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들어있는 거울 - 엄 창 석
1.
오늘날 믿지 못할 사건이 존재하겠는가. 기이하다거나 해괴하다는 등의 단어로 묶어질지언정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은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이 기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감각에는 <믿는다(혹은 믿을 수 없다)> 라는 주체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거울 속의 단서>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김위승은 2001년 3월과 2001년 11월에 자기의 몸뚱어리가 아주 불가해한 상태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문제의 사건이 날아든 것은 2001년 11월 중순이었다. 그는 그때 무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른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숙식을 하고 있던 콘도 앞에는 눈이 거대한 담요처럼 깔려있었다.11월에 눈을 본다는 것은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다. 측백수림이 둘러싼 산허리로부터 기슭까지 흰 솜을 깔아놓은 듯했다. 제설기로 뿌린 인공눈이다.
그는 객실에서 거실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백 명쯤 되어 보이는 관광객들이, 마치 설탕이 뿌려진 길바닥에 바글대는 벌레처럼 눈썰매장 위에만 온통 몰려있었다. 공연한 짓인줄 알면서도 그는 인파들 틈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보았다. 먼 거리 때문인 듯 모든 여자들은 아내처럼 보이고, 아이들은 죄다 아들녀석을 닮아 있어서 구별해 낼 수가 없었다.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눈썰매를 타러 나간 것은 두 시간쯤 전이었다. 아이들은 인공눈에 뒹굴며 눈썰매의 추억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지난 여름 연쇄적인 강도사건 때문에 휴가를 반납했던 터라 늦가을에 제법 넉넉한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는 휴갓길에 나서면서 느닷없이 오래 전에 폐기처분 했던 자작시집과 몇몇 화첩을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지난 2년 동안 끈질기게 가방에 넣고 다니던 수사 기록물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휴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풍스럽게 모조지를 철끈으로 묶어 놓은 옛시집에는 오래된 꿈이 담겨 있었다. 사랑에 대한 전율과 시인 아무개라는 명함을 파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픈 20대 초반의 치기가 있었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저택을 꾸미고 호수에 배를 띄워서 아내와 함께 벌거숭이가 된 채 노를 젖는 그런 매혹적인 생활을 머리에 놓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꿈들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에는 감성적인 심경이 노닐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꿈들과 딴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상심에 젖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젊은 시절의 옛꿈들은, 마치 오래 전에 통과해 버린 시골 역사(驛舍)처럼 다시 그곳을 지나칠 때만 <아, 저곳>하고 이마를 치며 간신히 떠올리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자작시집의 빈 장에다 한 시간 동안이나 연필을 올려놓았지만 단 한 줄을 쓸 수 없었다. 젊었을 땐 찬물을 마셔도 환한 은유(隱喩) 덩어리를 삼키는 듯했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시상이라는 떠오를 기미가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온 것은 오후 1시쯤이었다. 엉덩이에 눈을 잔뜩 묻혀 온 작은 녀석은 빨간 손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눈썰매 얘기를 쉼없이 되풀이 하였다. 큰 녀석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들은 5층 식당에 올라가 중국음식을 시켰다. 새우와 해초류를 화려하게 버무려 놓은 요리를 먹는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부하 수사관인 조 형사였다. 휴양지로 전화를 하는 게 미안한 듯 몇 마디 너스레를 떨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변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순간 입맛이 사그라들었다. 갑각류의 딱딱한 등껍질이 씹히자 징그런 벌레가 입안에 들어있는 듯하였다.
"으...그래?"
"아, 변사체가 아니라 유골입니다."
그는 신기하게도 금방 잃었던 입맛을 회복하였다. 소스가 발린 새우의 매콤한 맛이 후두를 자극하였다. 외과의사를 오래하면 사람다리가 나무토막처럼 보인다는 우스개 말처럼 10년간의 형사생활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변사체가 아니라 유골이라는 말에 얼핏 녹슨 칼, 구부러진 철도, 무성한 잡초 따위의 아미지가그려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골에 목걸이가 걸려 있더라구요. 생긴 모양이 여간 세련되지않아 조사해 보았는데, 그 목걸이가 네덜란드 산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된 지 채 이 년도 안 되었답니다."
죽은 지 이 년 안쪽이란 뜻이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주어를 생략하고 물었다.
"이 년이라? 어떻게 그것만 남았어?"
누군가 살해를 하고 매장한 모양인데, 땅이 좋으면 육개월 만으로도 썩을 수 있고 하데요."
조 형사는 강력계에 온 지 6개월 남짓한 초보 수사관이었다. 유골을 두고 어떻게수사를 착수해야 할지 막막해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목걸이 외엔 별다른 단서는 없다고 했다.
"알았네. 암튼 난 휴가를 마치고 가야겠네. 그동안 목걸이에 대해서나 넉넉히 조해 놓게."
그는 아내를 힐끔 돌아보았다. 아내는 싱글싱글 웃으며 뭔가를 더 주문하려 종업원을 부르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휴가지에 와서도 수사 어쩌고 하는 남편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수사관이 갖는 일종의 어떤 힘을 즐기는 눈치다. 오래전 그녀는 그가 시인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한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직장을 갖지 않았으면 결혼에 이르렀을까 싶었다. 그가 수사관으로서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아내는 남들에게 "사실은 이 이가 시인이에요"하며 자랑하곤 했다.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그의 옛 시들을 흥얼흥얼 낭송했다. 수사관과 시인, 전혀 이질적인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그녀가 기꺼워하나 보았다.
휴가 마지막 날 그는 시집의 빈 장에 간신히 한 줄을 쓸 수 있었다.
