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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화>
원룸 vs 우리 집
이제 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집에서 가져온 밥을 데워 저녁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TV를 켰다. MBC 뉴스에선 부산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을 둘러 보았다. 7평짜리 방 안에 책상과 옷장, 침대가 기본으로 제공되고 싱크대와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전형적인 원룸 주택이었다. 처음엔 영 썰렁하더니 집에서 TV와 밥상 하나를 가져오고 전자 레인지와 김치 냉장고를 사서 반찬통 등을 넣어 놓고 몇 안 되는 가구 배치를 다시 하니 이제는 어느 정도 포근함마저 느낀다.
'그래, 여기가 당분간 내 쉼터야.'
핸드 폰을 켜서 집으로 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여보, 나야. 뭐해?"
"음, TV 봐. 자기는? 저녁은 먹었어?"
"음. 방금 먹었어. 재미 있나?"
"재미로 보나, 뭐? 그냥 켜 놓은 거지."
"햇살이 잘 있나?"
"음, 잘 있어. 한 번 불러 봐. 자!"
아내가 햇살이의 귀에다가 전화통을 갖다 댄 모양이다.
"햇살? 어이, 햇살아! 햇살! 햇살!"
잠시 후 다시 아내가 전화통에 나왔다.
"어머, 여보! 햇살이가 전화통에서 자기 목소리가 나오니까 깜짝 놀라서 고개를 바짝 들더니 막 좌우로 살핀다! 자기 찾는 것 같애!"
"허, 그 녀석. 다음 주에 가면 또 볼 텐데, 뭘. 집은 잘 있나?"
"집? 가만히 있는 집이 어디 가나? 잘 있지, 호호. 그런데 여보! 자기도 봤지? 베란다 앞에 핀 꽃이 얼마나 좋아! 1층이니까 그런 게 참 좋더라!"
"음, 그래. 그 꽃이 정말 좋더라. 조경은 참 잘 해 놨어. 자, 그러면. 집 좀 잘 간수하고. 잘 자라."
"그래, 여보. 자기도 잘 자!"
"음, 굿 나잇!"
나는 전화기를 껐다. 햇살이 녀석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발코니 앞 정원에 핀 꽃들이 정말 화창하게 잘 피어 있었다. 1층이니 그게 바로 우리 집 정원이었다.
'그 꽃들이 보고 싶다!'
수원 영통 우리 아파트에서 부산 대연동 원룸까지 정확히 420킬로였다. 어제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한 후 바로 나의 애마 산타페를 끌고 수원까지 갔다. 매일 통화는 하지만 일주일 만에 보는 아내가 반가웠다.
"여보,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집 안에 들어서면서 아내 허리를 잡아 끌고 살짝 키스를 했다. 그 전에는 피하기도 하더니 요즘엔 진한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먼 여행에서 이제 돌아온 것처럼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기숙사에 가 있어서 비어있는 진호의 방도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아내와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했다.
"여보,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내일 또 내려가야 하잖아."
"알았어. 내일 같이 갈까?"
"피이, 여기는 어떻게 하고 가나? 내일 갈 때 내 김밥 도시락 싸 줄 테니까 가다 휴게소에서 먹고 가. 과속하지 말고."
아내와 맥주 잔을 부딪치고 한 잔을 죽 비웠다.
"어∼. 시원하다!"
'그래, 역시 여기가 내 뿌리야.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지. 집에 오니 얼마나 푸근하고 좋은가!'
회사에서 내가 속해 있던 부서가 분사(分社)가 되면서 나는 부산 지점으로 가게 되었다. 회사생활 18년 만에 지방 근무는 처음이었다. 회사의 필요에 의해 지방으로 가게 되었지만 무척 난감했다. 결혼하고 여태껏 아내와 떨어져 있은 게 드물었다. 명절이나 집안 제사 때 아내가 하루 먼저 시골 가거나, 회사에서 하루 또는 일주일 연수, 길면 7개월 해외 장기연수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내하고는 하루도 빠짐 없이 같이 있었다. 심지어 싱가폴로 MBA 갈 때도 이삿짐 먼저 보내 놓고 세 식구가 나란히 비행기 타고 같이 가고, 같이 왔었다.
