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고택및만화정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269

운강고택(雲岡故宅) 및 만화정(萬和亭)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74. 명포 7-12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逍遙堂 朴河淡: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1809년(純祖9)에 박정주(朴廷周:1789∼1850)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으로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이 1824년(순조24)에 중건하고 1905년 박순병(朴淳炳)이 다시 중수하였다.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은 후학양성에 크게 주력하였고 고종9년(1872년) 강학소절목(講學小節目)을 마련하여 교육기관으로서 큰 성과를 올렸으며 통정대부 좌승지에 증직 되었다. 만화정(萬和亭)은 운강고택의 부속건물로 운강 박시묵(朴時默)이 1856년경 건립한 정자로 수학을 강론하던 곳이며 동창천을 끼고 울창한 숲 언덕에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동창천이 내려다보이는 운치를 배려해 놓았다.
주변의 경관이 이름답고 건물 또한 견고하고 섬세하며 6.25때 이승만대통령이 피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동창천에 왔을 때 숙식했던 곳이기도 하다.

운강고택 안채

운강고택 사랑채





















운남고택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운남고택(雲南故宅)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76 (신지리)
운남고택은 조선말기에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의 셋째 아들인 박재충(朴在忠:1850∼1869)이 분가를 하면서 건립한 가옥으로 운강고택(雲岡故宅) 서편에 인접해있다. 사랑채 대청의 보(량)와 보고임이 특이하고 대청 끝의 보고임에는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멋을 더하였다. 큰집(雲岡故宅)과의 격을 낮추기 위해 모든 지붕에 망와(望瓦)가 없도록 하였고 앞마당 동쪽에 위치한 중 사랑채는 193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만화정













임당리 김씨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631

임당리 김씨고택(林塘里 金氏故宅)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631
임당리(林塘里)에는 조선시대 궁중내시(宮中內侍)로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직에까지 올랐던 김일준(金馹俊:1863∼1945)이 말년에 낙향하여 건축한 고택으로 임진왜란(1592)전부터 400여년간 16대에 이르기까지 내시가계가 이어져온 곳이다.
국내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양자를 들이고 부인을 맞아들인 뒤 궁중으로 들여보내 내시생활을 하도록 했던 이 고택의 가계는 17대 김문선(1881∼1953)에 이르러 직첩(職牒)만 받았을 뿐 내시 생활은 하지 않았고 18대 이후 정상적인 부자(父子)관계가 이뤄져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같은 가계의 부인들은 친정부모의 사망 때만 바깥출입이 허용되는 등 극히 폐쇄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현재의 임당리김씨고택은 강희25년(康熙) 병인(丙寅)윤사월(1686년)이란 연기가 있는 암막새기와가 망와(望瓦)로 사용되고 있으나 건물 전체의 구조 양식으로 보아서는 19세기 건축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집의 특징은 안채의 출입을 잘 살필 수 있게 사랑채가 배치된점 또한 건물과 담장으로 완전히 폐쇄된 안채와 안마당, 그리고 안채가 북향으로 놓인것 등 일반 사대부의 저택보다 더 엄격한 내외공간 구분과 출입을 관리할 수 있는 배치법을 보이고 있어 내시주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