-꿈은 무용수다, 자갈밭을 걷고 있는.
2.
유골이 발견된 곳은 청도군 우양리 달이피산 중턱이었다. 237번 지방도로에서 오백 미터 밖에 안 떨어진 지점이었다. 김위승은 유골이 묻혀 있던 구덩이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무릎쯤 들어갈 깊이로 파놓은 구덩이와 흙더미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껏 십여년 동안 강력사건들을 수사해오면서 이만큼 황당한 경우도 드물었다. 현장에 오기 전에 경찰 병원으로 가서 사체를 살펴볼 때도 그랬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이 마치 무슨 고대 동물의 유체를 보는 듯했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뼈를 모아다 발가락 마디까지 정교하게 기술적으로 붙여놓은 것 같았다.
"흐, 이걸 수사하란 말야?"
해부도감에서나 상식적으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의 뼈인데도 그는 전혀 사람이 저렇게 변했으리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선 유체의 신원 파악이 되어야 수사를 시작 할 수 있었다. 도대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자살을 한 건지 타살이 된 건지, 젊은인지 늙은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럴 경우 관련자가 나타날 때가지 얼마간 형식적으로 경찰병원에 보관하다가 화장을 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저 유골에 걸려 있는 목걸입니다."
뼈를 황망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조 형사는 비닐에 들어 있는 목걸이를 집어내어 보여 주었다. 목걸이는 사슬부분이 18케이로 되어 있고 메달에는 큐빅 장식이 반달형으로 정교하게 가공돼 있었다. 유골을 곧장 화장터로 옮기지 못하게 가로막는 유일한 단서인 셈이었다.
"신기하죠? 사람의 목에 건 목걸이가 아니라 원래부터 해골용 같았다니까요."
"왜?"
조 형사는 벙실벙실 웃고 있었다.
"죽은 지 기껏해야 이 년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 년 동안 사체가 저리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원래부터 해골이 목걸이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뭐?"
"흐흐, 해골이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
조 형사의 말이 무슨 선승(禪僧)의 입에서나 나옴직한 말 같았다. 곧 썩어질 육신에 사치를 얹어서 무엇하냐는. 어찌보면 생명과의 애착에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수사관도 조금은 선승을 닮은 구석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목걸이로 봐서 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요즘에는 사내들도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깊이 매장을 해 놓았는데 어떻게 발견되었지?"
김위승은 흙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조 형사에게 물었다.
"저기 위쪽에 송전탑 공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흙을 파헤쳐 놓다 보니 지난 번 비가 올 때 물길이 바뀐 것 같습니다. 물살이 내려오다가 공교롭게 구덩이 한 쪽을 파헤친 듯합니다. 신고도 송전탑 인부가 했어요."
"묘한 우연이네."
반쯤 올라가다 멈춘 송전탑을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사건은 터무니없는 곳에서 해결될 때가 종종 있었다. 연쇄살인범이 음주운전에 걸린다든가, 오래된 공범(共犯)끼리 장기 두다가 다툼이 벌어져 수십 년 된 미결사건이 드러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행스럽다기보다 김위승은 수사관으로서 심한 허탈감에 빠지곤 했다. 우연의 힘이 수사력을 앞지르고있다면 수사관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어떤 것 같습니까?"
그가 줄곧 쪼그리고 앉아 구덩이만 내려다보고 있자 조 형사가 말을 붙였다. 조 형사의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웃음기가 묻었다. 그동안 예리한 수사감각을 보여온 선배도 구덩이 하나를 앞에 두고 뭘하겠냐는 눈치였다. 잡풀더미에 함부로 매장한 것을 보아 살인사건임에는 분명했다. 인적이 드문 2차선 국도에서 500 미터쯤 산으로 올라왔다는 점, 그리고 초망꽃 개우리꽃이 억새밭 앞으로 깔려 있는 등 주변의 풍광으로 보아, 납치나 유인 후 현장에서 범죄 행위가 이뤄졌다는 추측을 갖게 했다.
백양나무 가지를 흔들며 쌀쌀한 바람이 몰려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수사관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사건 현장을 처음 대할 때 '이건 완전범죄로 흘러 걸 것이다' '이건 꼬리가 잡힐 걸' 하는 식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외형적인 모양과는 무관하다. 숨이 컥, 막히는 듯한 압박감만 들 뿐 아무런 방향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사건들이 있는 것이다. 용의주도한 범인은 예술가나 건축가와 유사하다. 상상 속에서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단서를 제거하는 것이, 마치 상상 속에서 예술가가 자기의 정신을 건축하는 것과 흡사하다. 용의주도한 범인이 예술가라면 수사관은 예술품 감식가에나 비유될까, 이번 현장도 그런 느낌을 안겨주었다. 단지 팔짱을 끼고 감상만 하시라는.
내려오는 길에 조 형사는 목걸이에 대해서 말했다. 그 동안 십 수군데 귀금속 가게들을 탐문했다고 한다.
"가격은 20만원대로 비싼 편이라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았답니다만 대개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많이 출하되었구요, 20대 후반 여자 고객이 대부분이랍니다."
조 형사가 유일한 단서인 목걸이에 상당한 관심을 쏟는 눈치였다. 하긴 신원파악을 할 수 있는 게 목걸이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귀금속 가게들을 다시 한번 찾으려구요. 우선 카드로 결재한 이들 중에 실종자가 있는가부터 조사를 해보렵니다."
그는 산비탈을 내려오면서 범인이 이 길을 따라 내려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국도와의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에 범인은 분명 우횟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는 조 형사에게 말했다.
