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섬 뿔로 선교여행 수기
신혼여행지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필리핀. 필리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 세부와 보라카이가 있는 곳이다. 지인들이 신혼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으며 언급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였으며, 그중에도 라스피냐스 시의 뿔로였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메트로 마닐라로 불리며, 12개의 도시와 5개의 자치시로 구성되어 있는 거대한 도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닐라 시도 메트로 마닐라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시다. 뿔로는 휴양지가 아니다. 메트로 마닐라의 가장 가난한 동네이자 우범지역이다. 우리는 왜 하필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떠나게 되었을까.
신앙세계 2013년 12월호의 <선교지에서 온 편지>를 싣는 과정에서 필리핀 뿔로의 김성제 선교사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후 ‘다음 카페’와 ‘페이스북’을 통해 선교사님의 사역을 지근거리에서 보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선교사님에게 주례를 부탁하며 선교여행지로 뿔로를 정하게 되었다. 이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뿔로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하였고, 더러는 말리기도 했다. 당시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도와 살인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와의 첫 여행이 주는 의미를 생각할 때 뿔로 이상을 생각해 내기란 어려움이 있었다.
김성제 선교사님은 필리핀 선교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영적 입양’이며 다른 하나는 ‘뿔로 주님의교회’ 사역이다. 영적 입양 사역은 필리핀의 극빈자, 고아, 거리의 아이들, 원주민 아이들 중에서 입양 후원 대상자를 선택하여 후원자와 영적인 가족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입양선교회’를 세우고 필리핀의 여러 지역에서 후원 대상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며 한국교회의 후원자와 연결하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선교사님이 마닐라 지부에 있던 어느 날, 뿔로에서 폐지를 줍기 위해 나선 아이 둘을 만나게 되면서 뿔로 사역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심방하기 위해 처음으로 뿔로에 방문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기도와 헌신, 후원과 중보 속에 8년 전 뿔로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비록 집의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는 천막교회이지만 뜨거운 눈물로 찬양하며, 말씀에 집중하는 뿔로의 아이들, 자신이 지금 비록 너무 비천하고 아프지만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털어놓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사진과 영상을 통해 수없이 봐왔다. 누구보다 더 간절하고 순수하게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을 만나게 될 기쁨이 더 컸다.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지 못한 형제와 자매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었다.
4월 27일, 선교사님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은 무엇보다 체력이 관건이라는 선교사님의 조언에 따라 충분히 휴식을 취한 터라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움직였음에도 피곤을 느끼지 않았다. 네 시간여의 비행, 오랜 시간 결혼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 왔던 것에 비하면 순식간에 지나갔던 결혼식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만나게 될 뿔로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뿔로가 있는 라스피냐스 시는 메트로 마닐라의 다른 어떤 시보다 낙후되어 있다. 그중에서 뿔로는 악취가 심한 개울로 둘러싸여 도시 속의 고립된 작은 섬과 같다. 지리적 위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찰이 뿔로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지키고 있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밖에서만 지킬 뿐 뿔로 안은 무법지대로 대낮에도 마약과 음주,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들이 먹고살기 위해 매춘을 통해 낳은 아이, 성폭행을 당해 낳은 아이, 가난과 질병으로 버려진 아이 등 뿔로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다시 마약과 매춘, 폭력에 노출되는 악순환 속에 놓여 있다. 김성제 선교사님은 바로 이런 아이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신다.
점심 무렵 필리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필리핀의 날씨에 대해 설명을 들었던 터라 예상은 했지만 40℃에 육박하는 기온과 입술을 마르게 하는 건조함, 하늘을 향해 뻗은 야자수들이 이국의 정취를 물씬 뿜어내고 있었다. 공황 바깥의 풍경은 그야말로 정신없음, 필리핀 특유의 영어와 필리핀어라고 불리는 타갈로그어가 대기를 지배한 가운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택시 기사들의 열정이 그래도 더운 날씨를 가열차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선교사님이 안내해 주셔서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들을 피해 거리에 따른 요금을 지불하는 벤을 타게 되었다. 선교사님의 사역지로 가는 내내 우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차선도 있고, 신호체계도 있었지만 그것은 무늬만 차선이었고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마닐라 시내가 매연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들이 많았다. 한국산과 일본산 차들이 비등하게 있는 가운데, 매연을 내뿜는 버스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들이 도로에 즐비했다. 길가에 있는 상점에 들렀던 차가 도로 쪽으로 후진을 하여 한 방향의 차선을 모두 막는 차도 있었는데, 한국이었다면 경적 소리와 욕설이 난무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두들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고 어느 누구하나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선교사님은 필리핀의 이러한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한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며, 어떤 일을 해도 상대의 편의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느긋한 정서가 베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뿔로의 아이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열정으로 충분히 감당이 되지만, 재단을 운영과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행정적 업무 처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첫댓글 주님의 마음으로 '뿔로'를 찾아 와 주시고 함께 뿔로의 아이들을 품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주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복된 인생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