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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7. 12. 25(월)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오늘은 산행하는 것 보담은 승용차를 타고 가깝지만 기분 전환까지 되는 여행지..
강화도로 가기로 한다. 겨울 바다 여행코스 강화도는 한적하면서도 바람을 쐬고 오기에 적합한 곳으로 손꼽힌다
그곳은 바다를 만끽할 수 있음은 물론 여행 명소와 역사적인 관광지가 많고 서해에 닿을 수 있고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강화도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해 있다. 강화도를 가는 길은 두가지가 있는데
강화도 북측 군청 방향으로 가는 강화대교를 이용하거나..,남쪽 마니산 방면의 초지대교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우린 동막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서 마니산 방면의 초지대교로 해서 동막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먼저 '분오리 돈대'에 오른다
오늘은 지난 봄철에 이어 분오리 돈대, 동막해수욕장, 광성보를 둘러보며 트레킹 하기로 한다
강화나들길..
강화도 어디에 있던 세상과 외따로 떨어진 기븐을 느끼고 싶다면 돈대를 찾아가면 된다.
일단 바다가 있는 해변을 따라서 쭉 가다보면 길가, 혹은 언덕위에서 공터를 빙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성곽을 만나게 된디.
사각형, 원형 등 형태는 다르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비슷하다.
성곽 한쪽에 뚫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면 한복판의 공터에 수풀이 우거졌고 성곽 너머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돈대가 강화도 해안에 53곳이나 존재한다
분오리 돈대로 향한다
고개마루에 주차장이 있고 바로 진입로가 있다. 동막해변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강화나들길 20코스에 해당 한다
동막해수욕장이 살포시 얼굴을 보이고 있다.
분오리 돈대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6호)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견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를 말한다. 대게 높은 평지에 쌓아 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강화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돈대는 조망 할수 있는 시야가 넓으며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평면이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4곳에 문을 설치한 외곽포대로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게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띠었다 한다. 조선 숙종 5년 (1679년)에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경상도 군위어영군 8천명이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동막해변이 모래사장으로 아름답게 조망된다
분오리 돈대를 한바뀌 둘러본다.바람은 불고 있지만 별로 춥지는 않다
조선 숙종 5년(1676년)에 축조하였다. 초지진의 외곽포대이다
분오리 돈대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며 여러 풍경을 담는다
오랜만에 새롭게 느끼는 감정이다
분오리 어시장 전경..
어선의 선착장과 함께 있다.
울퉁불퉁한 돌 계단에 올라 성곽위를 한바퀴 돌면 머나먼 수평선의 섬들이 낮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까 지나온 해변의 여행객이 점으로 보인다.
분오리 돈대에서 내려다 본 동막해수욕장..
분오리 돈대의 내부모습..
들풀이 제멋대로 자란 돈대안에는 태곡적 같은 묘한 느낌이 감돈다.
사위가 적막하다. 거친 섬 바람에 무성한 아까시아 나무가 우수수 흩날리는 소리뿐..
분오리 돈대 내부에서..
여행객들이 분오리돈대로 올라오고 있다
분오리돈대 바로 밑에는 동막해수욕장이다
동막해수욕장 해변가로 내려선다
동막해수욕장 풍경..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펼쳐진 이곳은 폭 10m, 길이 200m로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며,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갯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해변가를 걷는다
대리석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바위로 가득한 해변길이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한 탓일까..
그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가슴 답답했는데 ..해변가로 오니 넘 기분이 상쾌하다.
멋있고 아름다운 경치..
동막해수욕장으로 왔다
아담한 초승달 모양의 동막해수욕장은 유일의 모래 해수욕장으로 인기가 많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모래는 짙은 카페 라테빛이고, 그 위에 사람 발자국 갈매기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석여 있다.
동막해수욕장의 겨울 바닷가의모습...
여름철에 밀물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썰물에는 갯벌에 사는 여러 생물들을 관찰 할 수 있는 강화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특히 일몰이 아름다워서 연인들끼리 낭만적인 여행지이기도 하다
인근에 식당, 카페, 숙박시설 등의 각종 시설물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강화도 여행 코스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동막해변을 맘껏 즐기고 이제 광성보로 향한다
강화도 여행코스 '광성보'
두번째 여행코스로 지난 가을에 다녀왔던 신미양요 당시 격전지로
역사의 아픔이 서려있는곳 '광성보'로 달렸다.
광성보 안내문..
광성보는 국방유적으로 효종9년(1658)설치한 강화도 해안 수비 진지 중 하나이다
신미양요(1871)때 미국 군대와의 격전의 현장이었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바라보면 만해루라는 성문이 나타난다
광성돈대는 성문 왼쪽에 있고 성문 오른쪽으로도 길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며 경치를 즐기며 동부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광성보'이다
우리나라 근대사(개항기)에서 꼭 등장하는 이곳은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광화도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본래 광성보는 고려시대의 외성으로 몽고의 침략에 맞서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후 1233년 부터 1290년대
이르기까지 쌓은 것이다. 이를 광해군 시대에 이르러 보수하고, 효종 9년인 1658년에 광성보를 설치하기에 이르렸는데
이 옆으로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의 소속 돈대가 축조되었고 1745년에 다시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게 되었다. 여기서 돈대란 성 안의 높은 평지에 축조한 포대를 의미한다
외부를 성곽으로 둘러 안에서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보루이고 포를 설치해 대포를 쏘기도 했다
광성돈대 내부 안으로 들어가 본다
광성돈대 입구..