"목걸이에 너무 기대를 걸지 말게. 눈에 보이는 단서는 이미 단서가 아니야."
범인이 신원이 드러날 모든 것을 없애 놓고 목걸이만 남겨 놓았다는 것이 자못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는 조 형사에게, 목걸이나마 걸려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면 아직 수사관이 덜 된 것이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그것밖에 없잖습니까?"
"현장을 보면 모든 게 황당한데 목걸이만 또렷해. 그건 목걸이에 골몰하란 뜻이야."
조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위승은 서(署)에 돌아와 반원들을 모이게 했다. 그는 두 가지 기초작업을 지시했다.
"우선 국과수(국립과학수사원)에 유골을 보내 엑스선 사진을 찍어 골절상이나 수술 자국 같은 것이 있나 확인해 봐. 그런 다음 고고학연구소에 의뢰를 했으면 싶으이.유골의 안면 윤곽을 따라 진흙을 발라서 생전의 모습을 복원시켜보도록 하자구."
이를테면 크로마뇽인 같은 고대인을 유적에서 발견된 뼈를 가지고 복원을 시키듯이 안면 윤곽에 따라 정교하게 진흙을 입혀보면 생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살릴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것은 최근 미국의 팬실베니아주 살인사건에서 고고학자에게 유골을 맡겨 신원파악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변사 사건도 복원된 안면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면 예기치 못한 반응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 형사는 초보 수사관답게 의욕적인 자세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다른 반원들을 다소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사실 여느 때 같으면 대충 이쯤에서 마무리가 지어질 사건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본청에서 과학 수사 어쩌고 재촉하는 말들이 많았다. 얼마 전 한 살인 사건을 유야무야하게 처리하여 언론이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본청에서도 예민해져있는 판이라, 어떻게든 수사하는 시늉이라도 내야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 김위승은 심드렁한 반원들을 다그쳤다. 불덩이 같은 것이 속내에서 일어났다. 수사관을 조롱하듯이 시체에 목걸이를 걸어 둔 걸 보면 분명 노회한 범인임에 틀림없었다. 범인이 노출하지 않은 곳을 파고들어 범인을 적발해내겠다는 의욕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3.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김위승은 자신의 방에서 붉은 딱지를 붙여 놓은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자료는 지난 십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미제 사건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미용실 살인 사건, 천오동 성당 방화 사건, 노파 교살 사건... 육 개월씩 혹은 일 년씩 수사본부를 차려놓고 법석을 떨었지만 이렇다할 성과 없이 마감된 사건들이었다.
대체로 꼬여 있는 사건의 수사는 90퍼센트가 빗나간 궤적을 추적한다. 나머지 10 퍼센트에서 범인의 발자국이 발견된다. 미제 사건들은 그렇지가 않다. 뚜렷한 단서는 항상 허망만 안길 뿐이다. 마치 발자국을 따라가서 만나는 것이 범인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같은 발자국을 만나는 형국이다.
미제 사건들 중에 각별한 것들을 모으고,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 여섯 건을 합쳐서 쓴 현장 수기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보이는 수사물이 반드시 어떤 결말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그의 원고는, 범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완전 범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가 무척 까다로왔다. 지난 2년 동안 범인을 잡으려고 쏘다니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이 원고에만 매달렸다. 휴가지에서 돌아오던 날 친구인 소설가 우태희에게 글을 보여 주며 조언과 교정을 부탁했다.
완전범죄로 결론이 나는 사건들을 수사할 때마다 그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궁에 갖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미용실 살인 사건이 그랬다. 남북으로 난 창문이 두 개가 있었다. 범인은 두 곳의 창을 통해 동시에 달아난다. 어떻게 한 명의 범인이 두 곳의 창문으로 동시에 달아날 수 있을까. 각각의 목격자는 결코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려 들지 않았다. 김위승은 이런 불가사의한 원인을 밝혀 보겠다는 야심에서 미제 사건들을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깊은 밤 책상에 앉아 완전 범죄를 추적하면서 자신이 마치 미궁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미제 사건들은 실제로 미궁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다. 머리가 소인 괴물이 숨어 있었다는 고대 희랍의 미궁과 흡사한 것이다. 끝없이 긴 금실을 가진 자가 아니면 살아 나올 수 없다는 미궁은 몇 가지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사람의 접근을 손쉽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허성(不許性)이 있고 들어온 사람을 포박하는 감금의 성격,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회랑으로부터 불사성(不死性)을 읽는다. 완전 범죄가 되는 사건들도 그러했다. 수사의 접근이 여의치 않고, 추적하는 단서가 빗나간 궤적인 듯한데도 왠지 포기할 수 없으며 새로운 추적은 이미 지나쳤던 추적의 다른 형태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김위승은 달이피산 중턱에서 흙구덩이를 보는 순간, 또 하나의 변형일 뿐 자신의 오랜 탐색 대상과 다르지 않음을 보았다. 그것은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예감 같은 것이다. 유골에 걸려 있는 목걸이와 유골을 드러나게 했다는 송전탑 공사. 그 둘의 - 계획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의 기묘함이 자신의 예감을 강화시켰는지 몰랐다.
