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패러디연극열풍

[뉴욕사랑_종철]

뮤지컬 매니아를 위한 패러디 뮤지컬들

Forbidden Broadway  Vs. The Musical of Musicals

패러디 뮤지컬의 세계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은지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그의 외모를 빼닮은 ‘짝퉁’ 가수들의 공연은 전 세계적으로 끊이질 않는다. 서유석의 ‘가는 세월’과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똑같이 부르는 능력은 엔터테이너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전하고픈 영역이었다. 이처럼 어디에든 주류 문화가 있으면 그것을 한 번 비틀어서 즐기는 이른바 서브 문화가 존재한다. 그것은 때론 ‘너훈아’와 ‘조영필’ 같은 이미테이션 가수일 수도 있고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게이로 만들고, 효녀 심청을 엽기 소녀로 만드는 패러디 작품일 수도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떨까? 당연히 예외가 될 수 없다. 뮤지컬은 1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무수한 이미테이션과 패러디의 홍수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뼈대가 되었고 다시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로 이어졌다. 제롬 로빈스의 안무는 「유린타운」의 코믹 군무가 되었다. 현재 신작 뮤지컬의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장르는 더 이상 오페라, 발레, 정통극과 같은 고전이 아니다. 바로 뮤지컬 그 자체다. 뮤지컬은 그 자체가 뮤지컬에서 가장 즐겨 다루는 소재이기도 하다. 전설 속의 배우들은 그들을 다룬 뮤지컬 속에서 환생했고 새로운 스타를 탄생케 했다. '왕과 나'의 오리지널 주인공이었던 당대의 디바 '거트루드 로렌스'는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한 영화「스타(Star)」로 다시 태어났고, 보더빌 시대의 스타 파니 브라이스는 뮤지컬 「퍼니 걸(Funny Girl)」의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스타로 만들었으며  벌레스크 배우였던 집시 로즈 리는 뮤지컬 「집시(Gypsy)」로 만들어져서 스타를 꿈꾸었으나 살아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집시 로즈 리의 극성맞은 어머니 로즈는 뮤지컬 「집시」에서 진정 주인공이 되어 그 역의 에델 머만이 당대의 뮤지컬 디바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탭댄스의 거장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 켈리는 종종 뮤지컬 영화에서 ‘뮤지컬 배우’ 역을 해내곤 했다. 그렇다면 뮤지컬이란 장르는 그 자체가 나르시즘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Forbidden Broadway 포스터

숨겨진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거대한 공연 산업이지만 장르의 특성상 뉴욕 지역 문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브로드웨이는 코미디 클럽의 스탠딩 코미디언들의 단골 소재가 되어왔고 뮤지컬 삽입곡을 18번으로 한 두곡 가지고 있지 않은 배우가 별로 없을 정도다. 전통적으로 뮤지컬의 패러디는 유명 배우의 잘 알려진 습관을 과장하여 흉내내고 유명한 대사를 살짝 바꿔 웃음을 유도하거나 아예 개사를 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배우 제라드 알랙산드리니는 1982년 1월, 서퍼클럽(Supper Club)에서 시작한 바로 이런 패러디로 큰 인기를 얻었고 여기에 제작자가 붙으면서 비로소 배우들이 연기하는, 알랙산드리니가 꿈꾸던 바로 그 패러디 전문 뮤지컬 「숨겨진 브로드웨이 Forbidden Broadway」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 20려년 동안 여러 장의 음반까지 발매하며 가장 신랄하게 브로드웨이를 풍자하는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뷔의 위치를 고수하며 여전히 공연 중이다. 지난 20년 간의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을 망라해서 시상하는 드라마 데스크상을 1985년(특별상), 1989년(최우수 뮤지컬 여배우상), 1997·1998년(작사상-제라드 알렉산드리니), 2001년(최우수 뮤지컬 레뷔)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년 동안 많은 배우들이 「숨겨진 브로드웨이」를 찾아 자신이 어떻게 풍자되는지를 지켜보며 겉으로는 웃을지언정 극장으로 돌아가면 당장 우스갯거리가 되었던 부분을 고치곤 했고 그러면 '숨겨진...' 측은 쾌재를 불렀다. 희생자(?)들로서는 너그러운 척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작품의 성격이 브로드웨이 풍자다보니 신작이 올라가거나 화제거리가 생길 때마다 발빠르게 업데이트 되곤 하는데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풍자거리는 멜라니 그리피스와 보이 조지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남편인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뮤지컬 「나인」에서 열연을 하며 큰 박수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로 맞은 편에 있는 극장에서 상연 중인 「시카고」의 록시 하트 역으로 등장했으나 당장 가쉽거리로 전락했다. 「숨겨진 브로드웨이」에서는 짧은치마를 입은 여배우가 무대에 설치된 가로대에 매달리다가 옆으로 퍽 떨어지는 것으로 멜라니 그리피스를 묘사했다. 또한 풀린 눈과 혀 짧은 발음, 자기 자리가 아닌 엉뚱한 자리에 서서는 중앙에 켜져 있는 스폿 라이트를 무안하게 하는 등,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다. 2003-2004 시즌 최악의 작품 목록에 이미 올라가 있는데다 예매율 꼴찌를 기록 중인 뮤지컬 「타부」의 보이 조지로 분장한 배우가 왕년의 힛트곡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를 부르면 그 자체가 파리 날리는 주인공의 아픈 심경을 풍자하게 된다.
이 쇼가 단지 최근의 작품만을 풍자하여 인기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가장 많은 풍자의 대상이 되어왔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사팔뜨기 눈을 비롯해 「오페라의 유령」의 떨어지는 샹들리에를 피하지 못하는 유령, 회전 무대 대신 배우들이 직접 도는 「레미제라블」, 이제는 서른 살이 되어버린 오리지널 애니 역으로 천재소녀라는 평을 받았으나 이후 성공작이 없는 안드레아 맥 애들을 풍자한 담배피는 탈선 '애니' 역시 단골 레퍼토리다. 이 작품에는 지난 20여년 간의 브로드웨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사람들이 그 작품에 대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던가를 반추하게 해준다.

