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삼거리
첫번째 표시기
상봉재 표시기
것대산 활장 팔각정
봉수대
출렁다리
산성입구
동문
남문
상당산 정상
불탄 단풍나무
나씨 종중 납골묘
이티봉
이티재
구녀성
구녀성유래비
구녀산
삼기저수지
좌구정
분젓치
이번 구간은 한남금북정맥 5구간 현암삼거리-것대산
-산성고개-상당산-이티재-구녀산-분젓지(17km)
6시간 전후가 소요 될 예정 천호에서 아침 7시 12분에
탑승하고 상일동 하남 만남의 광장을 일행을 태우고
출발하는데 오창휴게소에 8시 34분에 도착
간단히 식사를 하고 9시에 출발하여 현암삼거리에는
09시 30분에 도착하여 이번에도 A코스와 B코스로 산행
현암삼거리 출발 도로 512번 방향으로 따라 오른쪽으로
시그널이 달려 있고 대리석 제단의 창원황공 묘소를
지나 36번 고압철탑을 지나 뚝떨어져 내려가니
다시 512번 도로로 내려 서고 도로를 따르다 왼쪽으로
붙는데 은행장 성중공묘소를 지나 가파르게 올라와
능선을 잠시 따르는 듯 하다가 내리막 공원묘지
상단으로 가니 반듯하게 꾸며 놓은 묘원은 크기도 하고
작은 묘지군 옆을 다시 오르다가 철망 옆으로 내려
임도(포장도로)건너 앞쪽으로 오르니 안테나탑이 있고
것대산활공장소에는 10시 24분에 통과 비행수칙
안내판이 있고 입구에 팔각정이 있는데 청주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이정표 - 산성, 것대마을 3.0 쪽으로
임도를 따라 간이화장실을 지나 공터 봉수대를 한 바퀴
돌아 내려 가니 상봉재 나무가리막 계단을 내려선
안부 고개 앞쪽으로 올라가는 나무 가리막 계단이 있고
이정표에 상봉재 옹달샘 0.1, 산성 1.1, 낙가산 2.4
갈림길 능선에서 전망을 보면서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우암어린이회관 2.7, 산성고개 1.0,
낙가산정상 2.5 박주만 추모비가 있고 산성고개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시그널이 몇 개 달려 있고 다리 이용
안내판이 있는 출렁다리 제법 긴 구름다리를 건너고
반대쪽으로 지나니 안테나탑에는 이정표에 것대산 2.7
산성서문 1.2, 산성남문 0.6으로 표시 상당산성에는
3개의 문(남문, 서문, 동문)과 2개의 암문(남암문,
동암문)이 있다는데 여기가 남암문 남암문을 통과하니
긴의자들이 있고 산행인들이 쉬고 성을 따라 가며
전망을 보는데 오른쪽 숲길도 있는 모양인지 지역
산행인들은 모두 그리로 가지만 정맥 길은 전망을
보면서 성을 따라 가는 편이 좋을 듯하여 계속
성 따라 가는데 왼쪽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있는 곳
오른쪽으로는 그늘 휴식 장소 성쪽에는 그늘 숲으로
정상으로 오르다가 다시 뚝떨어져 내려오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는 감시자가 나와 있고
다시 성을 따르니 서문 위쪽으로 올라 미호문을 확인
한 바퀴 돌고 다시 성을 따라 가니 이 코너를 돌면
서문은 안보이게 되고 잠시 암능을 올라서는데
로프도 있고 정상석은 안쪽 들어가서 확인하니
11시 22분 그대로 진행 힘들게 올라 오니 평평하게
긴의자들이 있는 휴식 공간 긴의자에서 배낭을 내려
물 한잔 하고 내려가는 길목에 시그널 아래쪽으로
문이 있는데 동암문 북쪽인 것 같은데 암문은
두 개 뿐이니 여기가 동암문을 통과하여 왔던
방향으로 성벽 아래쪽으로 가니 숲속의 둥지라는
이정표에 작게 이티재 화살표 방향을 따르니
491봉(코팅용지가 달려 있고)아래쪽으로 내려 서
가니 등산로안내판이 한쪽 옆에 이티재 8.0km라고
적혀 있고 작은 돌무덤이 있는 안부을 지나는데
능선봉에는 농장이라고 출입금지라는 빨간끈을
계속 쳐 놓았고 능선봉을 지나 제법 올라오니
500봉 분기점 1대간 9정맥 현수막에 작게 달려 있고
임도 표지석이 있고 건너 고목의 느티나무쪽으로
붙는데 뒷면은 허공 구멍이 펑 뚫려 불에
탄 흔적이 있는데도 나무는 건장하게 살아 있고
오른쪽 묘지군을 보면서 올라가니 참호가 있는
이티봉 충북뫼벗산악회에서 이티봉 표시를 나무에
달아 놓았고 공터 능선봉을 지나 넓은 임도를 지나니
아스팔트도로 이티봉 가든 옆에 구녀성 표지석이
있는 주유소 등산로가 이티재인데 13시 35분에 도착
가든쪽 등산로 가든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열리고
가든에서 사육한다는 철망을 지나니 운동시설
소나무 숲길을 지나니 묘지 공작물 설치금지
경고판이 있고 구녀성 유래 안내판이 있으며
정자도 돌탑옆에 구녀산 정상석에는 13시 58분에 도착
정상에는 긴의자가 있으며 운동시설도 있는 초정리
갈림길 이정표에 초정, 율리 한남금북은 율리쪽
아래쪽으로 분젓치가 보이고 도로 인삼밭 좌구정
정자가 있는 분젓치에는 14시 29분에 도착하여
5시간의 긴 여정을 마치는데 오늘 산행은 비교적
쉬운 코스로 뒷산을 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뒤에 마지막으로 온 사람들은 힘이 들어
이티재에서 택시를 타고 왔어도 15시 40분에 도착
그곳에서는 16시 03분에 버스가 출발 집에는
21에 도착하여 무사함에 감사하면서
*상당산성(上黨山城)-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 28-1 이 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다.둘레가 4.2㎞,
내부면적이 727,276㎡에 이르고 있으며 전형적인
포곡식 내탁공법의 성이다.최초의 정확한 축성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또한 신증동국여지
승람 청주목고적조에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7,772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중인
선조 29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에서 45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성벽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후 여러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등에 의하면 효종 2년
(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충남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지고, 왜구의 침입과 내란 등으로한성의 중간방어
지역으로 청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가면서 상당산성의
개수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77년부터 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92년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와 위치가
확인되었다.동장대에서는 매년 시민의 날에 국운융성,
청주발전, 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삼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성돌이 행사가 시작된다.
--참조:충북관광허브사이트--
구녀성(九女城)의 유래 소재지: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조정리에 있으며 구녀성의 축성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석축형태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이곳 산성에 아들 하나와 아홉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가 장사를
하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한양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 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하고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릅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 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된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는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
이때 당시 죽은 아홉 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 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서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망이 좋아 서북쪽 미호 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인다.
2010. 11. 15. 조성철
趙成哲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