달이피산의 유골을 넘겨받은 지 보름만에 우암 고고학 연구소는 유골의 안면 복원을 완료하였다. 연구소는 의뢰 목적에 부합하듯 꽤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세로 28 센티미터 폭 18 센티미터의 얼굴과 관절이나 방광뼈 등을 보아 여자라고 했고, 치아를 검사해 나이는 28세 가량이라 했다. 그리고 낮은 광대뼈와 갸름한 턱선, 다소 짧은 콧날을 감안할 때 조금 긴 생머리가 어울렸을 거라고 추측했다. 미용학회와 피부학회, 성형외과 전문의로부터 폭넓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입술의 형태와 다소 마른 체질, 피부의 윤택 정도까지 세심한 추측을 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김위승은 유골을 넘기고 처음 일주일 뒤 생각보다 진척이 더딘 것 같아 고고학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사시대 유물들이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고, 방문자에 대한 배려인 듯 공룡하나가 기괴한 모습으로 한쪽 벽에 웅크리고 있었다. 달이피산의 유골은 머리 부위만 떼어낸 채 가운데 작업대 위에 당그라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작업대 앞으로 걸어가던 그는 깜짝 놀라워했다. 코 아래 인중에서부터 턱 가지만 복원 작업이 돼 있었다. 움푹한 해골의 눈 아래 살아 있는 듯한 입술. 욕망의 영원성이랄까, 그런 인상이 충격처럼 이마를 때렸다. 혼자 있던 여자 연구원이 가까이 와서 설명했다.
"좀 우습게 보이죠? 눈이 가장 어려워서 나중으로 미뤘어요. 구강 형태로 보아 입술이 조금 도톰한 사람으로 추정되어 입을 먼저 했습니다."
여자 연구원은 마감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는 신경을 써주어 감사하다고 진심어린 치레를 하였다. 그는 문 앞까지 배웅하는 여자 연구원을 돌아보며 불쑥 말했다.
"지금 저 자체로도 훌륭한 사람의 모습이군요."
"네?"
"코 아래로, 그러니까 사람의 모든 본질이 입술에 있다는 말을 던지는 듯 한데요."
다시 일주일이 지나 되돌아온 유골은 아주 사실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에 반듯한 이마, 양 눈썹 사이에서 콧등을 타고 입술로 흘러내리는 섬세한 곡선은 어떤 적요한 마력같은 것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해골의 눈에다 살이 찐 입술이 무슨 심오한 예술 작품 같았다는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출입기자들은 마치 새로운 인종을 발견한 듯 무척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이튿날 조간 기사들은 실제 사건보다, 변사자의 신원파악을 위해 고고학적 복원 방식을 원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다 엉뚱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보도가 나간 뒤 서 안팎에서 숱한 격려 전화가 걸려 왔다. 첫 사례라는 것에 감동되었는지 청장까지도 격려 전화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사의 첫 걸음이 성공적으로 실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는 혼란한 낮과 밤이 지속되고 있었다. 흙구덩이 현장을 처음 봤을 때처럼 이 사건이 완전 범죄로 흘러갈 것이라는, 자신의 어떠한 노력도 미궁의 한 자락에 머물 뿐이라는 예감이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복원된 안면 사진을 들고 현장 인근 마을에 탐문 수사를 계속했다. 그러는 중에도 지난 십 여 년 동안 발생된 미궁의 사건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끝없는 미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본청에서는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위승은 지청을 통틀어 몇 안되는 뛰어난 수사관이었다. 현장에 나뒹구는 많은 물증 중에서 추적에 소용되는 단서는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그 취사선택은 수사관의 직감인 것이다. 언젠가 조 형사가 물은 적이 있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단서를 포착합니까?"
"현장에는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뒤엉켜 있지. 그 중에 무얼 버리고 무얼 취할 건가? 내가 범인이다, 하고 생각해 봐. 어떻게 했을 거 같애?"
범인과의 동일시(同一視) 감각을 키우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수사관들보다 많이 현장을 찾는다. 사건이 아주 친숙하게 자신의 내부에 차오를 때가지 현장에 머무르곤 한다. 하지만 미궁으로 빠질 사건의 현장에서는 그런 동일시의 감각이 쉬이 일어나주지 않는다. 아주 낯익은 감각, 혹은 전혀 낯설은 감각의 끝없는 반복만 생성된다. 미궁은 감금이고 불사이다.
김위승은 오후에 현풍에 있는 소설가 우태희의 작업실을 찾았다. 우는 열흘째 그의 원고를 가지고 있었다. 허튼 데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태희가 뜻밖에도 그를 반겼다.
"미궁이라? 미궁이 무어야?"
그는 유쾌하게 소리치며 원고 뭉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난 단지..."
"자넨 지금 미궁의 지도를 그리겠다는 거 아냐? 희한한 발상이야."
우태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김위승은 마음을 죄며 물었다.
"줄거리가 와 닿던가? 문장은 어떻고?"
"음. 현장 냄새가 물씬 풍겨. 문장도 가끔 지나친 데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예민해."
우태희는 한번도 씻지 않은 듯이 보이는 잔에 일회용 커피를 부었다.
"수사관이 미제 사건을 떠벌리면서도 전혀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눈치더구만. 하긴 자네니까 할 수 있는 배포겠지. 어디서 착상을 얻었누? 아마 미제 사건만을 모아놓은 건 이게 처음일텐데."
"착상은? 수사관 따위가 무슨 착상을 하겠어?"
그는 작가 친구에 대한 존숭감을 내비쳤다. 원고가 괜찮다는 말은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았다.
"아냐, 현장을 뒤쫓고 있지만 수사물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 같으이. 음, <용의주도한 범인은 예술가와 유사하다. 예술가가 자신의 심리적인 형상을 화폭이나 악보 속에 그려넣듯 범인도 현장에 자신의 상상을 구축한다> 이런 문장이 줄곧 나타나잖아."
