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에 걸쳐 '인터스텔라'를 보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지구 미래에 관한 서양 SF영화를 볼 때면 꼭 드는 생각이 있는데,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과학에 대한 신봉 또한 커서, 지구의 미래 또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SF(공상과학)'라는 장르도 그래서 생겼지요. 과학적이라는 건 합리적이라는 것이고, 합리적이어야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과학적으로 풀어내다 보니, 지구의 미래는 대부분 암울하다는 게 또 그런 영화들의 일반적인 결론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채 유한한 자원을 가진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인구는 자꾸 늘어나고, 문명이 발달할 수록 소비되는 자원량도 점점 늘어나 조만간 지구상의 자원이 동나게 생긴 데다가, 우리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소비로 인한 환경문제는 점점 커져 이제는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게 된 상황이니 말이지요.
과학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왜 그런지, 실험 결과나 자료 분석을 통해 증명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실험해야 하고 자료를 모아야 하니, 눈에 보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 현상-에 증명하고자 하는 대상을 국한할 수 밖에는 없지요. 또한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과학은 견지해 왔습니다. 신(神)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인터스텔라'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은 세계는 전쟁을 일체 중지하고 식량 생산에 사활을 걸게 되는 데, 황사 같은 먼지폭풍이 인간을 덮침으로써 식량뿐 아니라 인간이 숨쉬는 것 조차도 여의치 않게 됩니다. 지구는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되어가는 거지요. 미국은 비밀리에 나사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행성을 찾으려 시도하는데, 인류 전체를 옮기는 플랜A와 그게 안될 때를 대비해 준비한 수정란들만 옮겨서 새로운 행성에서 인간을 퍼뜨려나간다는 플랜B, 두 가지를 놓고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 와중에 집안 2층에 있는 딸의 방에서 일어나는 중력이상을 감지한 탁월한 엔지니어인 전직 우주비행사 쿠퍼는 중력이상 현상에서 알아낸 좌표로 이동해 나사의 비밀기지에 가게 되고, 딸의 반대에도 결국 나사의 플랜에 동참해 이미 과학자들이 탐사를 떠난 새로운 은하계 내의 행성들에서 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생존이 가능한 새로운 행성 세 군데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들어간 일행은 첫 번째 행성에서 엄청난 규모의 해일을 만나 지구시간으로 23년을 허비하고, 두 번째 행성에서는 탐사과학자들의 대장격인 '만 박사'의 허위보고 및 배신으로 간신히 쿠퍼와 레베드 박사만 살아서 벗어나지만, 우주선 본체의 일부가 파괴되며 동력이 얼마 남지 않는 위기를 맞습니다. 쿠퍼는 블랙홀의 에너지를 역이용해 레베드 박사만 세 번째 행성으로 보내고 자신은 스스로 떨어져나와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특이점을 찾으려는 마지막 시도에 운명을 겁니다. 다행히도 특이점에 도달해 사랑하는 딸의 방의 모든 시간에 접속 가능해지고, 마침 양자데이터를 입수한 로봇 '타스'와 접선도 이루어져, 성장해서 나사의 플랜 A의 실현을 위해 이론적 해결에 골몰하던 딸에게 떠날 때 주고온 시계를 통해 시계바늘 위의 중력장을 조절해 시계 초침을 움직임으로써 해결에 필요한 양자 데이터를 신호로 전달해 줍니다. 딸은 우주정거장을 건설해 플랜A를 실행에 옮기고, 블랙홀의 특이점을 벗어난 쿠퍼는 토성근처 우주정거장에 의해 구조받아 대략 80년만에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앞둔 딸과 조우합니다. 딸의 조언으로 쿠퍼는 레베드 박사가 가있는 세 번째 행성으로 몰래 우주선을 몰아 출발하고, 세 번째 행성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임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영화 중간에 레베드 박사가 '사랑'에 관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더군요. 과학적인 데이터와 그에 입각해 도출한 결론을 넘어서는 감정과 직관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지요. 보이는 것만 가지고 설명해야 하는 과학자가 인류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의 선택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주장하는 것에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맞았습니다!
특이점에 도달해 딸의 방이라는 특정한 시공간과 맞닥뜨린 쿠퍼도 자신이 보낸 신호를 딸이 틀림없이 받았을 거라는 확신을 "딸과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말로 나타냅니다. 그냥 약속이 아니라 '사랑으로 굳게 맺어져있는 부녀지간의 약속'이기 때문이지요. 가족을 살리고 싶은 가장의 간절한 염원이 그 시공간과의 접속을 만들어냈음을 쿠퍼는 스스로 깨닫습니다. 딸도 아빠가 살아있고, 아빠가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챕니다.
두 번이나 봤지만, 중력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는 아직 전 잘 모릅니다. 다만 이 영화가 공상과학영화의 형식을 빈, 사실은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합니다. 레베드 박사는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세 번째 행성에 가고자 불확실한 미지의 우주를 향해 우주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쿠퍼는 사랑하는 딸과 가족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거라 믿었기에 떠났고, 돌아오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역경을 초인적으로 다 헤쳐나갔습니다. 레베드 박사는 결국 세 번째 행성에 도착해 죽은 연인과 조우하고, 그 행성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임을 확인합니다. 쿠퍼는 돌아와 인간이 살 수 있는 우주정거장을 실현해놓은 딸과 만나고, 다시 레베드 박사를 찾으러 떠납니다. 눈에 보이는 우주를 그럴싸하게 그려놓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몸을 가졌기에, 물질인 음식을 섭취해야만 하고 물질인 집이 필요하며 물질인 옷도 필요합니다. 이동하기 위해 물질인 차도 필요하고 물질인 여러 시설들이 있어 편리하게 생활합니다. 이렇듯 물질인 하드웨어를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소프트웨어인 구동시스템이 필요하듯이, 보이는 것들을 잘 결합시켜 의미있게 사용하려면 보이지 않는 결합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개체 개체인 사람들 사이에 관계라고 하는 것에는 이해관계이든 윤리적 관계이든 반드시 감정이 개입합니다. 믿음이나 불신, 사랑이나 미움 등등. 물질과 물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항상 존재하지요. 보이는 물질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공간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첫댓글 일심의 힘으로 멀리있는 군함도 깨뜨린다고 했습니다. 총알도 피해가는 일심의 힘입니다. 시어일심 종어일심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글로 요약 정리해 주셔서 감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감사 합니다.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음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겠지요.그렇게 해서 근본을 밝힐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람 과 사람은,기 와 신의 작용으로 관계가 형성되어 나갑니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마음닦음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알게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