뮤지컬 속의 뮤지컬
한편 세인트 페터스 성당의 지하에 위치한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전용 극장인 요크 극장에서는 「The Musical of Musicals」라는 배꼽잡는 새로운 패러디 뮤지컬이 공연되었다. 「숨겨진 브로드웨이」가 현재 상연되고 있는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주로 단편적인 곡과 스타의 풍자에 중점을 둔다면 「뮤지컬 속의 뮤지컬」은 대표 작곡가들의 개별 스타일을 풍자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작품성 면에서  한차원 높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다섯 명의 대가들의 스타일을 패러디한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역사 가운데 수많은 작곡가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다섯 사람을 엄선해야 한다면 리차드 로저스·오스카 해머스타인 콤비, 스티븐 손드하임, 제리 허먼, 앤드류 로이드 웨버, 존 칸더·프레드 엡 콤비를 선택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물론 여기에는 ‘브로드웨이 쇼툰Showtune’의 창시자인 제롬 컨과 ‘아메리칸 포크 뮤지컬’의 시조인 조지 거쉰 등을 추가할 수는 있지만 이들 다섯명 모두 뮤지컬의 황금기인 1940-60년대와 그 이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들이며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확립했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타당하다.

네명의 배우들 (맨 오른쪽 에릭 락웰, 그 옆이 조안 보거트)