"실제로 그래. 그악스런 사건들도 나름대로 미학성이란 게 있어. 불가사의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 있을 때 마치 꿈을 꾼 듯하지. 공상의 세계가 현실을 대체하고 있단 느낌이 든단 말이야. 게다가 사건 경로가 미궁의 복도처럼 얽혀 있는 때는 흡사 예술가의 상상력을 바라보는 듯이 아뜩해 올 때가 있어."
우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의 범인이 두 개의 창문을 통해 동시에 달아난 미용 살인 사건, 청오동 성당 방화 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자가 발화시점에 술집 여급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대목에 대해 둘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실적 가능성보다 그런 현상의 빈도를 우태희가 물어왔다. 김위승은 아주 교묘하고 특별하지만 도처에서 발생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위승의 원고는 하나의 정황이 분열을 일으키는(따라서 한 명의 진범이 여럿으로 나타나는) 원인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 원인으로 환영이나 착오, 시선의 굴절, 시간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착오를 말하면서 프로이트의 <거부>논리를 차용했고, 시선의 굴절에서는 일례로 마술쇼에서 관객(목격자)의 진지한 착각을 들고 있었다. 환영과 굴절,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의 경로를 낱낱이 도식화해 보이며, 그것을 미궁의 <지도 그리기>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야. 음...다 읽고 난 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네."
우태희는 꽁지머리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심각한 얘기를 하기 직전의 버릇이었다.
"무슨?"
"범죄학이라기보다 문학적인 느낌이 든단 말이야. 분열적인 사건의 경로를 쫓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강해. 현실 사건의 미궁이 존재적 미궁으로 전환되고 있잖아? 아직 좀더 다듬어야겠지만 마지막 장의 제목이 <가장 완벽한 미궁은?>아니던가. 이런 글귀가 보였어. <인간은 가장 완벽한 미궁을 자신의 내부에 쌓아 놓는다>"
"......"
마지막 장은 아직 완성이 덜 돼 있었다. 미로를 만들며 달아나는 범인이 결국엔 자기 내부에 그만한 미궁을 쌓게 된다는 논리가 다소 미흡하게 표현되었다. 우태희는 조금 다른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내부에 쌓은 미궁이란... 일종의 거짓말하기 아닌가. 난 그렇게 보았네."
"미묘한데?"
계속 이야기를 하란 뜻으로 김위승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도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요컨대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 중에 하나가 거짓말이었다는 거지."
우태희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가령, 페르시아의 유명한 다리우스 대왕은 일출 시간에 신성한 말(馬)의 울음로 제국의 왕위를 승계 받았지. 8세기의 교황 스티븐슨이 400년 전에 죽은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기진장을 들고서 교황령의 안정을 찾았네. 물론 위조된 문서고 앞에 것은 술책이야. 거짓말이 역사의 분기점이 된 경우가 수 없이 많았어."
우태희는 찻잔을 들고서 말을 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런 거짓말이 남을 속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아니란 것이지. 또 하나의 자신이 솟구쳐 나와 활동하는 게 아니냐 싶어. 그 사람이 늙든 병들든, 내부에서 뛰쳐나온 그 자는 언제나 열혈 청년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이 때 그 청년이 누구냐? 하는 점이야. 네 식으로 표현하면 미궁 속에 숨어있는 자겠지."
거짓이 속인다는 개념과는 궤가 다르다, 오히려 어떤 명분을 가진 내부의 활동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거짓말은 존재의 형질을 변형시키는 연금술 같은 거야. 완벽한 거짓말이고, 이를테면 스스로 범인이 아닌 거지. 따라서 완전범죄는 범인을 못 찾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네."
김위승은 우태희가 손질한 원고를 들고 그의 작업실을 나섰다. 날은 벌써 어두워 있었다. 마지막 장을 정리한 뒤 출판사에 넘기려면 앞으로도 두 세 주일은 걸릴 성 싶었다. 차를 몰고 서로 가는 중에 조 형사로부터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복원된 여자와 면식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사실 확인을 위해 광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완전 범죄는 범인을 못 찾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태희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원고에 추가할 만한 글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동 로타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여자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여전히 어떤 마력같은 것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범인이 없다, 범인이 없다... 중얼중얼거리다가 김위승은 신호가 들어오자 황급히 좌회전 차선에 끼어 들었다. 두 시간 남짓 흐른 뒤, 그는 달이피산에서 흘러나오는 계곡 아래에 차를 세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현장에 다달았다. 어둠 속에 놓인 실낱같은 산길을 밟고 올라가면서 그는 한 번도 헛딛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랜턴을 켜고 현장을 살펴보았다. 흙구덩이를 중심으로 금줄을 쳐 놓고 위로는 비닐이 덮여 있었다. 랜턴 불빛의 동심원 안으로 크고 작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었다. 송전탑 공사장 인부일 것이다.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가지 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랜턴을 껐다. 달빛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면서 사방으로 밤의 섬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이피산.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르면 산의 표피가 마치 잎새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달이피산이라고 부른다던가. 오른편으로 유연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별 백양나무, 은사시나무 등 흰 빛깔의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왼편으로 길게 열을 지은 바위 위로는 억새들이 긴 곡선을 이루며 계곡 아래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앉아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여자의 얼굴 위로 달빛이 요요히 흘렀다. 사진 속의 얼굴이 진흙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느닷없이 눈시울이 훅, 달아올랐다.
김위승은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달빛 위를 건넌다는 생각 때문일까. 걸음을 걷는 것이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듯 느껴졌다. 간간이 발목을 붙드는 풀섶이나 불거진 바위에 아뜩히 멀어졌던 정신이 언뜻언뜻 되살아 오고는 하였다.
