분질서에 맞는 예이다. 삼강오륜도 결국 인간의 도리를 말하고 있지만 당대의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예다.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사회변혁은 이성에 의해서기 보다는 계급.계층의 당파성에 의해서 라는 사상이 진보성을 담보하다.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교육은 계층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할 수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프로이드는 인류문명이래 인간이 만들어논 문화는 인간의 자연스럼을 표현하는데 억압기제라고 봤다. 특히 성의 억압이 스트레스나 정신질환을 유발한다고 봤다. 물론 단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요즈음은 뇌과학의 발달로 뇌의 신경세포가 정신질환이나 꿈이나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어서 일정하게 프로이드 무의식이론을 일부 반박하고 있지만.
<논어>의 근본ㄱ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인간다움 즉 가장 중요한 것이 그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감성적 능력,진/위가 아니라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라는 사실이다.
이 해설서를 보면서 제자백가에 대한 대중서 내지 번역서들을 다시 내지 새롭게 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 기간을 정해서 검토할 날을 기다리겠다.
2011.8.22:05 두암동 미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