'이걸 그냥! 부산으로 또 이사를 가?'
이 아파트로 이사한지 한 달 반 밖에 안 되었다.
'두 달도 안 되어서 또? 이 많은 짐을 끌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집 정리가 겨우 끝나고 새 집의 생활을 막 맛보기 시작한 때였다.
'까짓 거! 회사를 그만 두어 버려?'
오라는 회사도 있었는데 가지 않았던 게 잠시나마 후회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결국 아내와 내가 내린 결정은 주말부부 하기였다. 그 날 밤, 아내는 눈물을 쏟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주말부부 하며 사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아픈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결정한 이상 빨리 움직였다. 일정보다 미리 부산으로 가서 원룸 얻고 부산생활, 홀아비 생활에 들어갔다. 아내도 팔자에 없이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그 전보다 집은 두 배나 넓은데 아들 녀석마저 대학 기숙사 생활하게 되었으니 아내는 독수공방, 아니 독수공5방 하게 되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셋이 같이 살았는데 두 배 커진 집에 셋이 아니라 오히려 혼자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주말부부 생활 아직 두 달 밖에 안 지났지만 그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새마을로 또는 산타페로 혼자서 또는 둘이서 부산과 수원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다.
소파에 같이 나란히 앉아 남은 맥주를 마셨다.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햇살이도 내 무릎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늦잠을 즐겼다. 안방 창문의 커튼 위로 아침 햇살이 강하게 내려 비쳤다. 부산 원룸의 1인용 침대보다 우리 침대가 훨씬 포근하고 안락했다. 잠은 깼지만 강한 아침햇살을 즐기면서 더 누워 있다 일어났다. 아내는 벌써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여보, 뭐 해?"
"음, 자기 가면서 먹으라고 김밥 준비하고 있어."
"뭘 벌써 해? 같이 안 가려고?"
"글쎄, 같이 가고 싶기도 한데. 이번 주엔 진용이 엄마랑 과학고 엄마들 점심약속이 있어. 다음 주에 같이 가자."
샤워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커피 잔을 건네 주었다. 나는 커피 잔을 들고 발코니의 안락의자에 가서 앉았다. 햇살이가 어느 새 쫓아와 내 무릎 위에 달랑 올라 앉았다.
"여보, 이리 와 봐. 저 꽃 좀 봐!"
나는 아내를 불렀다. 아내도 커피 잔을 들고 발코니로나왔다. 거실 창 바로 밖에는 잔디 옆에 한 무더기의 꽃들이 빨갛게, 노랗게, 하얗게 활짝 피어 있었다. 언제 왔는지 아래 쪽에서 어린 아기와 젊은 부부가 나타났다. 아기 엄마는 아기를 꽃 앞에 앉히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진을 찍던 아기 엄마가 발코니 안락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다보던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미소를 보냈다. 그 부부도 웃으며 아기를 안고 자리를 떴다. 아름다운 꽃이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지, 여보. 1층이 얼마나 좋아. 이 앞이 바로 우리 정원이잖아."
"그래. 우리 이 창에 출입문을 하나 달까?"
"에이, 그건 안 될 걸. 그런데 여보, 자기 이거 추첨할 때 10층 10호 뽑았다며? 어째 그리 뽑기도 못하냐? 호호호!"
아내가 내가 추첨을 잘못했다고 핀잔을 주었다.
"허 참! 그런데 당신 지금은 1층 좋아하잖아."
"그래, 살아 보니까 1층이 좋아. 땅 기운도 받고, 엘리베이터 안 타도 되고. 무엇보다 출입문이 따로 있으니 이건 마치 단독주택 같애!"
우리 아파트 1층은 지하 수납공간이 따로 있고 뒤뜰로 바로 연결되는 부 출입문이 따로 있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 쪽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단독주택의 현관과 같은 부 출입문으로 출입하고 있었다.