차를 몰았다. 47번 국도와 만나는 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보였다. 그는 부스안으로 들어갔다. 전화벨이 맹렬하게 울렸다. 환하게 불을 켜 놓은 형사과의 벨소리가 마치 자신의 귀에 울리는 듯하였다. 짧은 순간 공간적인 혼란이 일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당직하는 최 형사였다. 김위승은 혀 끝을 입천장에서 떼지 않은 채 어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여자를 죽였어. 죽인 뒤 그렇게 묻은 거야. 한 일년 쯤 됐나? 흐흐, 뭐긴 달이피산 유골말이지.
4.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다. 아니다. 그는 너무나 뚜렷이 지난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여자가 죽는 순간, 김위승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살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지난 해 10월 중순, 천오동 성당 방화 사건을 처리하던 중이었다. 고해성사를 하러 왔다가 성당 기도실에 머물러 있던 한 신도는 밤 두 시에 사제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방화범 용의자는 그 시각 한 단란주점의 내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인상착의와 여러 정황이 단 한사람을 용의자로 올려놓았으나 그 자는 시간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김위승은 용의자와 밤늦도록 실랑이를 벌이고는 술을 마셨다. 그는 불가사의한 시간의 농담을 견딜 수 없었다. 새벽 두 시쯤 만취가 되어 차를 몰고 가던 중 만촌동에서 한 여자를 치었다.
그는 황급히 여자를 태웠다. 야간 진료병원을 찾으려고 수첩을 뒤적이다가 뒷자리에 쓰러진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짙은 속눈썹, 선이 가는 콧날과 입술 사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흩어진 머리카락이 어두운 그림자처럼 얼굴에 깔려 있었다. 차 덮개만큼 튕겨져 올라갔다 떨어지던 좀 전의 광경이 머리를 스쳤을 때 그는 돌연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 순간, 수많은 단호한 경험들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달이피산 기슭에 도착하였다. 간간이 낚시터로 이용되는 저수지 아래에 차를 세웠다.
여자를 땅에 묻기 전, 여자의 옷을 벗겼다.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달빛이 누운 여자의 몸을 고혹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가 아주 냉정하고 치밀한 범죄자가 되어 있는 동안 어떤 환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여자를 엎고서 단숨에 산기슭을 타고 올라왔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한 시간 이상이 흘렀음직한데도 그는 전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시간은 물질 같은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종종 시계의 뒷면을 열어볼 때가 있었다. 두 개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며 시간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시간이란 대칭성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대상이 마주보고 있다는. 대칭성이 와해되면 사실적인 시간이 사라지고 환각의 시간이 남는다. 환각의 시간 속에서 여자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산길을 오를 때도 어느 양서류처럼 코로만 호흡을 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이 왜 병원으로 가지 않고 산으로 왔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그는 수 년 전 최고 수사관이라는 명예를 얻은 적이 있긴 했다. 그 명예가 한 순간의 과실치사로 날려 버릴 수 없다는 욕심 탓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스스로의 두려움이나 광폭함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무수한 경험을 가진 노회한 범죄자처럼 침착하게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현장에서 하나하나 제거해 가고 있었다. 오히려 김위승은 여자를 땅에 묻으면서 믿을 수 없게도 수사관이라는 직업적인 관심에 골똘하였다. 이 사건이 과연 어떻게 드러나고 범인이 적발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완전범죄 목록표에 이 사건도 등재될까. 목걸이만을 남겨 둔 것은 언젠가 수사 선상에 오를 때 최소한의 단서라도 던져 주기 위해서였다.
여자를 땅에 묻고 난 이튿날 김위승은 놀랍게도 전날의 사건을 거의 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사우나에 가서 지난밤의 일을 떠올려 보았는데도 도리어 생경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가 경험한 무수한 사건들이 때로는 낯익고 혹은 전혀 낯설었던 것처럼 그 사건도 무수히 명멸되었던 범상한 반복의 장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김위승은 심리적인 완전 범죄를 경험한 셈이었다. (훗날 그는 이 심리적인 완전 범죄가 미궁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장 낯선 사건이 순식간에 가장 낯익은 사건으로 돌변하고 만다. 역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의 동일함을 그는 처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공중전화로 자신이 범인임을 밝힌 다음날, 서에 갔을 때 별 다른 일은 없었다. 조 형사가 점심을 먹다가 투덜댔다.
"선배님 예감처럼 이번 사건도 미궁이 되려나 봐요. 사진 보고 제보했다는데, 젠장 다리품 팔아 찾아가 보면 멀쩡하게 살아 있구, 그젠 광주까지 내려갔잖아요. 나 원. 요즘은 장난 전화까지 판을 치고 있으니. 오늘 새벽엔 어느 놈이 자기가 진범이라구 전화질을 하더래요. 참 맥빠지는 노릇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 둘 수 없잖아."
김위승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품 안에서 지형도를 꺼냈다.
"여길 봐. 낚시터가 있어. 범인은 자기가 전혀 모르는 곳에서는 사건을 저지르진 않잖아?
현장에서 낚시터까지는 대략 오백 미터 거릴세.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적어도 낚시터엔 와 본 적이 있었던 놈일 거야. 땅에 묻기보다 물에 빠뜨리기가 더 쉽지. 돌 하나만 매달면 되니까. 근데도 물보다 땅을 택한 이유가 뭘까? 내 말뜻은 여기서 분명 낚시를 했던 놈이란 거야. 누가 음식이 있는 곳에 시신을 빠뜨리겠어?"
김위승 역시 그 저수지에서 고기를 낚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삼일 뒤, 조 형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선배님, 중요한 단서가 잡혔습니다. 어젯밤 그 놈 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놈이 딴에는 우리를 희롱하고 있는가 본데 녀석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게 있었어요."
