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 조례 사항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 7:2)
조선시대에는 꿀 직업 중에 "곡비"라는 게 있었다. 통곡소리를 대신해 주는 자들이다. 대갓집이나 왕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곡비들이 동원되었다. 1995년 조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삼성 카세트 녹음기를 돌려서 곡소리를 대신했다. 한번 끝나면 손수 뒤집어야 했다. 경상도에서는 상갓집에선 곡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의미 없다.
상가에선 현실감이 안 들어서 눈물조차 말랐다. 너무 힘들면 눈물조차 뒷걸음질 친다. 살면서 끝도 없이 흘릴 눈물을 상가에서 상주들에게 요구하지 말라. 상가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하나의 의례를 치르기 위한 허상의 무대이다.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이다. 눈물은 멈추지 않는 트레비 분수가 된다. 상갓집 매뉴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 참회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상갓집에 다녀온 훈이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젊은 담임선생님께서 왜 돌아가셨어?"
그리고 혼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빼빼 마른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있고 가족들이 울고 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물어봐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상갓집에 써 붙여야겠다. 고인의 사인을 묻지 마시오! 상주들은 고인의 죽음의 원인을 보고해야 하는 국과수 부검실 직원이 아니다. 상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제발 애절하거나 갑작스러운 사연일랑 처 묻지 말라! 고통이다. 고인이 살아온 세월이 중요하지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당신의 타고난 호기심을 차라리 자연관찰이나 수학 문제 한 개 더 푸는데 이용하길 바란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다. 죽음에 인과표를 붙이고 떠벌리는 짓은 그만해야 한다. 제대로 못 배운 내 탓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난 그동안 잘못 살아왔다. 특히나 젊고 애절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경우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고인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당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재촉하지 말라! 인간들은 점점 더 철들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가 희귀했던 우리의 아버지들이 나았다. 제발 철 좀 들어라. 죽음에 꼭 제목이나 부제를 달아 입구에 계시해야 하는 것인가? 아님 가격표나 신언표를 차야 하는 것인가? 난 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철마 저 타고나는 것이다. 난 처음부터 재능이 없었다.
관에다 크게 사인을 써야 하는 것인가? 인간들이여 제발 철 좀 들자, 훈이가 어리지만 진정 깨우친 자였다. 양심 없는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 신이 존재할 리가 없다. 노력한 만큼 되지도 않는다. 가끔 운이 좋아서 성공한 자들이 강연하고 떠들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난 색이 섞이는 카멜레온이나 똑똑한 지능의 문어가 좋다. 내가 붉은 노을을 만나면 붉어지고 푸른 바다를 조우하면 푸른빛이 되지!
입안의 침이 말라간다. 마지막 죽어가는 모닥불에 구은 마시멜로처럼 찐득거린다. 하얗고 몽글몽글 끈적끈적, 심지어 뱉다가 머리카락에 붙어서 곤란한 적이 많다. 손은 빙하 사막처럼 말라 얇고도 하얀 지문이 추억의 불량식품 먹는 테이프(오부 라이트 롤) 과자처럼 부서졌다. 내가 내 손을 뜯어 먹는다. 부모님 몰래 먹는 천상의 맛이었다.
차디찬 손끝에서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웠다. 이 고통의 끝에서 이제서야 삶의 진액이 느껴지는 것인가? 진득하게 달라붙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척추에 수액이 줄어서 키가 작아졌다. 참으로 양심 없는 키다. 더 떨어질 점수 없다면서 계속 지하로 질주하는 아이의 모의고사 점수처럼 또 떨어졌다. 제자 훈이는 9월 모의고사 시험지 답지가 로또용지인 줄 알고 찍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정신력은 최고다. 인생은 하나의 놀이터이다. 잘 놀다 가자. 나도 즐겁고 타인도 그러해야 한다.
가을바람이 분다. 차갑고 마음이 아리다. 그 뜨거운 여름이 이렇게 금방 사라졌는데 난 왜 짧은 그 여름을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을까? 내가 늙기 싫은 이유도 죽고 싶은 이유도 하나로 수렴된다. 결국은 하나였다. 철들기보다 노망이나 주책이라는 소리가 더 가까운 현실에서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은 밤이다.
신이 지구의 축을 잡고 팽이처럼 돌리는 밤! 난 좌도 우도 아니다. 이 행성이 화가 나서 기지개를 켜고 벌레 같은 인간을 떨쳐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 피고름이 흘러내리는 뇌를 체에 거르고 거른다. 진흙으로 아무렇게나 빚은 삶이 썩어가거나 문드러져내리는 난 경상도 출신의 문디 가시나이다. 더 부서질 것도 잃을 것도 없지만 난 여전히 삶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래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