이 작품은 패러디 뮤지컬이긴 하지만 기존의 곡은 단 한 곡도 쓰지 않았다. 즉 원작에 사용된 멜로디나 가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 완전한 에릭 락웰(작곡)과 조안 보거트(작사)의 창작이다. 이 작품은 한 가지의 시놉시스를 가지고 작곡가 혹은 작곡·작사 팀에 의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작업은 각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단순 패러디가 아닌, 기본적으로는 지나간 대가들과 대배우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과 사랑을 담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시놉시스는 조나단 라슨의 뮤지컬 「렌트」를 풍자했다. 준과 빌리는 첫 눈에 반한 사이인데, 준의 집주인인 지터는 준을 짝사랑하여 빌리와 눈이 맞은 것을 알자 집을 비우라고 요구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준과 빌리는 이웃의 친구인 에비를 찾아가 의논한다. 자, 어떻게 결말을 낼 것인가. 첫 번째 무대는 뮤지컬의 황금기를 연 콤비인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스타일이다. 그들 콤비의 대부분의 작품이 중부지방인 점을 풍자해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우아하고 클래시컬 한 스타일에 과장된 연기 스타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첫 노래인 '오, 멋진 옥수수' 는 '오 아름다운 아침'이라는 '오클라호마!'의 첫 곡을 페로디한 것으로 이 때부터 이미 관객들은 이 작품의 심상치 않은 기미를 깨닫고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한다. 여기에 '회전목마' 스타일의 춤장면과 '오클라호마!'의 마지막 결말을 덧붙여서 해피앤딩을 맞는데, 저 만치 지터가 죽어 엎어져 있다.(오클라호마에서도 질투에 사로잡힌 쥬드가 컬리에게 싸움을 건 뒤 자기 칼에 찔려 죽는 사고가 일어난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그의 대표작인 스위니 토드의 음침한 빅토리안 시대를 배경으로 운율과 시어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엄청난 언어의 향연과 캐릭터별 포인트를 달리한 특유의 스타일로 풀어간다. 특히 집주인 지터의 초인종 소리를 스위니 토드의 소름 끼치는 휘슬소리(산업혁명기의 비인간적인 공장과 암울한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하는)를 넣어서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스위니 토드의 주인공들처럼 심각하게 서서는 발랄한 컴퍼니에나 나올 법한 노래들을 불러대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웃어야 할지 심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웃음을 참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제리 허먼은 대표작인 「헬로 돌리」에 맞게 대규모 군무 장면에 어울리는 톡톡 튀는 음악으로 같은 이야기를 맺는다. 특히 제리 허먼의 특기인 중년 여인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지터나 쥰, 빌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에비를 주인공으로 하여 모두가 에비를 찬양하며 에비가 손 대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결말과 사다리에 올라타고 행진하는 모습을 기가 막히다.
뭐니뭐니해도 하이라이트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였다. 그의 스타일은 작품마다 큰 격차를 보이는데 바로 그 점을 극 중에서 스타일이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풍자했다. 에비타의 우아함으로 시작해서 송 앤 댄스의 가벼움, 그리고 스타라잇 익스프레스의 신나는 락으로 바뀌다가 굳은 얼굴로 오페라의 유령을 연기하고 마지막에는 가면을 벗은 유령의 정체가 고양이라는 기가 찬 내용으로 전개된다. 목석이 아니라면 이 장면을 제대로 앉아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웃긴다.
이어지는 칸더·엡 콤비는 시종일관 재즈의 선율에 카바레와 시카고의 관능적인 동작과 의자와 모자를 활용한 밥 파시의 안무를 풍자했다. 이것은 그동안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뮤지컬들 중에 풍자의 수준이 가장 높고 그 자체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큼 재밌고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재밌는 것은 역시 결말인데, 캬바레를 풍자하여 집주인 지터에게 등장인물 모두가 몸을 주고 렌트비를 감면받는다는 내용인데, 이 때 지터는 그야말로 박애주의자(?)로서 여성의 노소는 물론 남자도 가리지 않는 잡식을 선보인다. 지터 역에는 이 작품의 작곡가인 에릭 락웰이 직접 등장해 열연하는데, 그는 전체의 노래 반주를 하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랴... 바쁜 와중에도 악역이자 가장 뻔뻔한 지터 역을 연기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초장부터 작사가와 작곡가가 입을 맞춰왔고 여기에 배우 출신의 두 명이 합세하다보니 네 사람의 연기 호흡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이며 이 눈빛과 손끝만 봐도 딱딱 들어맞는 호흡이 작품의 재미의 반을 보장하는 훌륭한 공연이다.

뮤지컬 퀴즈 풀기
<총알탄 사나이> <무서운 영화>를 비롯한 일련의 패러디 영화가 큰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다. 이런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웃는 사람은 결국 가장 많은 영화를 본 사람일 수밖에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이런 성격의 공연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게다가 브로드웨이의 소위 씨어터고어(theatergoer:공연 매니아)들은 한 달에도 여러 권의 플레이빌을 쌓아두는 사람들이다. 이런 씨어터고어들을 위한 패러디 뮤지컬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기 있었던 공연들의 장면 장면을 추억하게 하여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재미를 주고 한편으로는 150년에 달하는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이어온 각 창작자들마다의 독특한 스타일과 배우들의 소소한 버릇 등을 달달 꿰고 있는 연출자와 편곡자의 애환이 담고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무대와 피아노 한 대의 반주로 눈물 나도록 우습기 짝이 없는 작품이라도 그 기저에는 뮤지컬에 대한 통찰력이 깔려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패러디 뮤지컬의 진가가 숨어있다.

두 작품은 브로드웨이를 평범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매우 재미있게 뒤돌아본 작품으로 미국 뮤지컬 사에 남을 것이다. 이들 작품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으며 즐거운 저녁시간과 오프 브로드웨이 경험을 선사한다. 오랫동안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의 배우들을 풍자해왔고 신랄하게 다루었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뮤지컬을 진정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