김위승은 지방에 갔다가 점심 무렵에 서에 나갔다. 조 형사가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흐흐, 수사는 잘 되고 있나. 내가 여자를 땅에 묻었다고 했지. 여자 옷은 근처 낚시터에 가서 태웠네...
김위승은 녹음기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의 목소리인지 얼핏 분간 할 수 없었다. 음성 변조기를 통해 발음되는 말처럼 자모음이 한데 붙은 채 굵은 톤으로 느릿느릿 이어지고 있었다. 조 형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겨 적은 조서용지 뒷면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침에 낚시터에 직접 가서 확인했다고 한다.
저수지 한 쪽 둑에서 불에 탄 여자 옷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옷은 거의 재가 되었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은 단추는 스커트 따위에 매달렸던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함께 불에 탄 옷가지 중에 덜 탄 피륙이 있었다. 오래된 혈흔의 흔적까지 보인 그 옷에는 불길을 면한 마크가 남아 있었다. 차로 십 여분쯤 걸리는 주물 공장 작업복임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이 오십 명밖에 되지 않는 공장이었다. 수사는 느닷없이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조 형사는 범인의 윤곽이 상당히 좁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주물 공장에 이 년 이내로 작업복을 새로 주문한 아홉 명의 남자 공원이 임의동행으로 끌려왔다.
하지만 그 옷은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그날, 김위승은 여자 옷가지를 집어들고 내려오다가, 혹시 옷에 피가 묻어 있을지 모른다 싶어 근처 콩밭에 세워져 있던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여자옷을 감싸고 저수지로 갔었다. 허수아비 옷을 벗겼다는 것도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허수아비 옷을 벗겼을 때 앙상하게 뼈대만 남게된 허수아비를 보고 '그놈 추위 타겠는데' 중얼댔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불려온 아홉 명의 남자들은 연일 고된 심문을 당했다. 물론 김위승도 취조에 참여하였다. 조 형사는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눈치였다. 지금껏 가장 근접한 단서를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복원된 여자 사진을 들고 만나 본 용의자들의 주변 인물은 무려 예순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새벽 세 시에 용의자를 몰래 감시하려 달려가는 조 형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위승은 미로의 끝없는 회랑을 뛰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뒤로도 숨바꼭질 같은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새벽에 호출이 되기도 하고 정리하던 원고를 집어들고 뛰쳐나가기도 했다. 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놀랍게도 작업복에 묻어있던 머리카락이 끌려온 남자들 중의 한 명의 머리카락과 일치한다는 답신이 날아왔다. 강석호라는 서른 다섯 살 된 남자였다. 그 자는 구금된 채로 취조를 받았다. 그 자는 '낚시터에서 싸움이 일어나 옷이 찢어져 거기에 버렸다'고 진술했지만 조 형사는 단호했다. 김위승은 명백한 물증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조 형사의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추적과 취조를 되풀이하는 보름째 그는 이윽고 조 형사에게 말했다.
"사실이 한쪽에만 있다고 보지 말게. 거짓과 진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미궁이야."
5.
김위승은 몹시 지쳐 있었다.
그해 12월 20일 아직 제대로 <미궁의 지도>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었다.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우태희를 만난 뒤 그의 조언에 따라 몇 가지 대목을 첨삭한 게 고작이었다.
그는 범인의 추적이 미궁으로 빠진 이유들을 설명하며 추적의 정황을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추상화시켜 놓았다.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는 갈랫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를테면 미용실 살인사건은 남북으로 난 두 곳의 창으로부터 갈랫길이 시작된다. 두 곳의 갈랫길은 모두 같은 청소부 차림의 용의자가 나타나지만 둘 중에 하나는 청소부 옷으로 변장한 범인일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는 갈랫길을 도식화하면서 하나의 정황의 끝은 새로운 미궁의 입구임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마무리가 머뭇대는 가장 큰 이유는 <가장 완벽한 미궁은?> 이라는 마지막 장 때문이었다. 우태희의 표현대로 현실사건의 미궁이 존재의 미궁으로 옮겨가는 부분에서 뭔가 알갱이가 빠져 있었다. 끊임없는 갈랫길을 만들며 달아나는 범인이 이윽고 한 개인의(범인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새로운 미궁을 틀고 자리잡는다는 대목에서 구체성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경로를 표시해 놓은 사건의 미궁처럼 존재의 미궁에서도 뚜렷한 도식화를 뽑아내고 싶었다.
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날, 우태희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거짓말은 존재의 형질을 변형시키는 연금술 같은 거야.
김위승은 달이피산의 유골사건을 겪으면서 그 말에 아주 매료가 되었다. 그는 정말이지 형질이 변형돼 버린 범인을 어떻게 찾아가느냐 하는 점을 문장으로(혹은 도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심리적 미궁 속에 웅크린 범인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 포착해내지 않고는 글을 마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갈랫길을 그려 놓고 그 끝에 범인이 없노라 해버리면 지난 2 년 간의 노력이 한낱 물거품일 성 싶었다.
김위승은 헛된 취조를 되풀이하고 퇴근하여 원고에 파묻혀 있으면서 몹시 피곤했지만, 우리의 수사란 끝없는 갈랫길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 강석호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날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 저편에서 조 형사의 욕설이 터져 나오고 수화기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범죄자가 되어 있는 동안 지친 기색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자모음을 연결시켜 나갈 때 어떤 새로운 영혼이 깃든 듯하였다.