"거 봐, 여보. 내가 1층 뽑기를 잘 했지?"
"글쎄, 살아 보니까 1층이 참 편하고 살기 좋긴 한데······."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받았다.
"한데?"
"가격이 로얄층 만큼 안 나가잖아!"
"······"
10층 10호가 아닌 01층 01호를 뽑는 바람에 수천만 원이 날아갔다. 대신에 편리함과 함께 집 앞뒤 정원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집>
우리 집은 0101호, 1층 1호다
발코니 안락의자에 앉아 창 밖의 정원을 내다 본다
따뜻한 아침 햇살!
아름다운 꽃들과 진한 커피 향기!
사랑하는 아내도 앞에 앉아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눈을 감으니
따뜻한 햇빛이 온 몸을 감싼다
진한 커피 향이 온 가슴에 스며든다
아내의 냄새가 몸 전체에, 가슴 전체에 느껴진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여보, 뭐해? 빨리 내려갈 준비를 해야지. 해 있을 때 들어가야 되잖아!"
커피 잔을 들고 눈을 감은 채 해바라기를 하다가 아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래? 아∼! 가기 싫어!"
벌써 열 시가 넘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아내가 해 준 아침밥을 같이 먹었다.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과 밥을 챙겼다. 밥을 '락앤락' 통에 담아 얼려 가져가서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먹을 때 전자 레인지에 데우면 금방 한 밥처럼 모락모락 김이 난다. 내가 밥 하기를 귀찮아하니 아내가 고안한 '햇반'이었다. 일주일 입을 와이셔츠도 깨끗이 다림질이 되어 있었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먹을 김밥과 음료수도 챙겼다. 일주일 동안 살림살이들을 차에 다 싣고 나니 벌써 열 두 시가 다 되어간다.
"여보, 빨리 가. 그래야 해 있을 때 들어가지."
"아∼, 그래, 가야지? 여보, 같이 갈까?"
"또 그런다. 이번 주에는 약속이 있어서 안 돼. 다음 주에 같이 가자."
"알았어. 여보, 뽀뽀!"
아내와 키스를 나누고 나는 산타페에 몸을 실었다.
'자, 나의 애마야! 또 달려라, 부산으로!'
수원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경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밟아라!'
1차선은 버스전용도로에 내주고 2차선을 줄기차게 달렸다. 라디오가 '지지'거렸다. CD로 바꿔 돌렸다. 슬슬 졸리는 것 같았다. 구마고속도로로 접어들어 현풍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휴게소 우측 후방에 있는 공원으로 올라갔다. 수백 년 된 고목나무의 줄기 중간이 땅에 닿았다가 다시 일어나 남쪽으로 뻗어 있었다.
'그 놈 참 대단하다!'
나는 나무 그늘 벤치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어디 잔디밭에 그늘 좀 없나?'
나는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을 무시하고 잔디밭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김밥뭉치와 음료수를 가지고 앉았다. 휴게소에 들어오는 차들을 구경하며 혼자서 김밥을 먹었다. 저 차에 탄 사람들도 나를 구경하였으리라! 혼자 먹었지만 아내의 손맛은 있었다.
'세상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중년 남자 혼자서,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 먹은 사람은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여보, 나야. 여기 현풍 휴게소야."
"응, 김밥은?"
"지금 먹었다. 참 맛있네."
"안 졸았어?"
"여기서 한 잠 잤지. 부산 도착해서 또 전화할게."
"예!"
나는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차를 몰았다. 대연동으로 연결되는 도시고속도로를 내려서자 우리 동네가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목표대로 해지기 전에 도착했다.
'다 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가 가기 싫고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 출발하면 그냥 달려왔다. 혼자 사는 방이지만 내 방에 도착하니 마음이 푸근했다.
'그래, 여기가 당분간 내 방이야. 내 뿌리지.'
나는 아내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렸다.
('02. 05)
첫댓글 우리집...詩 좋다...前의 수주 변영로 風에서 벗어나~~은희경 流네.ㅎㅎ
ㅋ 평론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