광성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광성돈대 내부의 모습..
1977년 포좌 4개소와 3문이 복원 설치되었고 대포는 병자호란때에도 사용했고 작은 것은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라 한다.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 중간 소포 -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우 불랑기 -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만해루 안으로 들어가서 바라본 만해루의 모습..
용두돈대로 가는길..
우린 용두돈대로 향하는 소나무 사잇길로 걷지 안고 강변 안쪽으로 걸었다
만해루 안쪽에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로 앞에 의자가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
광성보는 용두돈대와 연결된 산책로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염화강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그만이었다
광성보는 용두돈대와 연결된 산책로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염화강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무명용사 쌍총비각이 나온다
신미양요 순국 무명 용사비
쌍충비중 1개는 신미양요때 광성고 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 외 59명의 광성 파수 순절비와 다른 1기는 어재연, 어재순 형재의 충절을 기리는 순절비 이다
쌍충비각
쌍충비 비문해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조선군과 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손돌목 돈대에서 조선군 사령관인 중군 어재연장군의 지휘하에 격렬하게 반격을 가했지만 미군은 맥키해군 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이 장렬히 전사한 장소이다
쌍충비각과 무명용사비
신미양요는 1871년 미국이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무력 개항 시키기 위해 침략한 사건이다
쌍충비 해설 판..
이제 목적지 용두돈대로 향한다
길 좌측엔 신미양요 당시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군사들의 묘소가 있다
용두돈대로 가는길에 먼저 손돌목 돈대를 들린다
손돌목 돈대..
손돌목 돈대
손석항 돈대라고도 부르며 구릉 정상부에 둥글게 땅을 다지고 주변에 성곽을 쌓아 올린 돈대이다
이 돈대는 광성보 내에서도 가장 높은 땅에 위치해 있어서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일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손돌목 돈대 내부..
손돌목 돈대
지난 봄에 왔던 추억이 떠 오른다
손돌목 돈대에서 바라본 풍경들..
손돌은 바로 사람의 이름이다.
죽어서 후하게 장사를 지낸들 다시 살아나는 거도 아니고... 참 안타가운 죽음이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임금의 안위를 끝까지 지켜준 손돌이 더 대단하다.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에는 손돌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 큰 바람이 분다고 하여 손돌이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 한다고 하고.
지금도 그날에 큰 바람이 부는지... 는 모르겠지만 손돌의 충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손돌은 노련한 뱃사공이었겠고. ~ 일반 백성의 숭고한 넛을 기려본다.
다음 목적지인 용두돈대로 가는 길목에서..
용두돈대로 가는 성벽길..
욘두돈대로 가는 길에, 저렇게 물살이 돌...돌...돌, 크기는 작은데 소리는 장난 아니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어 본 용두돈대..
용두돈대는 강화도 내 돈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돈대로 칭해진다
길게 굽어진 길목이 마치 용의 머리 같다고 하여 '용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강화 적전지 정화 기념비
강화 해협을 지키는 천연요새로 고종8년(1871) 포대 살치되면서 정비되었다.
손돌 목돈 대아 속해 있는 외곽 초소겸 포대로,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1977년에 성벽 복원과 전적지 정화작업을 통해 용두 돈대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포가 전시된것 을 볼 수 있다
용두돈대에서 내려다 본 해협..
강화도는 수도인 한양으로 이어지는 물길인 한강 입구에 위치해 있어 조선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 중 하나로 다스려 지던 곳이었다. 돈대 앞에는 거친 물살이 흐르고 있는데 물살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이곳에 손돌목과 용두돈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이제 광성포대로 향한다
광성포대
고종때 외세의 침략으로 화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포대를 설치했다.
손돌목 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고 1875년 운양호사건때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복원정비 하였다
점심을 하기위해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으로 향한다
광성포대 위에서..
광성포대 위에서 바라본 풍경..
갯벌..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다. 갯벌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하고 한참을 쉬고 난뒤 되돌아 선다
오랜만에 즐긴 풍경이다
2코스 슾길...
되돌아 가는 길에서 본 손돌목 돈대의 모습..
이제 광성보 입구로 되돌아 간다
멋진 경치는 담고서..
광성보를 빠져 나온다
강화나들길 표지판...
아름다운 인생에
불로불사(不老不死)가 인간의 소망이라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영원히 늙지 않는 비결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마음이 몸보다 먼저 늙은 것만 경계 해도 훨씬 더
오래토록 젊음을 유지 할수 있다고 합니다
가는 해 언저리에 모든 걱정 실어 보내고 희망찬 새해가 밝아오기를 기다려봅니다
강화도 가는 교통편
서울에서 강화 가는 버스는 전철2호선 신촌역 1번 출구 정류장에서 3000번, 영등포역 버스정류장에서 1번과 88번이 다닌다.
그밖에 인천, 부평, 일산 등지에서 강화행 버스 90번이 있다. 강화터미널까지 간 후 마니산국민관광단지행 군내버스
(700-1, 화도40, 화도41, 화도44, 순환04)를 타고 가면 된다
승용차로는 김포시 양촌읍을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는 것이 빠르다.
초지대교를 건너 직진하다가 장흥교차로에서 좌회전해→길화교삼거리 우회전해 직진하면 함허동천이 나온다.
함허동천에서 길따라 조금만 가면 동막해수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