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12시15분 기장역에 닿았다.
차표는 송정까지 끊었지만 하차역 안내 방송에 기장이라는 말에 후다닥 내려버렸다.
아득한 옛날 까만 중학생 모자를 쓴 갸름한 얼굴의 그 기장중학생을 떠올리며
따갑고 더운 햇살이 내리쬐는 길을 따라 걸었다.
미역 다시마의 명산지 기장은 한가한 어촌이 아니라
다이소 매장에서 흘러 나오는 춤추는 가락을 따라 서울의 어느 한귀퉁이와 다를 바 없었다.
거칠고 진한 부산 사투리가 더운 열기를 더했다.
기장 시장에는 대게 식당이 즐비하다.
들어가 한 마리 와작 먹고 싶었지만 혼자서 들어가 먹기엔 좀 부담가는 가격을 생각하고는 구경만으로 그쳤다.
단백한 한정식을 좋아하는 내가 먹을 만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만만한 분식점에서 김밥과 에라 모르겠다 라면까지 먹고 나니 배가 두둑했다.
길을 물어 정관 신도시를 향하는 8번 버스에 오르니 제법 여행 기분이 났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로 알고 있는 고리를 지나 정관 신도시는 달음산 품에 안겨 잘 발전하고 있었다.
상가도 제법 들어 서 있고, 여기저기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단지의 쾌적함을 온갖 나무가 심어진 오솔길을 따라 아이들은 자전거로 달린다.
파리 날리는 부동산 사무소 사람들도 휴가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입주 하지 못한 나의 집에 들어가 보니 신천지처럼 넓다.
서울에선 꿈도 꿔 볼 수 없는 대저택이다.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요소와 아이들 곁을 떠날 수만 있다면 이 곳에서 살 수 있다.
기장에 들어서는 신도시라는 말에 별 생각없이 분양받은 나의 경박함이 지금까지 망설임으로 남아있다.
오후 3시 반. 수산인력개발원을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10여분을 기다려 다시 기장으로 나왔다.
홈플러스 SSM에서저녁 식사로 빵2개와 복숭아를 샀다.
수산인력개발원 직원이 일러준 대로 181번을 타고 용궁사앞에서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던이가 가리키는 대로 길을 건너고 소나무 숲길을 따라 비포장 산 언덕을 넘으니 수산과학원의 건물이 나타났다.
입구를 찾으려 돌아가니 웬 관광객들이 줄줄이 나오고, 염불소리가 들렸다.
용궁사가 시야에 나타났다. 기념품 파는 상인에게 물으니
수산과학원은 돌아서 한참을 가야한단다.
갑자기 아픔을 참고 어깨에 메고 온 옷가방의 무게가 느껴지고, 힘이 들었다.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체험하는 날이다.
용궁사 입구의 부처님 부조상에 합장하고, 생각을 비우기로 마음 먹었다.
방생길을 따라 해안을 걸을 땐 흐린 하늘에 저녁 어둡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바닷가 바위를 깔고 앉은 용국사의 미려함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였다.
부처님은 이 곳에도 계셨구나!
코 끝으로 마구 풍겨오는 바닷 내음을 만끽하며 한 500m를 돌아나오니
아까 버스길 한 정거장 아래에 국립수산과학원 입간판이 우뚝 서 있었다.
가 보지 않은 길은 항상 예상과 다른 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 보지 않은 길을 부푼 희망을 가지고 도전한다.
나의 예상을 벗어낫기에 뜻하지 않게 용궁사길을 나는 걷게 되었고,
내일 부터 아침 산책길을 찾은 것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오늘 내가 가야할 길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오래된 연수원인듯 시설이 정겨운 숙소에 들어서니 방 한구석에 컴퓨터가 기다리고 있다.
나 처럼 하루 일찍 입소한 몇몇 선생님들의 움직이는 소리도 끝나고
이젠 적막한 잠의 세계이다.
내일 부터 시작되는 해양 연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