원고에 코를 묻고 있는 깊은 밤이면 아주 이따금씩 그의 내부에 돌연한 반란의 기미가 감지되고는 하였다. 여자를 땅에 묻은 이후로 최근까지 거의 느끼지 못하던 현상이었다. 심리 속의 미궁을 그려보느라 백지에 스케치를 할 때면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어떤 도형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어느 순간, 미궁 속의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녀석이 느닷없이 공룡처럼 엄청나게 부풀어오르는 착각을 언뜻어뜻 받고는 하였다.
사건은 예상대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한달 동안 뛰어다닌 조 형사는 얼굴이 핼쓱해져 있었다. 그에게 초보 수사관의 열정이 거의 소진된 듯 보였다. 강석호가 풀려난 날 오후였다.
"아, 선배님. 이놈이 말이죠. 전화를 그 동안 다섯 차례 걸어왔는데, 모두 새벽 두 시 무렵이었습니다. 두 시만 되면 우릴 약 올리고 싶어 못 견디나 봐요. 전화를 건 장소가 모두 다르지만 달이피산에서 반경 8 킬로 안에 듭니다."
"두 시? 두 시라. 무슨 강박관념이 그놈에게 작용한지도 모르겠군"
김위승은 습관적인 논리로 대꾸했다. 반경 8 킬로라는 말은 좀 어이가 없었다. 시골이 아닌 담에야 반경 8 킬로는 작은 도시 하나를 감싸고도 남을만한 복잡한 공간이다. 거꾸로 말하면 조 형사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표현으로 들렸다.
반경 8 킬로 안에는 150 개의 전화부스가 있었다. 김위승은 진심에 찬 표정으로 조 형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신이 선두 지휘를 할 것이니 좀 쉬라고 했다. 김위승은 그날 자정부터 매일 새벽 4 시까지 잠복 근무를 하도록 반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지만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반원들을 독려했다. 김위승은 총기를 챙기며 문득 자기를 체포하러 간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어쩌면 살해가 될 수도 있는 그 자는 전혀 다른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섬뜻섬뜻 끼어 들었다. 낮 시간에 별다른 일이 없을 때는 원고뭉치를 들여다보곤 했다. 우태희에게 전화를 건 건 잠복 근무 지시를 내린 이틀 뒤였다.
김위승은 마지막 장이 여전히 애매한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우태희가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횡설수설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야, 자네 가고 난 뒤로 음...미궁 속에 숨어 있는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말이야. 이런 게 떠올라. 포우의 검은 고양이란 소설을 보면, 벽 안에 갇혀 있다가 느닷없이 울음을 우는 고양이가 나오잖아? 뭐라 정리하기 곤란하지만 미궁 속의 범인이란 말에서 벽 속에 있는 검은 고양이라는 이미지가 느껴져."
"검은 고양이?"
김위승은 의외의 말에 잠시 소설의 그 장면을 떠올린 뒤 되물었다.
"만약에 그때 검은 고양이가 울지 않았으면 어떻하지?"
살해한 시체와 함께 벽 속에 넣어진 고양이가 울었기 때문에 범인은 드러났고 그 소설도 끝을 맺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전히 유보된 상태이지. 유보가 지속되는 건 오히려 천형(天形)처럼 무거운 것이 아닐까?"
"글쎄. 이미 자신의 형질이 변형되었는데 그래도 무거울까?"
잠복한 지 구 일 째. 겨울밤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237번 지방도로에는 간간이 차들이 질주했고 김위승은 혼자 101-38번 공중전화 부스가 보이는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김위승은 이날밤 차를 몰고 나오다가 묘한 연상을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우태희는 미궁 속의 존재에서 검은 고양이를 얘기했는데, 자신은 문득 검은 고양이로부터 마경(魔鏡)이란 걸 떠올린 것이다. 거울 속면에 음각을 해놓아 들여다볼 때 비치지는 않으나 빛을 반사하면 그 상(象)이 나타난다는 신비한 고대 거울 마경을. 그렇다면 검은 고양이가 들어 있는 그 벽면이 바로 존재의 비밀스런 거울이고, 마경인 셈이 된다. 시멘트로 두텁게 발라 놓은 그 벽면이 거울일 수 있다니. 실체는 속면에 웅크리고 있고 표면에 비치는 것은 한낱 헛된 반영(反影)일 뿐이라니. 김위승은 차를 몰고 오면서 내내 검은 고양이가 들어 있는 <거울>을 상상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훗날 간행될 책의 제목을 <거울 속의 단서>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도로 위에 남은 낙엽들이 바람에 휩쓸리고 있었다. 인도 턱을 따라 모였다 흩어지며 스르르 스르르 마찰음을 내었다. 상향등을 내쏘며 달려오던 차량 하나가 빠른 속도로 모퉁이길을 돌아갔다. 그 순간, 김위승은 전화부스에 들어가는 잠바 차림의 한 남자를 목격하였다. 그 자는 어깨를 휘청이더니 때려부술 듯한 손으로 전화통 상판을 두드렸다. 김위승은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보았다. 새로 두 시였다.
잠바차림의 그자가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무선 전화기에서 지금 101-38번 공중전화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렷다. 김위승은 몸을 날려 그 자를 포박하였다. 순식간에 그 자의 손을 등뒤로 나꿔채 수갑을 걸었다. 그 자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피싯, 그 자가 웃었다.
"나는 범인이 아닐세, 이 사람아."
김위승은 수갑을 채우다 멈칫했다. 자신의 손목에 차가운 금속성이 죄어졌다가 힘없이 풀어졌다. 단지 차가운 느낌만 남아 있었다. 스르르르, 어디선가 낙엽이 휩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2001년. <작가세계>.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